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84화 (84/464)

# 84

84화 공돌이 수난기  날아라, 짬타이거! (3)

9전단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원자로에 관해서는 엑스퍼트들이 탑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미 행정부는 당장 9전단에게 손을 내밀었다.

결국, 샌프란시스코 모처에서 고 제독과 맨해튼 계획의 총책임자인 그로브스 장군이 비밀리에 회동을 가졌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하기 위한 원자로 연구의 기술자문이 필요하다고요 ”

“그렇소이다.”

“솔직하게 이야기합시다. 맨해튼 계획 아닙니까 ”

“그걸 어떻게 ”

“우리가 미래에서 왔다는 것을 잊었나봅니다 ”

“...맨해튼 계획에도 필요하지만 실제로 원자로 설계와 관리에 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오. 동맹국으로서 정식으로 협조를 요청하는 바이오.”

“의견을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최대한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도록 노력해보지요.”

“부탁하겠소.”

사흘 뒤, 고 제독은 그로브스 장군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는 답신을 보냈다.

*    *    *

“에… 다들 들었다시피, 우리가 맨해튼 계획에 참가를 하게 되었다. 필리핀에서도 이미 한 이야기지만 당분간은 원 없이 햇볕 맞으며 생활할 수 있을 거다.”

“사방이 꽉 막힌 선실에만 있다가 이번에는 사막입니까 샌프란시스코의 해변은 구경도 못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해변에 간들 뭐 있을 것 같냐 지금은 인종차별 쩔어주는 1940년대다. 어차피 여자들하고는 인연이 없는 공돌이들이 뭐가 불만이야 ”

“최 과장님은 결혼하셨잖습니까 ”

“걘 잘 생겼잖아.”

“…….”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푼 성 부장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문제는 우리가 없으면 한반도의 원자로가 몸살을 앓는다는 거다. 다행히 출발하기 전 높으신 분들이 눈엣가시 같은 놈들 정리 한답시고 있는 대로 밀어 넣어주신 덕에 인력에는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팀을 둘로 나누고 우선은 3개월 단위로 교대를 하는 방향으로 간다. 어떻게 생각해 ”

“3개월은 사막, 3개월은 샌프란시스코인 겁니까 ”

“그렇지.”

성 부장의 의견을 들은 부하 직원들은 작은 목소리로 의견을 나누었다. 잠시 동안의 수군거림이 이어지고 난 다음 직원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팀을 나누고 짐 챙겨라. 1진은 내가 인솔하는 걸로 하지. 2진은 한 차장이 맡고.”

*    *    *

한전의 원자로 관련 인원들의 1진이 출발하기 이틀 전, 정 수석팀장은 성 부장과 비밀리에 만남을 가졌다.

“꼭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무슨 부탁이오 ”

“사람들을 좀 모아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사람들 ”

“맨해튼 계획에 참가한 사람들 가운데 괜찮은 이들을 좀 포섭해주시기 바랍니다.”

정 수석팀장의 말에 성 부장의 얼굴이 사나워졌다.

“왜 핵이라도 만드시게 우리가 살던 21세기는 물론이고, 그 전인 70, 80, 90년대에도 핵 카드 꺼냈다가 뭔 사단이 벌어졌었는지 알면서 그러는 것이오 조국 광복해서 싹도 피우기 전에 도로 주저앉게 만들고 싶은 것이오 ”

“그건 아닙니다. 맨해튼 계획에 참가한 사람들은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똑똑한 이들 아닙니까 지금 저 반도에 과학기술 수준이 얼마나 개판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에겐 구식이지만 지금은 최첨단인 과학과 기술을 가르칠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건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을 혹하게 만들 당근은 있소 간단히 말해 돈이 있냐 말이오.”

“없습니다. 하지만, 부장님의 실력이시라면 인맥을 만드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

“인맥 ”

정 수석팀장의 말에 잠시 머리를 굴리던 성 부장은 곧 한 사람을 떠올렸다.

“적당한 사람이 하나 있기는 한데… 한반도의 의무실에 연락해서 임파선 결핵 치료약이 있는지 확인해 주기 바라오.”

“임파선 결핵 말입니까 ”

“그거 있으면 잘하면 아주 괜찮은 이 하나 낚을 수 있을 것 같소이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다음 날, 정 수석팀장의 연락을 받은 고 제독은 바로 의무실에 명령을 내렸다. 의무실에서 올라온 답은 ‘있다.’였다.

“참으로 하늘이 도왔습니다.”

안도의 표정을 짓는 정 수석팀장과 달리 고 제독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의무지휘관 류 중령을 바라봤다.

“혈기 넘치는 애들만 가득한 함선에 결핵치료제가 왜 있는 건가 ”

“21세기 들어서면서 결핵이 다시 퍼지고 있다는 것 모르셨습니까 거기에 자기가 결핵 걸린 줄도 모르는 애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    *    *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 성 부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안전’과 관련된 일이었다.

“아무리 초창기라고 해도 그렇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같은 일이 안 일어난 것이 다행이다! 원폭이 아니라 고지라 만드는 거냐!”

아직은 전문학자들조차 방사능의 위험성을 잘 모르는 시대였기 때문에 안전 기준이나, 시설, 대책이 많이 부실한 상황이었다.

성 부장은 ‘안전’과 관련이 있는 부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뒤집어엎고는 재구축을 해버렸다.

성 부장이 해낸 결과물을 본 미국 정부는 성 부장과 그의 팀원들에게 맨해튼 프로젝트에 소속된 모든 원자력 시설의 안전관리를 떠맡겼다.

그 덕에 성 부장은 미국 전역에 위치한 관련시설들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사람들을 관찰했다.

하지만 성 부장이 노리는 1순위는 바로 ‘리처드 파인만’이었다.

*    *    *

자서전을 비롯한 여러 미디어를 통해 파인만의 아내 사랑을 알고 있던 성 부장은 미리 준비하고 있던 한반도의 의료진에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이 마지노선을 넘어가기 바로 직전이었던 덕에 다소 고생은 했지만, 파인만의 아내는 결핵에서 완쾌를 했다.

사랑하던 아내가 건강을 되찾으면서 파인만은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세상 돌아가는 일이라는 것이 그렇지가 않았다.

유대인들이 히틀러와 결탁을 한 것이었다.

히틀러와 손을 잡은 유대인들이 군과 관련된 핵심 기밀정보를 빼내거나 빼내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맨해튼 계획’에도 대대적인 보안감사가 진행되었다.

특히나 유대인들의 비율이 다른 부분보다 월등히 높고, 가장 핵심적인 기밀 작업분야였기에 FBI의 수사관들은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탈탈 털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 특유의 종교공동체, 친족 공동체 문화에 거부반응을 일으켜 탈 유대인 선언을 했던 오펜하이머와 나치 정권에서 탈출했던 노이만과 같은 이들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실무 연구진들 가운데 상당수가 유대조직과 접촉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핵심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적지 않은 기밀이 빼돌려진 것까지 확인되면서 상당수의 유대인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검거되었다.

맨해튼 계획에서 유대인들의 변절이 발견되자, 당장 문제가 된 것은 진척이 지지부진해졌다는 것이었다.

가장 핵심적인 인물들이 변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밝혀졌지만, 그들 대부분은 연금 상태로 전락해 엄중한 감시 속에 연구와 개발을 진행해야 했다.

당연히 족쇄가 채워지고 사방에서 감시의 눈이 번뜩이는 상황에서 일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다!”

오펜하이머와 파인만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항의를 하면서 감시의 정도는 느슨해졌지만, 상당수의 이들-대표적으로 파인만-이 미국이라는 곳에 정나미가 떨어져 버렸다.

지면을 뚫고 맨틀까지 떨어져버린 사기와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맨해튼 계획이 지지부진해지자, 미국 정부는 바로 연금 상태를 해지하는 당근을 내민 것과 동시에 당장 대체가능한 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 미국 정부의 눈에 들어온 것이 성 부장과 그의 부하들이었다.

그 난리가 벌어지는 동안 성 부장과 그의 부하들은 안전담당이라는 직함을 달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    *

“…해서, 우리는 이제부터 원폭 개발계획에 참여하게 된다.”

“어느 부분에 참여를 하게 되는 겁니까 ”

“핵폭탄의 코어와 구조체, 기폭장치 등.”

“…그럼 전부 다 아닙니까 ”

“그래, 전부 다다.”

“후우~.”

질문을 하던 팀원들이나 대답을 하는 성 부장이나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핵폭탄이었다.

수십만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공포의 병기, 냉전의 상징이자, 멸망의 상징, 모순적이기는 하지만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게 만든 병기.

여러 감정이 뒤섞인 얼굴을 한 성 부장은 팀원들에게 할 일을 알려줬다.

“우리가 할 일은 기존에 나온 설계의 오류를 파악하고, 개선하는 일이다.”

“컴퓨터를 공개적으로 사용해도 됩니까 ”

“어쩔 수 없지 않을까 ”

“오류 파악과 개선이라….”

“그리고 하나 더, 실측 데이터들을 최대한 확보하고. 그거야말로 돈 주고도 못 사는 거니까.”

성 부장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이해한 팀원들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사무실 안의 공기마저 꽁꽁 얼어붙은 것 같은 분위기를 깨고 막내 하 대리가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말은 나중에 우리도 만들려는 겁니까 ”

“아마도.”

“득보다 실이 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서 자랐던 때처럼 동서 냉전시대라면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만, 신문 봤지 지금 상황이 다 꼬여버렸다. 앞으로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성 부장의 대답에 팀원들은 작게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유대인들. 빌어먹을 히틀러.”

그런 팀원들을 보며 성 부장은 왜 필요한지 말을 이어갔다.

“히틀러가 제정신을 차린 것인지, 히틀러가 아닌 딴 놈이 히틀러의 껍질을 뒤집어썼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상황이 다 꼬여버렸다.

이대로라면 히로시마에 한발, 나가사키에 한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쿄에 한발, 베를린의 한발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모스크바, 베를린, 워싱턴 모두 사이좋게 한방씩 치고받을 수도 있는 일이고…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를 지킬 한방을 가질 필요가 있지.

뭐, 21세기 인터넷에서 돌던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인터넷을 뒤지면 설계도가 튀어나온다.’였지. 그래, 설계도가 돌아다닐지 모르지. 진짜 머리 좋은 물리학도가 우라늄을 구해 만들 수 있을지 모르고.

하지만, 진짜 실측 데이터가 없으면 다 뜬구름 잡는 소리야. 잘해야 ‘더티 밤(Dirty bomb, 방사능 오염 폭탄)’이지. 그렇지 않다면 평양의 그 미친 3대가 핵실험을 해댈 필요가 없었겠지….”

자기가 말은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말을 흐린 성 부장은 창밖을 바라보다 욕설을 뱉었다.

“조또! 무슨 놈의 팔자가 이리도 엿 같냐! 어쨌거나 데이터는 필요하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스마트 원자로의 소형화도 연구한다!”

“알겠습니다.”

*    *    *

성 부장의 팀원까지 가세하면서 맨해튼 계획은 다시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오히려 성 부장의 팀이 없었다면 겪었을 실수가 줄면서 유대인 파동을 겪으면서 날린 시간을 메울 수 있었다.

“아! 성 부장!”

“무슨 일입니까 오펜하이머 박사님 ”

“내일 영국에서 사람들이 옵니다. 우리 일을 도와줄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환영회 겸 상견례가 있으니 시간 좀 내세요.”

“알겠습니다.”

오펜하이머와 짧은 대화를 끝내고 돌아선 성 부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영국에서 사람들이 온다고 그럼 그 순진한 공산주의자가 있으려나 ”

다음 날 저녁, 영국에서 온 과학자들을 위한 환영회와 상견례가 끝나고 나서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성 부장은 심각한 얼굴로 수화기를 들었다.

-교환입니다.

“LA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무실로 연결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전화가 연결되자 성 부장은 정 수석차관을 찾았다. 정 수석이 수화기 너머 나타나자 도청을 의식한 성 부장은 짧게 용건을 이야기했다.

“최대한 빨리 만날 수 있겠습니까 ”

-중요한 일입니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인사관리 문제라서요.”

-최대한 빨리 뵙겠습니다.

*    *    *

사흘 뒤, 로스 알라모스 기지의 작은 카페테리아에서 정 수석차관을 만난 성 부장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번 영국 과학자들 사이에 소련 스파이가 들어왔습니다.”

“신원조회는 다 거친 이들 아닙니까 ”

“자발적 스파이라 말이지요.”

“자발적 스파이 누굽니까 ”

“클라우스 폭스.”

성 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클라우스 폭스는 나치 정권에 반항하던 공산주의자였다.

독일을 탈출해 영국에 자리를 잡은 그는 영국이 극비리에 개발하던 ‘튜브합금폭탄’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동맹국인 소련이 독일에 고통을 받는데, 이런 기밀을 숨기다니 옳지 않다!’

굳은 결심을 한 폭스는 그때부터 소련과 접촉, 비밀리에 관련 정보를 넘기기 시작했고, 그를 좋게 본 영국 학자들의 추천을 받아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그가 없었으면 소련의 원폭 개발이 최소 5년, 길게는 10년은 더 걸렸을 거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트루먼과 맥아더의 의견이 갈릴 일이 없었다는 이야기도 같이 돌았지요. 자,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요 ”

성 부장의 설명을 들은 정 수석차관은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들었습니다.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부탁하오.”

정 수석차관을 배웅한 성 부장은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커피 잔을 손에 쥔 채 잠시 상념에 빠져있던 성 부장은 피식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클라우스 폭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만주에 원폭이 떨어졌으면 분단은 없었다고 떠들던 교수님이 생각나네! 그때는 극우 파쇼라고 그랬는데, 이젠 내가 뽕쟁이가 되어버렸구먼. 국뽕 쳐맞은 뽕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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