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76화 (76/464)

# 76

76화 지중해의 女帝(Empress of the Mediterranean) (12)

농담이었던 ‘멋진 인사(Nice Greeting)’을 아예 작전명으로 삼은 타격 작전의 계획이 완성되었다.

계획을 숙지한 항공전대장들이 각자의 항모로 돌아간 다음, 홀 제독은 장 대령과 사담(私談)을 나누었다.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느긋한 분위기 속에서 홀 제독이 영국 해군을 주제로 입을 열었다.

“아까 이 배가 구축함이라고 했을 때, 영국 친구들의 눈을 봤나 못 믿겠다는 표정이 그대로 나오더군.”

“하하하.”

‘그건 필리핀과 샌프란시스코에서 댁들도 그랬습니다.’

웃음으로 대답을 얼버무리는 장 대령을 보며 홀 제독은 질문을 던졌다.

“솔직히 말해 우리도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야. 강감찬은 대형 구축함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지만, 곽재우는 그게 아니지 않은가 누가 봐도 덩치는 순양함인데, 구축함이라고 억지를 부르는 상황이지 않나 ”

“그게… 공세적(Offensive)이냐, 수세적(Defensive)이냐의 문제라서 말입니다. 구축함이라는 함선 자체가 방어를 주목적으로 하는 것 아닙니까 ”

“그렇지.”

“하지만 순양함이라는 함정은 반대로 태생 자체가 공세를 위한 함정입니다. 그러다보니 쓸데없이 타국을 자극해 군비경쟁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구축함으로 분류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가 ”

나름 납득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홀 제독을 보며 장 대령은 속으로 한소리를 해댔다.

‘그게 다 댁들 때문이잖수! 7,000톤, 8,000톤짜리를 구축함이라고 우기면서 수십 척을 뽑아댔는데! 나 같아도 창피해서 순양함이란 명패 못 붙이겠다! 거기에 더해 아무리 무식한 소련놈들이라도 구축함으로 8,000톤짜리를 뽑은 인간들 상대로 순양함을 찍겠냐! 댁들이 작심하면 뭐가 나올지 어떻게 알고 순양함을 뽑겠냐고!’

*    *    *

다음 날, 한미 연합함대와 영국의 구축함 전단이 합쳐진 3국 연합함대가 지브롤터를 떠났다.

지브롤터를 벗어나 지중해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곽재우의 이지스 레이더가 상공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3개 편대, 12기의 콜세어가 CAP(Combat Air Patrol. 전투초계비행)의 임무를 맡아 함대 주변의 상공을 지키고, 곽재우와 강감찬의 소나가 수중을 감시하는 가운데, 함대는 발레아루스 제도의 남쪽을 지나 튀니스와 사르디니아 섬 근방을 지나고 있었다.

“알제리에서 조용히 보내주다니 의외입니다.”

“비시 프랑스가 눈치를 살피는 것이겠지.”

장 대령과 홀 제독은 예상보다 편안한 바닷길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은 전술 모니터의 고정되어 있었다.

지금 한국 해군과 미국 해군의 최대 관심은 독일과 이탈리아 공군의 해상 초계라인의 경계선이 어디인가였다.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 장 대령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었다.

“시칠리아를 중심으로 반경 700km가 한계로 예상은 하고 있습니다만.”

“그럼 아직은 곽재우의 레이더에도 걸리는 것은 없겠구먼.”

“그렇습니다.”

현재 곽재우의 이지스 레이더는 수명연장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탐지거리를 반경 400km로 한정지어놓고 운영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홀 제독을 비롯한 미국 해군들은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장 대령과 홀 제독이 예상하고 있는 독일공군의 초계라인의 경계선과 곽재우의 레이더 경계선이 조금씩 겹쳐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항공관제를 맡은 양 중령은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상공에서 비행중인 콜세어 편대들의 비행가능 시간을 확인하고, 교대를 할 편대의 준비과정을 확인하느라 양 중령의 손에서는 수화기가 떨어질 틈이 없었다.

“미확인 항공기가 레이더에 잡혔습니다!”

“어디야!”

“함대 북동쪽 650km지점! 동남쪽으로 비행 중입니다! 속도 시속 420km! 고도 7,000m!”

전탐병의 보고와 동시에 전술 모니터에도 관련 정보가 표시되었다. 상황을 확인한 양 중령이 대기하고 있던 콜세어 편대 가운데 하나를 호출했다.

“블루리더! 블루리더! 여기는 와치타워(Watchtower, 감시탑.)! 정동방향 100마일 보기(Bogey, 미확인기체)! 고도 26,000피트(약 7,900m)에서 접근해서 요격할 것!”

“블루리더 카피! 하이~호!”

대답을 한 블루편대의 편대장의 요란한 대답과 동시에 블루편대를 가리키는 표식 4개가 목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뒤를 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추가로 나타난 미확인 기체들을 상대로 전탐요원들과 양 중령이 항공관제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홀 제독과 참모들, 그리고 장 대령은 테이블 모니터를 가운데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예상보다 100km정도 안쪽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모와 장 대령의 보고에 홀 제독은 턱을 쓰다듬었다.

“의외로군. 예상보다 정찰 반경이 좁아.”

“그게 좀 의외긴 합니다.”

홀 제독과 장 대령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참모 가운데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독일 전투기들의 항속거리가 짧은 것이 이유가 아닐까요 ”

“자세히 설명을 해보게.”

“영국에서 준 자료에 따르면 독일 전투기들의 항속거리가 대단히 짧습니다. BF-109의 경우, 최대 430마일(약 700km)이라고 합니다. 신예기인 FW190의 경우에도 500마일(800km)근방이고 말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생각한다면 저들의 정찰반경이 좁은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자기들의 팔이 짧다고 가까운 곳만 보는 것은 멍청한 일 아닌가 ”

홀 제독의 지적에 참모는 테이블 모니터에 떠 있는 해도를 가리켰다.

“지중해, 특히 시칠리아를 지나 알렉산드리아까지는 팔이 짧아도 문제가 될 만큼 넓은 곳이 아닙니다. 거기에 더해 알렉산드리아로 가기 위해서는 어차피 판텔레리아와 몰타, 그리고 시칠리아로 만들어진 삼각지대를 지나가야 합니다. 팔이 짧다 해도 수송함대를 따라잡기에는 충분히 빠른 발을 가지고 있고 말입니다.”

“그렇군….”

참모의 설명에 홀 제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몰타가 함락된 이후, 이 삼각지대는 ‘연합군 수송함대의 묘지’가 되어 버렸다.

적잖은 수의 수송선과 함선-그것도 가장 할 일이 많은 구축함-들이 독일과 이탈리아 공군의 밥이 되어야 했다.

추축국 항공세력 가운데 가장 약체라고 소문난 이탈리아 공군마저도 영국해군의 수송선단에게는 저승사자였다.

“그렇단 말이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 홀 제독은 장 대령을 바라봤다.

“저 독일 놈들의 짧은 팔을 생각하면 오늘 밤까지는 U-보트들이 더 문제가 되겠군 ”

“그렇습니다.”

“좋아! 마지막 변수 하나가 확실히 해결되었군! 내일 일출 시각이 몇 시지 ”

“오전 7시입니다. 겨울이라서 상당히 늦어졌습니다.”

참모의 대답에 홀 제독은 결심을 내렸다.

“내일 새벽 6시에 'Nice Greeting' 작전을 시작하는 걸로 확정짓도록 하겠다. 항모들에 연락하도록.”

“알겠습니다.”

*    *    *

시칠리아 섬.

독일 제 10 항공군단 기지.

“초계기들의 연락이 모두 두절되었습니다.”

“그런가 마지막 정기 통신 위치는 ”

“이곳입니다.”

“흐음….”

참모가 짚은 곳을 바라보던 사령관 게이슬러 장군은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잔뜩 찌푸린 표정을 지으며 참모를 돌아봤다.

“양키들의 함재기에 당한 것이 확실하지 ”

“초계에 나갔던 6기 가운데 ‘녹색5호(Grun5)가 격추되기 전 마지막 통신이 ’미확인 기종‘이라고 했습니다. 경험이 많은 초계기 파일럿들이 못 알아봤다면 양키들의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겠지. 그렇다면 문제는 이거다. 양키들의 함재기들과 우리 초계기 6기가 다 우연히 조우한 것이냐 아니면, 확실한 레이더 관제를 받은 양키들의 함재기들이 노리고 온 것이냐 귀관들의 의견은 ”

“6기 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확률이 너무 낮습니다.”

“하지만, 튀니스에서 보낸 전문에는 함대의 이동속도가 시속 10노트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기반으로 추정한 위치와, 유대인들이 보내온 영국과 미국의 레이더 성능을 감안해 탐지범위를 설정한다면 초계기들이 격추된 위치는 범위 밖입니다.”

“그것도 그렇군.”

참모 가운데 하나가 레이더의 한계를 언급하자 게이슬러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과 영국의 방첩기관들이 잡아내기 전까지 두 나라에 있던 유대인들은 상당량의 군사정보를 독일에게 전달했었다.

그 가운데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레이더에 관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보낸 정보에는 미국이 해군 함선에 장착을 시작한 CXAM 레이더의 경우 대공 탐지로는 80km, 수상 탐지는 23km의 탐지범위를 가지고 있다고 되어 있었다.

“초계기 6기가 전부 격추가 되었다는 사실 1가지는 확실한데, 문제는 원인이로군.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두 가지인데, 둘 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말이 안 되니 말이야.”

“…….”

게이슬러 장군의 지적에 대답이 궁해진 참모들은 입을 다물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다들 머리가 아프게 고민을 하는 가운데 참모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양키들이 ‘추정’을 한 것이 아닐까요 ”

“추정 ”

“예. 양키들도 지중해의 상황을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거기에 더해 알렉산드리아로 가기 위해서는 판텔레리아와 여기 시칠리아, 그리고 몰타로 이뤄진 삼각지대를 지나야 할 것은 확실하게 주지하고 있을 것이고 말입니다. 최소한의 손해로 이곳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어디에서 뭐가 올지 미리 알아야 합니다. 제가 만약 양키들의 지휘관이라면….”

“정찰기나 전투기들이 올지도 모를 방향을 추정해 함재기들을 가능한 한 많이 띄워 낚시를 하겠지. 항공 초계의 가장 기본적인 전술대로 말이야. 맞나 ”

자신의 말을 끊으며 튀어나온 게이슬러 장군의 말에 참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흐음… 그렇다면 우리의 불운과 양키들의 행운이 겹쳤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건가 ”

“현재로서는 그것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성능이 강화된 레이더가 장착되었을 가능성은 ”

“유대인들의 정보에 따르면 함정에 장착 가능할 정도로 소형화된 고출력 레이더는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갑자기 끼어들은 일본 식민지 반군의 함선이 장착하고 있을 가능성은 ”

“스파이와 중립국의 신문을 통해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구축함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방금 전 말씀드렸다시피….”

“아직 함선에 장착할 정도로 소형화된 고출력 레이더는 없지! 젠장!”

가슴이 답답해진 게이슬러 장군은 욕설을 내뱉었다. 머리는 참모들의 설명 이외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가슴은 무엇인가 불안했다.

답답한 가슴을 다스리기 위해 연거푸 물을 들이켠 게이슬러 장군은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내일 일출 시각은 몇시지 ”

“오전 7시입니다. 겨울이라 좀 늦습니다.”

“내일 일출 1시간 전에 정찰기들을 내보낸다. 일출 무렵이면 양키들의 함대는 어디 쯤 있을 것 같나 ”

“이곳입니다.”

“쯧! 아슬아슬하군.”

참모가 짚은 곳을 보며 계산을 해보던 게이슬러 장군은 혀를 찼다.

참모가 짚은 예상 위치는 공격의 중심인 HE-111과 JU-88에게는 충분하고도 남는 거리였다.

하지만 호위를 맡을 전투기들, 특히나 BF-109는 증가연료탱크를 달고도 공중전이 가능한 시간은 겨우 10분 정도만이 가능했다.

“최소 1시간, 여유 있게 하려면 2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인가 ”

게이슬러 장군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먼저 칠 것이냐, 받아칠 것이냐의 문제로군….”

적의 함대를 먼저 공격할 경우, 이쪽은 연료부족의 문제와 더불어 기다리고 있을 것이 확실한 적의 전투기들과 대공포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손실을 각오하고 양키들의 함대에 치명타를 가한다면 북아프리카 전선의 승세를 굳힐 수 있다.

만약 적의 지휘관이 적극적인 전술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이곳 시칠리아를 공격하러 올 것이 확실했다.

판텔레리아와 이곳에 설치한 레이더를 이용한다면 여유를 가지고 요격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양키들의 항공세력에 강한 손해를 입히게 된다면 북아프리카와 지중해의 제공권은 확실하게 지킬 수 있게 된다.

제해권의 문제는 후속할 보급선단을 잡아 저들을 앉은뱅이로 만들어버리면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었다.

“양키들이라면 반드시 먼저 친다!”

결심을 한 게이슬러 장군은 참모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일 양키들은 분명히 몰려올 것이다! 정찰기를 이륙시키고 30분 후, 전투기들을 띄워라! 하늘에서 양키들을 기다린다!”

“야볼!(Jawo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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