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98화 작전명 ‘유사(流砂, Quicksand)’ (1)
북아프리카에서 미 육군을 처음 봤을 때
다른 이들도 이러저런 말들을 많이 했겠지만… 나로서는 컨테이너가 제일 기억이 많이 남아있군.
컨테이너로 방벽을 쌓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 아서 D. 루퍼스. 2차 대전 영국군 사병.
- 2005년. 2차 대전 종전 60주년 특집 BBC 다큐멘터리.
‘2차 대전 음모론의 총아. 대한민국 해군 9전단’의 10화 ‘북아프리카 전선-거대한 늪’의 인터뷰.
* * *
미국의 ‘물량’은 2차 대전에서 미국을 상징하는 요소였다.
영국의 황야와 오스트레일리아의 해안에 순식간에 만들어진 퀀셋 막사들과 전선에 늘어선 각종 컨테이너들은 연합국 병사들에게는 든든함을, 독일군과 일본군에게는 미국의 물량이 가져오는 공포를 피부로 느끼게 만들었다.
- 2005년. 2차 대전 종전 60주년 특집 BBC 다큐멘터리.
‘2차 대전 음모론의 총아. 대한민국 해군 9전단’의 10화 ‘북아프리카 전선-거대한 늪’의 인터뷰.
* * *
1943년 4월.
알렉산드리아, 웨스턴 하버(Western Harbour)
영국군 군악대의 연주를 배경으로 미 지중해 함대의 함선들과 수송선들이 방파제를 통과해 항구로 들어서고 있었다.
2월에 미국으로 돌아간 후 2개월 만에 귀환이었다.
“2년 같은 2개월이었군.”
항구로 들어서는 미 함대의 귀환을 보며 영국해군 지중해 함대 사령관 ‘ABC'앤드류 커닝햄(Andrew Cunningham, 1st Viscount Cunningham of Hyndhope)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미 지중해 함대가 주둔하고 있었던 2달 반 동안 지중해는 완벽하게 연합군이 장악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비록 몰타와 판텔레리아를 손에 넣지는 못했지만, 제해권과 제공권은 완벽하게 연합군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특히나 곽재우와 강감찬이 바다에 나가는 날이면 에게 해의 독일군 U-보트들까지 항구에 숨어 있어야만 했다.
문제는 물자의 보급과 승무원들의 교체 및 휴식을 위해 지중해 함대가 미국으로 돌아간 다음이었다.
시칠리아와 몰타에서 숨죽이고 있던 독일 공군과 이탈리아 공군의 전투기들과 폭격기들이 맹렬하게 영국군들을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에게 해에 숨어있던 U-보트들까지 슬금슬금 지중해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래서 내가 곽재우와 강감찬만이라도 내놓고 가라했던 건데!”
연일 올라오는 피해 보고서를 본 커닝햄 제독이 분통을 터뜨렸지만 배는 이미 멀리 떠나간 상황이었다.
영국군은 처칠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사용가능한 모든 자원을 다 끌어 써야만 했지만, 그럴수록 곽재우와 강감찬의 빈자리만 더욱 크게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레이더 부분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빌어먹을 레이더….”
북아프리카 주둔 영국 공군의 지휘관들은 자국의 레이더만 보면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본토와 시칠리아에서 날아오른 독일과 이탈리아의 폭격기들은 영국의 레이더의 감시범위 안에 들어오면 바로 얇게 자른 알루미늄 박편(薄片)들을 허공에 살포했다.
알루미늄 박편이 뿌려지면 영국군의 레이더는 바로 바보가 되어버렸고, 대공포 부대의 병사들만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어쨌거나 이제부터 당분간은 한숨 돌리게 된 것인가 ”
부두에 접안하는 함선들을 보며 커닝햄 제독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편 옆에 서있던 육군 제복을 입은 장성은 함대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수송선들을 보며 기대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드디어 미 육군이 오는 것인가 움직일 카드가 늘었군. 잘된 일이야.”
수송선들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이는 몽고메리였다.
* * *
하지만 몽고메리의 기대는 바로 그날 저녁에 박살이 나버렸다.
“어디라고요 ”
몽고메리의 질문에 북아프리카에 파견된 한미 연합군의 총사령관인 아이젠하워 중장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엘 아리쉬(Al Arish)요. 이곳 알렉산드리아에서 약 300마일 떨어진 곳이지요."
아이젠하워 중장의 설명에 몽고메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디인지는 알고 있소! 그런데 왜 하필 엘 아리쉬요! 엘 알라메인 쪽이 더 급하단 말이오!”
얼굴이 시뻘겋게 변할 정도로 화가 난 몽고메리의 노성이 식당을 쩌렁쩌렁 울렸지만 아이젠하워는 여전히 부드러운 표정을 유지하며 이유를 설명했다.
“장군도 알다시피 가자와 예루살렘, 그리고 시리아 지역의 일부가 독일군에게 넘어갔지요. 지금 그 지역의 독일군들이 착실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고, 이는 현재 북아프리카 전선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어요.
이에 우리 미군은 이곳부터 막아서겠다는 겁니다. 거기에 다른 이유를 더하자면 아직 우리 미 육군은 실전은 물론이고 협동작전에 경험이 얕아요.
잘못하면 전선 운영에 혼선이 올 수 있습니다. 전선의 상황이 급한데 차근차근 경험을 쌓는다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이건 당신네 미국의 독단이오!”
몽고메리의 반발에 아이젠하워는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독단 이건 영국과 합의가 된 일이요. 명령서 못 받으셨습니까 ”
아이젠하워의 물음에 몽고메리는 커닝햄을 돌아봤다. 무언의 질문을 받은 커닝햄 제독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두 사람의 반응을 본 아이젠하워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영국에서 명령서가 좀 늦게 오는 모양입니다. 전신의 사정이 안 좋은 겁니까 ”
“그렇지는 않소이다. 단지 요즘 들어 약간의 전파방해가 있을 뿐이오.”
커닝햄은 불퉁한 어조로 대답을 했다. 커닝햄의 대답에 아이젠하워는 부관에게서 가방을 건네받아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
“마셜 장군에게서 받은 명령서요. 미국 주재 영국 대사의 서명을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끄응.”
“빌어먹을….”
아이젠하워가 건넨 명령서를 돌려가며 읽어 본 커닝햄 제독과 몽고메리는 신음과 욕설을 내뱉었다.
- (전략) 따라서 북아프리카의 미 육군은 엘 아리쉬에 상륙한 즉시 동진, 가자 지역과 시리아 지역에 주둔한 독일군에 심대한 타격을 가해야 한다.
이 목적에 필요한 경우 북아프리카 전선 영국군에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
- 단, 이집트를 방어하는 영국군에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
아이젠하워가 했던 말과 대동소이한 내용이 적힌 명령서의 하단에는 마셜 장군의 사인과 함께 미국 주재 영국 대사의 사인이 같이 되어 있었다.
명령서를 확인한 커닝햄과 몽고메리는 백기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군. 그래서 언제 상륙작전을 시행할 것이오 ”
“내일 새벽에 진행할 것이요.”
“미군이 주둔하는 즉시 해당지역의 영국군을 철수시켜도 되겠소 롬멜을 상대하려면 전력이 필요해서 그렇소.”
“그렇게 하시지요.”
“미국의 함대도 계속 그쪽에 있을 것이오 항만 설비가 없을 터인데 ”
커닝햄 제독의 물음에 홀 제독이 나서서 대답했다.
“상륙 후 72시간 동안은 해당 지역에 상주해 있을 것이오. 그 다음에는 강감찬과 구축함 10척, 그리고 항모들의 절반이 머물고 있을 것이오.
나머지 절반은 알렉산드리아에로 돌아와 지중해의 제해권 확보에 전력을 쏟을 것이고. 1달 뒤, 육군 항공대의 머스탱 부대와 B-25 폭격기 부대가 지원을 오게 될 때까지는 계속 그렇게 운영될 것이오.”
“흐음….”
홀 제독의 설명에 커닝햄 제독은 만족스럽지 않다는 표정으로 신음소리를 냈다. 옆에 앉아 위스키 잔을 비우던 몽고메리가 아이젠하워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지금 장군이 데리고 온 미군은 모두 몇이오 ”
“미군과 한국군을 합쳐 3만 4천이요.”
아이젠하워의 대답에 몽고메리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몽고메리는 위스키 잔을 높이 들었다.
“미군의 무훈을 빌겠소. 다 같이 건배합시다.”
“감사하오.”
* * *
아이젠하워와 홀 제독을 포함한 미국의 지휘관들을 배웅한 커닝햄과 몽고메리는 위스키 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건방진 촌놈들입니다. 전쟁에 대해, 독일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몽고메리 장군의 말에 커닝햄 제독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달력의 날짜를 살폈다.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에 명령서가 오겠군. 총리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안 봐도 눈에 선해.”
“애초에 서진(西進)을 주장하던 총리니 당연할 겁니다.”
커닝햄이 처칠을 언급하자 맞장구를 치는 몽고메리였다.
* * *
독일군 소속의 유대인들이 가자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지역에 밀어닥쳤다는 소식을 접한 처칠은 당초에 강경진압명령을 철회했다.
- 해당지역은 탈라스 술탄(Talas Sultan)과 라파(Rafah) 이서(以西)지역까지만 방어에 전념하도록!
북아프리카 주둔 영국군과 영연방군은 튀니지에서부터 동진해 오는 롬멜의 독일군을 격멸하는 것에 모든 노력을 경주하라!
처칠의 생각은 간단했다.
- 히틀러도 꼴 보기 싫고, 스탈린도 꼴 보기 싫다! 보기 싫은 두 놈들이 기운 빠질 때까지 싸우고 나면, 그 뒤통수를 친다!
처칠의 생각의 영국의 군부도 동의를 했고, 그 결과 북아프리카 주둔 영국군과 영연방군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독일군들의 서진을 막아서는 선에서 전선을 유지하면서, 반대로 서쪽의 롬멜군에 최대한 압박을 가했다.
영국 공군 역시 이탈리아에서 롬멜에게 가는 수송망을 마비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미 지중해 함대의 활약은 예상외의 일이었지만 결국은 지중해에서의 영국이 얻어야 할 목표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미 육군이 북아프리카에 파견될 것이라는 정보를 접했을 때, 처칠은 미 육군을 이용해 이집트 서쪽부터 지브롤터까지의 독일군 세력을 청소한 다음, 동쪽으로 이동해 남은 독일군을 청소하고 독일이 뚫은 길을 이용해 소련을 견제한다는 계산을 세웠다.
또한 수에즈를 통과해 인도를 다시 점령하고 동진을 계속해 일본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협공을 가한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미국이 제시한 작전은 처칠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시나이 반도로 독일군과 일본군을 끌어들여 소모전을 벌여 독일과 일본의 힘을 빼버린다.
그 다음 일본의 허리를 끊고, 유럽 본토에 직접 상륙해 독일에 한방을 먹인다!
미국의 작전을 들은 처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련을 놔두고 뭘 어쩌자는 것인가! 지금의 적은 독일과 일본이지만, 과거에도 미래에도 가장 큰 적은 소련이다!”
처칠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고, 결국 처칠은 북아프리카에 주둔한 영국군에게 명령서를 보내지 않는 몽니를 부린 것이었다.
처칠이 몽니를 부린 것처럼 몽고메리도 아이젠하워에게 몽니를 부렸다.
“저치들에게 아직 그 정보가 도착 안 한 모양입니다.”
“처칠이 주지 않았겠지.”
커닝햄과 몽고메리가 이야기한 ‘정보’는 문제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주둔한 독일군의 병력이 증가했다는 것이었다.
미 지중해 함대가 자리를 비웠고, 영국이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는 방어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독일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병력을 실어 날랐다.
그 결과 두 달 사이에 팔레스타인 지역의 독일군은 2만에서 12만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늘어난 독일군은 처칠의 마음을 알았는지 부지런히 페르시아지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위스키 잔을 비운 몽고메리는 말을 이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아직도 6만의 독일군이 버티고 있습니다. 3만 4천이라… 크게 깨지겠군요. 결국은 우리 영국군에게 머리를 숙이고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 지역에서는 누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할지 확실히 알겠지요. 유럽과 아프리카는 영국이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