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59화 (59/464)

# 59

59화 몰타 공방전 (3)

1942년 9월 5일.

몰타와 시칠리아 사이의 인근 해역.

2척의 전함과 10여 척의 구축함들이 2열로 줄을 지어 고속 항행을 하고 있었다.

“현재 상황은 어떠한가 ”

전함 바함(Barham)의 함교에서 제프리 쿡 함장은 잔뜩 굳은 얼굴로 상황을 물었다.

“아직은 아무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을 제리들이 아닌데… 애즈딕으로도 아직 찾은 것이 없나 ”

“아직….”

“구축함의 레이더로는 아직도 별다른 연락이 없나 ”

“독일 공군기들이 허공에 뿌린 알루미늄으로 인한 전파방해가 아직도 심하다고 합니다.”

“후우~.”

대답을 들은 쿡 함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함장으로 있는 바함을 비롯해 이번에 출전한 함선들의 함장들은 모두 출항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상부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 우리도 같은 심정이지만 어쩔 수 없다. 런던에서 내려온 명령이다.

결국,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함대의 절반-고속전함의 경우, 미국에서 수리중인 워스파이트를 제외한다면 2/3-이 몰타 섬 수복작전에 동원되어 알렉산드리아를 빠져나와 적들이 우글거리는 시칠리아를 향한 항해에 나서야 했다.

“후우~. 견시에게 최대한 주의를 하라고 해. 제리의 공군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아니다. 견시를 몇 명 더 올려 보내도록. 레이더 전파방해를 보면 제리들은 반드시 올 거다.”

“알겠습니다.”

“Bloody hell! 레이더가 문제로군!"

대공감시의 강화를 명령한 쿡 함장은 욕설을 내뱉었다.

지금 미국에 있는 전함 워스파이트는 수리 작업과 더불어 레이더의 장착이 진행되고 있었다. 워스파이트가 돌아오면 다음은 밸리언트와 바함 차례였다.

그런데 그 사이를 틈타 독일군의 몰타 침공이 벌어진 것이었고, 이 말은 사람의 눈으로 함대의 하늘을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어젯밤 함대 근처에서 이탈리아군 잠수함의 것으로 보이는 무선 신호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레이더의 전파방해까지.

공습이 올 것은 확실한 반면, 영국함대는 눈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빌어먹을 런던….”

이런 갑갑한 명령을 내린 런던의 누군가를 떠올리며 쿡 함장이 이를 갈 무렵, 전성관을 통해 견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2시 방향! 적기 다수! 공습이다!”

“이런! 공습경보!”

애애애애앵! 애애애애앵!

바함에서 공습경보가 울림과 동시에 다른 함선들에게서도 공급경보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함들의 뒤를 따르던 구축함들이 빠른 속도로 전함들의 주변을 둘러싸는 가운데, 독일 공군의 폭격기 대군이 함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    *    *

쿵! 쿵! 타탕! 타탕! 타타타타타타타탕!

둔중한 대공포의 포성과 폼폼포와 기관포들의 포성이 사방을 가득 메운 가운데 쌍안경으로 하늘을 바라본 쿡 함장은 욕설을 내뱉었다.

“Bloody hell! 슈투카에, 하인켈에, 융커스에… 폭격기란 폭격기는 다 긁어왔군!”

쿡 함장의 말 그대로 독일군은 서부 전선을 비롯해 근방의 사용 가능한 모든 폭격기 세력을 긁어모아 영국 함대 공략에 돌입했다.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지중해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텃밭이 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알렉산드리아에 아직 잔여함대가 남아있고, 지브롤터에도 영국 함대가 주둔해 있으며, 거기에 더해 영국 본토에도 만만치 않은 함대가 남아 있지만 그들이 올 때까지, 아니 무사히 도착을 할 때까지는 지중해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바다가 될 것이었다.

“급강하 폭격! 바로 머리 위!”

“좌현으로 꺾어!”

급강하 폭격이 온다는 소리에 쿡 함장은 전함을 좌현으로 꺾을 것을 명령했다. 전속 기동하는 거함이 급격히 방향을 바꾸며 기울어지자 쿡 함장은 전성관을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견시! 어뢰를 찾아라! 분명히 어뢰가 올 거다!”

쾅!

“우악!”

“아악!”

쿡 함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커다란 충격이 바함을 강타했다. 쿡 함장을 비롯해 함교에 있던 승무원들은 비명과 함께 함교 바닥에 내팽겨지듯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어딘가에 부딪쳤는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일어난 쿡 함장은 전성관을 붙잡았다.

“피격상황을 보고하라!”

-좌현 어뢰 피격! 좌현 선체하부 방수구역이 침수중입니다! 복구반 투입했습니다!

“선체가 기울어집니다!”

“우현 방수구역 주수!”

“우현 방수구역 주수!”

“대공포! 좌현 탄막을 강화하라! 놈들이 노릴 거다!”

- 알겠습니다!

피해를 알리는 전령의 목소리와 쿡 함장과 부장이 명령을 내리는 소리, 그리고 전성관을 통해 들려오는 복창 소리가 함교를 가득 채운 가운데, 급히 달려온 의무병이 쿡 함장의 머리에 붕대를 감았다.

붕대를 다 감은 쿡 함장이 전성관을 붙잡고 외쳤다.

“모두 최선을 다하라! 전투는 이제 시작이고! 우리는 아직 살아있다!”

독일 공군의 공습에 악전고투를 하는 것은 바함뿐만이 아니었다.

HE-111의 급강하 폭격으로 두 발의 폭탄을 얻어맞은 퀸 엘리자베스도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고, 전함을 호위하는 구축함들도 전함들과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미친 듯이 대공포를 쏘아대고 있었다.

*    *    *

함대를 노린 것은 폭격기들만이 아니었다. 폭격기 편대의 엄호를 나온 전투기들은 영국 전투기들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공격에 동참했다.

주무장인 20mm기관포는 전함을 상대로는 이빨도 안 먹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전투기의 파일럿들은 폭격기를 상대하고 있는 전함의 대공포들과 구축함들을 상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투콰콰쾅!

O급 구축함 오웰의 2번 포탑. 독일 공군 FW190의 20mm기관포의 총격에 직격을 당한 승무원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으윽….”

중상을 입은 포반장 이언 중위는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바닥을 기어 한쪽에 매달린 내부 통신용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었다.

“여… 여기는 2번 포탑….피격….”

- 피해상황을 보고하라.

“피…피해… 상황….”

- 2번 포탑! 감도가 좋지 않다! 피해 상황을 보고하라! 2번 포탑!

이언 중위는 채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의 손에서 떨어져 나간 수화기에서는 계속해서 2번 포탑을 부르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잠시 후, 독일군의 Ju88이 투하한 어뢰가 오웰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두 조각이 난 오웰은 곧 지중해의 바다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또 잡았다!”

P급 구축함 아가멤논의 40mm 폼폼포의 2번 포좌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2번 포좌의 포반원들이 미칠 듯이 쏘아댄 대공사격으로 방금까지 3대의 HE111이 불덩어리가 되어 바다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서로서로 어깨를 두들기고 머리카락을 헝클이며 기뻐하는 포반원들의 귀에 포반장 잭슨 중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또 다른 놈들이 오고 있다!”

중위의 말에 포반원들은 정신을 가다듬고는 또 다른 적기를 찾아 포신을 돌렸다. 그런 그들을 보며 잭슨 중위는 격려를 잊지 않았다.

“잊지 마라! 우리가 누구냐! 그리고 이 배가 어떤 배냐! 노르웨이 해협의 그 거친 바다를 뚫고 호송선선단을 지킨 아가멤논이다! 북해가 어떤 곳이더냐! 그곳은 바다도 적이었다. 거기에 제리의 폭격기는 물론이고 유보트까지 설친 곳이었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우리다! 지지마라!”

“우아!”

잭슨 중위의 격려에 포반원들은 함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1분도 지나지 않아 독일군의 어뢰가 아가멤논의 옆구리를 뚫었다.

어뢰의 폭발과 동시에 아가멤논은 굉침했고, 아가멤논의 이름이 쓰인 구명대를 비롯한 몇 개의 부유물만이 그 자리에 아가멤논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    *    *

독일 공군의 공격은 맹렬하고 끈질겼다. 적지 않은 수의 독일 폭격기들이 격추되었지만 그 몇 배의 폭격기들이 영국 함대에 명중탄을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나 대공방어를 맡은 구축함들은 그야말로 피눈물을 흘리는 상황이었다.

독일 공군의 폭격기들을 상대로 대공포를 쏘아대고 폭격기들이 투하하는 폭탄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소리 없이 달려온 어뢰는 치명적이었다.

한 발, 또는 두어 발의 폭탄은 견딜 수 있었지만 어뢰는 그렇지가 못했다.

한 발의 어뢰가 터질 때마다 구축함들은 반파되어 전선에서 떨어져 나오거나,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영국 해군의 구축함들을 어느 정도 정리한 독일 공군은 두 척의 전함에게 달려들었다.

훗날 당시 전투에 참전한 영국군 참전병사의 회고에 따르면 ‘늙은 사자에게 달려드는 하이에나 떼’와 같은 상황이었다.

*    *    *

“함장님. 더 이상은 무리입니다.”

“그렇군.”

전함 바함의 함교에서 쿡 함장과 부장은 침울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독일 공군의 집요한 폭격과 뇌격으로 전함 바함은 심각할 정도로 좌현으로 기울고 있는 중이었다.

기울어진 함교에서 예의 전성관을 붙잡고 서 있던 쿡 함장은 부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원 퇴함 명령을 내리도록.”

“알겠습니다. 전원 퇴함!”

“전원 퇴함!”

전성관과 전령을 통해 ‘전원 퇴함’의 명령이 전달되는 동안 쿡 함장은 피식 웃으며 부장을 돌아봤다.

“그나마 지중해라서 다행이로군. 물은 따뜻할 것 아닌가 ”

“그렇습니다. 북해에 비하면 신의 가호지요.”

“나가볼까 ”

“알겠습니다. 먼저 나가시죠.”

농담을 나누며 쿡 함장과 부장이 함교의 문을 잡는 순간, 밝은 섬광이 두 사람을 감쌌다.

전함 바함의 좌현이 점점 수면 아래로 사라지던 어느 순간, 거대한 폭발이 바함의 선체에서 일어났다.

폭발의 화염과 충격파는 바함의 선체 파편은 물론이고 우현 선체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해군들까지 하늘로 날려 버렸다. 그렇게 전함 바함은 그녀 자신과 그녀에 탔던 해군 대다수, 그리고 두 명의 불운한 독일군 전투기 조종사까지 끌고 지중해의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    *    *

전함 바함의 굉침을 끝으로 영국 해군의 몰타 수복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퀸 엘리자베스는 가까스로 살아남은 4척의 구축함을 이끌고 몰타의 코앞에서 함수를 돌려야 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독일 공군의 폭격기들과 전투기들이 끈질기게 따라붙었기에 후퇴를 하는 동안에도 영국 함대는 필사적인 대공전투를 치러야만 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퀸 엘리자베스의 상처는 더욱 커져만 갔고, 일촉즉발의 순간이 찾아왔을 땐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구축함 1척이 어뢰에 스스로 들이박아야 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 해군의 구축함들이 퀸 엘리자베스의 함대에 달려들었다.

처절하게 패배했던 마판토 해전의 복수를 하겠다는 듯 이탈리아 해군의 구축함들은 집요하게 달려들었지만,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영국 해군들은 그들의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었다.

비록 만신창이가 된 전함과 구축함들이었지만 영국 해군은 멀쩡한 이탈리아 해군을 상대로 치열한 포격전을 벌여나갔다.

영국 함선들은 지난 몰타 전투에서 당한 분풀이를 하듯 이탈리아 해군들에게 포탄을 날려댔지만 만신창이가 된 선체로는 제 힘을 발휘할 수 없었기에 함대는 점점 더 수세에 몰려갔다.

때마침 구조를 위해 알렉산드리아에서 출발한 경순양함 함대가 도착하지 않았다면, 전멸을 면하기 어려웠을 상황까지 몰렸던 퀸 엘리자베스의 함대는 그제서야 한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영국 함대의 행운-정확히 말하자면 퀸 엘리자베스의 행운-은 여기까지였다.

이탈리아 해군의 공격이 끝났을 무렵, 퀸 엘리자베스의 함수 갑판은 이미 조금씩 수면 아래로 내려앉고 있었다.

퀸 엘리자베스의 함장은 후진으로 배를 움직이며 알렉산드리아로 향했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 50km 떨어진 곳에서 퀸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일생을 끝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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