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108화 (108/464)

# 108

108화 작전명 ‘유사(流砂, quicksand)’ (11)

벌레와 빨갱이가 ‘강꼰대’를 씹어대고 있을 때, 사단 본부에서 온 전령이 남궁 소령을 찾아왔다.

“소령님, 사단장님이 찾으십니다.”

“무슨 일 때문에 ”

“사단본부에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소령님을 찾고 있습니다.”

“알았다. 바로 가지.”

“알겠습니다.”

전령을 보낸 남궁 소령은 벌레와 빨갱이를 돌아봤다.

“아랍인들이라면 내가 아니라 두 분이 더 필요한 일 아닌가요 ”

“서열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

“거 참….”

벌레의 대답에 남궁 소령은 입맛을 다셨다. 남궁 소령은 패튼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    *    *

“낮에도 먼저 승전보를 전하더니, 야간 기습도 막아냈군! 아주 수고했어!”

독일군의 야습을 막아낸 다음, 남궁 소령과 A전투단의 지휘관들에게 치하를 한 패튼은 뒤이어 B와 C전투단의 지휘관들을 괴롭혀댔다.

“귀관들은 뭐하는 것인가! 알 바유크를 점령하느라 전력을 소모한 A전투단에게 또 다시 방어에 핵심인 구역을 맡기다니! 귀관들은 지도를 볼 줄도 모르는 것인가! 이런 멍청한 자식들!”

B와 C전투단의 지휘관들을 상대로 길길이 날뛰는 패튼을 보며 남궁 소령은 쓴웃음을 졌다.

물론 B와 C 전투단의 지휘관들이 얌체 짓을 하기는 했다.

패튼이 처음 내린 명령에 의거하자면 A전투단은 라파-알 바유크 가도 방면에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칸 유니스로 가기에 가장 적합한 동북쪽 방면에 자리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우리는 이곳의 지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자리를 잡기까지 불필요한 시간이 소모되어버리네.”

“급하게 오느라 부하들의 준비가 덜 되었어. 어차피 자네들이 지금 그곳에 있으니 그곳의 방어를 하면 되겠네!”

B와 C전투단의 지휘관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라파-알 바유크 가도 방면의 방어를 남궁 소령에게 떠넘기는 얌체 짓을 벌였다.

계급서부터 밀린 남궁 소령과 세이모어 중령은 결국 문제의 위치를 방어하는 임무를 떠맡게 되었다.

문제는 방어진지를 구축할 무렵 도착한 사단본부의 참모들도, 가장 마지막에 도착한 패튼도 확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합리를 지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놓고 패튼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이 길길이 뛰고 있는 것이었다.

*    *    *

“…그게 높으신 분들의 특징 아닙니까. 잘되면 내 덕, 안 되면 네 탓.”

사단 본부로 가는 지프차에서 남궁 소령의 푸념을 들은 빨갱이의 대답에 벌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고 제독, 그 양반이 꽤 괜찮은 양반이지. 문제는 어쩌다 그런 양반 밑에 강꼰대 같은 이가 있냐는 것이지만.”

“그거야 제독 잘못이 아니지. 인사담당자를 조져야 하는데 21세기에 있으니 어쩌겠냐 ”

“그 양반, 그런 성격 갖고 어떻게 함장까지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벌레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궁 소령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런데, 소령님 운전 잘 하십니다 수동미션을 아주 잘 다루시는데요 ”

“이거요 남자는 스틱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괜시리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남궁 소령이었다.

*    *    *

LA에 둥지를 튼 다음에 참전을 준비하는 가운데, 21세기 출신 모두에게 공통되는 문제점들이 속속들이 발견되었다.

백신과 위생 문제와 같은 생존과 관련된 문제도 있었지만, 군 출신에게는 더욱 크게 와 닿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지프차에서부터 전차까지 땅위에서 굴러가는 것들이 다 수동미션이다!

K105HT를 제외한 모든 차량들이 오토매틱 미션-물론 전차야 방식이 다르지만-을 장착한 차량이었고, 사회는 물론이고 군에서도 오토 미션에 익숙했던 21세기 한국군들은 처음부터 다시 운전을 연습해야 했다.

*    *    *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남궁 소령이 운전하는 짚은 사단본부에 가까워졌다.

“응 ”

사단본부에 가까워지면서 세 사람의 이목을 끄는 장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단의 사람들을 둘러싼 수많은 아랍인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었고, 헌병들이 진땀을 흘리며 아랍인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살기등등한 모습을 본 벌레가 심각해진 얼굴로 남궁 소령을 바라봤다.

“이것 때문인가 부른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어느새 세 사람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어서 오게!”

세 사람을 환영한 패튼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면서 봤겠지만 독일군이 패주한 다음 돌아온 라파 지역의 민간인들 사이에 분쟁이 벌어졌네. 이걸 해결해야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들을 하는지 알아먹을 수가 있어야지! 젠장! 싸우기도 바쁜데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패튼은 연신 투덜거리는 가운데, 상황을 보던 남궁 소령이 질문을 했다.

“통역이 없습니까 ”

“없어!”

“영국 식민지니까, 영어를 할 줄 아는 이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

“그치들은 독일군이 오자마자 사막 아니면, 영국군 진지로 도망갔다는군!”

“아이젠하워 장군이 계시는 사령부에 보고를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

“사령부에서 통역을 구하고는 있다고 기다리라고 하기는 하는데, 밖의 분위기를 보라고! 기다릴 수 있겠나!”

“그렇군요.”

패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남궁 소령은 벌레와 빨갱이를 돌아봤다.

“수고 좀 하셔야겠어요.”

“알겠습니다.”

*    *    *

밖으로 나간 벌레와 빨갱이가 아랍어로 말을 걸자, 소요사태를 일으키고 있던 아랍인들이 두 사람에게 몰려와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아랍인들을 제어해가면서 아랍인들의 사정을 파악한 벌레와 빨갱이는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이 미친 유대놈들….”

상황을 정리한 벌레와 빨갱이는 패튼에게 저간의 사정을 보고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보고를 들으며 패튼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 빌어먹을 독일 놈들과 유대 놈들이 군대가 묵기 위해 집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밭까지 빼앗아 버렸다 그리고 저기 끌려나온 인간들은 그런 집과 밭을 얻어 살림을 차린 유대인들이고 ”

“그렇습니다.”

“Damn it! 그냥 돌려줘!”

“그럼 저 유대인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포로수용소에 처박아버려!”

“민간인들입니다만 ”

“아이젠하워에게 알아서 하라고 그래!”

패튼의 말에 남궁 소령은 물론이고 참모들 모두 난감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남궁 소령이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선 라파 지역은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다만.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라파에도 유대인 정착촌이 만들어질 정도라면 점점 더 위로 올라갈수록 문제는 심각해질 겁니다.”

남궁 소령에 이어 벌레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유대인들이 내건 슬로건이 ‘로마인들에 의해 억지로 쫓겨나야 했던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가자.’입니다. 뭐, 어떻게 보면 정당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게 거의 2,000년 전 로마시대의 일이고, 그 2.000년 동안 이 지역에 살아온 팔레스타인인들은 어떻게 할 거냐는 것입니다.”

벌레의 설명에 패튼은 욕설부터 내뱉었다.

“FUCK! 보병 1개 사단이 아니라 변호사 1개 사단이 필요한 일이로군! Damn it! 어쨌거나 지금 이런 일로 발목이 붙잡혀서는 안 돼!

빼앗긴 집들과 밭은 원주인에게 돌려주고, 그 가옥과 밭을 강탈한 유대인들은 포로수용소에 구획을 정리해 집어넣어버려!

그리고 아이젠하워에게 보낼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아이젠하워도 해결 못하면 워싱턴이 나서야겠지!”

“알겠습니다!”

패튼의 명령을 받은 참모들이 움직이려할 때, 벌레가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병사들에게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 지역에서는 여성들에게 함부로 치근거려서는 안됩니다! 잘못하면 여자들이 죽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이슬람의 율법에 따르면 여성이 함부로 외간남자와 함께 있는 것이 발견되면 실제로 했든 안했던 간에 무조건 간음을 한 것이고,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죽입니다.”

“허….”

벌레의 설명에 패튼은 물론이고 주변의 참모들, 하다못해 지나던 병사들까지 다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반응을 무시하고 벌레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관습의 문제고, 가치관의 문제니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나중 일입니다. 지금 당장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면 이쪽 지역의 민심이 우리를 떠나버린다는 것이고, 우리는 꽤 힘든 상황이 될 것이라는 겁니다.”

벌레의 말에 패튼은 참모를 돌아봤다.

“지금 당장 각 부대의 지휘관들에게 주의를 주도록. 우리 애들이 사고 쳐서 영창 가거나 교수대 올라가는 것은 우리 문제니까 상관없지만, 멀쩡한 여자들까지 죽으면 안 되니까.”

“알겠습니다!”

명령을 내린 패튼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가뜩이나 혈기 넘치는 녀석들인데… 당분간 수도사 생활하라고 해야겠군.”

“그 문제는 베이루트에 가면 해결할 겁니다.”

“베이루트 ”

“중동의 파리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대충 알겠군. 중동의 파리라… 애들이 알면 좋다고 밀고 올라가겠군! 좋은데 ”

히죽 웃는 패튼을 보며 벌레와 빨갱이는 속으로 온갖 욕을 퍼부었다.

‘이 미친 양반아!’

*    *    *

패튼의 명령에 따라 사태는 진정국면에 들어갔다.

보급품을 내리고 후방으로 향하는 트럭에는 정착촌을 만들었던 유대인들이 실렸다.

유대인들을 가득 태운 트럭들은 헌병의 호위를 받으며 후방의 임시 포로수용소로 향했다.

패튼의 처리를 본 라파의 아랍인들은 적극적으로 미군에게 협력하기 시작했다.

라파의 아랍인들은 미군과 함께 부서진 건물을 치우고, 부상병들의 운반을 도왔다.

한편, 위에서 내려온 패튼의 명령을 들은 미군들은 최대한 예의바르게 행동을 해야 했다.

- 함부로 아랍 여성들과 접촉하지 말 것. 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죽임을 당한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다면 나 패튼이 책임지고 교수대에 올려주마!

“뭐 이런 황당한….”

패튼의 명령을 들은 병사들은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명령이니 따라야 했다.

한편, 패튼의 보고서를 받아든 아이젠하워는 골치가 아팠다.

“유대인 정착촌은 무엇이고, 명예살인이라니….”

보고서의 내용을 확인한 아이젠하워는 브래들리를 돌아봤다.

“이거 병사들보다 변호사를 먼저 보내달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변호사들도 보통 변호사들로는 무리겠군요.”

가볍게 농담을 나눈 아이젠하워와 브래들리는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정착촌 문제는 정치적 문제일 수도 있지만 우선은 쉽게 갑시다.”

“쉽게 가자고 하시면 ”

“패튼 방식대로 하지요. 우선은 유대인들이 빼앗은 가옥과 농경지들은 아랍인들에게 돌려주는 것으로 하고, 포로수용소에 민간인 수용구역을 설정해서 정착촌의 유대인들을 수용하는 것으로 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관련 사항은 잘 정리해서 워싱턴으로 보내요. 워싱턴에서 무슨 결정이던 내리겠지요.”

“알겠습니다.”

임시처방이긴 하지만 상황을 정리한 아이젠하워는 책상서랍을 뒤져 위스키병과 잔들을 꺼내들었다.

가득 채운 위스키 잔을 손에 들고 아이젠하워는 푸념을 했다.

“난 군인입니다. 정치까지 하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전쟁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동감입니다.”

*    *    *

“빌어먹을!”

유서 깊은 미1사단, ‘The Big Red One' 소속의 아센버그 일병은 욕설을 내뱉었다.

아센버그 상병은 유대계 혼혈이었다. 그의 할아버지까지는 정통 유대인 가문이었다.

할아버지와 그의 친척들은 키파를 쓰고 유대교의 명절과 관습을 철저히 지키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즈 변두리에서 서점을 하던 아센버그의 부친이나 택시기사였던 아센버그는 성만 유대인이지, 완벽한 미국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일랜드계였고, 부친과 그가 즐기는 낙은 휴일 저녁 잘 만들어진 돼지갈비 양념구이에 곁들여 맥주 한잔을 즐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벌어지면서 아센버그는 입대를 해야 했다.

입대를 하고 훈련과정에서 괜찮은 능력을 보여준 덕에 아센버그는 남들보다 빠르게 일병 계급장을 달았다.

상병 진급은 물론이고 병장까지는 순조롭게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희망에 부풀었던 그 순간 악재가 닥쳤다.

‘유대 스캔들’이 벌어진 것이었다.

사회를 뒤흔든 광풍은 군대도 뒤흔들었다.

헌병대가 사방을 들쑤시고 다녔고, 실제로 군사기밀을 누출한 사례가 발견되면서 많은 유대계 장교들이 군복을 벗고 사라져야 했다.

남은 이들은 다른 동료들의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와 눈에 안 보이는 차별을 겪어야 했다.

결국, 수많은 유대계 병사들-간부와 사병을 막론하고-이 충성서약을 해야 했지만, 상황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힘들면 태평양 전선 부대로 전속시켜주겠다. 어떤가 ”

부대지휘관의 권유에 아센버그 일병은 고개를 저었다.

“감사합니다만, 전 ‘더 빅 레드 원’ 소속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전 미국인입니다. 제 충성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북아프리카에 온 것이고, 라파에서 격렬한 전투를 치른 아센버그 일병이었다.

전투는 끝이 났고, 적군은 물러났다. 아센버그 일병이 속한 부대는 전장정리에 들어갔다.

아센버그 일병이 욕설을 뱉은 것은 죽은 적병의 사체를 치우는 과정에서였다.

죽은 적병의 황갈색 군복의 왼쪽 팔에는 회색수실로 장식된, 갈고리십자가를 안에 품은 다윗의 별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체를 치운 아센버그 일병의 눈에 부서진 격에 붙은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포스터에 적힌 히브리어를 읽은 아센버그는 실소를 내뱉었다.

“훗! 신에게서 약속받은 조상의 땅을 되찾자 ”

아센버그 일병은 땅에 떨어진 독일군 철모를 냅다 걷어차며 욕설을 내뱉었다.

“약속받아서 얻었으면 잘 지켰어야지! 왜 이제 와 지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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