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103화 작전명 ‘유사(流砂, quicksand)’ (6)
패튼이 머물고 있는 미 제2기갑사단의 본부.
멀리서 총성과 포성이 은은하게 울리는 가운데, 참모가 허겁지겁 패튼에게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
“A전투단의 보고입니다. 알 바유크(Al Bayuk) 점령. 현재 잔적 소탕 중. 차후 행동 지침 필요.”
“줘봐!”
참모에게서 빼앗듯이 통신문을 건네받은 패튼은 통신문의 내용을 몇 번이고 살폈다. 통신문의 내용을 확인한 패튼은 ‘빌어먹을’ 지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참모에게 질문을 던졌다.
“1사단 도착했지 ”
“예.”
“그럼 A전투단에 전달해라. B전투단이 도착할 때까지 현재 위치 유지. 보급과 정비를 완료할 것. 그리고 B전투단과 합류하는 즉시 칸 유니스(Kan Yunis)를 향해 돌격할 것.”
“돌격입니까 ”
“돌격이다. 그리고 계속 받아 적어. B전투단은 지금 즉시 1사단에게 전선을 넘기고 정비 후, A전투단에 합류할 것. C전투단은 1사단의 기갑대대에게 임무를 넘기는 즉시 A와 B전투단에 합류할 것. 추신. 나보다 늦게 도착하는 지휘관은 미국으로 엉덩이를 차서 쫓아낼 거다.”
명령을 받아 적은 참모는 통신장교에게 명령문을 건네주고는 패튼을 바라봤다.
무엇인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참모의 얼굴을 본 패튼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문제인데 ”
“아직 라파를 점령하지 못했는데 칸 유니스는 너무 위험한 것 아닙니까 ”
“보병 대신 셔먼으로 라파의 구석구석을 다 뒤지고 다닐 건가 ”
“그것은 아닙니다만….”
“우리는 기갑사단이야! 기갑! 보병이라고는 한줌밖에 없는데 무슨 수로 점령을 한다는 것인가! 라파의 벽을 두들겨 부순 것으로 우리 몫은 다했어! 공격! 그리고 돌격! 이 2가지를 제대로 하는 것이 기갑의 미덕이야! 기갑의 목적은 구멍을 뚫는 것이야! 그 구멍을 찢어발기는 것이 보병이고!”
“하지만 너무 돌격을 하다가는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도 알아! 하지만 라파에서 칸 유니스까지가 무슨 파리에서 베를린, 모스크바까지 가는 거리인가! 그렇게 따질 거면 당장 전속 신청해! 이 빌어먹을 엿 같은 패튼에게 겁쟁이는 필요 없다! 빌어먹을 겁쟁이 새끼!”
참모에게 폭언을 퍼부은 패튼은 부관을 불렀다.
“차 준비해! 아이젠하워에게 간다!”
“알겠습니다. 장군님!”
부관에게 명령을 내린 패튼은 참모들을 노려봤다.
“아이젠하워에게 갔다 오는 즉시 난 A전투단으로 갈 거다. 나보다 늦는 놈들은 전속신청서 또는 퇴역 신청서, 둘 가운데 하나 작성해서 제출하도록!”
말을 마친 패튼은 밖으로 나가 대기하고 있는 짚에 올랐다. 패튼을 배웅한 참모들은 사단본부의 장교들과 병사들을 닦달했다.
“당장 짐 싸!”
* * *
알 바유크.
끝까지 저항하던 독일군과 유대군의 정리가 완전히 끝난 것을 확인한 남궁 소령은 전투단의 지휘관들을 불러 치하를 했다.
기갑대대와 기갑포병대의 지휘관들을 먼저 보낸 남궁 소령은 기갑보병대대의 대대장과 중대장들을 앞에 놓고 평가에 들어갔다.
“우선, 앞서 말한 대로 알 바유크를 손에 넣게 된 것에 대해 수고했다는 말부터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피해가 많이 나왔습니다. 사망 26, 부상 57. 그 가운데 중상자가 21명입니다. 손실된 셔먼의 수까지 따지면 전차소대 2개가 날아갔고, 보병중대 하나가 전멸했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남궁 소령은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고 있었지만, 말 속에 숨어있는 칼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시가전에 들어가면서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가전 훈련은 북아프리카에 오기 전에 이미 충분히 받은 것 아니었습니까 ”
“미안하오, 소령.”
남궁 소령의 지적에 대대장 세이모어 중령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사과를 해야만 했다.
북아프리카에 상륙하기 전에 한국군이 지적을 한 것은 미군이 작전을 벌일 곳의 특성이었다.
“시가전 훈련이 필요합니다!”
작전을 벌일 북아프리카의 가자지구나 앞으로 전장이 될 유럽은 시가전의 빈도가 매우 높은 곳이라고 한국군은 계속해서 지적을 했다.
지적만 한 것이 아니라 할리우드의 영화기술자들에게 부탁해 LA 외곽의 황무지에 커다란 모의 시가전 훈련장까지 만들어서 광복군 출신들과 미국에서 자원한 민병대 출신 병사들을 굴렸다.
한국군이 훈련을 하는 것을 본 미국은 바로 자국 육군에도 훈련과정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경쟁에 붙였다.
“가장 먼저 훈련을 완벽하게 수료한 부대부터 전선에 배치될 영광을 얻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참전이 곧 가문의 영광이자, 개인의 영광이었던 시대였던 덕에 경쟁은 치열했다.
그런 부대의 지휘관이었기 때문에 세이모어 중령은 더욱 창피한 것이었다.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독일 전차들은 한국군과 미군의 전차들이 싹 정리했다. 야포들 역시 포병대대가 정리를 했고, 전차들이 마무리 청소까지 해준 상황이었다.
거기다 전차들이 선두에서 적의 총격에서 아군을 보호해주는 든든한 방패까지 되어준 상황이었다.
그런데 보병들이 전차들과 떨어지면서 이 사단이 벌어졌다.
훈련을 받았음에도 부주의하게 움직이다가 위기에 봉착했고, 그럴 때마다 한국군의 소형 장갑차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그들을 구해줬다.
남궁 소령의 지적은 계속 이어졌다.
M72LAW-이제는 M42LAW라고 불리는-를 집어든 남궁 소령은 소대장들을 노려보며 말을 이어갔다.
“병사 한 명당 하나의 비율로 배정된 이 LAW는 여러분들의 군장을 무겁게 만들기 위한 새디스트의 발명품이 아닙니다. 8파운드 조금 안 되는 무게지만, 필요하다면 벙커나 진지, 전차까지 상대가 가능한 무기입니다. 그리고 이것 역시 마찬가지.”
LAW를 내려놓은 남궁 소령은 M320-역시나 지금은 M42유탄발사기로 불리는-을 들어보였다.
“이 유탄발사기(Granade Launcher)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관총과 유탄발사기, 그리고 LAW라면 개런드라는 좋은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오늘처럼 예상보다 큰 피해를 입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 점 명심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사후강평을 마치고 중대장을 먼저 내보낸 남궁 소령은 세이모어 중령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궁 소령이 먼저 한 것은 사과였다.
“하급자로서 무례를 범한 것에 우선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중령님.”
“괜찮소. 전투단의 지휘권은 소령에게 있으니까 괘념치 마시오.”
“감사합니다, 중령님.”
“감사는 내가 해야지. 내 부하들이 소령의 부대원들만큼만 해줬으면 오늘 같은 피해는 입지 않았겠지.”
자신의 부하들이 보인 졸전에 창피함을 감추지 못하는 세이모어 중령이었다.
중령의 부하들은 열심히 싸웠다.
적의 총화에도 굴하지 않고 담대히 응전하며 열심히 방아쇠를 당겼다.
문제는 딱 그것뿐이었다는 것이었다.
중령의 부하들은 자신의 등에 매고 있는 파이프가 무엇인지, 어깨에 메고 있는 짧고 굵은 총신을 가진 단발총이 무엇인지 까맣게 잊고, 오로지 자신들의 소총과 기관총에만 의지해 전투를 벌였다.
결국, 그것이 오늘의 결과-대대 전력의 30% 상실-를 가져온 것이었다.
남궁 소령과 세이모어 중령 모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30% 상실이면 해당 부대의 전멸 판정이었던가 ’
“이렇게 된 이상,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의 일정이 어떻게 되던, 틈나는 대로 자신들이 가진 화기를 확실하게 숙달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해야겠지.”
남궁 소령의 말에 세이모어 중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령 역시 이런 졸전은 두 번 다시 치르고 싶지 않았다.
중령이 결의를 다지고 있을 때, 전투단 본부의 통신장교가 남궁 소령에게 걸어왔다.
“무슨 일인가, 중위 ”
“사단에서 내려온 명령서입니다.”
“줘보게.”
통신문의 내용을 읽은 남궁 소령은 세이모어 중령에게 통신문을 건넸다.
“내일 B전투단과 합류해서 칸 유니스로 ‘돌격’하라는 명령입니다. 오늘부로 제가 전투단 2개를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칸 유니스 ”
남궁 소령과 세이모어 중령은 지도를 앞에 놓고 머리를 맞댔다.
“라파보다 위쪽이로군요. 근데 라파가 점령되었다는 소식은 못 들은 것 같은데, 존슨 중위 ”
남궁 소령이 돌아보자 통신장교 존슨 중위는 바로 대답했다.
“예, 아직까지 점령했다는 통신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거 이해가 안 가는군.”
세이모어 중령이 고개를 갸웃하는 것과 달리 남궁 소령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과연 패튼 장군이로군요. 기동전을 벌일 생각인가 봅니다.”
“기동전 독일군의 전격전을 말하는 것인가 ”
“좀 다릅니다. 어쨌거나 기갑부대에게는 가장 어울리는 일이기는 합니다만….”
세이모어 중령과 남궁 소령이 패튼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동안 통신본부에 있던 병사 하나가 다급하게 남궁 소령에게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
“사단장께서 이리로 오신답니다!”
통신병의 외침에 남궁 소령과 세이모어 중령이 동시에 욕설을 내뱉었다.
“아오, 썅!”
“FUCK!”
* * *
저녁 무렵, 패튼이 알 바유크에 도착했을 때, 참모들을 비롯한 본부인원들이 먼저 도착해 한창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다행이 게으름뱅이는 없군! 수고했다! 그래야 이 패튼의 부하들이지!”
아주 만족한 목소리로 병사들을 치하한 패튼은 본부 천막에 들어섰다.
남궁 소령을 시작으로 A, B, C 전투단의 주요 지휘관들이 모인 것을 본 패튼은 호탕한 목소리로 치하했다.
“수고했다! 제군들, 아주 수고했다!”
지휘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던 패튼은 남궁 소령을 보고는 더욱 힘차게 악수를 교환했다.
“자네가 북아프리카 지상전의 첫 승리를 거뒀군! 축하하네! 아주 잘 했어!”
“감사합니다. 아군 장병들이 다들 잘 싸워준 덕분입니다!”
“북아프리카 육군 사령관에게 훈장과 부대표창을 상신했네! 자네 전투 보고서가 올라가는 대로 바로 일이 진행될 거니까, 바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감사합니다!”
남궁 소령에게 치하를 한 패튼은 화제를 돌렸다.
“우선은 현재의 상황부터 확인하도록 하지. 라파 쪽은 지금 1사단이 밀어붙이고 있고, 곧 4사단도 합류할 것이다. 재밌는 것은 이쪽이 당했다는 것을 알고 제리들이 부랴부랴 이쪽 방면에 방어를 돌리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우리가 바로 칸 유니스로 치고 올라가면 제리들은 더욱 정신을 못 차리겠지. 생각 같아서는 바로 예루살렘까지 치고 올라가고 싶은데, 아쉽게도 후속부대가 올 때까지 칸 유니스에서 죽치고 앉아있어야 한다.”
“후속부대라면 1달 뒤에 올 이들을 말하시는 겁니까 ”
남궁 소령의 물음에 패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짧게 대답한 패튼은 말을 덧붙였다.
“아쉽게도 가자에 남은 제리들의 수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다. 보유한 장비들과 훈련정도도 충분하고 말이지. 그래서 쉽게 못 밀고 올라가는 것이다.
다행인 점은 우리 지중해 함대가 버티고 있어준 덕에 놈들의 해상보급이 멈춰 섰다는 거다. 2기갑사단이 할 일은 간단하다.
틈나는 대로 제리들을 잘게 쪼갠다. 그리고 잘게 쪼개진 제리들은 보병사단들이 가루로 만들 것이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
“예!”
“좋아, 그럼 현재 이곳의 방어태세는 ”
패튼의 물음에 참모들과 지휘관들은 지도를 가운데 놓고 설명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