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104화 작전명 ‘유사(流砂, quicksand)’ (7)
알 바유크가 미군 손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패튼에게 도착할 무렵, 디르만 소장 역시 ‘알 바유크 실함(失陷)’의 소식을 받아들고 있었다.
“양키들이 알 바유크를 손에 넣었다고 농담하나 ”
디르만 소장의 물음에 참모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미군에게 넘어갔습니다.”
“말도 안 돼! 알 바유크에 배치된 전차만도 60대야! 그것도 티거가 14대가 같이 있었어! 그런데 넘어가다니 말이 된다고 보나! 전차들은 뭐하고 있었던 거야!”
“그게… 전차부대가 모두 전멸을 했다는 보고입니다.”
“뭐! ”
‘전차부대 전멸’의 소식을 들은 디르만 소장은 참모의 멱살을 잡았다.
“다시 말해 봐!”
“전차부대는… 전멸했습니다!”
참모의 말에 디르만 소장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60대면 가자 남부에 있는 전차들 가운데 1/3이다. 단 한 번의 전투에 상실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보고를 한 이가 누구야! 당장 데리고 와!”
“알겠습니다.”
잠시 후, 머리와 팔에 붕대를 칭칭 감아 맨 장교가 들어왔다.
견장에 둘러친 핑크색 파이프는 그가 전차부대의 장교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중동군단 소속 제 342 전차대대 소속 하이넨 중위….”
“됐고, 어떻게 된 것인지 보고하도록!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게오르그 소장의 명령에 하이넨 중위는 보고를 시작했다.
“명령을 받고 전차 부대는 양키들을 공격하기 위해 진지를 벗어났습니다. 적 전차들과 교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이동은 순조로웠고, 양키들의 대전차포 매복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양키들은 예상지점에 있었습니다. 아군은 티거를 선두로 돌격을 했습니다.”
“정석대로 벌어진 전차전이었는데 전멸했다 티거가 있었는데도 ”
“양키들의 중(重)전차가 문제였습니다!”
“중(重)전차 중(中)전차가 아니라 ”
“확실하게 중(重)전차였습니다. 셔먼보다 높이는 낮았지만 모든 면에서 서면보다 컸습니다!”
“모두 몇 대였나 ”
“8대였습니다.”
“해당지역에는 정수를 채운 티거 중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숫자로 따지면 8:14로 티거의 우위였는데 밀렸다는 것인가 ”
“양키들의 중전차는 티거보다 사거리가 길었습니다. 조준장치도 더욱 우수한 것 같아보였습니다. 초탄 사격에 8대의 티거가 격파되었고, 2차 사격에 티거들은 전멸해버렸습니다.”
“사거리가 길다 확실한 것인가 ”
“2km 거리에서 티거를 초탄에 격파했습니다.”
하이넨 중위의 보고가 이어질수록 디르만 소장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그래서 60대의 전차들이 모두 그 자리에서 전멸한 것인가 ”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를 포함해 12대가 후퇴를 시작했습니다만, 알 바유크에 도착한 것은 9대가 전부였습니다.”
“양키들의 손해는 ”
“셔먼 1개 소대 정도….”
셔먼의 피해는 그보다 많았지만, 게오르그는 알지 못했다.
“수고했다. 가서 치료를 마저 받도록.”
하만 중위를 내보낸 디르만 소장은 심각한 얼굴로 참모를 돌아봤다.
“알 바유크 말고 다른 곳에서 미군의 중(重)전차에 대한 보고가 있었나 ”
“없었습니다.”
“문제로군.”
참모의 대답에 디르만 소장은 고민에 잠겼다.
‘양쪽이 제대로 붙은 정면이 아니라 우익에만 중(重)전차를 배치했다 왜 정면이 견제하고 우익에서 치겠다는 소리인가 ’
“양키들이 우익에 중(重)전차를 배치한 이유가 뭘까 망치와 모루인 걸까 ”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하지만, 너무 눈에 보이는 정석적인 수라는 점도 있습니다.”
“혹시 칸 유니스를 노리는 것 아닐까요 알 바유크에는 칸 유니스까지 바로 갈 수 있는 도로가 뚫려있습니다.”
“음… 그래, 그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지.”
참모의 의견을 들으며 지도를 살피던 디르만 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은 알 바유크 방면으로 향하는 길에 병사들을 배치하도록.”
“알겠습니다.”
“엘 아리쉬-라파 가도의 상황은 어떻지 ”
“양키들의 전력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래서야….”
전선의 정면이라고 할 수 있는 엘 아리쉬-라파 가도의 전투 역시 미군의 압박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알 바유크에서 전력의 핵심인 전차부대가 증발 ‘당해버린’ 상황.
양키들이 가진 카드는 점점 늘고 있었고, 반대로 독일군이 가진 카드는 점점 줄고 있었다.
참모들 가운데 가장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소령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저… 차라리 우리가 칸 유니스로 후퇴를 해서 방어를 강화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
“후퇴를 하자고 ”
디르만 소장의 얼굴이 사나워졌지만 소령은 기왕 말한 것 꿋꿋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그렇습니다. 현재 라파 지역의 아군은 알 바유크에서 입은 손실을 빼고 7,000 정도 밖에 안 됩니다. 양키들은 이미 확인된 것만 20,000 이상입니다.
거기에 알 바유크에서 상실한 전차 전력이 가자 남부에 있는 전차 전력의 1/3입니다. 차라리 라파를 포기하고 칸 유니스에서 재정비, 방어태세를 강화하는 것이 더욱 낫다고 생각합니다.”
“라파를 그냥 넘기자는 것인가 ”
“무의미한 손실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겨우 전투 첫날이다. 이제 막 시작한 전투인데 후퇴를 말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 안하나 후퇴는 받아들이지 않겠다.”
디르만 소장의 책망에 소령은 붉어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디르만 소장은 다른 참모들을 노려봤다.
“방금 말했다시피 후퇴는 입에 담지 말도록. 이제 전투가 벌어진 첫 날이다! 비록 양키들의 숫자가 많지만 전장이 어떤 곳인지, 특히 이곳 가자 지역의 전투가 어떤 것인지 하나도 모르는 애송이들뿐이다! 그깟 숫자에 겁먹지 마라!”
“야볼(Jawohl)!”
수성을 공언한 디르만 소장은 계속해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알 바유크 지역의 양키들을 상대로 야습을 가할 부대를 선발하라! 알 바유크의 양키들은 초전의 승리로 인해 방심에 빠졌을 것이다! 알 바유크를 탈환한다!”
“병력이 모자랍니다!”
“귀관은 입 닥치고 있어!”
후퇴를 종요했던 소령이 반발을 막은 디르만 소장은 다른 참모들에게 다시 한 번 야습을 지시했다.
“토미(2차대전 영국군의 별명) 놈들에게 당한 방식을 그대로 써먹는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
“알겠습니다.”
“특히 그 망할 미군의 중전차를 획득할 수 있으면 획득하도록.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 알아야하지 않겠나 ”
“명심하겠습니다!”
후퇴 대신 전투를 선택한 디르만 소장이었다.
* * *
알 바유크, 새벽 1시.
사막의 밤은 썰렁했다.
라파에서 알 바유크로 오는 가장 큰 도로를 중심으로 모든 도로에는 모래주머니로 바리케이드가 쌓였고, 도로 주변 건물들의 옥상과 고층에는 병사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가지 운행이 불편한 전차들이 알 바유크의 외곽을 둘러싼 가운데, 전선의 첫날밤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는 유닛 둘 하나. 벌레 나와라, 이상.
“여기는 벌레. 유닛 둘 하나 말하라, 이상.”
통신차에 앉아서 따끈한 커피를 마시고 있던 벌레는 경계선을 벗어나 매복 정찰 중이던 부하가 보낸 통신에 마이크를 붙잡았다.
-여기는 유닛 둘 하나. 밤손님들이 오고 있다. 이상.
“여기는 벌레. 밤손님이 확실한가 이상.”
-여기는 유닛 둘 하나. 두 번 확인했고, 영상 보내겠다. 이상.
벌레가 탑승한 통신차의 모니터에 유닛21의 K11이 찍은 열상이 떠올랐다. 열상에 나타난 차량들을 확인한 벌레는 마이크를 붙잡았다.
“즉시 전투 대기선으로 이동, 다른 유닛들과 합류할 것. 이상.”
-여기는 유닛 둘 하나. 접수완료. 바로 이동하겠음. 이상.
유닛21의 응답을 확인한 벌레는 곧바로 전체 통신망을 열었다.
벌레의 경고가 떨어지자마자 한국군은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움직였다.
남궁 소령이 보낸 전령을 통해 소식을 들은 미군들 역시 조용히 야습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 * *
“준비….”
독일군이 몰래 다가오는 라파-알 바유크 메인 도로에 면한 건물의 옥상. 빨갱이는 마이크를 붙잡고 조용히 속삭였다.
“레드다. 조명탄이 발사되자마자 바로 사격을 시작한다. 오버.”
헤드셋을 통해 한국군은 물론이고 미군의 응답을 확인한 빨갱이는 채널을 한국군용으로 맞춘 다음 추가 명령을 전달했다.
“빨갱이다. 미군이라면 조명탄을 무식하게 쏠 것이 빤하니까. 대비를 제대로 할 것. 이상.”
-야시경 끌까요 이상.
“알아서 밥까지 떠먹여주랴 닥치고 앞이나 잘 봐라. 손님이 코앞이다. 이상.”
채널을 미군 공용으로 돌리며 빨갱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가지고 있던 무전기가 AM/FM 다 지원되는 놈이니까 망정이지. 하마터면 무전기만 바리바리 싸들고 다닐 뻔했네….”
중대 규모가 사용한다는 무전기 주제에 K151의 화물칸의 절반을 차지하던 미제 무전기를 떠올리며 투덜거리던 빨갱이는 독일군이 살상지대에 들어서자마자 마이크의 스위치를 눌렀다.
“조명탄!”
슈파아악! 화아악!
빨갱이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박격포들이 조명탄들을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알 바유크의 밤하늘이 하얗게 타올랐다.
빨갱이의 예상대로 미군들은 미친 듯이 조명탄들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말 그대로 ‘백야(白夜)’였다.
모조리 하얗게 물들어 버린 공간에서 미군과 한국군들은 독일군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아악!”
“크악!”
미군과 한국군의 십자포화에 갇혀버린 독일군은 응사도 제대로 못한 채 바닥에 쓰러져 갔다.
퀴벨바겐의 뒤에 몸을 숨긴 호른 소령은 무전기를 붙잡고 소리를 질렀다.
“함정! 함정에 걸렸다! 지원 바람! 반복한다! 함정에 걸렸다! 지원 바람!”
-지원이 가고 있다! 공격을 지속하라! 반복한다! 공격을 지속하라! 지원이 가고 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사령부의 말에 호른 소령은 고함을 질렀다.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받고 있단 말이다! 반복한다! 우리가 공격을 받고 있다!”
-공격을 지속하라! 명령이다! 공격을 지속하라! 이것은 명령이다!
사령부의 명령에 호른 소령은 수화기를 내던지며 욕설을 내뱉었다.
“빌어먹을!(Verdammt!)”
“빌어먹을! FUCK!”
욕설을 내뱉는 것은 빨갱이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빨갱이가 욕설을 내뱉은 것은 상황이 불리해서가 아니었다.
‘편한 길에는 반드시 매복이 있다.’라는 금기를 어긴 독일군은 금기를 어긴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고 있었다.
소음을 줄이기 위해 장갑차량들과 전차들을 동원하지 않고, 오로지 퀴벨바겐과 트럭들에 탑승해 도로로 달려오던 독일군들은 지금 말 그대로 ‘탈탈 털리고’ 있었다.
하지만 빨갱이가 욕설을 내뱉게 된 이유는 아군 때문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미군들이 너무나 많은 조명탄을 쏴대고 있었다.
“썅! 선글라스 쓰고 야간전하게 생겼군!”
밤을 하얗게 불태우는 조명탄을 보며 툴툴거리면서도 빨갱이는 주의 깊게 전장을 살폈다.
“레드다! 모든 섹터는 독일군의 움직임을 보고하라! 오버!”
빨갱이의 명령에 한국군은 물론이고 미군까지 전선의 상황을 보고했다. 지도를 보며 상황을 살피던 빨갱이는 채널을 돌려 남궁 소령을 호출했다.
“빨갱이가 가주에게! 독일군이 후퇴하고 있다! 전차의 투입이 필요하다! 이상!”
-여기는 가주! 즉시 전차대대를 투입하겠다. 이상.
“여기는 빨갱이, 접수완료! 이상!”
남궁 소령의 대답을 확인한 빨갱이는 무전기의 채널을 돌렸다.
“레드다! 적극적으로 독일군을 제압하라! 하프트랙을 활용하라! 오버!”
우르릉-!
바리케이드 뒤에 대기하고 있던 하프트랙들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전조등을 환하게 킨 채 앞으로 밀고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차와 하프트랙의 압박 속에 야습을 시도했던 독일군의 야심찬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