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44화 (44/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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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육군 재건 (3)

“어서 오십시오. 연락은 받았습니다. 사장이자 수석 디자이너인 멜빈 존슨입니다.”

“정길호 수석팀장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래… 소총의 생산을 의뢰하시고 싶다고요 ”

“그렇습니다.”

“그렇습니까….”

정길호 수석팀장의 대답에 멜빈 존슨은 뭔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렸다.

멜빈 존슨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회사가 처한 지금의 상황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 부패한 군인놈들!’

하버드 로스쿨에 재학할 당시 예비역 해병 소위로 임관한 존슨은 1933년 버지니아주 관티코에서 진행된 해병대 총기 전시와 교육 행사에 참여했었다.

당시 개런드와 페더슨 라이플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 그는 1934년 로스쿨을 졸업하자마자 연구를 시작, 계속된 연구 끝에 존슨 반자동 소총을 만들어 군부에 보였었다.

하지만 군부는 이런저런 결함들을 지적하며 존슨 반자동 소총이 아닌 개런드를 계속 고집했다.

1940년, 2차 대전으로 급해진 네덜란드 정부가 50,000정의 반자동 라이플을 주문했지만 독일에 함락되면서 그나마 만들어졌던 수천 정의 반자동 라이플들은 모조리 창고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지 진주만 공습으로 당장 쓸 무기가 필요해진 미 해군이 재고품을 인수함과 동시에 추가 발주를 넣었지만 지난 심사과정에서 불거진 결함들이 계속 발목을 잡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멜빈 존슨이 군부를 욕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M1941 존슨 LMG(Light Machine Gun.경기관총) 때문이었다. BAR을 대체하기 위해 만든 물건이었고, 존슨 반자동 소총에서 보인 결함들을 최대한 수정한 놈이었다.

BAR보다 4파운드(약 1.3kg) 가벼웠고, 장탄수도 25발로 BAR의 20발보다 우위였지만 미 육군은 몇 가지 소소한 결함과 비싼 가격을 이유로 채용을 거부했다. 결국 존슨은 다시금 미 해군에 매달려 해병대에 존슨 경기관총의 1차 생산분만을 납품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계속되는 고배를 마시는 동안 나름대로 속사정을 알게 된 존슨은 군부를 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소총과 경기관총에 있는 결함들-존슨은 개선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과 가격으로 인해 밀려난 것이 아니라 콜트와 윈체스터를 비롯한 대형 총기회사들의 압력으로 개선명령도 받지 못하고 밀려난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 미국 정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얼마 전 신문과 라디오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대한민국’의 정부 인사가 방문을 하니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무슨 일로 온답니까 혹시 총이라도 산답니까 ”

“아니, 자기네들이 설계한 소총의 생산을 의뢰하기 위해서 방문할 것이라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연락을 가지고 온 육군 장교를 배웅한 멜빈 존슨은 사무실에 둘러앉은 엔지니어들을 향해 불만을 터뜨렸다.

“God damn! 우리보고 생산대행이나 하라고 무시를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야!”

“기분이 안 좋기는 합니다. 그런데, 자기네들이 설계한 소총이라니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총 만들기가 쉬운 줄 알아! 아무나 만들게!”

버럭 소리를 지르던 멜빈 존슨은 엔지니어들의 표정이 안 좋아지자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따지고 보면 자신도 변호사 출신이지 존 브라우닝 같은 총기 설계 전문가는 아니었다. 갑자기 떠오른 하나의 아이디어를 붙잡고 긴 시간을 홀로 고생을 하다가 결국 특허를 받아내기는 했지만 결국은 다른 엔지니어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지금까지 온 것이었다.

결국, 자기 스스로 자기 얼굴에 똥칠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멜빈 존슨은 웅얼거리듯이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설계가 오면 확인을 해보고, 별 거 아니면 우리 존슨 라이플을 구매하는 방향으로 설득을 해보자고.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 볼트 액션 라이플일 것이 빤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오늘, 문제의 대한민국 사람이 방문을 한 것이었다.

“그럼 도면을 좀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미 육군에 대한 불쾌한 감정과 이름도 몰랐던 아시아에 있는 국가에 대한 편견을 숨기지 않으며 불퉁거리는 멜빈 존슨의 모습에 정 수석팀장은 옆에 동석한 미 육군 소령을 노려봤다.

‘그러니까 그냥 파이프 업체 하나 소개시켜 달라니까! 오지랖도 넓어!’

*    *    *

“파이프 제작 업체라고요 ”

“아, 아니면 괜찮은 기술 수준과 생산 능력을 가진 금속가공업체도 좋습니다. 미 행정부의 능력이라면 적당한 업체를 하나 추천해주실 수 있으실 걸로 생각합니다만 ”

“흐음...”

정 수석팀장의 요청에 트루먼 상원의원은 콧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겼다. ‘0.5인치 전쟁’과 ‘1,000만 달러 설계도’ 이후 정 수석팀장과 트루먼은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었다. 효율을 중시하고 불필요한 재정지출을 싫어한다는 점에서 둘은 의외로 통하는 구석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뭐… 찾자고 하면 며칠 이내로 찾아드릴 수 있습니다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아도 되겠어요 ”

“별 거 아닙니다. 소총을 만들어야 해서요.”

“소총 소총이라면 개런드를 쓰면 될 터인데 ”

“우리 육군이 개런드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뭐. 단점을 들자면 이런저런 단점들이 튀어나오는데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이 화력 부족입니다.”

“8연발이면 세계 최강입니다만 ”

“병력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8연발은 부족합니다. 당장의 전쟁에서도 부족하고 국토를 수복한 다음에도 부족합니다.”

“그렇군요. 그렇기는 한데 지금은 전시생산체제라….”

정 수석팀장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트루먼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흐렸다. 트루먼의 반응에 정 수석팀장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총기 업체가 아니라 금속가공업체를 알선해달라는 겁니다. 프레스와 단조, 압출 기술이 좋은 업체면 더욱 좋습니다.”

“흐음... 알겠어요. 최대한 빨리 알아봐 드리지요.”

“감사합니다.”

트루먼의 대답을 들은 정 수석팀장은 감사를 표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 수석팀장을 내보내고 잠깐 생각을 하던 트루먼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좀 제대로 된 곳을 알려줘야겠지. 영국 놈들이나 프랑스 놈들과 달리 괜찮은 친구들인데 말이야.”

그리고 사흘 후, 트루먼이 보내준 답이 메사추세츠 주 보스턴에 있는 ‘존슨 자동화 회사’였다.

*    *    *

잠깐 동안 트루먼의 오지랖을 씹어대던 정 수석팀장은 바닥에 놓아두었던 서류가방을 열어 서류철을 꺼내 멜빈 존슨에게 내밀었다.

“우선 총기에 사용될 부품들에 대한 스펙 리스트입니다. 각 부품마다 사용할 소재, 필요한 강도, 내구성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꼼꼼하시군요.”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류철을 받아든 멜빈 존슨은 방금 전까지의 불퉁한 표정을 지우고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이 정도로 준비할 정도라면 얼치기가 아니다! 잘못하면 창피를 당하는 것은 나다!’

바짝 긴장을 한 멜빈 존슨은 리스트를 살펴나갔다.

“흐음… 이번에 새로 발표된 ‘cal.30-42'를 사용하는군요… 20발 탄창 Semi(반자동), Auto(자동), Burst(점사) 기능 탑재 ”

멜빈 존슨의 놀란 얼굴을 즐기며 정 수석팀장은 도면통을 열고 설계도를 꺼내 존슨에게 내밀고는 엽총 케이스를 건네받아 소총의 견본품들을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이건 소총과 사용할 탄창들의 설계도입니다. 그리고 이건 저희 설계팀에서 만든 샘플입니다. 긴 것이 일반 보병용이고 짧은 것은 Officer나 특기병들을 위한 카빈입니다.”

은빛의 금속광택을 내며 반짝이는 샘플을 본 멜빈 존슨은 흔들리는 눈으로 정 수석팀장을 바라봤다.

“사격을 해봐도 됩니까 ”

“20발 이내라면 괜찮다고 들었습니다. 스펙리스트에 있는 요구조건에 맞는 부품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설계 오류만 잡느라 경금속으로 만든 것이라서요.”

*    *    *

대한민국 국군이 사용할 ‘K1 Rifle'의 설계도와 시제품을 보고서 뒤집어진 것은 멜빈 존슨만이 아니었다. 동석한 소령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존슨의 공장으로 달려갔던 군부 역시 뒤집어졌다.

“20연발 방아쇠 위의 레버를 돌리는 것으로 안전서부터 반자동, 자동, 점사까지 다 제어 가능 뭐야 한 자루로 개런드부터 BAR까지 다 대체 가능하다는 소리잖아 ”

“개런드, BAR에 비해 탁월한 반동 억제 능력 ”

“그런 놈이 정비성은 개런드, BAR보다 매우 우수 ”

결국, 존슨의 공장에서 스펙 리스트를 기반으로 만든 양산 시제품에 대한 대한민국 육군의 테스트가 있다는 소식에 마셜을 비롯한 높으신 분들이 우르르 보스턴으로 몰려갔다.

4월 25일. 보스턴 항 근처 해변.

미 육군 병사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K1 Rifle'의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테스트를 시작한다는 소리에 송일한 사장과 원명환 수석치프, 그리고 미 육군의 높으신 분들이 흥미진진한 눈으로 테스트 과정을 지켜봤다.

테스트를 담당한 벌레와 빨갱이는 진지한 얼굴로 테이블 위에 놓인 총기들을 바라봤다.

그 전날 공장을 방문해 테스트에 사용할 총기를 무작위로 선별한 다음 총번을 기록하는 등의 사전조치를 취하고는 몇 자루는 해변의 바닷물 속에, 모래사장 속에, 항구에 있는 냉동 창고에 처박아 놓았다.

그리고 남은 총기들이 지금 두 사람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두 사람이 챙겨온 수십 개의 일반 탄창들과 대용량 탄창들이 탄약을 담은 채 쌓여있었다.

“후우웁!”

깊게 심호흡을 한 벌레는 빨갱이를 돌아봤다.

“한번 조져볼까 ”

“조져봐야지.”

짧은 대화가 끝나고 두 사람은 빠르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네 자루의 총을 분해해 부품을 뒤섞은 다음 무작위로 재조립을 해서 사격을 하고, 바닷물에서, 모래사장에서, 냉동 창고에서 꺼낸 총들을 미친 듯이 쏴대고, 마지막으로 총열이 터질 때까지 탄창을 비워내는 사격이 진행되면서 해변은 총성으로 가득 찼다.

‘총기고문’이라는 별명이 붙은 ‘혹사 테스트’까지 끝내고 주변을 정리한 벌레와 빨갱이는 송 사장과 원 수석치프에게로 걸어갔다.

“어떠냐 ”

원 수석치프의 물음에 벌레가 대답했다.

“서면 보고서가 올라가겠지만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자면 괜찮은 놈이 나온 것 같습니다. 2차 테스트까지 통과하면 바로 찍어내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냐 다행이다. 이제 마음 놔도 되겠어.”

“한시름 덜었네.”

벌레와 빨갱이의 긍정적인 대답에 한숨 돌린 원 수석치프는 2차 테스트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래서 2차는 아리조나 맞지 ”

“옙. 애리조나 사막입니다. 먼지 테스트도 함 해봐야지요.”

“빌어먹을 황사, 빌어먹을 관동군. 아주 쌍으로 돌아가며 애를 먹이네.”

벌레의 대답에 원 수석치프는 이를 바득 갈았다. 본토 진공에 들어갔을 때, 조우할 확률이 높은 관동군과 만주의 황사 덕에 강화된 방오 테스트 통과가 필수 조건이 되어버렸고, 그것은 바로 설계 난이도 향상과 단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원 수석의 반응을 보며 벌레는 말을 덧붙였다.

“거기에 조~올라 뚜렷한 우리나라 4계절도 생각해야 했지 않습니까 1940년대면 공기도 맑아 겨울도 이 갈리게 추울 테니 말입니다. 저 냉동 창고의 성능이 좋지 않았으면 알래스카 갈 뻔 했습니다.”

“총 한 자루 덕분에 미국을 일주할 뻔 했지요.”

벌레에 질세라 말을 덧붙이는 빨갱이였다. 두 사람의 말에 원 수석 치프는 혀를 찼다.

“쯧. 이거 정비용품들의 보급이 문제겠군.”

애리조나 사막에서의 방오 테스트도 통과하자 K1소총과 K1카빈은 바로 대량 생산에 들어갔다. 생산라인에서 막 튀어나온 K1소총 1,000정과 K1카빈 1,000정 가운데 각기 50정씩을 빼낸 미군은 자체적인 성능 평가에 들어갔다.

자체 성능 평가에서 나온 결론은 ‘개런드와 BAR을 버리고 이걸 써야 한다!’였지만 군부는 그 결론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대형 총기 회사들의 거센 반발과 더불어 총탄의 규격이 바뀌면서 뜯어고친 생산라인을 다시 바꾸는데 소모되는 불필요한 시간과 재정의 낭비 문제 때문이었다.

결국, 소수의 미군들만이 알게 모르게 K1 라이플과 카빈을 따로 챙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나서서 챙긴 대표적인 이들이 공수부대와 해병대였다.

그리고 그들은 한, 미 양군의 보급 담당자들 사이에서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9전단이 일으킨 나비효과로 종전 후, 도산과 동시에 윈체스터로 넘어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했던 멜빈 존슨의 회사는 2차 대전이후 미군이 사용할 신형 소총의 주 공급자로 자리매김을 했다. 그리고 멜빈 존슨은 한국군의 총기 개발과 생산에 기술 지원을 해주는 등 최고의 호의를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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