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66화 (66/464)

# 66

66화 지중해의 女帝(Empress of the Mediterranean) (2)

LA 항구를 벗어난 곽재우 함과 강감찬 함은 파나마 운하를 향해 남진을 했다.

곽재우의 SMC(Ship's Mission Center)에 딸린 회의실에서는 곽재우 함의 함장 장명석 대령과 강감찬 함 함장 조성호 함장, 그리고 홀 제독과 그의 수석 참모가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의 일정을 논의하고 있었다.

“파나마 운하를 지나 뉴욕에 가는 동안 모의 전투 훈련을 했으면 합니다.”

“모의전투라고 하면 ”

“미국은 육상과 수상 전력을 동원해서 곽재우와 강감찬을 추적하고 우리는 그것을 최대한 회피하며 뉴욕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제 시간에 뉴욕에 도착 못할 수도 있소.”

“아니요.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가능하다 ”

장 대령의 대답에 홀 제독과 참모들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니미츠 제독과 킹 제독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고, 관련 보고서를 다 읽었지만 미 해군을 너무 우습게 본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홀 제독의 표정을 읽었는지 장 대령이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 시기 전자전에 대한 데이터가 너무 부실합니다. 앞으로 싸워야 할 상대가 독일과 이탈리아인데, 이탈리아는 그렇다 쳐도 독일의 기술수준이 상당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시간대로 온 이후 교전상대는 일본이 유일한데 일본의 전자전 능력은 잘해야 1920년대 수준입니다. 우리로서는 데이터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흐음….”

장 대령의 설명에 홀 제독의 표정이 조금은 풀어졌지만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콧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러자 홀 제독의 뒤에서 장 대령의 설명을 듣고 있던 수석 참모가 홀 제독에게 조언을 했다.

“우리에게도 이익일 수 있습니다.”

“이유는 ”

“나중에 따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받아들이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됩니다.”

참모의 말을 들은 홀 제독은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기와 저울을 돌려댔다.

“좋소. 해군본부에 연락을 취하도록 하지. 파나마 운하에 도착하면 답을 알 수 있을 것이오.”

“감사합니다, 제독님.”

*    *    *

회의를 끝낸 홀 제독 일행이 회의실을 빠져나가자, 항공관제의 임무를 띠고 강감찬으로 옮겨 온 양일권 공군 중령과 강감찬의 함장 조성호 대령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장 대령을 바라봤다.

“왜 ”

“선배, 좀 심했던 거 아닙니까 ”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함장님.”

“하지만 내 배와 부하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꼭 필요해. 여기서 한방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면 저치들 우리를 그냥 덩치 큰 구축함으로 알고 전함 몸빵이나 시킬 거다. 제대로 한방 먹여주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전함이 우리 몸빵을 해줄 거다. 전쟁이 끝나도 한국 해군의 규모는 우리 9전단 이상을 못 벗어날 거야. 잘 해 봐야 기어링 급 구축함인 몇 척 추가되겠지. 따라서 생존이 우리의 제 1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살아남는 것부터 우선 생각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제 배로 돌아가겠습니다.”

“수고해.”

조 대령을 배웅한 장 대령은 SMC의 요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본 잠수함에 신경을 쓰도록. 우리가 알던 역사에서도 파나마 운하까지 왔던 놈들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배에 구멍 날 일들은 만들지 마라.”

“알겠습니다, 함장님!”

부하들의 대답을 들으며 장 대령은 함장 지정석에 앉아 대형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    *    *

파나마 운하에 도착한 홀 제독은 바로 워싱턴에서 날아온 명령서를 받을 수 있었다. 명령서의 내용을 확인한 홀 제독은 장 대령을 찾았다.

“워싱턴에서 온 명령서요. 장 대령의 제안을 수락했소.”

“감사합니다.”

워싱턴에서 보낸 명령서에 따르면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 곽재우와 강감찬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해 대서양에 들어서는 즉시 미국의 수색이 시작된다.

- 미국은 미 해군의 대서양함대의 가용전력, 해안경비대, 육군의 가용전력을 전부 동원한다.

- 모의 전투의 승패 결정은 다음과 같다.

1. 미국의 감시를 뿌리치고 곽재우와 강감찬이 뉴욕에 도착하면 미국의 패배.

2. 미국의 수색에 포착되어 항로를 차단당하거나 예정일자보다 하루 이상 늦게 뉴욕에 도착하면 곽재우와 강감찬의 패배.

- 곽재우에 승함한 홀 제독과 참모 일행은 그 어떤 조언도 하지 않는다.

“꽤 까다로운 조건인데 할 수 있겠소 ”

“뭐, 이 정도면 꽤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장 대령의 담담한 표정을 본 홀 제독이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훗! 대단한 패기로군! 그럼 나와 내 부하들은 구경이나 하겠소! 재미있는 볼거리가 되었으면 하오.”

“지금까지 보신 것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볼거리가 될 것입니다. 아! 팝콘을 미리 준비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하하! 팝콘이라고!”

장 대령의 패기에 홀 제독은 오히려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곽재우와 강감찬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면서 미해군 역사에 길이 남을 ‘사상 최대의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    *    *

파나마 운하의 대서양쪽 출구에서 10해리 떨어진 수역.

“잡았나 ”

“엔진음 잡았습니다. 방향은 예상대로 이쪽으로 옵니다!”

수중 100m에 자리 잡은 가토급 잠수함 SS-235 Shad(청어)의 음탐실. 청음병의 보고를 받은 함장 에드거 J. 맥클레거 3세 소령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이대로 녀석들 코앞에서 부상한다!”

한방 먹이겠다고 흥분한 함장과 부하들과 달리 부장은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건방을 떨었으면 그 값을 치러야지! 그리고 잠수함이 원래 그런 건데 뭐가 문제야 ”

함장의 말에 부장은 입을 다물었다. 부장의 입을 막은 에드거 함장은 음탐병에게 고개를 돌렸다.

“놈들의 진행방향은 ”

“이상 없습니다!”

“좋아! 미속 전진! 놈들의 5해리 앞까지 이동한다! 그 거리면 장님이 아닌 이상 못 봤다는 소리는 하지 못할 거다!”

“미속 전진!”

*    *    *

같은 시간, 곽재우 함의 SMC.

“2시 방향 잠수함 소음 포착!”

“거리는 10해리입니다!”

“유보트인가 ”

“음문파형으로 보아 가토급입니다!”

음탐실의 보고를 들은 장 대령은 턱을 쓰다듬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머물 당시, 그리고 ‘도쿄 핫’을 찍으면서 미국 잠수함의 음문을 데이터로 만들었었다.

잠수함 한 척, 한 척을 다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한 데이터는 아니었지만, 잠수함의 등급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데이터였다.

“벌써 환영인사인가 성질 급한 친구인가 보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장 대령은 음탐장교를 돌아봤다.

“예전에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액티브 소나를 이용해 모르스 부호를 전송할 수 있나 ”

“가능합니다.”

“그럼 통신 보내도록. 내용은 ‘가토. 환영에 감사함.’ 못 알아먹을지 모르니까. 3회 반복하도록.”

음탐장교는 장 대령과 비슷한 장난기가 섞인 얼굴로 복창했다.

“가토. 환영에 감사함. 3회 반복. 알겠습니다.”

*    *    *

핑!핑!

“소나다!”

수중을 울리는 소나 소리에 에드거 함장부터 시작해 Shad의 승조원들이 기겁을 했다.

“당황하지 마라! 계속 소나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 저들은 아직 우리를 찾지 못했다. 당황하지 마라!”

에드거 함장의 말에 승조원들은 침착함을 찾았지만, 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모르스 부호인 것 같습니다.”

“뭐 ”

“... 환영에 감사함 ”

“뭐 ”

그 순간 소나의 발신음이 다시 수중을 울렸다.

“가토. 환영에 감사함 ”

“어 ”

에드거 함장의 첫 반응은 ‘뭐 ’ 였고, 두 번째 반응은 ‘어 ’, 마지막 세 번째 반응은 ‘빌어먹을!’이었다.

“빌어먹을! 부상한다!”

“부상!”

*    *    *

“가토급 잠수함, 부상했습니다!”

함교에 있던 부장의 보고에 장 대령은 웃으며 명령을 내렸다.

“잠수함 함장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리고 항해장은 가토급 잠수함의 발견 위치, 시각 등을 일지에 확실히 기록하고.”

“알겠습니다.”

*    *    *

가토급 잠수함 ‘Shad’에게 멋지게 한방 먹인 것을 시작으로 숨바꼭질은 치열하게 벌어졌다.

정규 패트롤 임무를 하지 않는 모든 함선-해군, 해안경비대를 불문하고-들이 수면을, 잠수함들이 수중에 몸을 숨긴 채 곽재우와 강감찬을 찾아다녔다.

거기에 더해 PBY 카탈리나와 OS2U 킹피셔 수상정찰기가 사방을 날아다녔고, 해안지대에 설치된 레이더들이 수면을 감시했다.

미국 중동부해안의 모처.

“어 상사님!”

레이더 스코프를 살피던 관측병이 뒤에 앉아있던 상사를 불렀다.

“무슨 일이야 ”

“스코프의 반응이 이상합니다.”

“그래 ”

스코프로 다가온 상사는 문제의 스코프를 살폈다. 스코프에 나타나는 전파의 파형이 난장판으로 변해 있었다.

“스코프가 고장 났나 ”

오실로 스코프를 살피던 상사는 옆에 따로 설치된 원형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원형 스크린 역시 오른쪽 아랫부분 전체가 하얗게 변하는 이상증상을 보이고 있었다.

“하여튼 신형이라고 나오는 것들은 믿을 수가 없다니까… 벌써 몇 번째 고장인지…쯧!”

혀를 차며 진공관들의 상태를 살피던 상사는 자리로 돌아가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었다.

“여기 채프먼 레이더 기지입니다. 레이더에 고장이 난 것 같습니다. 원인을 알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상사는 관측병을 돌아봤다.

“수리반을 보내주겠단다. 망원경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살펴 봐.”

상사의 말에 관측병은 한쪽에 놓인 망원경에 눈을 돌렸다. 함정이나 주요 대공기지에 달린 대형 관측경에 비하면 알량한 크기의 군용망원경을 본 관측병이 상사를 돌아봤다.

“이 망원경으로요 ”

“요즘 그 빌어먹을 술래잡기 때문에 윗분들 심사가 꼬였잖냐. 욕먹기 싫으면 그거라도 들고 나가.”

“…알겠습니다.”

*    *    *

“해안 레이더의 탐지거리를 벗어났습니다.”

“ECM 풀어.”

“풀었습니다.”

“수고했다. 후우~.”

한숨을 쉰 장 대령은 테이블 스크린에 띄운 해도를 보며 앞으로의 경로를 확인했다. 장 대령의 맞은편에서 해도를 보던 홀 제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한숨의 의미는 장 대령과 정반대였다.

“앞으로 사흘만 지나면 뉴욕이군.”

“그렇습니다. 제독.”

“이렇게나 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니….”

“구멍은 아닙니다. 저런 벽을 뚫기 위해 발전한 장비들이니까요.”

“그렇기는 해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홀 제독의 불평에 장 대령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뉴욕을 거의 코앞에 둔 곳까지 오는 동안 장 대령은 곽재우의 우월한 전자전 장비만 의지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꼼수를 더 많이 사용했다.

항로 주변에 있는 레이더들을 걸리는 족족 먹통으로 만들었다가는 역으로 위치가 탐지될 수 있기 때문에 레이더 탐지거리를 벗어난 항로를 선택했다.

정찰기가 떴을 경우에도 미리 속도를 줄인 다음, 방해전파로 정찰기의 통신을 마비시켰다. 정찰기가 사라지면 그 즉시, 곽재우와 강감찬은 전속으로 위치를 이탈했다.

그 결과, 정찰기가 귀환하고 나서야 미군은 폭격기와 뇌격기를 출동시켰지만, 그들이 도착한 곳에 곽재우와 강감찬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 대령은 이 술래잡기의 목표가 미군을 골탕 먹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한 번씩의 작전이 끝날 때마다 두툼한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그 보고서에는 1942년 당시 미군의 레이더의 주파수 특성과 기타 미 해군 장비들의 성능, 미국 해군의 반응 속도에 관한 내용들이 차곡차곡 기록되었고, 말미에는 이를 기반으로 유추할 수 있는 영국군과 독일군의 전자전 예상 수준에 대한 의견이 기록되었다.

그리고 사흘 뒤, 곽재우와 강감찬은 약속대로 뉴욕항에 입항했다.

*    *    *

“제독님.”

“무슨 일인가 ”

자신의 책상에서 태평양 전선에 관한 보고서를 읽으며 결재를 하던 니미츠는 부관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니미츠 제독을 부른 부관은 지갑을 꺼내 20달러를 니미츠 제독에게 건넸다.

“방금 전, 킹 제독께서 전화로 제게 명령하셨습니다. 드리면 아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훗! 그런가 ”

니미츠는 미소를 지으며 20달러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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