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52화 (52/464)

# 52

52화 돌발 변수 (3)

류 중령의 경고가 담긴 플로브스키의 메시지는 미국에서 영국으로 향하는 호송선단에 실려 런던으로 향했다.

런던 시내 모처의 클럽.

야간 등화관제로 인해 두터운 커튼이 쳐진 실내에서 일단의 시오니스트들이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당장 이 정보를 독일에 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동포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이 류 중령이란 작자가 지적한 것이 사실인지부터 확인을 해야 합니다!”

“프로브스키 회원이 보증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프로브스키 회원의 말에 따르면 미래에서 온 자들 가운데서도 전문의라고 했습니다! 루즈벨트도 그의 덕을 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미래에서 왔다는 말을 믿을 수 있냐 이 말입니다. 제가 아는 물리학자들 모두 시간이동은 불가능하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의 위장공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지금 이 시점에서 왜 위장공작을 하겠습니까 무슨 이득이 있다고 ”

“세계경영을 위한 포석 아니겠습니까 유럽 제국들이 식민지를 토해내고 힘이 약화되게 만들려는 방책일 수 있습니다.”

“이미 패권국은 미국이지 않소!”

“그건 미국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만!”

논쟁이 격해지자 가장 상석에 앉아있던 남자가 대화를 중단시켰다.

“그 논제는 지금 논의할 것이 아니라 생각하오. 이 처방전 문제부터 해결을 하고 이야기를 합시다.”

과열된 분위기를 가라앉힌 남자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우선 먼저 생각할 것은 히틀러에게 이 처방전이 사용된 기간이 꽤 오래되었다는 것이오. 그렇다면 우리 동포들에게 준 이번 기회가 과연 제정신인 상태에서 준 것이냐 아니냐가 문제라고 생각하오.”

“제정신일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그가 슈페어를 중요한 것과 괴링 등을 숙청한 것을 보면 말입니다.”

“반대일 가능성도 있지요. 회장님이 걱정하시는 것은 이번 결정을 내린 것이 히틀러의 정신이 온전치 않았던 때문이고, 만약 제정신을 차리게 되면 정 반대의 결론을 내릴까봐 걱정하시는 것 아닙니까 ”

“그렇네.”

“아직은 제정신이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한 것 아니겠습니까 ”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직전부터 내뱉었던 말이 유대인을 박멸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이 비정상이지요.”

“히틀러 정권 초기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적이 있었다는 것도 생각하셔야지요.”

격론은 계속 이어졌지만 평행선이 좁혀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거야 원… 우리가 직접 히틀러의 머릿속을 들어갔다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 계속해서 쳇바퀴만 도는 느낌입니다.”

토론에 지친 회원 하나가 내뱉은 푸념에 다른 이들 모두 지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젊은 회원 하나가 손을 들었다.

“잠깐 보는 관점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

“관점을 바꾼다 ”

“그렇습니다. 만약 히틀러가 없어질 경우, 그 뒤를 이을 사람들 가운데 우리 민족에게 도움이 될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는 겁니다.”

젊은 회원의 발의에 다른 회원들은 생각에 잠겼다.

“괴링 ”

“도버 항공전을 생각해 보십쇼. 괴링이 정권을 잡으면 독일은 바로 패전입니다. 우리 민족이 다시금 예루살렘에 터를 잡으려면 독일이 이기거나 최소한 우리가 터를 잡을 때까지 버텨 줘야 합니다. 괴링은 그걸 못해요.”

“그러면 힘러나 하이드리히는 ”

“가장 열렬하게 우리 동포들을 죽이던 자들입니다.”

“괴벨스도 마찬가지.”

“그럼 슈페어는 어떨까요 ”

한 회원이 슈페어를 언급하자 다른 회원들 모두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작자는 2인자 이상은 불가능한 인물이요.”

“그럼… 결국 히틀러 하나만 남는군요.”

“하아….”

소거법을 통해 추린 결과가 히틀러라는 사실에 시오니스트들은 모두 절망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가장 상석에 앉아있던 회장이 결론을 내렸다.

“슈페어에게 이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하지. 그리고 다른 것들의 준비 상황은 어떤가 ”

“스위스와 스페인을 경유해 자금 전달이 진행 중입니다.”

“자원조달은 ”

“우선은 터키와 그리스에 라인을 만들어서 독일군에게 넘기고는 있습니다만. 조금 더 안전하고 안정적인 루트를 확보하려고 노력중입니다.”

“가장 좋은 점은 지중해가 독일 손에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그렇겠지. 후우~.”

한숨을 내쉰 회장은 회한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동포들과 같이 조상들의 고향 예루살렘에 돌아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온 지난 세월이었다.

그 꿈이 실제가 될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이 태어나 자란 나라의 적국을 돕게 된 것이었다.

지금의 모순적인 상황에 처한 자신에 대한 회한을 접은 회장은 다른 시오니스트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유럽에 있는 우리 동포들의 안전과 고토 회복의 염원이 달린 일이야. 모두 최선을 다해야 할 걸세.”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잊지 말아야할 것은 독일에게 이용당할 때 당하더라도 확실하게 우리 것은 챙겨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당한 것은 벨푸어에게 당한 것으로 족하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회장님!”

*    *    *

유럽의 움직임이 기존의 흐름과 다르게 틀어지기 시작했을 무렵, LA에 자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군은 예상하지 못했던 적을 만나 멈춰 선 상태였다. 임시정부와 국군의 발을 묶어버린 것은 다름 아닌 자연, 정확히 말하자면 질병이었다.

그 질병의 이름은 천연두였다.

프로브스키 비서관과의 짧은 만남을 끝내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던 류 중령의 눈앞으로 한 남자가 지나갔다.

“얼굴이 많이 상했….”

부지불식간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류 중령은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로 얼어붙었다.

방금 지나간 남자의 얼굴, 그건 사고로 흉해진 얼굴이 아니었다. 자신이 아주 어렸을 때, 조부모들이 살고 계셨던 시골에서 본 얼굴이었다.

당시 그 시골 촌에서 가장 나이 먹은 노인의 얼굴이 바로 저 얼굴이었다.

“맙소사! 의사라는 새끼가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다급해진 류 중령은 저 멀리 대기하고 있던 군용지프로 달려갔다.

“백악관으로 최대한 빨리!”

*    *    *

“워싱턴에서 류 중령이 보내온 전보입니다.”

“그래 ”

전령이 가져온 전보의 내용을 본 고 제독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단어지 ”

전보에는 단 한 단어만이 적혀 있었다.

smallpox.

류 중령이 보낸 단어가 무엇을 말하는지 고민을 하던 고 제독은 한반도 함의 군의관들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

“류 중령이 보냈는데 모르는 말이어서 말이지. 아무래도 의학용어 같은데…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

“글쎄요….”

전보문을 돌려보며 고개를 갸웃하던 군의관들은 주머니에서 작은 전자사전을 꺼내들었다. 전자사전으로 단어를 확인한 군의관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 버렸다.

“맙소사!”

“이걸 잊고 있었다니!”

“도대체 무엇인데 그러나!”

군의관들의 반응에 덩달아 놀란 고 제독이 따지고 들자 군의관들 가운데 차석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군의관이 대표로 대답했다.

“21세기의 우리들이 가진 가장 취약한 약점을 잊고 있었습니다.”

“약점 놀란 것을 보니 전염병 문제인 것 같은데 열대성 전염병의 경우 출항 전에 이미 백신을 맞았네만 ”

“천연두입니다. 1980년대 이후 태어난 한국인들 모두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입니다.”

차석 군의관의 대답에 고 제독의 얼굴도 하얗게 질려 버렸다.

*    *    *

고 제독의 비상호출로 9전단의 함장들과 송 사장, 원 수석 치프, 정 수석차관과 차석 군의관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반도 함에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조사하니 천연두 백신의 강제 접종은 1979년까지였습니다. 그 이전 출생자는 다들 백신을 접종한 상태라는 것이지요.”

“후우~.”

차석 군의관의 설명에 1976년생이었던 고 제독은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흠칫했다.

주변의 분위기가 아주 안 좋았기 때문이었다. 슬쩍 표정을 정리한 고 제독이 차석 군의관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 이후에는 백신 접종자가 없다는 것인가 ”

“강제 접종이 아니라 선택 접종이고, 1960년 발병 보고 이후 발병자가 없었기 때문에 거의 접종을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해 1998년 이후에는 아예 백신접종 항목 자체가 사라졌고 말입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접종가능 시기까지 감안해 1978년 이전 출생자는 100%, 1980년대 초반까지는 잘해야 50%, 그 이후는 아예 안 맞았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그렇게 계산하면 21세기 출신들의 절대다수는 미접종자들이라는 소리입니다. 우리 군의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천연두 예방접종을 한 이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

차석 군의관의 설명에 실내의 분위기는 바닥보다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차석 군의관의 보고는 참석자들의 분위기를 더욱 가라앉혔다.

“문제는… 임정 각료들과 광복군,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입니다. 중국에서의 힘든 생활 속에 백신 접종을 했을 가능성은 전무하고, 거기에 미국까지 이동 경로를 살피면 천연두가 자주 발병하는 지역을 지나왔습니다. 물론 천연두의 잠복기를 생각한다면 걸린 사람이 없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1942년 지금의 미국 역시 천연두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후우~.”

차석 군의관의 설명에 회의실에 자리한 모두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정 수석차관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모두가 백신 접종을 해야 한다는 거군요 우리들부터 임정 사람들까지.”

“그렇습니다. 다행이라면 1942년의 미국이라면 천연두 백신을 대량으로 구할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지요.”

차석 군의관의 대답에 정 수석차관은 고 제독을 바라봤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 당연히 해야겠지. 다른 의견은 ”

“…….”

고 제독 말마따나 생존이 걸린 문제였기에 반대하고 나서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무언의 찬성을 확인한 고 제독은 정 수석차관을 돌아봤다.

“비용이 문제인가 ”

고 제독의 물음에 정 수석차관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이 큰 돈 나갈 일만 계속 생기네요. 그래도 써야겠지요. 주석님께 결재 올려야겠군요.”

“부탁하지. 그럼 회의는 여기서 끝을 내도록 하지.”

고 제독이 폐회를 선언하자 참석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하고는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빈 사무실에 홀로 앉은 고 제독은 착잡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휘관으로서 실격이로군. 주석의 얽은 얼굴을 봤을 때 이미 생각을 했었어야 했는데….”

*    *    *

천연두 문제는 모두의 생존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처리되어 나갔다.

“이제 한숨 돌린 건가 ”

백신의 접종이 시작되었다는 보고를 읽은 고 제독의 물음에 의사들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제부터입니다. 21세기 사람들의 신체가 1940년대 의료기술이 만들어낸 백신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부작용과 알러지 문제 등등 변수가 꽤 많습니다.”

군의관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필코 마이닝의 민간인들 포함 2,600명 가운데 80명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났고, 결국 2명의 젊은 해군 사병이 목숨을 잃고야 말았다.

*    *    *

백신 접종의 부작용으로 인해 사망한 해군 병사들의 장례식이 있던 날,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장례식이 끝나고 병사들은 병사들대로, 장교들은 장교들대로 삼삼오오 모여 침울한 얼굴로 나누는 이야기의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성 부장의 말이 농담이 아니라 예언이었네….”

“우리, 전쟁 끝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아도 문제야…. 미국도 이 모양인데… 조선은 문자 그대로 헬반도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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