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121화 (121/464)

# 121

121화 오월동주(吳越同舟)-일본의 서진(西進) (5)

온천으로 유명한 하코네에 자리한 료칸(여관). 사복을 입은 육군과 해군의 병사들이 삼엄한 경비를 펼치는 가운데 야마모토와 도조가 회동을 가졌다.

“오랜만이오.”

“오랜만이외다.”

두 사람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고는 커다란 다탁(茶卓)을 가운데 놓고 마주 앉았다.

“그동안 잘 지내셨소 ”

“뭐… 잘 지냈을 리 있겠소 요즘 기세등등한 어느 분 덕분에 이렇게 온천에서 휴양이나 하고 있지. 장관은 어떻게 지냈소 ”

“구레에서 이태백처럼 술잔과 함께 음풍농월(吟風弄月)하고 있었소이다.”

“전쟁 통에 신선놀음을 하고 계셨구려.”

“그건 총리 역시 마찬가지 아니셨소 ”

세대를 거치면서 계속해서 이어져온 앙숙지간이었기에 두 사람의 안부인사에는 가시가 듬뿍 박혀 있었다. 하지만 회동의 목적을 생각한 두 사람은 뿌리 깊은 악감정을 옆으로 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 살아있는 군신이신 야마모토 사령장관께서 나를 보자고 한 이유는 무엇이오 ”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치다가 낭패를 보고 있는 애송이들 때문이요.”

“애송이들 ”

“천황참모본부라는 거창한 간판을 단 애송이들 말이요.”

“아아.”

도조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인도에서 죽을 쑤는 바람에 그 기고만장하던 콧대가 팍 주저앉았다는 소문은 들었소이다. 그래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이오 ”

“저 애송이들은 내가 취했던 전략과 전술들이 도박이라면서 신중하고 견실한 전략을 세우고 그에 따른 전술을 확립해야 한다고 했소. 그리고 지금 인도에서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지. 지금은 용맹과감한 기습적인 작전이 필요한 때요! 이에 육군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총리를 만나자고 한 것이오!”

“용맹과감한 기습적인 작전 또 다시 진주만을 공격할 생각인 것이오 ”

도조의 물음에 야마모토는 책상 위에 지도를 펼쳤다.

“하와이는 차후요. 지금은 이곳을 목적으로 할 것이오.”

“바그다드 ”

“그렇소. 바그다드요.”

야마모토의 작전은 다음과 같았다.

- 연합함대의 1항전을 중심으로 한 기동타격대의 호위 아래 육군이 바스라에 상륙한다.

- 바스라에 상륙한 육군은 사트 알 아랍 강의 수로와 티그리스 강을 따라 쾌속으로 북상, 바그다드를 점령한다.

- 바스라 남쪽에 위치한 윰 카스르 항구를 점령한 1항전은 바그다드에 도착한 육군항공대가 정상적으로 작전을 벌일 때까지 항공작전을 펼쳐 육군을 엄호한다.

- 바스라에서 바그다드까지의 지역을 완벽하게 손에 쥐면 육군은 계속해서 북상. 시리아 지역의 독일군과 합류한다.

- 독일군과 합류하면 일본은 페르시아 지역의 원유지대를 손에 넣는 것은 물론, 러시아로 향하는 수송로의 차단에도 성공한다. 나아가 소련으로 침공할 수 있는 제 2의 통로를 손에 넣을 수 있다.

“흐음….”

야마모토의 설명을 들은 도조는 콧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겼다. 팔짱을 낀 채 말없이 지도만을 바라보던 도조가 야마모토에게 질문을 던졌다.

“1항전만으로 가능하겠소 1항전이라고 해봤자 항모는 2척밖에 없지 않소이까 ”

“연합함대의 사령장관은 아직까지는 나요. 사령장관의 권한으로 아카기와 카가 외에 쇼가쿠와 즈이가쿠를 더 추가할 것이오.”

“덴노가 허가를 할 것 같소 ”

“덴노로서는 불허를 할 이유가 없소. 이기면 수에즈까지 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고, 실패하면 눈엣가시 같은 우리를 치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이판사판이라는 소리요 ”

“어차피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판사판, 건곤일척의 도박밖에 없다는 것을 총리도 잘 알지 않소 ”

“도박이라고 해도 최대한 많은 승산을 가져가야할 것 아니요 바그다드에서 북상을 해 독일군과 합류를 한다고 했는데. 합류지점을 어디로 잡은 것이오 설마 우리 육군보고 사막을 가로지르라는 것은 아니겠지 ”

“알 레포요. 그곳까지는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올라가면 보급로 문제도 해결이 가능하오.”

야마모토는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도조를 설득했다. 하지만 도조는 쉽사리 야마모토의 제안을 수락하지 않았다.

“페르시아 만까지 가는 수송로 방비는 어떻게 할 것이오 애송이들이 캘커타에서 카라치까지 인도를 가로지르는 수송로를 완성하기 전까지는 인도를 돌아가는 해상수송만이 가능하오.”

“이미 애송이들이 인도의 남쪽 꼭짓점까지 내려갔소. 우리가 바그다드에 도착할 때면 애송이들이 나머지 반쪽을 해결해놓을 것이오. 아무리 애송이들이라도 바그다드 점령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모르지는 않을 테니까.”

“연합군이 가만히 있을까 ”

“인도양 지역에 연합군 해군이 존재하지 않소. 만약 연합군이 타격을 가하기 위해 해상세력을 움직여도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하지.”

야마모토는 21세기의 UAE가 자리한 아라비아 반도의 동쪽 꼭짓점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곳. 하사브에 감시탑을 설치한다면 연합군의 접근을 바로 알아챌 수 있소. 그러면 그 아래쪽, 꼭짓점의 그늘인 라스알카이마에 숨겨놓았던 타격부대를 출동시켜 연합군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역습도 가할 수 있소.”

“타격부대의 규모는 ”

“무사시와 나가토를 중심으로 한 전함전단을 준비해둘 거요.”

“전함들을 ”

“애송이들이 전함은 구시대의 유물, 유류소모의 원흉이라면서 아예 제외를 시켜놓았더군. 조금만 올라가면 원유산지들이 버티고 있는데 딱 좋은 곳 아니오 ”

“흐음… 이런 경우라면 육군은 최소한 10만은 필요한 것인가 적어도 200기 이상의 전투기들도 있어야 할 것이고 ”

“300기는 있어야 할 것이오. 바그다드까지는 제로센의 손이 닿지만 그 이상은 충분하지가 않으니까.”

“흐음….”

“시간이 없소. 독일군이 밀리기 시작했소. 잘못하면 연합군의 모든 창끝을 우리가 다 감내해야 하오.”

도조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야마모토가 채근을 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도조가 결론을 내렸다.

“좋소! 합시다!”

*    *    *

야마모토와 도조가 합의를 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완성된 작전계획은 바로 천황참모본부로 올라갔고, 야마모토와 도조가 직접 히로히토를 찾아 작전 계획서를 제출했다.

“재가를 하실 것인지요 ”

이노우에 시게요시의 물음에 히로히토는 피식 웃으며 이노우에를 바라봤다.

“장군은 어떻게 생각하나 ”

“성공하면 우리 일본의 아시아 지역의 지배력은 확고해집니다만….”

“성공하느냐가 문제겠지 ”

“그렇습니다.”

“토조와 야마모토가 자신들의 목을 걸었다. 짐이 손해 볼 일은 없다. 도조와 야마모토, 특히 야마모토는 짐이 양키들의 폭격을 받아 다친 일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할 것이다. 고로 짐은 재가하겠다.”

“알겠습니다.”

“장군은 만약 실패를 했을 경우의 대비책을 준비하도록.”

“알겠습니다, 폐하. 바로 준비를 하겠습니다.”

히로히토의 명령에 이노우에 시게요시는 바로 목례를 하고는 어전을 빠져나갔다.

*    *    *

히로히토의 재가가 떨어지자 도조와 야마모토의 합동작전은 궤도에 올라갔다.

작전의 중심인 1항전에는 기존에 배치된 아카기, 카가 외에 쇼가쿠, 즈이가쿠와 류죠가 추가로 배치되었다.

그러자 작전에 참가가 결정된 함선들의 수병들, 특히나 그동안 밥만 축내는 밥버러지 취급을 받던 무사시와 나가토의 수병들은 만세를 불렀다.

“드디어 전함의 위용을 펼칠 때가 왔다!”

“덴노헤이까 반자이!”

마침내 모든 준비를 다 끝낸 ‘페르시아 원정함대’는 육군을 태운 수송선들을 이끌고 출항했다.

진주만 공습과 필리핀 공략 이후 오랜만에 구성된 대규모 함대였기 때문에 작전에 참가하는 선박들이 다 바다에 나서기까지 이틀의 시간이 소모되었고, 군항 인근의 주민들 가운데 큰 작전이 벌어졌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    *    *

동중국해 해상.

일본과 점령지역을 오가는 수송선단을 사냥하기 위해 매복했던 미 해군의 가토급 잠수함 SS-236실버사이즈(Silversides).

“잽들의 함대입니다!”

레이더스크린을 살피던 전탐병의 보고에 커닝타워에 자리하고 있던 함장 쇼어 중령이 해치 아래쪽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좌표와 규모!”

“좌표는… 잽의 항공기입니다!”

“젠장! 비상잠항!”

중령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실버사이즈는 수면 아래로 모습을 감추었다. 뒤이어 전투정보실에 자리한 쇼어 중령은 음탐관에게 상황을 물었다.

“들켰나 ”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쇼어 중령은 상황을 확인했다. 전탐실로 향한 쇼어 중령은 전탐병에게 질문을 던졌다.

“잽들의 함대 규모는 ”

“대규모입니다. 잠항 직전까지 적어도 4척 이상의 대형 함선의 반응이 잡혔습니다.”

“잽의 항공기까지 떴을 정도라면 항모도 있겠지.”

덥수룩하게 자란 턱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런저런 궁리를 하던 쇼어 중령이 음탐관을 바라봤다.

“잽들의 함대를 쫓아갈 수 있겠나 ”

“잽들의 이동 속도를 보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음탐관의 대답에 쇼어 중령이 결심을 했다.

“잽들의 초계기가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밤이 될 때까지 수중추적을 계속한다. 먹을 만한 사냥감인지 다른 놈들에게 넘길만한 놈들인지 판단은 밤에 하도록 하지.”

쇼어 중령의 결심에 월력표를 확인한 부장이 맞장구를 쳤다.

“다행이 오늘 밤은 만월이니 잘 보일 겁니다.”

실버사이즈는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일본 함대를 뒤쫓았다. 밤이 되자 실버사이즈를 부상시킨 쇼어 중령은 기관실에 명령을 내렸다.

“전속 전진! 제한 속도를 넘길 수 있으면 넘겨버려!”

“아이아이 써!(Aye Aye. Sir!)”

기관장의 대답과 동시에 실버사이즈의 선수가 세차게 바다를 가르기 시작했다. 속도가 최고조에 올랐다고 판단이 된 쇼어 중령이 해치 아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항해장! 속도!”

“21노트입니다!”

매뉴얼에 기록된 최고속도인 20.25노트를 넘긴 속도에 쇼어 중령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대로 직진! 잽들의 함대 옆을 따라 추월하며 덩치를 재본다! 레이더! 하나도 놓치지 마! 본 함장은 잽들의 구축함들이 펼치는 환영행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아이 써!”

*    *    *

전력질주를 실버사이즈의 커닝타워에는 함장과 부장, 항해장은 물론 병기장까지 올라와 망원경을 눈에 대고 일본의 함대를 관찰했다.

“전함에, 항공모함에, 구축함에, 수송선까지… 다 모였군!”

좋아라하는 쇼어 중령의 말에 부장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사냥을 하실 겁니까 ”

“좋잖아 ”

“적들이 너무 많습니다. 실버사이즈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부장의 지적에 쇼어 중령은 병기장을 돌아봤다.

“병기장의 의견은 ”

“함장님이 하시자면 따르겠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버겁습니다.”

“다들 겁을 집어먹은 것인가 ”

“전함 한, 두 척만이 모여 있으면 오히려 앞장서 공격을 청원하겠습니다만. 저 구축함들이 거치적거립니다. 지금 대충 살핀 것만 해도 20척이 넘습니다.”

부장은 물론이고 병기장까지 공격을 주저하자 쇼어 중령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한참이나 말없이 고민을 하던 쇼어 중령이 결심을 내렸다.

“오늘은 물러난다. LA에 보고를 하도록. ‘잽의 대규모 함대 발견. 전함 2, 항공모함 5, 구축함과 수송선 다수. 진로는 남쪽’.”

“알겠습니다.”

쇼어 중령의 말을 받아 적은 부장이 해치 아래로 사라졌다. 병기장과 항해장까지 밑으로 내려 보낸 쇼어 중령은 점점 멀어지는 일본의 함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아쉽군.”

*    *    *

LA. 미 해군 태평양 함대 사령부.

“부르셨습니까 ”

“어서 오게. 고 제독.”

고 제독에게 자리를 권한 니미츠 사령관이 빙긋 웃으며 서류철을 내밀었다.

“무엇입니까 ”

“태평양과 인도양에 내보낸 잠수함들이 보낸 통신문일세. 잽들이 드디어 미끼를 물은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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