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75화 (75/464)

# 75

75화 지중해의 女帝(Empress of the Mediterranean) (11)

베를린의 총통 집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되니츠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유서를 쓰고 왔어야 했나 사형대에 올라가는 것 보다는 그냥 자살을 하는 것이 가족들에게 더 나았을까 ’

등등 온갖 고민을 하며 히틀러의 집무실 앞에 도착하자, 대기하고 있던 친위대 장교가 안으로 들어가 되니츠의 도착을 알렸다.

“들어오시랍니다.”

“알겠네.”

측은함이 섞인 친위대 장교의 시선을 받으며 집무실로 들어간 되니츠는 히틀러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되니츠를 바라보던 히틀러는 가벼운 손짓으로 답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이 앞으로 오도록.”

“예. 총통각하.”

자신의 책상 앞으로 되니츠를 부른 히틀러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되니츠를 바라봤다.

“이번에 크게 당했다고 들었다.”

“죄송합니다. 총통각하.”

“괜찮아. 괜찮아. 자네와 자네의 부하들이 어떤 이들인지 잘 알고 있어. 이번 패배는 자네들의 무능력 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총통 각하.”

“그래… 아직 정확한 보고를 받지는 못했지만, 잠수함 함대 총사령관으로서 이번 패배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의외로 호의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히틀러의 말에 되니츠는 오히려 경계심이 강화되었다. 잠시 생각을 하던 되니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미국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너무 추상적이지 않은가 나는 그저 핑계라고밖에 생각이 안 드는군.”

“그렇지가 않습니다. 총통 각하. 이번 작전에 참가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U-보트 가운데 1척이 마지막으로 보낸 통신에 따르면 미국이 매우 뛰어난 성능의 음탐장비를 개발한 것 같습니다.”

되니츠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히틀러의 표정과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개발한 것 같다 ’ 단순한 추정 아닌가 계속해서 핑계만 대는 것인가 ”

“핑계가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번처럼 맥없이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각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저의 U-보트들은 절대 무능하거나 멍청하지 않습니다! 이번 패배가 있기 전까지 U-보트들이 쌓은 실적들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흐음… 그렇기는 하지….”

되니츠의 필사적인 항변에 히틀러는 한발 뒤로 물러섰다.

의자의 몸을 기댄 채 되니츠의 얼굴을 바라보던 히틀러는 의자에서 일어나 벽에 걸어놓은 대형 세계지도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계지도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히틀러는 등 뒤에 선 되니츠를 불렀다.

“되니츠 사령관.”

“예. 총통각하.”

“어쨌거나 이번에 잃은 전력은 매우 큰 손실이야. 그건 알고 있지 ”

“알고 있습니다, 총통각하.”

“이후 대책은 ”

“우선은 훈련 중인 U- 보트들 가운데서 우수한 성적을 보이는 함들을 조기에 투입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작전에 동원 가능한 U-보트의 수는 적어도 50척 수준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수송선단 차단을 통해 영국을 말려 죽이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두겠습니다.”

“영국 해군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을 텐데 ”

“소모전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물론, 소모가 필요 이상으로 커지기 전에 신형 U-보트들을 실전에 투입할 것입니다.”

‘신형 U-보트’가 언급되자 히틀러는 몸을 돌려 되니츠를 바라봤다.

“신형 U-보트 ”

“예. 지금까지의 전훈을 바탕으로 새롭게 설계를 한 U-보트21(Typ 21 U-Boot)형이 있습니다. 지금 2척이 진수돼서 성능시험 중에 있습니다.”

“성능은 ”

“7형보다 우수합니다.”

“그렇군.”

짧게 대답한 히틀러는 다시금 세계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설명 잘 들었네. 앞으로 또 다시 자네에게 실망할 일이 없었으면 하는군. 돌아가 보도록.”

“명심하겠습니다. 총통각하.”

히틀러의 축객령에 되니츠는 경례를 하고는 히틀러의 집무실을 나갔다. 세계지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히틀러는 책상으로 돌아가 비서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총통각하 ”

“슈페어를 부르도록.”

“알겠습니다, 총통각하.”

*    *    *

슈페어를 호출한 히틀러는 되니츠가 했던 말을 전하며 질문을 던졌다.

“…해서, 되니츠는 미국이 장비했을지도 모르는 신형 음탐장비를 이유로 들었는데 말이지. Herr. 슈페어. 미국이 과연 그렇게 뛰어난 장비를 만들 수준이 되는가 우리 위대한 독일제국보다 더욱 뛰어난 장비를 만들 수 있다는 건가 ”

히틀러의 물음에 슈페어는 마음속으로 속으로 되니츠를 향한 욕설을 내뱉었다.

‘되니츠! 이 망할 작자! 이런 폭탄을 던지고 도망가다니!’

한순간의 실수로 히틀러를 폭발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슈페어는 조심스럽게 단어들을 선택해 대답했다.

“총통각하께서 다스리시는 이 제3제국의 기술력은 세계제일이지만, 몇몇 부분은 영국이나 미국이 따라잡은 부분이 있습니다.”

“가능하다는 소리인가 ”

“예, 총통각하.”

“흐음… 그렇다면 되니츠를 용서해줘야겠군.”

‘되니츠 숙청’이란 카드를 포기한 히틀러는 슈페어에게 명령을 내렸다.

“되니츠가 ‘신형 U-보트’가 필요하다고 나에게 말했다. 되니츠를 만나보도록.”

“알겠습니다. 총통각하.”

슈페어를 내보낸 히틀러는 이번에는 루푸트바페의 사령관 밀히 원수를 불렀다.

“미국 함대가 지중해로 들어갔다. 루프트바페(Luftwaffe, 독일공군)를 믿어도 되겠나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와 독일제국 국민들이 제일 믿고 열광하는 이들이 루프트바페라는 것을 잊지 말도록.”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 말 믿어보도록 하지. 가 보도록.”

히틀러의 말에 밀히는 식은땀을 흘렸다. 지난번 숙청 이후, 히틀러는 확실히 변해 있었다.

거기에 더해 히틀러가 가장 믿었던 주치의였던 테오도어 모렐이 갈려나가고 난 다음부터 히틀러는 슈페어를 제외한, 아니 슈페어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절대적인 신뢰를 주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히틀러의 ‘믿어보도록 하지.’라는 말은 조건부 사형 선고와 같은 것이었다.

“아, 잠깐!”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히틀러는 집무실을 나가려던 밀히를 붙잡아 세웠다.

“터빈엔진을 장착한 폭격기와 전투기의 시제기들은 아직 안 나왔나 ”

“조만간 나온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밀히의 대답에 히틀러는 달력을 보고는 신경질적으로 혀를 찼다.

“쯧! 벌써 12월에 들어갔는데 무엇을 하는 것들인가!”

“죄송합니다! 더 채근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네는 지중해나 신경 쓰도록 해! 내가 알아서 하지! 가서 일 봐!”

“야볼!(Jawohl!)”

밀히를 내보낸 히틀러는 비서를 불러 사나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지금 즉시 항공기 제조사 사장들을 부르도록!”

“알겠습니다, 총통각하!”

*    *    *

한편, 빠른 걸음으로 총통의 집무실을 빠져나와 자신의 차에 오른 밀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총통과 대면하는 일은 힘든 일이야.”

밀히의 푸념에 앞자리에 앉아있던 부관이 질문을 던졌다.

“총통께서 뭐라 하셨습니까 ”

“되니츠가 지중해 입구에서 심하게 당해서 그런지 심기가 불편하시더군. 덕분에 항공기 회사 사장들만 불쌍하게 되었어.”

“사장들 말입니까 ”

“신예 터빈엔진 폭격기와 전투기들. 아직 시제기조차도 안 나왔지 않나.”

“아아….”

부관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동안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밀히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기에 서두르라니까…. 불쌍한 양반들….”

*    *    *

베를린이 난리가 나는 동안, 지브롤터도 조용하지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로 지원을 나갈 영국의 함선들이 출항 전 마무리 작업을 하느라 바쁜 동안, 사령부는 사령부대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령부 인원들이 바쁘게 움직인 이유는 ‘정보 획득’이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얻어야 할 대상은 곽재우와 강감찬이었다.

“대서양의 ‘늑대들의 사냥터’에서 지브롤터까지 오면서 38척. 그 전 전과까지 합치면 39척을 격침시켰고, 피해는 전무. 우리 영국함대가 나섰다면 가능한 일인가 ”

콘월 제독의 물음에 회의실에 모인 참모들과 함장들은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리에 있는 참모들과 함장들의 거의 대부분이 북대서양에서, 북해에서 U-보트들을 상대로 사투를 벌인 경험자들이었다.

그들의 경험에 비춰본다면 적어도 구축함의 절반은 상실하고, 주요 전함과 항모들에도 어뢰 구멍 하나쯤은 뚫릴 각오를 하고 덤벼야 그 정도의 전과를 올릴 수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예상과 달리 양키들의 함대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배들만 있다는 것이었다.

양키들이 구조해서 건넨 독일군 포로들을 본격적으로 심문하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겠지만, 살아남은 4명의 함장들을 상대로 한 1차 조사에 따르면 그들도 어떻게 당했는지 영문을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하나 더 첨부하자면 홀 제독이 타고 온 ‘구축함이라고 불리는, 아니 그렇게 우기는’ 함선들이 문제였다.

“자네들이 보기에 저 배들이 구축함이 맞나 ”

콘웰 제독의 물음에 함장들과 참모들의 고개들이 다시 한 번 좌우로 흔들렸다.

“모니터함 쪽은 적어도 1만 톤, 그보다 작은 쪽은 적어도 5천 톤은 되어 보입니다.”

“구축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5인치 구경으로 예상되는 주포 하나뿐입니다. 아니죠. 주포의 수를 생각한다면 경비정 수준입니다.”

“2천 톤짜리 구축함에도 5인치 주포가 3문 이상은 올라가는 세상입니다. 저 덩치에 5인치 주포 단 1문 모순투성이입니다.”

“문제는 끝까지 구축함이라고 우기고 있다는 거지.”

콘웰 제독과 함장들의 시각에서 보면, 정확히 말하자면 전통적인 함포주의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곽재우와 강감찬은 그야말로 모순덩어리였다.

자고로 구축함이라면 1,500톤에서 2,000톤 언저리의 덩치의 군함을 말했다.

무장으로는 5인치 정도의 구경을 가진 주포를 3문에서 4문을 장비하고, 다수의 어뢰발사관을 탑재한 ‘덩치는 작지만 빠른 사냥개’와 같은 함정이었다.

하지만 홀 제독이 타고 온, ‘구축함이라 불러 달라는’ 저 배들은 지금까지의 통념을 벗어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선내를 구경하고 싶다는 콘웰 제독의 요청에 홀 제독은 자국의 배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을 했다.

그 옆에 서있던 함장이라는 작자 역시 ‘자국 정부’의 허가가 없으면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을 했고.

결국, 콘웰 제독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별 것이 없었다.

“우선 저 ‘구축함들’에 대한 사진을 촬영해서 본국에 보내도록. 본국의 분석관들이라면 저 배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 그리고, 미국에 있는 대사관을 통해서 저 배를 구경할 수 있도록 ‘정중히’ 요청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전투기들의 IFF 데이터는 어떻게 할까요 ”

“항모는 모두 함재기 보급과 수리를 위해 본국으로 갔으니, 북아프리카 지역에 배치된 RAF(Royal Air Force 영국왕립공군)의 전투기들은 알렉산드리아에 가서 받으라고 해.”

몽니를 부리는 콘웰 제독이었다.

*    *    *

콘웰 제독이 그러거나 말거나, 홀 제독과 참모들, 장 대령과 조 대령, 양 중령과 항모들의 항공전대장들은 테이블 모니터 주위에 둘러서서 작전을 의논했다.

“지브롤터를 출발해 알렉산드리아를 가게 되면, 이 삼각지대를 지나가게 됩니다.”

장 대령이 콘솔을 조작하자, 테이블 모니터에 떠오른 해도에는 시칠리아와 몰타, 판테렐리아를 꼭짓점으로 하는 삼각형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함대의 예상 항로는 그 삼각형을 관통하고 있었다.

“깔끔하게 삼각형을 가로지르는군.”

“그렇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준비해서 ‘멋진 인사(Nice Greeting)’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의견을 내미는 장 대령이나 테이블 주위를 둘러싼 이들 모두 미소를 지었다. 그들의 미소에는 잔혹한 폭력성이 숨김없이 나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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