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83화 공돌이 수난기 날아라, 짬타이거! (2)
전투기 부분에서 시작된 제트화 바람은 어쩔 수 없는 전장의 상황 때문이었다.
1942년 6월에 제97폭격단이 영국에 배치된 것을 시작으로 대량의 B-17, B-24폭격기들과 머스탱 전투기들이 독일의 공업지대를 목표로 작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당초 미군의 예상과 달리 성과는 미흡하고 피해는 심대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리 준비를 하고 있다가 달려드는 독일 전투기들의 파상공세에 미군의 폭격기들과 전투기들은 심대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매일같이 산처럼 쌓이는 피해 보고서들 가운데 육군항공대 지휘부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전투기 파일럿들의 피해에 관한 보고서였다.
영국왕립공군(RAF)도 우수한 기체라고 평한 것처럼 머스탱은 우수한 기체였다.
문제는 파일럿들의 자질, 정확히 말하자면 숙련도 문제였다. 나름 충분한 훈련을 받고 온 머스탱의 파일럿들이었지만 개전 초부터 경험을 쌓았고, 영국 항공전을 통해 단련을 받은 독일 공군의 파일럿들의 상대는 아니었다.
숙련된 독일 파일럿들에게 ‘마지막 마무리 훈련’을 받으며 수많은 머스탱 파일럿들이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거나, 포로로 잡혔다.
“우리 파일럿들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많다!”
문제점을 파악한 미 육군항공대의 지휘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와중에 육군항공대 지휘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미 해군 항공대의 교육이었다.
육군항공대가 머스탱으로 전투기를 단일화 한 것처럼 해군 항공대 역시 콜세어로 전투기종을 단일화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해군항공대는 교육과정까지 바꾸고 있었다. 존 타치 소령이 개발한 ‘타치 웹’을 기본 전술로 훈련을 시킴과 동시에 9전단의 함재기 조종사들을 교관으로 초빙해 공중전 이론 및 실기 교육을 병행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전선에서 실적을 인정받은 우수한 파일럿들을 후방의 교관으로 돌려 에이스들의 특화된 기술을 일반 파일럿들도 쓸 수 있는 기술로 만들어 버림과 동시에 파일럿들의 기본 수준 자체를 상승시키고 있었다.
해군 항공대의 교육과정을 유심히 살핀 미 육군항공대 역시 파일럿들의 교육과정을 대폭 변경했다.
2기 1조의 기본 편대 전술을 기본으로 4기 1조, 난전이 벌어졌을 경우의 단독 전술과 협동 전술 등의 교육이 심화과정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전선에서 살아남은, 거기에 더해 에이스 칭호까지 받은 전투기 파일럿들을 대거 본토로 끌고 들어와 심화과정 반을 만들어 훈련과정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파일럿들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었다.
그리고 이렇게 잘 벼린 파일럿들로 부대를 구성해 아군 폭격기 부대를 공격하기 위해 날아오는 독일 전투기들을 1차로 막아내는 임무를 맡겼다.
훗날 독일 공군의 전투기 파일럿들이 가장 치를 떨었던 존재들 가운데 하나인 ‘총잡이 부대(Gunfighter squad)’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총잡이들을 위한 성능 좋은 총이 필요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시간표에 공돌이들이 갈려나가게 된 것이었다.
‘총잡이 부대’가 1차로 거르고, 호위전투기 부대가 2차로 걸러내는 시스템을 본 9전단의 지휘부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으로 입맛을 다셨다.
“물량과 사람이 남아도는 미국다운 일이네. 쩝!”
* * *
미 해군 기술연구소의 고문자격으로 일을 하던 H 조선 소속 설계팀들은 두툼한 서류뭉치를 받아들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미 육군이 제트 전투기 끌고 갈 때부터 예상은 했었다만….”
미 육군이 제트 전투기의 개발에 들어가자마자 해군 역시 제트 전투기 개발에 착수를 했다.
하지만 해군 상층부는 그 전에 해결할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항공모함.
바다 위의 비행기지!
하지만 지금 한창 뽑아내고 있고, 추가로 더 뽑아낼 준비를 하고 있는 에식스급 항공모함의 목제 비행갑판에서는 제트 전투기를 운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고민을 하던 해군 상층부는 바로 결단을 내렸다.
“새로 만든다!”
결단을 내린 해군 상층부는 예산을 틀어쥔 의회의 설득에 들어갔다.
‘예산의 불필요한 낭비를 막기 위해 기존의 에식스급은 지금 건조에 들어간 것까지만 만들고, 부족한 항모세력은 호위항모의 대량 배치로 일단 해결을 한다.’
“그래도 이중지출이 될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만 ”
트루먼 의원에 지적에 어네스트 킹 제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가 않소이다. 함선이라는 것이 바로바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니 말이오.”
해군의 설득이 통해서 의회는 해군의 계획을 승인했고, 최종결재권자인 루스벨트에게 서류가 올라갔다. ‘함선성애자’로 소문난 루스벨트는 즐거운 마음으로 사인을 했고.
그러한 소동 끝에 H조선 소속 설계팀에게 문제의 서류가 온 것이었다. 어니스트 킹 제독은 물론이고 니미츠 제독까지 참석한 회의에서 제독들의 요구는 간단했다.
‘지금 당장 한반도와 같은 성능의 항모는 무리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10년 이상은 최고의 성능을 낼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파나마와 수에즈 운하를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유능한 설계 엔지니어들이 있습니다만 저희는 그저 고문 역할만 해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유능하기는 하지. 그런데 제트 전투기를 운용할 수 있는 항모를 설계해본 경험이 없소이다. 이미 실제 함선을 설계한 경험이 있는 이들을 놀게 하는 비효율적인 일을 할 필요는 없지 않겠소 ”
“제트 전투기를 운용할 수 있는 항모를 원하시는데, 그 제트전투기의 사이즈가 어떻게 됩니까 ”
“그건 당신들의 동료가 알고 있을 겁니다.”
“예 ”
“미 해군이 사용할 함상전투기는 KAI의 설계팀이 설계하고 있습니다.”
“…….”
“그럼, 잘 부탁하겠소.”
회의가 끝나고 자신들의 사무실로 돌아온 설계팀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다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우~.”
“처음 토론회에서 말이야… 분명히 미국을 스폰서 삼아서 쪽 빨아먹자고 했지 ”
“그랬지.”
“그런데 어째 우리가 쪽쪽 빨리는 느낌이다….”
“…….”
짝짝!
난감하고 암울한 분위기를 치우기 위해 가볍게 박수를 친 김영현 설계팀장이 팀원들을 독려했다.
“지금은 우리가 빨리는 느낌이지만 독립만 하면 우리가 쪽쪽 빨아먹을 수 있잖냐! 기운내자! 어쨌거나 월급은 우리가 받았던 것 이상으로 차곡차곡 들어오고 있고, 야근도 없으니 기분 좋게 하자! 다른 건 몰라도 월급 도둑이라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하지 않겠냐!”
“예….”
“컴퓨터들 확인해봐라! 뻗었으면 고칠 부품도 없으니까!”
* * *
H조선의 설계팀이 숙제를 떠안은 것처럼 KAI의 설계팀 역시 미국 해군에게서 숙제를 떠맡게 되었다.
“함재 전투기 말입니까 ”
“그렇소. 육군과 해군은 환경자체가 다르니 별도의 전투기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 아니오 ”
“미국에는 이미 유명한 항공기 제조사들이 있지 않습니까 ”
“우리는 이미 우수한 제트 함재전투기들을 봤고, 그걸 설계한 설계팀도 알고 있소. 대체 무엇 때문에 불필요한 시간낭비에 물자낭비까지 해야 하오 ”
“…….”
“잘 부탁하오.”
말은 잘 부탁한다고 했지만, 시작부터 KAI와 미국 해군은 계속해서 충돌을 일으켰다.
“엔진은 쌍발이어야 하오.”
“단발도 괜찮습니다만 ”
“단발은 불안해. 꼭 쌍발이어야 하오.”
“우리가 알던 역사에서 단발임에도 불구하고 명작이라는 소리를 들은 ‘미국 해군’ 함재 전투기들이 꽤 있습니다만 ”
“그래도 쌍발이 좋소.”
“암! 당연히 쌍발이어야 하오!”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제트엔진은 육군 제트 전투기에 들어가는 엔진이 유일합니다. 그 엔진 덩치를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그걸 쌍발로 하면 덩치가 무의미하게 커집니다. 그리고 추중비를 비롯해서 작전반경의 이점도 없고 말입니다.”
“그래도…….”
“단발이 지금은 가장 최선입니다! 아니면 그냥 미국 항공기 제조사들에게 맡기십시오!”
강 설계수석팀장의 배째라식 반항에 미 해군 제독들은 백기를 흔들었다.
“알겠소이다. 그럼 단발로 합시다.”
* * *
미국 해군의 숙제를 떠맡은 KAI와 H조선의 설계팀은 회동을 가졌다.
“어째 쪽쪽 빨리는 느낌이 들지만 해야만 하는 것이겠지요 ”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지금 당장은 이렇게 해서라도 빚을 만들어야 하니 말입니다.”
강 수석설계팀장과 김 설계팀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말인데 전투기는 어느 정도 사이즈를 예상하고 있습니까 대략적인 크기라도 알아야 격납고부터 시작해 최종적으로는 배수량까지 정해지니 말입니다.”
“후우~.”
김 팀장의 물음에 강 설계수석팀장은 미 해군 제독들과의 싸움이 생각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아직도 미정인 겁니까 ”
“아닙니다. 단지 나쁜 기억이 생각나서요…. 어찌나 쌍발기를 고집해대는지… 하마터면 톰캣보다 더 뚱뚱한 ‘비만고양이’가 태어날 뻔 했습니다. 어쨌거나 확정된 기종은 단발기입니다.”
“애매하군요.”
“그래도 짬타이거보다 크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기준을 잡겠습니다. 문제는 ‘적어도 10년 이상은 최고의 성능’과 ‘수에즈와 파나마 이용에 문제없을 것’이로군요.”
기술적인 제한조건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던 가운데 화두는 다시 ‘쪽쪽 빨리는’ 문제로 돌아갔다.
“정 수석차관에게 이야기는 해봤는데 독립 후, 필요한 일이니 협력하라고 하더군요.”
“저도 들었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이상한 걸 묻기나 하고 말입니다.”
“이상한 것 ”
강 설계수석팀장의 물음에 김 팀장은 주변을 살피고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한반도 하나만으로는 부족하지 않겠냐고 묻더군요. 거기에 더해 잠수함 쪽으로 경험이 있는 팀원이 있는지도 묻더군요.”
김 팀장이 작게 소곤거리자 강 수석설계팀장도 목소리를 낮췄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기회에 독립 후, 쓸 만한 전투기 설계도 미리 준비하라고 하더군요.”
“지금 저 조선반도의 상황을 생각하면 독립하고 나서 바로 전투기 생산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랍니까 아니면 일본 자위대처럼 알아주는 호구가 될 거랍니까 ”
“그 양반하고 코람 캐피탈의 유 사장이 요즘 바쁘게 돌아다닌다고 하더군요. 저한테도 오퍼가 떨어졌습니다. 실력은 좋지만 자금 사정이 별로인 항공기 제조사가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하더군요.”
강 설계수석팀장의 대답에 김 팀장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 말은 ”
“미국 시장을 노리겠다는 거지요.”
“그럼 잠수함도 ”
“그 부분은….”
잠시 말을 멈춘 강 설계수석팀장은 주변을 다시 살피고는 더욱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오리지널 멤버는 아니지만 스마트 원자로의 달인이 있지 않습니까 ”
“성 부장 ”
“예.”
“허….”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은 김 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원래 역사에서처럼 미국이 마셜 원조를 풀 때, 유럽에 갈 자금까지 몽땅 끌어올 생각이랍니까 불가능한 일을 생각하는군요.”
“어쩌다보니 연이 닿아서 정 수석차관과 자주 이야기를 했는데, 정 수석차관도 그건 아니라고 하더군요. 적어도 20년은 지난 후에 도전할 생각이랍니다.”
“20년이면 1960년대 ”
“예. 그때까지 경제로 일본은 확실하게 조져놓을 생각이랍니다.”
강 설계수석팀장의 대답에 김 팀장은 여전히 비관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지금 조선반도의 과학기술 수준으로 가능할까요 일본의 식민지 정책으로 공돌이들 싹이 마른 상황 아닙니까 ”
“그래서 성 부장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답니다. 이미 한명 침 발라놨다고 하더군요.”
“누구를 ”
“파인만.”
“그 파인만 ”
“예.”
“어떻게 ”
“그 양반, 알고 보니 애처가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