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79화 지중해의 女帝(Empress of the Mediterranean) (15)
독일군 역시 무기력하게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유선 통신과 전령들을 통해 들어온 정보들을 취합해 보면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 젤라 비행장과 몰타만이 습격을 피한 것 같다.”
“그렇습니다.”
“이유가 뭘까 뭔가 상식적으로 맞지가 않는단 말이야.”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공격입니다.”
게이슬러 장군의 물음에 참모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에 미 해군이 강타한 지역들 가운데 정규 비행장은 독일공군과 이탈리아 공군의 폭격기들과 소수의 전투기들만이 배치된 곳뿐이었고, 시라쿠사에 자리한 임시 비행기지에는 2개 슈바름, 8기의 BF-109만이 자리한 자그마한 기지였다.
이탈리아 군이 심혈을 기울여 판텔레리아에 만든 비행기지에 있는 강화형 격납고-암벽을 뚫고 만들었다-에는 계획대로라면 60기의 전투기와 6기의 폭격기가 배치되어 있어야 했지만, 기존의 주력기였던 CR.42 복엽전투기들을 신형 C.202로 교체하는 도중이었기 때문에 30기 정도만이 배치되어 있었다.
게이슬러 장군과 참모들이 의문을 품은 것은 시칠리아에 배치된 독일 전투기들의 과반 이상이 모인 젤라 비행장을 놔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전투기의 적은 전투기인 법이었고, 껄끄러운 전투기들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순리였다.
미 해군의 종잡을 수 없는 작전에 의문을 품던 게이슬러 장군은 현실로 눈을 돌렸다.
“도대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가 없군. 하지만 이건 확실하다! 양키놈들이 이대로 이곳을 가만 놔두고 지나갈 리 없다! 멍청하게 당하는 것은 1번이면 족해! 전파방해는 아직도 인가 ”
게이슬러 장군의 물음에 참모 한 병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입니다.”
“빌어먹을! 눈 뜬 장님 신세라니! 지금 출격 가능한 기체는 모두 몇 기인가 ”
“100기 가운데 91기 출격 가능합니다.”
“32기를 우선 띄운다. 모든 기체에 증가 연료 탱크를 달고, 2개의 슈바름(총 8기)을 1조로 해서 기지를 중심으로 반경 20km의 동서남북 상공을 감시한다. 1개의 슈바름은 8,000m에서, 다른 슈바름은 6,000m에서 비행을 한다.”
“적을 발견한다 해도 알릴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무선통신이 먹통입니다!”
참모 가운데 한 명이 문제점을 지적하자 다른 참모가 해결방안을 내놓았다.
“각 슈바름의 리더에게 신호탄 발사권총을 소지하게 하고, 적 편대를 발견 즉시 신호탄을 발사하게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
“8,000m 아니면 6,000m에서 떨어지는 신호탄을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 ”
“지상병력에 임무를 맡기면 됩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
신호탄을 사용하자는 참모의 의견을 수렴한 게이슬러 장군은 계속해서 자신이 생각한 작전을 설명했다.
“초계조가 이륙을 끝낸 다음, 바로 8개의 슈바름을 활주로에 대기시키다가 적의 공격이 감지되면 바로 이륙시킨다. 예상보다 적의 공격시점이 늦어졌을 경우, 상공에 올라간 초계조의 비행가능 시간이 30분 남았을 때 교대조를 올려보낸다. 초계조의 착륙은 활주로 주변의 잔디밭으로 하고 활주로는 완전무장한 전투기들을 배치해 언제라도 이륙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한다. 어떤가 ”
“현재로서는 가장 적절한 방법 같습니다.”
“좋아. 그렇게 하고. 이탈리아 본토와 북아프리카에 한 지원 연락은 어떻게 되었나 ”
“북아프리카는 지금 영국군에게 발목이 잡혔고, 이탈리아 본토에서는 이탈리아 공군이 늑장을 부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공군은… 다 프랑스에 있지! 빌어먹을!”
욕설을 내뱉은 게이슬러 장군은 참모를 닦달했다.
“이탈리아 놈들한테 최대한 빨리 지원을 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30분 후, 젤라 기지의 상공 초계를 맡은 BF-109와 FW-190이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 * *
게이슬러 장군과 참모들을 혼란에 빠뜨리게 한 미 해군의 작전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에는 곽재우와 강감찬이 있었다.
- 곽재우와 강감찬의 레이더와 음탐 체계, 전자전 능력 등과 같은 지원전력이 현재 지중해 함대가 벌이는 작전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 문제는 이런 능력이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곽재우와 강감찬에 피해가 발생한다면, 지중해 함대의 작전 수행 능력이 급감한다는 말이 된다.
- 독일과 이탈리아가 가할 수 있는 공격 가운데 곽재우와 강감찬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은 어뢰와 항공폭탄, 함포의 포탄 등이다.
특히나 가장 핵심 장비인 레이더의 경우 포탄이나 폭탄의 파편 등으로 피해를 입을 경우, 지중해 함대의 레이더 탐지거리는 거의 1/10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와 같은 문제를 들며 독일과 이탈리아의 폭격기 세력부터 치워야 한다는 장 대령의 주장에 홀 제독이 이의를 제기했다.
“지난 번 로켓 무기를 보니, 충분한 능력을 가진 자위무장은 있는 것으로 보였네만 ”
“능력은 충분합니다만, 수량이 문제입니다. 만약 미국이 지금 당장 곽재우와 강감찬에 탑재한 대공 미사일과 같은 사이즈, 같은 능력을 지닌 미사일을 공급해주실 수 있다면 전투기 기지부터 청소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장 대령의 대답에 홀 제독과 참모들은 두말 않고 1차 타격목표를 폭격기 세력으로 설정했다.
* * *
“2차 공격대 출격을 시작했습니다.”
장 대령의 보고에 홀 제독은 커피를 마시며 전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제리들도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군.”
“이미 당했으니 당연한 일일 겁니다. 양 중령, 독일기들의 전술이 무엇일 것 같나 ”
“아이다입니다.”
“아이다 ”
“아이-레이더(Eye-Radar). 눈으로 직접 보는 것입니다.”
“시간벌기용인가 ”
“그렇습니다. 흠….”
전술 모니터를 살피던 양 중령이 관제요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제리들이 두 패로 나뉘었다. 높은 쪽은 26,246피트. 낮은 쪽은 19,685피트. 젤라 공군기지를 중심으로 반경 20km, 약 13마일의 원을 반시계방향으로 그리며 비행하고 있다. 따라서 공격대는 고도를 30,000피트(약 9144m)로 올리라고 해.”
“알겠습니다.”
“A 공격대의 코스는 그대로. 젤라 기지의 남동쪽에서 들이친다. 몰타를 맡은 B공격대 역시 마찬가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관제 통신에 귀를 기울이라고 주의를 주도록. 이번에도 제멋대로 굴면 전쟁 끝날 때까지 조종간 대신 펜만 잡고 있게 만들어줄 거라고 전해. 이는 홀 제독께서 허가한 사항이다.”
“알겠습니다.”
양 중령의 명령은 바로 각 공격대 공용 통신망에 전달되었다. 엄포가 통했는지 관제요원의 명령이 떨어질 때마다 공격대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한편, 뒤에서 양 중령의 명령을 듣고 있던 홀 제독은 쓴웃음을 지었다.
“졸지에 내가 악당 두목이 된 것 같군….”
홀 제독의 혼잣말에 장 대령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관제를 담당하는 후방과 현장에서 작전을 뛰는 파일럿-또는 부대- 사이의 우선순위 논쟁은 21세기에도 뜨거운 이슈였다.
레이더를 비롯한 탐지 장비와 통신 장비의 한계로 인해, 21세기 이전까지의 전쟁에서는 현장의 파일럿 또는 지휘관에게 행동을 결정할 우선순위가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IT혁명 이후에는 실시간으로 대륙간 음성통신은 물론이고 영상통화까지 가능한 시기가 오면서 후방의 고위지휘관이 결정의 우선권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거기에는 좀 더 정치적인 부분이 강해지기 시작하는 전장 환경의 변화도 한몫을 했다.
결국, ‘불필요한 인명손실이나 우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비도덕적인 문제를 막기 위해서도 상층부의 결정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라는 의견과, ‘전쟁은 병정놀이가 아니다. 일선에서 초단위로 급변하는 전장에서 현장 지휘관의 판단과 결심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라는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며 충돌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도 미국같이 잘 나가는 나라들의 이야기였지만….우리는 막 시작하는 상황이었고….’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린 장 대령은 1942년의 현실로 돌아와 전술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귀로 관제요원의 외침이 들려왔다.
“20분 후, 접촉합니다!”
* * *
“적습이다!”
후방 상공에서 쏟아져 내리는 예광탄 줄기를 피해 브레이크와 방향타를 움직여 그 자리에서 턴을 한 하인츠 뵈아는 즉시 자신의 슈봐름의 상황을 살폈다.
2대가 연기와 함께 떨어지고, 회색으로 도색을 한 미 해군전투기 2기가 자신을 노리고 오는 것을 본 뵈아는 즉시 급강하를 시작했다.
미리 받은 명령대로 캐노피의 미닫이창을 열고 신호탄을 쏜 뵈아는 빠르게 주변을 흩었다.
미 해군 전투기들의 집단 전술에 대형이 흐트러진 동료기들이 차례차례 각개격파 되는 모습을 본 뵈아는 조종간을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사냥감이 된 것인가 ”
그런 그의 뒤를 2대의 콜세어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 * *
“야! 저거 봤어 ”
“봐, 봤어. 저런 기동이 가능해 ”
뵈아의 편대를 처음 공격한 콜세어 편대 소속의 콜린스와 퍼셀은 놀란 목소리로 통신을 이어갔다.
기수의 카울(엔진덮개) 부분을 노랗게 칠한 BF-109가 기상천외한 기동을 선보였기 때문이었다.
흡사 깜작 놀란 고양이가 몸을 튕기듯이 문제의 Bf-109는 그 자리에서 공중회전을 하며 20mm 기관포탄의 탄도를 벗어나 급강하를 시작했다.
“에이스다!”
“분명히 에이스야!”
방금 전 기동을 통해 상대가 범상치 않은 에이스임을 알아챈 콜린스와 퍼셀은 허공에 신호탄을 발사하고 빠르게 도망가는 문제의 BF-109를 맹렬하게 쫓기 시작했다.
-여기는 와치타워. 러너 2, 러너 3, 즉각 상승하라. 고도와 속도를 잃었다. 즉각 상승하라.
-반복한다. 여기는 와치타워. 러너2, 러너3, 즉각 상승하라. 고도와 속도를 잃었다. 즉각 상승하라.
곽재우의 관제요원이 두 사람에게 계속해서 경고를 날렸지만, 에이스를 잡겠다는 욕심에 빠진 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 * *
“빌어먹을! 또 시작이로군!”
전술 모니터를 보며 상황을 살피던 양 중령은 욕설을 내뱉었다. 잠시 심호흡을 하며 화를 삭힌 양 중령은 해당지역을 모니터하는 관제요원에게 명령을 내렸다.
“상공에 대기하는 퍼플 편대와 나이트 편대에 전달해. 퍼플은 저 멍청이들 뒤에 달라붙는 독일기 2기를 청소하고, 나이트는 저 멍청이들을 끌고 상승하라고!”
“독일기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코요테와 울프, 랩터에게 전달! 적들을 차단할 것! 해당 상공에 밀도를 높이지 말라고 해! 밀도가 높아지면 우리가 가진 이점을 상실하게 된다!”
“알겠습니다!”
양 중령의 명령을 받은 관제요원이 해당편대를 호출해 명령을 전달했다. 대형 전술 모니터에 나타나는 실시간 변화를 보면서 양 중령은 이를 악물었군.
“확실히 엑스퍼트는 엑스퍼트라 이건가….”
악착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독일군이었다.
* * *
“신호탄이다!”
젤라 기지에서 남동쪽으로 5km 떨어진 작은 마을.
마을 한가운데 있는 성당의 종탑에서 상공을 관찰하던 독일 병사의 외침에 옆에 있던 동료는 바로 임시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고, 몸체에 달린 핸들을 돌렸다. 사령부와 연결이 되자마자 병사들은 신호탄의 발견을 보고했다.
에에에엥-!!
유선보고가 들어오자마자 젤라 기지의 관제탑에서 사이렌이 울렸고, 망루에 선 병사가 신호탄을 허공에 발사했다.
“가자!”
시동을 건 채 대기하고 있는 기체들의 선두에서 신호탄을 확인한 고든 골롭은 캐노피를 닫고는 브레이크를 풀고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선두기이자 대장기인 골롭의 기체가 질주를 시작하자 뒤에 대기하고 있던 기체들도 앞으로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노련한 조작을 통해 이륙하자마자 바로 랜딩기어를 접은 기체들은 곧 속도를 올려 급상승을 시작했다.
“기체로!”
지금 상공에서 전투를 치르는 편대들과 교대를 한 다음 휴식을 취하던 파일럿들은 서둘러 자신들의 기체로 달려갔다.
“시동!”
요란한 소음과 함께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하자 기체들은 잔디밭을 달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폭탄을 매단 콜세어와 돈틀레스들이 젤라 기지에 들이닥쳤다.
“공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