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126화 늪 (5)
고 제독과 스프루언스 제독의 합의로 일본의 초대형 전함을 공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일본 함대 공격의 선봉을 한국이 맡게 되었다.
공격대 편성의 임무를 맡은 박 대령은 일본의 야마토급 초대형 전함을 날려 버리는 임무에 무인기를 사용할 것을 결정했다.
이 소식을 들은 파일럿들이 강하게 반발을 하고 나섰다.
“이런 명예로운 임무를 스팅레이에게 맡기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KF-1에는 벙커버스터를 못 달잖아!”
“기체 중앙에 있는 미사일 파일론에 장착하는 어댑터 랙이 한반도에 배치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어댑터를 사용하면 충분히 KF-1도 작전 가능합니다!”
파일럿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박 대령의 결심은 변하지 않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벙커버스터는 스팅레이에 사용될 것이었다. 만용은 금물이다! 그렇게 일본 함대를 끝장내고 싶으면 일본 항공모함들이나 제대로 잡아! 해산!”
파일럿들을 쫓아낸 박 대령은 작전관들과 함께 작전 계획을 수립했다.
“스팅레이2에 벙커버스터를 1발 달 수 있던가 ”
“매뉴얼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무게가 2.1톤이나 나가다 보니 말입니다.”
“그럼 몇 대를 동원할까 나는 4기를 다 동원할까 ”
“우선은 2기를 출격 시키고, 전과를 확인한 다음 나머지 2기를 추가로 출격 시키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
“2기로 가능할까 ”
“독일은 벙커버스터보다 훨씬 작은 놈인 프리츠X로도 전함을 잡았습니다.”
“그 전함은 저 무사시의 절반밖에 안 되는 놈이잖아.”
“절반보다는 확실하게 컸습니다. 거기에 더해 벙커버스터는 프리츠X보다 7배 정도 큽니다. 충분히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럼 2선 2기를 출격 시키고 나머지 2기는 한반도에서 대기하는 것으로 하고….”
잠시 말을 멈춘 박 대령은 대형 모니터에 무사시를 위에서 찍은 항공사진을 띄우고 작전관들을 돌아봤다.
“어디를 표적으로 잡아야 한 방에 용궁으로 보낼 수 있을까 ”
“주포탑이 어떻습니까 제대로 뚫고 들어가면 탄약고까지 직통으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물이 많습니다. 당장 주포의 포미들도 장애물이 될 것이고, 포탄과 장약을 운송하는 장비들과 층간 격벽도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중간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도 벙커버스터의 폭발력이라면 충분히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
“저 쪼그마한 부포탑과 주포탑 사이를 노리는 것은 어떨까요 ”
온갖 난상토론이 이어지면서 벙커버스터를 꽂아 넣을 위치가 결정되었다.
1번 목표는 2번 포탑과 부포탑의 사이. 2번 목표는 후부 부포탑과 후방 관측실 사이로 결정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작전 시각은 새벽 3시 반.
박 대령과 작전관들이 세운 계획은 고 제독에게 올라갔다.
“좋군. 실행하게.”
“알겠습니다. 제독님.”
* * *
다음 날 새벽 3시 20분.
무사시의 함교에는 당직사관들이 한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군들이 언제쯤 올 것 같아 ”
“조만간 오겠지. 인도에서 오는 수송선 라인이 멈춘 것을 보면 말이야.”
“차라리 빨리 와서 한판 붙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비상경계로 있는 것도 지친다, 지쳐.”
불평을 하는 사관의 말마따나 무사시를 비롯한 일본 함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지치다 못해 짜증이 난 상황이었다.
인도에서 오는 정기 수송선단의 연락이 두절된 것이 나흘 전이었다. 보고를 받은 야마모토는 바로 함대 전체에 비상을 걸었다. 비상이 걸리자마자 함대 병사들의 긴장도는 급상승했다.
그리고 이틀 전, 무사시에서 발진한 0식 수상정찰기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격추된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수병들의 긴장은 최고조로 올라갔다.
문제는 그렇게 긴 시간동안 과도하게 긴장된 상태로 생활을 하면서 병사들이 감내해야 할 스트레스가 위험할 정도로 강해졌다는 것이었다.
그 유명한 일본해군의 사적제제의 강도와 빈도가 급증했고, 함선들의 분위기는 흉흉해졌다.
무사시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상이 걸린 이후로 불이 꺼지지 않는 보일러실에서부터 함교 제일 꼭대기 포격 관제실까지 구타가 이어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견시! 뭐 발견했나 ”
“아직 없습니다!”
“졸지 말고 제대로 봐라!”
“핫!”
심심함과 짜증을 이기지 못해 전성관을 붙잡고 견시를 닦달한 사관이 투덜거렸다.
“영국이나 미국이나 도이치도 다들 레이더라는 전파 탐지기를 쓴다는데 이게 뭔지….”
“이번 임무가 끝나고 귀환하면 무사시도 장착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그 전에 살아남으면 말이지.”
시니컬한 대답에 동료 사관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세계최강의 전함 무사시와 제국해군이다! 네놈이 사무라이라면 약한 소리는 집어치워!”
“현실이 그렇잖아!”
사관들이 말다툼을 벌이고 있을 때, 함교 벽에 걸린 시계가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 *
“고도 7000m, 투하 위치에 도착했습니다.”
“지정받은 투하지점에 조준해.”
“알겠습니다.”
스팅레이의 수동조종을 담당한 조종사가 키보드를 조작하자 스팅레이의 적외선카메라가 최대한으로 줌렌즈를 움직였다.
1번 기와 2번 기의 조종사들은 지정 받은 투하지점에 십자선을 맞췄다.
“조준완료.”
“투하.”
“투하.”
조종사들이 트리거를 당기자 스팅레이에서 GBU-28 벙커버스터가 떨어져 나와 활강을 시작했다.
모기(母機)인 스팅레이의 유도에 따라 조종타를 움직이며 2발의 벙커버스터는 무사시를 향해 유성처럼 떨어져 갔다.
유도에 따라 무사시에 격돌한 벙커버스터는 겹겹이 설치된 장갑 갑판을 뚫고 깊숙이 들어가 폭발을 했다.
벙커버스터가 폭발하는 순간, 무사시의 앞과 뒤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후부 부포탑과 후방 관측실 사이로 뚫고 들어간 벙커버스터의 폭발은 부포탑의 화약고를 폭발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사시의 척추인 용골을 부러뜨렸다. 용골이 부러지면서 찢어진 선체의 벽을 따라 바닷물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사시에게 치명타를 가한 것은 후부 부포탑을 타격한 벙커버스터가 아니라 2번 주포탑과 부포탑 사이를 뚫고 들어간 벙커버스터였다.
일본의 엔지니어들도 위험을 예상하고 주포의 화약고와 부포의 화약고 사이에 두터운 장갑 격벽을 설치했지만, 벙커버스터의 폭발에는 별무소용이었다
그들이 예상했던, 그리고 자국 군의 1식 철갑탄-1,460kg 무게에 34kg의 폭약을 충전한-을 가지고 벌인 실험을 통해 자신감을 가졌던 장갑 격벽은 2.1톤 무게에 450kg 가까운- 2차 대전 당시의 그 어느 나라보다 강한 위력을 가진- 폭약이 만들어낸 충격량과 폭발력을 이겨 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 무사시의 함교 앞부분은 대폭발과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무사시의 폭발은 불운한 희생자들을 만들어 냈다. 희생자들의 이름은 이소카제와 마이카제였다.
무사시의 전방 주포탑들이 있는 곳에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닻을 내리고 있다가 폭발의 후폭풍과 파편에 휩쓸리면서 이소카제에 실린 산소어뢰가 유폭을 일으켰다.
그 폭발의 연쇄반응으로 마이카제에 실린 산소어뢰까지 유폭하면서 두 구축함들의 상부 구조물들이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구축함들의 허리가 꺾여 버렸다.
다른 구축함들의 상태 역시 좋은 것은 아니었다.
라스알카이마에는 적당한 항구시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사령관인 구리다 제독의 명령이 더해졌다.
“구축함들은 무사시의 주위를 둘러싸라! 미군 잠수함의 공격에서 무사시를 보호해야 한다!”
그 결과 구축함들은 무사시 근처에 닻을 내리고 있었고, 빠짐없이 폭발의 후폭풍을 뒤집어썼다.
특히나 무사시의 함수 부분에 모여 있던 구축함들의 상태는 참혹했다. 침몰은 이소카제와 마이카제 뿐이었지만 침몰만 안 했을 뿐 멀쩡한 배는 단 한척도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상태는 심각했다.
“어뢰를 버려라!”
“어뢰 버려! 그거 터지면 우리도 죽는다!”
“화재를 진압해!”
“부상자들을 옮겨라!”
“의무병! 의무병!”
“살려줘!”
사방에서 비명과 고함소리가 울부짖는 가운데 운 좋게 부상을 피하거나 경미한 부상만을 입은 이들이 어뢰를 바다에 버리고, 화재를 진압하며, 심하게 다친 동료들을 옮겨야 했다.
일본 구축함들의 인명피해를 키우는데 일조를 한 것은 길어졌던 비상경계였다.
언제 미군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조바심과 아무 때나 발령되던 전투배치 명령 때문에 주포와 어뢰를 담당하던 수병들 대다수가 갑판에 나와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존을 위한 악전고투 끝에 어느 정도 위기를 벗어난 구축함들의 승조원들은 그제야 무사시를 떠올릴 수 있었다. 무사시가 있던 곳을 바라본 구축함 승조원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일본해군의 최강 전함 가운데 하나였던 전함 무사시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단지 크고 작은 유류품들이 파도에 출렁거리며 그 곳에 무사시가 있었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 * *
“만세!”
“잡았다!”
“만세!”
한반도의 무인기 관제실에서는 함성과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관제실 실장인 장덕수 소령은 LA에서 사 가지고 온 샴페인 병을 꺼내 들었다.
퐁!
“잔을 들어라!”
소령의 외침에 관제실에 있던 모두가 종이컵을 손에 쥐었다. 종이컵마다 넘치게 샴페인을 따라 부은 장 소령이 잔을 높이 들었다!
“스팅레이들을 위해! 위 킬 무사시!(We kill Musashi!)”
“위 킬 무사시!”
장 소령의 외침에 따라 외친 관제실 요원들은 단숨에 샴페인을 비웠다. 비어 버린 잔을 구겨 휴지통에 버린 장 소령이 명령을 내렸다.
“축하는 여기까지! 이번 작전이 끝나고 돌아가면 거하게 한잔 사겠다! 그때까지 술은 금지다! 우선은 스팅레이들부터 무사히 귀환시켜!”
“알겠습니다!”
* * *
함성은 관제실만이 아니라 통합 작전통제 센터에서도 터져 나왔다.
대형모니터를 통해 스팅레이들이 보내오는 영상을 보던 고 제독과 스프루언스 제독, 참모진들과 통제센터의 운용요원들은 무사시가 폭발하는 장면을 보자마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질러 댔다.
불끈 쥔 주먹을 허공에 흔들며 좋아하던 광란이 가라앉자 스프루언스 제독이 손목시계를 보고는 명령을 내렸다.
“항공모함들에게 명령을 전달하라! 1시간 뒤! 공격대를 출격 시켜라! 페르시아 만 입구를 청소한다!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지워 나간다! 마지막 목표는 야마모토의 머리다!”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참모는 신이 나서 통신장교에게 달려갔다.
‘무사시를 잡았다!’라는 소식은 순식간에 한반도 전체로 퍼져 나갔다.
소식을 들은 승무원들은 모두 함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그리고 곧바로 다른 함선들에게도 소식이 전파되었고, 소식을 들은 수병들은 국적을 망론하고 함성을 질러 댔다.
항공모함의 함장들은 항해장들에게 명령을 내렸는데 모두 똑같았다.
“우리도 질 수 없다! 바람을 받으며 전속 전진!”
승부욕에 불타오른 것은 함장들만이 아니었다. 정비병부터 파일럿들까지 모두 다 경쟁심이 불타오르며 출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벤저와 돈틀리스에 폭탄과 어뢰를 장착하고, 주익에는 3.5인치 FFAR(Forward Firing Aircraft Rocket)을 달며 정비병들은 한 목소리로 외쳤다.
“야마모토의 머리 가죽은 우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