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50화 (50/464)

# 50

50화 돌발 변수 (1)

히틀러의 폭탄발언에 회의장은 술렁거렸다.

“조용!”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 같던 소란은 히틀러의 호통 한마디로 바로 조용해졌다. 히틀러는 사나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노려봤다.

“언제부터 이렇게 말이 많아졌지 ”

“…….”

히틀러의 지적에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하다못해 제국의 2인자인 괴링조차-은 식은땀을 흘리며 침을 삼켰다.

소란을 가라앉힌 히틀러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 충격적이겠지. 하지만 우리의 위대한 독일 제3제국을 위해서는 최종해결책의 폐지는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다. 이는… 그래… 제군들이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총통이 유대인들을 살려 주겠다고 하는 것인가 ’ 이 생각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다. 하지만 ‘총통은 이 제국의 영토에 유대인들을 그냥 놔둘 생각인 건가 ’라면 나의 대답은 ‘아니다!’다! 저 더러운 유대인들을 우리 아리아인의 손으로 죽이지는 않겠지만 우리 아리아 인의 영토에 존재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회의실에 앉은 사람들은 총통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종잡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히틀러의 얼굴이 사나워지자, 슈페어가 끼어들었다.

“총통각하! 그 말씀은 유대인들을 제3제국의 영토에서 내보내자는 말씀이십니까 ”

“정확하다! 슈페어 장관, 그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군!”

슈페어를 칭찬한 히틀러는 자신의 의중을 설명했다.

“제군들. 지난 전쟁에서 우리의 독일 제국이 패배한 이유가 무엇이었나 저 더러운 유대자본가들과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패배주의자들의 배신 때문이었다! 그래! 그래서 우리 나치당이 독일을 지배한 순간부터 한 일이 유대인을 격리하는 것이었지. 우리 위대한 아리아인들에게서 말이야. 하지만 위대한 제3제국의 영토가 넓어지면서 격리를 해야 할 유대인들의 수가 정도를 넘어서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연설문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연설을 멈춘 히틀러는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며 골똘히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당한 말이 생각이 나지 않는지 히틀러의 얼굴은 점점 사나워졌고, 그런 히틀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에잇!”

쾅!

결국, 스스로의 분을 참지 못한 히틀러는 발로 바닥을 치고는 사람들을 향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무능한 작자들! 비열한 배신자들! 자기 뱃속만 채우는 비열한 이기주의자들! 누구냐고 바로 너희들이다! 그리고 자기들의 동포들까지 버려두고 달아난 저 더러운 유대 자본가들이다!”

회의실에 앉은 자신들의 동지들이자 나치당의 고위인사들을 상대로 히틀러의 비난은 점점 거세졌다.

“나 그리고 우리 위대한 제3제국의 용맹한 병사들이 점령한 지역에서 색출해 낸 유대인들을 보라! 도시에서는 돈 없는 하층민, 농촌에서는 거의 농노 수준의 농민들밖에 없었다. 지난 전쟁에서, 그리고 대공황에서 독일의 등을 찌르고 독일인들을 가난으로 몰아넣었던 유대 자본가들이 있던가 그들은 우리가 되찾아야 할 우리의 재산을 가지고 이미 도망간 뒤였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바로 너희들이다! 괴링!”

“예, 총통각하!”

회의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약물에 취해 꾸벅꾸벅 졸던 괴링은 히틀러의 호명에 장군의 지적을 받은 이등병마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네가 그랬다지 누가 유대인인지는 내가 결정한다고 자네가 그럼 자네가 나를 유대인이라고 말하면 나도 유대인이 되는 것인가 ”

“아닙니다, 총통각하! 절대 아닙니다!”

“자리에 앉아! 처분을 기다리도록! 힘러! 하이드리히!”

“예, 총통각하!”

바로 직전 괴링이 박살나는 것을 본 두 사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히틀러는 괴링과 마찬가지로 두 사람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이 패배주의자들아! 최종해결 박멸이면 박멸이고, 절멸이면 절멸이지. 최종해결이라는 두루뭉술한 단어는 무엇인가 새로운 비유법인가 아니면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인가 무엇을 왜 국민이 주인이라는 영국과 미국의 자칭 민주주의자들과 인민들의 정권이라는 소련의 자칭 공산주의자들의 평가가 그 평가가 왜 두려울까 자네들은 우리 위대한 제3제국이 이번 전쟁에 질 거라고 생각했나 보지 ”

“아닙니다, 총통각하!”

“절대 아닙니다, 총통각하!”

“닥치고 자리에 앉아!”

힘러와 하이드리히의 입을 막아 버린 히틀러는 다른 이들을 노려봤다.

“좋아, 사태를 직시하자. 우리 제국의 영토는 넓어졌지만 문제도 커졌다. 뒤룩뒤룩 살이 찐 돼지들이 있는 우리라고 생각했는데 열어보니 피골만 상접한 돼지들만 가득한 상황이란 말이다. 살 찔 때까지 기다리자니 그것도 여의치가 않고, 다 죽이자니 손만 더럽혀지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내게 신의 계시가 내려온 것이다! 어차피 죽여야 할 돼지들을 우리의 손을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싸우다 죽게 만드는 것이다! 어떻게 유대인들이 그토록 원하는 고향땅에 보내 버리면 되는 것이다! 아. 그냥 보내는 것은 아니지! 여태까지 우리 독일인의 땅에서, 독일인의 것이 되어야 할 땅에서 무료로 살았으니 그 값은 치러야겠지! 유대의 수컷 돼지들에게서 지원을 받아라!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 이집트를 거쳐 예루살렘까지 뚫어라! 키에프와 하르코프에서 출발해 터키 국경까지 뚫어라! 그 과정에서 죽는 유대 돼지들의 피 값으로 그들의 가족들이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여비의 절반을 치를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후방에 남은 이들에게 지원을 받아라! 공장과 논밭에서 독일 장병들과 전선에 나간 유대인들이 사용할 무기들과 먹을 식량을 생산하게 하라!”

파도가 몰아치듯 이어지던 연설을 잠시 멈춘 히틀러는 목을 축이고는 말을 이어갔다.

“명심해라. 저 유대 돼지들에게서 반드시 지원자만 추려라. 고향으로 돌아가자며 시오니즘을 외치던 돼지들이다. 그들이 진실로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지원할 것이다. 하지만, 지원을 거부하는 유대의 돼지들은….”

잠시 말을 멈춘 히틀러는 광기에 찬 눈으로 사람들을 노려보며 단 한 단어만을 내뱉었다.

“죽여라.”

‘죽여라.’라는 단어로 히틀러의 연설이 끝났지만 회의실 안은 침묵만이 감돌았다. 잠시 후 가장 먼저 입을 연 이는 슈페어였다.

“맞습니다! 총통각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그들의 고향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를 거부한다 이것은 총통각하를 모욕하는 것이고, 그들의 동족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죽어도 할 말이 없지요! 과연 우리들의 위대하신 총통각하십니다! 지크 하일(Sieg Heil)!”

“지크 하일(Sieg Heil)!”

“지크 하일(Sieg Heil)!”

회의실 안의 사람들은 발작적으로 오른손을 위로 뻗으며 ‘승리 만세(Sieg Heil)!’를 외쳐댔다.

특히나 히틀러의 경고를 받은 괴링과 힘러, 하이드리히는 그 누구보다도 정열적으로 외쳐 댔다.

“조용. 조용.”

가볍게 오른손을 드는 것으로 답례를 한 히틀러의 명령에 회의실 안의 소란은 가라앉았다. 목을 축이고 잠시 호흡을 고른 히틀러는 괴벨스를 호명했다.

“괴벨스 장관.”

“예, 총통각하!”

“우리 위대한 제3제국의 국민들이 취해 게으른 노새처럼 늘어져 버렸다! 승리라는 독주에 말이야! 덕분에 작년에 모스크바를 코앞에 두고 나폴레옹처럼 물러나야만 했다! 국민들을 깨워라! 총력전이 벌어지고 있다! 승리가 아니면 파멸밖에 답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국민들을 깨워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지 ”

“예, 총통각하!”

“기대해도 되겠지 ”

히틀러의 물음 속에 담긴 경고의 의미를 알아들은 괴벨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반드시!”

“믿어보지. 그리고 슈페어.”

“예, 총통각하!”

“그대에게 전권을 주겠다! 제국의 승전을 위해! 총력전의 승리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라! 제국의 모든 도로와 철로를 그대가 관리하라! 전선에 보급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

“맡겨 주십시오, 총통각하!”

절도 있게 대답하며 목례를 하는 슈페어에게 다가간 히틀러는 슈페어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대를 믿겠다.”

“감사합니다!”

히틀러가 보인 신뢰에 감격한 슈페어는 눈물까지 보이며 크게 대답을 했고, 다른 이들은 질투와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슈페어를 바라봤다.

슈페어를 격려한 히틀러는 다른 두 사람을 호명했다.

“힘러! 하이드리히!”

“예, 총통각하!”

“그대들의 머릿속에 뿌리 깊이 박힌 패배의식이 빠질 때까지 반성의 시간을 가지도록! 그대들의 머리에서 패배의식이 빠졌다고 생각되면 내가 부르겠다!”

“총통각하! 기회를!”

“총통각하! 제발!”

“조용! 친위대!”

기회를 줄 것을 호소하는 힘러와 하이드리히의 모습에 히틀러는 바로 친위대를 불러 명령을 내렸다.

“저 둘을 끌어내도록! 내가 저들을 부를 때까지 누구도 저들과 접촉을 하지 못하게 하라!”

“야볼(Jawohl)!"

“잠깐!”

힘러와 하이드리히를 끌고 나가던 친위대원들을 멈춰 세운 히틀러는 힘러와 하이드리히에게 걸어갔다.

“네놈들의 머릿속에서 패배주의가 사라질 때까지, 너희들은 이등병보다 못한 존재가 될 것이다.”

뚜둑!

경고와 함께 두 사람의 오른쪽 어깨에 달린 계급장을 뜯어버린 히틀러는 친위대원들에게 손짓했다.

“끌고 나가. 그 누구도 내 명령이 있을 때까지 이 둘과 접촉을 할 수 없다. 그 누구에는 가족들도 포함된다.”

“야볼(Jawohl)!"

히틀러의 명령에 친위대원들은 힘러와 하이드리히를 회의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제3제국의 고위권력자들의 일원이었던 이들의 허망한 모습을 본 사람들은 창백한 얼굴로 침만 삼키며 히틀러만 바라봤다.

히틀러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괴링이 있는 곳이었다. 히틀러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괴링의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총, 총통각하….”

“괴링, 나의 가장 믿음직한 동지여. 제국의 2인자여. 그대가 왜 이런 모습이 되었나 1차 대전의 에이스이며, 항상 투쟁의 선봉이었던 자네가 회의실에서까지 졸아대는 살찐 돼지가 되었나 ”

“총, 총통각하… 죄, 죄송….”

“자네도 잠깐 쉬도록 하게. 쉬면서 건강을 되찾아 회의실에서 조는 추태를 보이지 않게 되면 바로 나를 찾아오게. 금방 돌아오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지 나를 두 번 실망시키지는 않겠지 ”

어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잔혹한 경고가 섞여 있는 히틀러의 물음에 괴링은 벌벌 떨며 대답했다.

“예, 예… 총, 총통각하. 반, 반드시!”

가볍게 괴링의 어깨를 토닥인 히틀러는 시선을 돌렸다.

“밀히 원수.”

“예, 총통각하!”

“괴링이 잠시 쉬는 동안 공군을 지휘하게. 할 수 있겠지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믿어 보도록 하지. 그리고… 칼텐부르너, 디트리히.”

“예! 총통각하!”

“칼텐부르너가 하이드리히가 하던 일을, 디트리히가 힘러의 일을 맡도록.”

“예, 총통각하!”

힘차게 대답한 두 사람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인 히틀러는 사람들을 돌아봤다.

“오늘 있었던 일은 내가 여러분들에게 하는 경고다! 총력전이다! 승리가 아니면 파멸뿐인 총력전이란 말이다! 내가 이곳에서, 그리고 젊은 독일의 청년들이 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있듯이 제군들도 목숨을 걸어라! 더 이상은 봐주지 않겠다! 나는 두 눈을 뜨고 제군들을 감시할 것이다! 명심하도록! 이상!”

“하일 히틀러!”

히틀러가 회의실을 나가고 나서야 사람들은 길게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 긴장을 푼 이들 가운데 한명이 회의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폭풍과도 같은 1시간이었군….”

*    *    *

슈페어는 그날의 일을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다.

‘내가 꾸었던 꿈은 총통에게 주는 신의 계시였고, 총통이 1시간 동안 보여 준 것은 신이 독일에게 준 기적의 1시간이었다.’

하지만, 슈페어의 일기를 본 전후 역사가들의 평가는 정반대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

‘악마가 전 세계를 향해 날뛴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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