소설리스트

9전단 1941-128화 (128/464)

# 128

128화 늪 (7)

-이건 전투가 아니다! 학살이다!

항공모함 류조의 함교.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야마무라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류조의 함교 안은 탄식이 가득했다.

“맙소사….”

“함 내 스피커 송출 차단해.”

심각한 얼굴이 되어 버린 류조의 함장 카토 타다오 대좌의 명령에 바로 송출이 차단되었다.

카토 대좌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자신을 책망했다.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한 좋은 방책이라고 생각했는데 큰 실수를 했군….”

엔진의 출력이 강화되었고, 장식 또는 무게 추라고 불렸던 무전기가 드디어 자신의 이름값을 하게 만든 신형 제로센을 수령한 이후, 류조의 함전(함상전투기)대원들은 사기가 고양되었다.

그리고 전사하거나 실종, 부상 또는 교관으로 전출 등의 이유로 생긴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새로 들어온 신입 파일럿들의 실력도 괜찮았기 때문에 류조 소속 함재기 부대원들 가운데 가장 높은 사기를 유지하고 있던 이들이 함전 부대의 조종사들이었다.

무사시의 폭침소식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해져 온 미군의 제2구축대 공습 급보와 뒤이어 날아온 야마모토의 제로센 출격 요청에 카토 대좌는 기뻐하며 부장을 돌아봤다.

“이거야 말로 하늘이 주신 기회다!”

기한 없이 이어지던 비상경계 상황에 지친 승조원들의 사기를 고양시킬 방법을 찾던 카토 대좌에게 있어서 제로센 부대의 출격은 최고의 대책이었다.

“류조의 제로센 부대는 아카기와 카가의 1항전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부하들의 실력을 믿고 있던 카토 대좌는 출격한 제로센들의 무선통신을 함 내 스피커로 송출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들려온 것은 ‘학살이다!’라는 비명 섞인 외침과 뒤이어 들려온 비명들이었다.

스피커 송출을 차단한 카토 대좌는 통신장교를 불렀다.

“쇼카쿠에 전달. ‘함전이 없으면 차후 공격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본대와의 합류를 청원한다.’ 바로 보내도록.”

“알겠습니다.”

“미카와 제독이 동의를 할까요 ”

부장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자 카토 대좌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와 제독이라면 선후관계를 잘 아는 양반이야. 그 양반이라면 동의할 거다.”

쇼카쿠의 함교.

카토 대좌와 마찬가지로 스피커를 통해 제로센 파일럿들의 비명을 듣고 있던 미카와 제독은 카토 대좌의 청원이 오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있는 제로센들 만으로는 항모 2척의 직엄(직접엄호)를 하는 것도 아슬아슬한 상황이지, 양키들의 함대 위치도 모르는 상황이다. 본대에 합류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다.”

결심을 한 제독은 통신장교를 불렀다.

“야마모토 장관에게 송신. ‘출격한 제로센 궤멸확실. 항공 엄호 불가능. 1항전과 합류요망’. 즉시 보내도록.”

“핫!”

통신장교에 명령을 내린 미카와 제독은 함장을 돌아봤다.

“오카다 대좌. 움직일 준비는 되었는가 ”

“언제라도 전속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단지….”

말을 멈추며 주변을 살피던 함장 오카다 타메쓰구 대좌는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야마모토 장관이 허락을 하겠습니까 ”

“전쟁은 도박이 아니야.”

간단명료하게 대답을 했지만 미카와 역시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야마모토가 포커게임 만큼이나 도박에 가까운 작전을 좋아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이들은 다 아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이번 작전도 도박이지...”

“예 ”

미카와 제독의 혼잣말을 들은 오카다 함장이 말을 걸자 미카와 중장은 가볍게 손을 저었다.

“아무것도 아닐세. 즉시 후퇴를 할 준비를 하도록.”

“핫!”

“도박도 한두 번이지...”

끝까지 야마모토에 대한 불평을 멈추지 않는 미카와였다.

30분 후, 통신장교가 미카와 제독에게 다가왔다.

“장관으로부터의 답신이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입을 제대로 열지 못하는 통신장교의 모습에 미카와 제독은 손을 내밀었다.

“줘 봐.”

빼앗듯이 건네받은 통신문을 읽은 미카와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미친!”

야마모토가 보낸 통신문은 짧고 간단했다.

-후퇴는 불허한다.

“받아 적도록! ‘항공 엄호 불가능. 미 함대 위치 불명. 본대와의 합류를 강하게 요망함!’ 나가토로 지금 즉시 송신해!”

“알겠습니다!”

열이 바짝 오른 미카와의 모습에 통신장교는 후다닥 통신실로 사라졌다.

나가토의 야마모토와 쇼카쿠의 미카와 사이에 불꽃 튀는 설전이 벌어지는 시발점이었다.

- 현재 공세를 벌이는 미국 함재기의 항속거리를 생각할 때, 미 함대의 위치는 무스카트 인근이 확실하다.

- 본 전단의 위치에서 무스카트까지의 왕복은 불가능하다.

- 항모들을 전진시킬 것.

- 엄호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항모를 전진시키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다.

- 현재 위치에서 200km 정도 더 전진해도 미 함재기들의 공격권에 들어가지 않는다.

- 다시 말한다. 함공(함상공격기)과 함폭(함상폭격기)을 엄호할 함전(함상전투기)이 없다.

- 미군의 함재기들은 지금 제2구축대 격멸에 집중되어 있다.

- 확신할 수 없다. 불필요한 손실을 입을 필요는 없다.

“이런 발칙한!”

방금 전 보낸 미카와의 전문을 받아든 야마모토는 통신문을 구기며 벌컥 성을 냈다.

‘확신할 수 없다.’라는 미카와의 말은 야마모토의 역린을 건드려 버렸다.

진주만의 기습을 성공시킨 이래 ‘군신’으로 추앙받다가 천황의 친위 쿠데타 이후 바닥으로까지 떨어진 야마모토로서는 심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문장이었다.

“받아 적도록! ‘필승의 작전인 점감요격작전의 성공을 위해 손실은 각오할 것!’”

잠시 후, 미카와의 답신이 도착했다.

-불필요한 손실과 무의미한 손실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기 바람.

“이 빌어먹을 자식!”

“나가토에서 온 답신입니다.”

쇼카쿠의 통신실.

아예 무전기 옆에 서 있던 미카와 제독은 모스 부호의 해독이 끝나자마자 전문을 잡아들고는 내용을 읽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몇 번이고 전문을 되풀이해 읽은 미카와 제독이 무전기를 담당한 승조원을 노려봤다.

“이거 제대로 받아 적은 것이 맞나 ”

“제대로 받아 적었습니다!”

“허!”

미카와는 기가 막혀 숨을 내뱉었다.

야마모토가 보낸 전문은 간단했다.

-육군이 보고 있다.

“빌어먹을 자존심 때문에 죽으라는 거냐!”

분노에 가득 차 고함을 지른 미카와의 얼굴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야마모토가 눈앞에 있으면 멱살잡이를 할 것 같은 표정으로 무전기를 노려보던 미카와가 명령을 내렸다.

“당장 나가토로 송신! ‘일본 제국해군 제3항전의 사령관 권한에 의거. 제3항전은 지금 즉시 본대로 귀환하겠음.’ 보내!”

“하, 핫!”

미카와 제독의 박력에 질린 통신병은 토씨 하나 빼지 않고 그대로 나가토로 송신하기 시작했다.

붉어진 얼굴에 핏줄까지 솟아오른 미카와 제독은 전성관을 붙잡고 오카다 함장을 불렀다.

“오카다 함장! 지금 즉시 쇼카쿠는 부비얀 섬으로 돌아간다! 류조에도 통보하도록!”

“핫!”

잠시 후, 쇼카쿠와 류조, 그리고 항모들을 호위하던 구축함 4척이 함수를 돌려 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    *    *

“이 미친 자식!”

통신문을 읽자마자 구겨 바닥에 집어던진 야마모토는 참모에게 명령을 내렸다.

“쇼카쿠가 도착하는 즉시 미카와의 신병을 구속해라!”

“핫!”

“바스라에 도조가 와 있는데 이런 추태라니!”

분을 참지 못한 야마모토는 참모를 불렀다.

“선실에 가서 군도를 가져와라! 일벌백계의 의미로 미카와를 참수하겠다!”

“장관! 진정하십시오! 도조가 보고 있습니다! 아니! 도조는 넘어가더라도 야마구치 제독과 이노우에가 비웃을 것입니다!”

“으아아!”

참모의 제지에 야마모토는 화를 못 참고 나가토 통신실의 벽을 후려쳤다.

그 모습에 선임참모가 나서서 참모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장관을 모시고 나가도록.”

“알겠습니다.”

참모들이 야마모토를 데리고 나가자 선임 참모는 통신실의 문을 막고 서서 통신실의 요원들을 노려봤다.

“방금 있었던 일은 모두 잊도록.”

“핫!”

“우리 제국 해군의 명예가 걸린 일이다. 그 누구도 이번 일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핫!”

통신 요원들의 입을 막은 참모가 통신장교에게 명령을 내렸다.

“제2수뢰전대에 연락. ‘현재 전황으로 볼 때 미 함대는 야간에 페르시아 만의 안쪽으로 들어올 것이 확실함. 제2수뢰전대는 야전(夜戰)을 준비해 미 해군을 타격하라.’ 잘 받아 적었나 ”

“옛!”

“그럼 즉시 송신하도록.”

통신문을 전달 받은 병사가 통신기의 키를 두들기기 시작하자, 선임참모는 통신실을 빠져나왔다.

통신실을 나온 선임참모는 바깥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봤다.

뜨거운 중동의 햇살에 살짝 눈을 찌푸리던 선임참모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자중지란이라니...”

갑갑한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진 선임 참모는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    *    *

쇼카쿠와 류조가 바레인을 벗어나자 E-2D의 레이더에 바로 걸려들었다.

한반도 통합 작전통제 센터의 대형스크린을 통해 쇼카쿠 항모전단의 움직임을 본 고 제독과 스프루언스 제독이 의견을 나누었다.

“진로가 북쪽인데 회항하는 것일까요 ”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쇼카쿠나 류조의 덩치라면 아까 쓸려 나간 제로센들이 가진 전투기 세력의 거의 다였을 겁니다, 전투기들의 엄호 없이 폭격기나 뇌격기들을 내보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를 방심시키려는 위장공작일 가능성은 ”

“위장공작을 벌일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리면 됩니다.”

“상황을 만든다 ”

스프루언스 제독의 물음에 고 제독은 테이블 모니터에 띄운 지도의 한 곳을 가리켰다.

“제가 배웠던 바에 따르면 전함들을 빼고 일본이 가장 자신하는 부대가 이들입니다. 제가 야마모토라면 야간 뇌격전을 벌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함선들을 지워 버리면 야마모토는 어쩔 수 없이 정면 대결을 벌여야겠군요.”

“그렇습니다.”

고 제독의 말에 스프루언스는 참모들을 돌아봤다.

“함재기들은 다 돌아왔나 ”

“착함이 거의 다 끝나가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페르시아 만 입구를 틀어막고 있던 잽의 구축함들은 ”

“14척 가운데 10척 격침. 4척이 도주했지만 다들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잠시 말을 멈춘 스프루언스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 11시니까 귀환한 파일럿들에게 점심과 휴식을 제공하고 출격을 준비하라고 해. 14시 정각부터 잽의 매복함대를 공격한다.”

“알겠습니다.”

참모에게 명령을 내린 스프루언스는 고 제독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18시까지는 작전이 마무리가 될 것이고 오늘 저녁은 편하게 잘 수 있겠군요. 잠을 제대로 자야 무슨 일을 하던 제대로 되는 법 아니겠어요 ”

“맞습니다.”

스프루언스 만큼이나 싱글싱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고 제독이었다.

*    *    *

“나가토에서 온 명령입니다.”

제2수뢰전대-일본 제국 해군 사이에서는 ‘꽃의 2수전’이라 불렸던-의 기함 진츠 함교. 제2수뢰전대 사령관 타카하시 제독은 전문을 읽고는 턱을 쓰다듬었다.

“야전(夜戰)으로 미 해군을 타격하라... 어떻게 생각하나 ”

타카하시 제독의 물음에 진츠의 함장 다나카 중좌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매복만 걸리지 않으면 필승입니다! 제2수뢰전대는 오직 이 날만을 위해 훈련을 해 왔습니다! 저 양키들은 악몽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나카 중좌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타카하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앙금이 남은 얼굴이었다.

“문제는 양키들의 항공기들이지. 제로센 조종사들의 악몽을 우리라고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해가 질 때까지 은신에 최선을 다하도록! 다른 배에도 명령을 전달하라!”

“핫!”

명령을 내린 타카하시 제독은 함교를 나왔다.

함교의 난간을 붙잡은 채 하늘을 바라보며 타카하시 제독은 작게 중얼거렸다.

“해가 질 때까지만 살아남는다면 승리는 우리 것이다. 해가 질 때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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