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106화 작전명 ‘유사(流砂, quicksand)’ (9)
패튼과 참모들, 그리고 B와 C전투단의 지휘관들은 남궁 소령의 계획에 동의를 했다.
잠시 후, 남궁 소령의 계획에 따라 3개 전투단의 자주포 58문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밀집한 포병대들이 제원산출을 기다리는 동안 심각한 표정을 한 벌레는 남궁 소령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야포들을 모아 집중사격을 한다… 좋기는 한데 말입니다. 잘못하면 대포병사격에 당할 수 있습니다.”
“독일 놈들이 야포로 조질려고 했으면 아까 야전에 이미 써먹었을 거에요. 2차 대전 독일군하면 언제나 붙는 수식어가 있지요 장비부족.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
“그건 알겠습니다만… 조금은 불안합니다.”
“지금 독일놈들은 쉽게 야포 못 돌려요. 돌렸다가는 라파 입구에 있는 미군에게 바로 밀려버릴 겁니다.”
남궁 소령의 말이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벌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드론 띄우겠습니다.”
“부탁해요. 이번 작전만 잘 끝나면 내일 오전까지는 쉴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남궁 소령의 명령을 들은 벌레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부엉이 4개 꺼내!”
“알겠습니다!”
벌레의 명령에 부하들은 컨테이너를 열고 낮에 쓰던 것보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드론을 꺼내 하늘로 띄웠다.
“오우, 상사! 재미있는 장난감이군 ”
어느새 다가온 패튼이 건넨 말에 벌레는 짧게 대답했다.
“아주 죽여주는 장난감입니다. 장군님.”
짧게 대답한 벌레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부엉이의 적외선 카메라가 보내는 영상을 확인한 벌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감도 좋다. 그대로 라파를 향해 이동시켜!”
“알겠습니다.”
드론의 조종을 담당하는 부하들이 드론을 이동시키는 동안, 다른 병사들은 영상에 나타나는 건물과 도로, 매복 등을 꼼꼼하게 디지털 지도에 기록했다.
그들이 디지털 지도에 기록하는 모든 것들은 실시간으로 포병대대에 있는 K151. K105HT의 디지털 지도에 나타났다.
“목표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그럼 좌우로 흩어!”
“알겠습니다.”
잠시의 작업 끝에 패튼의 전투단이 도착할 곳의 자리한 대전차 포, 전차, 진지 등이 있는 곳의 좌표들이 포병대에 전해졌다.
모든 준비를 끝낸 벌레는 패튼과 남궁 소령을 돌아봤다.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
“시작하게.”
패튼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벌레는 무전기의 마이크를 붙잡았다.
“벌레다. 시작한다. 오버.”
-접수완료. 오버.
쾅!
‘접수완료’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초탄이 발사되었다.
발사된 포탄의 탄착을 보고 좌표의 수정이 이뤄졌고, 곧이어 58문의 105mm 야포가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 바유크의 어둠이 또 다시 사라졌다.
콰콰콰쾅!
요란한 폭음 속에 벌레가 패튼에게 소리쳤다.
“이제 전차들이 진격하면 됩니다! 포탄이 터지는 곳이 라파입니다! 절대 길을 잃을 일 없을 겁니다!”
“그렇지! 저런 포격을 보면서도 길을 잃으면 바보지!”
벌레에 말에 화답한 패튼은 참모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투단에 진격 명령! 목적지는 포탄이 터지는 곳이다!”
“알겠습니다!”
참모는 무전기의 마이크를 붙잡고 고함을 질렀다.
“전투단 진격!”
* * *
“대대적인 포격입니다!”
“빌어먹을….”
참모의 보고에 디르만 소장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휘하에 있는 부하들은 북아프리카에 온 이후 영국군과의 전투를 통해 숙련될 대로 숙련된 유능하고 용감한 병사들이었다.
라파 전면으로 밀고 들어오는 미군을 상대로 자신의 부하들은 그 실력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그런 부하들의 호투를 보면서 디르만 소장은 후퇴를 하더라도 미군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입힌 다음일 것이며, 잘하면 극적인 역전승까지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희망을 좌절시킨 것은 미군의 우익이었다.
우회공격을 위해 알 바유크에 매복한 독일군 전차들을 몰살시킨 것을 시작으로 야습까지 격퇴한 미 우익은 대대적인 포격을 동원해 라파의 남동쪽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미군 전차들이 라파에 돌입했습니다!”
“매복한 대전차포들을 동원해 막아!”
“대응 가능한 대전차포가 없습니다!”
참모의 대답에 디르만 소장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하나도 없다고 ”
“미군 전차들이 밀고 들어오는 방향에 매복한 대전차포들은 전멸했습니다.”
“빌어먹을….”
“급보입니다! 미군 전차들이 뚫고 들어온 곳을 통해 보병들이 밀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막기가 힘듭니다!”
전령의 보고에 디르만 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칸 유니스로 후퇴한다. 부대를 재정비하도록. 후위를 맡을 부대를 준비해라. 내가 지휘하겠다.”
디르만 소장의 말에 제일 고참인 참모가 앞으로 나섰다.
“후위는 제가 맡겠습니다. 소장님이 계셔야 부대가 유지됩니다.”
“지금 나보고 도망치는 패장이 되라는 소리인가 ”
“설욕할 기회는 분명히 옵니다.”
참모의 대답에 디르만 소장은 질끈 눈을 감았다.
“소장님. 시간이 없습니다.”
채근을 들은 디르만 소장은 후위를 자원한 참모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겼다.
“미안하다. 부탁하지.”
“아닙니다. 그럼 부대를 준비하겠습니다.”
후위를 자청한 참모가 밖으로 나가고, 디르만 소장은 남아있는 참모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칸 유니스까지 후퇴한다!”
* * *
후퇴하는 독일군의 후위를 맡은 것은 유대 병사들이었다.
“이곳은 우리 조상들이 신에게서 받은 약속의 땅! 단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우오오!”
유대 장교의 외침에 함성을 지른 병사들은 전장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대인 부대 지휘관은 아인스 중령을 돌아봤다.
“좋은 병사들 아니오 ”
“그렇군요.”
‘무슨 친위대 녀석들도 아니고….’
나치 당원은 아니었던 아인스 중령은 질린 얼굴로 유대인 병사들을 바라봤다.
종교와 민족의 광기에 휩쓸려 미친 듯이 싸우는 유대인 병사들의 얼굴에 나치 전당대회에서 열광을 하던 동포들의 얼굴들이 겹쳐 보였다.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미래가 걱정이로군.’
이런저런 걱정을 하던 아인스 중령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겠지….”
정신을 가다듬은 아인스 중령은 자신과 함께 움직이는 통신병들을 다그쳤다.
“통신에 귀를 기울여라! 본대가 무사히 빠져나갈 때까지 구멍이 뚫리면 안 된다!”
“알겠습니다!”
통신병들의 대답을 들으며 아인스 중령은 유대인 부대의 지휘관과 함께 지도를 사이에 놓고 지휘에 들어갔다.
* * *
“독일 놈들이 내빼고 있습니다!”
드론이 찍어 보내는 영상을 확인하던 부하의 보고에 벌레는 모니터를 확인했다.
“드디어 빠져 나가는군.”
막힌 속이 뚫린 것처럼 속이 편안해진 벌레는 지도를 살폈다. 부하들이 표시한 독일군의 후퇴경로를 살피던 벌레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이것 봐라 ”
다시 한 번 지도를 살펴본 벌레는 무전기의 마이크를 붙잡았다.
“여기는 벌레. 가주 응답바람, 이상.”
-여기는 가주. 무슨 일인지 이상.
“독일군이 후퇴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도를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공격을 가하기 아주 좋은 위치입니다. 이상.”
-그렇군요. 패튼 장군에게 상신하겠습니다. 이상.
“그래 후퇴하고 있다고 그럼 당연히 옆구리에 한방 먹여야지! 당장 움직이도록!”
남궁 소령의 보고를 받은 패튼은 기다렸다는 듯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패튼의 명령이 떨어지자 후방에서 쉬고 있던 A 전투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A전투단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벌레는 드론을 움직여 후퇴하는 독일군의 좌표를 따기 시작했다.
뒤이어 벌레가 새로 획득한 좌표들을 건네받은 포병대는 포문을 돌려 후퇴하는 독일군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쾅! 콰쾅! 쾅!
포탄의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디르만 소장은 무전기를 붙잡고 고함을 질러댔다.
“도대체 어디서 쏟아지는 거야 ”
-알 바유크입니다!
“아군의 대응사격은!”
-포병대가 전멸했습니다!
무전기 너머로 들리는 대답에 디르만 소장은 욕설을 내뱉으며 무전기의 수화기를 내던졌다.
“빌어먹을!”
화를 못 참은 디르만 소장은 거칠게 땅을 걷어찼다.
“도대체가! 저 미친놈들은 뭐야!”
디르만 소장의 관점에서 알 바유크에 있는 미군들은 도저히 ‘정상적인’ 미군이 아니었다.
티거를 가볍게 고철로 만든 중(重)전차는 그럴 수 있다 칠 수 있었다. 점점 더 크고 무겁고 강한 전차를 만드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니까.
그런데 저 포격은 대체 무엇인가
보고로 알았던 주간 포격도, 지금 후퇴하는 아군을 맹타하는 저 포격도 너무나 정확했다.
마치 위에서 내려 보며 위치를 확인한 다음 포격을 가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주간에 있었던 포격에서 미군 정찰기를 확인하지 못했고, 지금은 정찰기를 띄울 수조차 없는 야간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정확하게 포병대부터 골라 때리고, 이동 중인 부대를 정확하게 타격한다고 그게 정상이야! 미친놈들이지!”
디르만 소장은 하늘을 노려보며 분통을 터뜨렸다.
* * *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고 있는 것은 남궁 소령의 A전투단도 마찬가지였다.
A전투단은 후퇴하는 독일군을 치기 위해 맹렬히 달려가는 와중에 천막을 친 아랍인 집단과 조우를 하게 되었다.
“이게 뭔 일이래 ”
천막촌에서 튀어나온 아랍인들이 격하게 미군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히잡을 두른 여인들이 요란하게 환호성을 질러댔고, 터번을 두른 남성들이 함성을 지르며 격하게 미군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예상외의 사태에 A전투단의 진격이 멈춰버렸고, 남궁 소령은 무전기를 눌렀다.
“여기는 가주! 아랍어 가능한 사람, 당장 선두로! 이상!”
남궁 소령의 말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빨갱이가 탄 K151이 선두로 달려왔다.
K151에서 내린 빨갱이는 아랍인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이를 찾아 말을 건넸다.
“앗살라무 알라이쿰( ).”
빨갱이가 아랍어로 인사를 하자 아랍인들의 반응은 더욱 격해졌다.
하프트랙에 올라탄 미군들이 신기하다는 얼굴을 한 채 구경을 하는 가운데 아랍인들에게서 사연을 전해들은 빨갱이가 남궁 소령에게 무전을 보냈다.
“원래 라파와 알 바유크에 살던 주민들이랍니다. 독일군과 유대인들이 들어오면서 집에서 쫓겨나 이곳에서 천막생활을 하고 있었답니다. 해방자들을 환영한답니다!”
“환영에 감사한다고 전해주고, 지금은 독일군을 쫓아야 한다고 좀 비켜달라고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남궁 소령의 명령을 들은 빨갱이는 아랍인들을 상대로 소리 높여 남궁 소령의 명령을 전달했다.
빨갱이의 말을 들은 아랍인들이 분분히 뒤로 물러서면서 길이 트였고, 남궁 소령은 무전기의 마이크를 붙잡았다.
“전진을 재개한다!”
쿠르릉!
남궁 소령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전차들은 요란하게 엔진소리를 높이면서 진격을 재개했고, 하프트랙들이 그 뒤를 따랐다.
아랍의 여인들은 여전히 기성을 질러댔고, 하프트랙에 탄 미군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이방의 땅에 있음을 실감했다.
A전투단이 독일군을 잡기 위해 달려가자 아랍인들도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천막 여기저기에 숨겨놓았던 총들-심지어 나폴레옹 시대에나 썼을 것 같은 전장식 라이플-을 꺼내든 아랍 남자들은 낙타와 말에 올라타고는 미군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선조 때부터 살아왔던 땅에서 그들을 쫓아낸 침략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