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70화 지중해의 女帝(Empress of the Mediterranean) (6)
“드디어 몰려온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군,”
장 대령과 함께 대형 모니터를 살피던 홀 제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곽재우와 강감찬이 탑재한 수동형 소나가 탐지한 이상음문의 수가 대폭 증가하고 있었다.
거리는 짧게는 250km. 멀게는 350km 떨어진 곳에서 5에서 10km의 거리를 두고 다가오고 있었다.
“음문의 수는 ”
“지금까지 12,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음탐관의 보고에 장 대령은 홀 제독을 돌아봤다.
“대서양에 깔린 U-보트가 모두 몇 척이나 됩니까 ”
장 대령의 물음에 홀 제독은 참모를 돌아봤다. 서류를 뒤적거리던 참모는 종이 한 장을 뽑아들고 대답했다.
“스파이의 보고에 의하면 최대 100척, 평균 70척 정도가 공세에 나선다고 되어 있습니다.”
참모의 대답에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하던 홀 제독은 참모에게 질문을 던졌다.
“70척 잡고, 그 70척 가운데 몇 척이나 우리한테 올 것 같나 ”
홀 제독의 물음에 참모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질문을 한 홀 제독 역시 난감한 얼굴이었다.
“차라리 내일의 운세를 물어보는 것 이 더 나았으려나… 어쨌거나! 그럼 계산을 해보도록 하지. 확률은 반반이지만 말일세.”
결론을 내린 홀 제독과 참모들, 그리고 장 대령은 하나씩 경우의 수를 따져봤다. 참모들은 어느새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곽재우의 전술용 테이블 모니터를 조작했다.
“호송선단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스케줄에 따르면 대서양에는 지금 8개의 수송선단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미끼인 겁니까 ”
장 대령의 물음에 홀 제독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쯤은….”
홀 제독의 대답에 장 대령은 이를 악물었다. 홀 제독과 참모들 역시 편한 얼굴은 아니었다.
“흐음… 그럼 그쪽에 적어도 20척은 달라붙을 것이라고 예상해야 하나 ”
“히틀러나 크릭스마리네(Kriegsmarine)의 U-보트 사령관인 되니츠가 어느 쪽에 더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당장 영국의 숨통을 틔워줄 보급물자냐, 아니면 지중해로 들어갈 우리냐….”
“흐음….”
콧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기던 홀 제독은 결론을 내렸다.
“나 같으면 영국부터 말려죽일 거야. 영국 본토가 고사(枯死)당하면 지중해는 그냥 넘어올 테니까…. 그쪽에 적어도 20척은 배정될 것이 확실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제 시간에 맞출 수 없는 U-보트들도 있을 것입니다.”
“지중해에 U-보트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합니다. 지브롤터를 통과한 다음도 생각해야 하지만, 우선은 지브롤터에 들어가기 전까지 우리가 상대해야 할 U-보트의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난상토론 끝에 나온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 20척에서 35척. 최대 45척까지 예상 가능.
“후우~.”
예상치를 받아든 장 대령은 한숨을 내쉬고는 벽에 걸린 대형 모니터를 바라봤다. 표적으로 지정된 음문의 수가 15개로 늘어나 있었다.
“저기서 적어도 다섯 척, 아니면 30척이 더 늘어난다는 것인가 ”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모니터를 보던 장 대령은 자신의 타블렛을 조작했다.
“홍상어와 청상어의 재고가….”
KVLS에 탑재된 홍상어가 16발. 양현에 있는 3연장 발사기까지 포함해서 청상어는 총 20발.
출항 전, 조 대령과 나눈 대화에 따르면 강감찬의 탑재량은 홍상어가 4발 더 많았고, 청상어의 재고는 동일했다.
“합쳐서 홍상어 36발, 청상어 40발….”
장 대령이 현재 상황에서 한국 해군의 문제를 다시 따져봤다.
1. 홍상어와 청상어는 보급이 불가능하다.
2. 독일과 일본을 합쳐 잠수함의 수는 백 단위를 가뿐하게 뛰어넘는다.
3. 전쟁이 끝나도 미국, 또는 한국 정부가 괜찮은 성능의 애즈락(ASROC, 대잠로켓)을 만들 때까지 적어도 20년 이상을 버텨야 한다.
결국, 머리가 아파진 장 대령은 함장실로 들어와 강감찬의 조 대령과 통신을 연결했다. 조 대령의 이야기를 듣던 장 대령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결국은 미국 구축함들을 열나 굴려야겠습니다.
“그것도 문제야. 폭뢰 때문에 말이지.”
-폭뢰… 그렇군요…. 쓰….
장 대령은 수화기 너머 조 대령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짐작이 갔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으니까….
폭뢰는 처음 개발 당시부터 2차 대전인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상당기간은 대잠무기의 주역으로 자리할 존재였다.
하지만, 폭뢰에도 여러 단점이 있었고, 그 중 최대 단점은 수중에서 폭뢰가 터지면 폭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수함이건 구축함이건 모두 귀머거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2차 대전과 비교하자면 무서울 정도로 성능이 강화된 21세기의 소나시스템이지만, 폭음의 잔상을 지우고 추적을 재개하기까지 적어도 몇 분의 시간이 걸렸고, 이는 치명적인 위험을 가져올 수 있었다.
-여러모로 참 난감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가진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항공모함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 역사에도 나오지만 결국은 구축함들에게 대서양의 U-보트들이 쓸려나갔고 말입니다. 상견례 때 미국 구축함들의 함장들 보니 다들 인상이 터프한 것이 좋더군요.
“그걸 믿어야겠지. 그럼, 수고하게. 살아남아 보자고.”
-선배님도 조심하십시오. 건승을 빕니다.
조 대령과의 통신을 끝낸 장 대령은 함장실을 나와 SMC로 향했다.
“구축함의 수는 충분하지 않지만, 항공기도 있으니 이제 사냥을 시작해 볼까 ”
* * *
미국의 지중해 함대로부터 북서쪽으로 280km 떨어진 지점. 한 적의 U-보트가 전속으로 수상질주를 하고 있었다. 커닝타워 바로 밑, 사령실에서 함장은 상황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더 경보는 ”
“아직 경보기는 조용합니다.”
“다행이군."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을 한 함장은 사다리 있는 곳으로 가 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견시! 상공을 잘 살펴라! 함대에 항공모함이 편성되어 있다는 정보가 있다!”
“야볼!(Jawohl!)"
커닝타워에 자리한 견시에게 주의를 준 함장은 항해장을 돌아봤다.
“지금 속도는 ”
“17노트입니다.”
대답을 들은 함장은 바로 기관실로 가 기관장을 찾았다.
“속도를 더 못 올리나 ”
“19노트까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엔진에 무리가 갑니다.”
“상관없어. 양키들의 함대만 두들기고 나면 바로 프랑스로 돌아갈 거다. 거기서 느긋하게 손보자고.”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관장의 대답을 들은 함장은 가볍게 어깨를 두들기고 사령실로 돌아왔다. 사령실로 돌아온 함장은 해도를 살피던 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충분하겠지 ”
“충분합니다.”
“꼭 잡아야 해. 눈앞에 있던 수송선단을 포기하고 온 거야.”
“꼭 잡을 겁니다.”
답을 하는 부장을 포함한 사령실의 승무원들 모두의 눈에는 결의가 가득했다.
U-407이 잠수함 사령부의 통신문을 접수했을 때, U-407은 사흘 넘게 추적하던 미국의 수송선단을 거의 따라잡기 일보직전이었다.
“양키 함대라….”
해도가 놓인 테이블 앞에 선 U-407의 함장 하이만 소령은 덥수룩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을 했다.
그런 함장의 마음을 알았는지 해도를 놓고 위치를 계산하던 부장과 항해장이 함장을 바라봤다.
“지금 우리 위치라면 사령부가 명령한 시간까지 도착할 수 있습니다.”
“저 수송선단은 이미 잠수함 사령부로 통신을 했으니 다른 U-보트들이 달려올 겁니다.”
부장과 항해장의 발언에 하이만 소령은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입을 열었다.
“수송선단에 배치된 구축함의 수는 4척밖에 안 된다. 하지만, 양키 함대라면 적어도 두 자릿수의 구축함이 깔려있을 거다. 거기에 더해 항공모함도 있고…. 자, 신사 여러분(Nun, meine Herren.). 선택의 시간이다. 손쉽지만 무엇인가 아쉬운 목표와 어렵고 위험하지만 잡으면 큰 성공인 목표. 어느 것이 좋겠나 ”
“양키 함대를 잡아야 합니다.”
“동감입니다.”
부장과 항해장의 말에 하이만 소령은 씨익 웃으며 자세를 바로 했다.
“함수를 돌린다! 목표는 지브롤터! 최고속도로 달린다!”
“야볼!(Jawoul!)”
* * *
“함장님! 좌현에 U-보트입니다!”
“응 ”
견시의 외침을 들은 하이만 소령은 바로 커닝타워로 올라갔다.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맡으며 하이만 소령은 쌍안경으로 자신의 배 왼쪽에서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전속질주를 하는 U-보트를 살폈다.
“U-317이로군!”
동료를 확인한 하이만 소령은 팔을 위로 쭉 뻗어 좌우로 흔들었다. U-317의 함교에서도 그와 호응에 팔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어느새 올라와 옆에 선 부장의 어깨를 흔들며 하이만 소령은 기세 좋게 소리를 질렀다.
“늑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멋진 사냥이 될 거야!”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자신들의 기세에 취했던 탓일까, U-317, 407 모두 순간적으로 주의가 흐트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죽음이 찾아왔다.
“비상!(Alarm!) 돈틀레스다! 비상!(Alarm!)”
견시의 말에 하이만 소령은 사령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대공사격! 우현 전타!”
탕탕탕탕!
커닝타워 뒤쪽에 만들어진 포좌에서 20mm 단장 기관포가 맹렬히 불을 뿜음과 동시에 U-407은 왼쪽으로 선체를 기울이며 오른쪽으로 급선회를 하기 시작했다.
U-407의 회피기동과 동시에 U-317 역시 왼쪽으로 선수를 돌리며 회피 기동에 들어갔다.
* * *
곽재우의 명령을 받고 날아온 인피트레드 공격대의 대장인 호프만 소령은 공격대의 조종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놈들 알아채는 것이 늦었다! 놓치지 마라! 숨기 전에 잡아버려!”
명령과 동시에 호프만 소령은 자신의 조종간과 타를 조작했다. 가볍게 롤을 한 그의 돈틀레스는 표적으로 삼은 U-407을 향해 급강하를 시작했다.
“크윽!”
인피트레드의 돈틀레스 공격대 대장인 호프만 소령은 조정석 등받이로 거세게 밀어붙이는 G를 견디며 이를 악물었다.
U-보트의 함교 후미에 달린 20mm 기관포가 자신을 향해 불을 뿜자, 호프만 소령 역시 기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퉁!
주익에 달린 2정의 50구경 M2 기관총이 불을 뿜는 가운데 호프만 소령은 조준 사이트를 노려봤다.
“지금!”
사이트 한 가운데에 붉게 빛나는 원 안으로 U-보트의 함교가 꽉 차게 들어오자 호프만 소령은 폭탄 투하 레버를 당기고는 바로 조종간을 위로 당겼다.
“크아아악!”
양손으로 조종간을 움켜쥔 호프만 소령은 조종간을 뱃속으로 밀어 넣을 각오로 당겼다. 그의 노력과 터프한 돈틀레스의 기체 강성 덕에 다행히 기체는 다시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공격기들에게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안전 고도로 올라간 호프만 소령은 상황을 살폈다.
“잡았나 ”
“지근탄이었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대공사수 닉 상병의 대답에 호프만 소령은 기체를 기울여 바다를 살폈다. 그가 목표로 했던 U-보트가 점점 옆으로 기울고 있었다.
* * *
“균열을 막을 수 없습니다!”
“크윽!”
총탄이 뚫고 지나가 피가 흐르는 어깨를 움켜쥔 하이만 소령은 비통한 신음을 내뱉었다.
그 찰나의 부주의가 자신의 배에 죽음을 부르고 말았다.
가장 큰 피해를 준 것은 가장 처음 공격한 돈틀리스였다.
꽤나 능숙한 파일럿이 조종한 기체였는지, 20mm 포탄의 소나기를 겁내지 않고 바로 내리꽂히며 기총사격을 가함과 동시에 폭탄을 투하했다.
그 기총사격에 20mm 기관포를 담당하던 병사들이 죽어나갔고, 자신의 어깨와 커닝타워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렸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 기체가 투하한 폭탄이었다.
250kg짜리 폭탄의 직격은 피했지만, 함체의 바로 옆에서 터진 폭발의 압력에 함체에 균열이 가버렸다.
그 충격에 승무원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틈을 타 두 번의 추가적인 폭격이 이뤄졌다.
그리고 그 결과, U-407은 포식자의 위치에서 죽어가는 사냥감의 처지로 전락했다. 하이만 소령은 비통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전원 탈출한다! 애니그마와 암호책을 파기하라!”
“전원 탈출!”
“애니그마와 암호기를 파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