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35화 (35/464)

# 35

35화 대한민국 임시정부 (1)

내가 해군 9전단과 육군 제1독립 기계화 교도대대의 사람들을 만난 것이 1942년 5월 9일이었지. 어떻게 기억하냐고 기자 양반이 나였었더라도 그날은 잊지 못했을 걸

- 손영석. 독립유공자.

글쎄… 9전단과 육군 제1독립 기계화 교도대대의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눈은 절대 호의적이 아니었어. 얼음같이 차가운 눈초리와 냉정한 평가는… 지금도 그 당시만 생각하면 악몽을 꾸지.

- 한창열. 독립유공자.

지금 입시경쟁이 심각하다고 그러지 그때 많은 동지들이 겪어야했던 상황도 비슷했어.

- 강재환. 독립유공자.

- 1995년. 독립 50주년 기념 KBS 다큐멘터리.

‘2차대전 속의 한국 국군. 그리고 정부의 비사’ 1화, ‘중국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탄생’의 인터뷰 편집.

*    *    *

1942년 5월 1일.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던 9전단에게 기다리던 선물이 도착했다. 선물의 이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다.

임시정부의 요인들과 독립지사,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과 광복군이 도착한다는 소식에 고 제독과 함장단, 그리고 요인 경호와 시설 경비를 맡을 필코 셍프티의 인원들, 정 수석팀장을 비롯한 민간인 대표들이 미국 정부가 마련한 특별 열차를 타고 뉴욕으로 달려갔다.

한밤중에도 쉼 없이 뉴욕으로 향하는 열차의 식당칸에서 정 수석팀장과 빨갱이, 벌레는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떻게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냐 ”

벌레의 물음에 정 수석팀장은 인상을 팍 구겼다.

“세이프티 의무실에 있던 두통약과 진통제의 절반은 내가 먹었을 거다.”

“망했다는 소리야 ”

수석팀장의 말에 빨갱이가 걱정스런 표정을 짓자, 정 수석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까딱 잘못하면 망한다는 소리다.”

“망할 일이 뭐가 있어 임정의 노친네들 오면 바로 버스에 실어서 미국의 산업단지 한번 휘~ 보여주고, ‘우리도 이렇게 해야지 잘 먹고 삽니다!’하면 간단하잖아 금배지들이 뻑하면 나가는 해외 산업시찰이 별 거냐 그게 산업시찰이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벌레의 말을 듣던 정 수석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냐 너같이 세상 단순한 놈이 어떻게 복잡한 작전은 잘 수행하는지 모르겠다.”

정 수석팀장의 말에 벌레는 어깨를 으쓱했다.

“복잡하게 생각한다고 항상 잘 풀리는 것도 아니고, 단순하게 생각한다고 항상 망하는 것도 아닌 게 세상 아니겠냐 ”

정 수석팀장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벌레를 바라봤다.

“박인수씨 사업에 월급 몰빵할 때부터 느끼기는 했다만… 단순한 거냐 낙천적인 거냐 ”

“쉽게 가자는 거지. 그리고 인수 사업에 나만 몰빵했냐 이 빨갱이 새끼도 몰방했고, 도씨 어르신은 자그마치 백만 불을 냅다 처박았는데 그리고 들어보니 너도 처박았다며 너, 그 돈 어디서 났냐 그 수수료 얼마나 떼어 먹은 거냐 ”

“묻지 마, 다쳐.”

짧은 만담이 끝나고 세 사람은 진지한 분위기로 대화를 이어갔다. 종업원이 가져다 준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며 정 수석팀장은 설명을 이어갔다.

“벌레가 말한 사업체 시찰은 이미 일정표에 들어가 있어. 문제는 임정의 요인들을 임정이 아닌 진짜 정부 조직의 구성원으로 만드는 것이야.”

“진짜 정부라니 지금은 구라 정부냐 ”

빨갱이의 핀잔에 정 수석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사실이잖아 ”

“야! 이 새꺄!”

대답을 듣자마자 빨갱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정 수석팀장은 피식 웃으며 빨갱이를 바라봤다.

“왜 소리를 질러 임정이 신성불가침이라는 생각하고 있는 거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우리가 살아왔던 대한민국의 클론에 불과할 거다. 넌 그랬으면 좋겠냐 ”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주체인 임정이고, 독립운동가 분들이시다. 그런 존재들을 상대로 비아냥거리는 것은 네놈의 잘난 체 밖에 안 돼, 이 새꺄. 지금 백악관이네 의회네 여기저기에서 불러주니까 네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나 본데. 너 그러다 뒈진다. 내가 안 죽여도 이 옆에 있는 벌레 새끼가 널 족칠 거다.”

“어이고. 애국자 나셨다.”

“이 새끼가!”

“주댕이는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시작부터 삐거덕거렸던 것에 저 양반들의 책임이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냐 ”

“그건 아니다만… 그래도 새꺄! 야! 벌레 새꺄! 너도 뭐라고 좀 해 봐라!”

말문이 막힌 빨갱이가 벌레를 채근했다. 빨갱이의 채근에 벌레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않냐 주먹구구, 학연, 지연. 인맥을 이용한 인재충원 등등에서 저 양반들이 한 짓거리들도 많잖냐 ”

“이 새끼들아!”

욕설을 내뱉은 빨갱이의 표정은 ‘브루투스 너마저!’를 외치는 카이사르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벌레는 냉소가 가득한 얼굴로 빨갱이를 바라봤다.

“너, 중딩, 고딩 때 국사시간에 임정에 대해 얼마나 배웠냐 아니, 임정에 관해 몇 줄이나 나왔냐 ‘식민사학’ 어쩌고저쩌고 하는 개소리는 집어치우고, 윤봉길 의사, 이봉창 열사 등의 이야기도 몇 줄, 광복군 조직과 국내진공작전도 두어 줄로 끝나. 그게 우리가 아는 광복 전 임정이 가지는 가치다.”

“그걸 제대로 돌리는 게 민족을 위한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이다!”

“민족 어쩌고저쩌고 하는 인종주의 파쇼 같은 썰 집어치워. 우리가 할 일은 한반도가 반동강 나지 않도록 막고 제대로 된 민주정부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거야.”

“아오!”

벌레의 말을 들은 빨갱이는 가슴을 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편, 처음 소란의 단초를 제공한 정 수석팀장은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벌레와 빨갱이를 바라봤다.

“너희들, 누구냐 왜 빨갱이가 벌레 같은 소리를 하고 있고, 벌레가 빨갱이 같은 소리를 하는 거지 ”

“미친 놈.”

“미친 새끼.”

정 수석팀장의 말에 벌레와 빨갱이가 욕설을 날리는 것으로 과열된 분위기는 많이 가라앉았다. 화를 가라앉힌 빨갱이가 다시금 정 수석팀장에게 질문을 이었다.

“좋다. 그럼 어떻게 임정을 진짜 정부로 만든다는 거냐 ”

“우선은 충격요법, 그 다음에는 구조조정.”

“충격요법 구조조정 IMF와 명퇴냐 ”

빨갱이의 물음에 정 수석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명퇴시킬 정도로 임정의 인원이 남아 도냐 인원감축이 아니라 구조조정이야. 1차적으로 군과 행정, 입법과 사법을 다 분리한다.”

“광복군하고 임정은 이미 분리되어 있잖아 ”

“겸임을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니 문제지.”

“그럼 인력 재배치라는 단어가 더 적당하지 않을까 ”

“솎아낼 인간들은 솎아내야지.”

“누구 빨갱이들 ”

‘솎아낸다.’는 정 수석팀장의 말에 벌레가 ‘빨갱이’를 언급하자 옆에 앉아있던 빨갱이의 눈썹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빨갱이가 벌레를 향해 입을 열기 전에 정 수석팀장이 먼저 벌레에게 일침을 가했다.

“누가 벌레 아니랄까봐….”

“그럼 누구를 솎아낸다는 거야 ”

“우선은 네놈이 미친 듯이 싫어하는 런 어웨이. 이 양반은 공개토론회 초기부터 최대한 배제하기로 결정을 내렸었고, 워싱턴에서 벌어졌던 납치미수 덕에 확인사살까지 된 상황이니까.”

“아! 그 양반이라면 인정.”

벌레는 정 수석팀장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빨갱이는 영 미덥지 못하다는 얼굴로 정 수석팀장을 바라봤다.

“좌익은 안 솎아내는 거 확실한 거냐 ”

빨갱이의 질문에 정 수석팀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다… 그건 두고 봐야하지 않을까 내 기준으로는 사회주의자는 괜찮지만 공산주의자는 별로라….”

“지금 이 시대에 공산주의자 아닌 사회주의자가 어디 있냐! 너 이 새끼! 벌레2냐! 아니지, 너 대기업 출신이었지 이 썩어빠진 자본주의자 새꺄!”

빨갱이가 버럭했지만 정 수석팀장은 태연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두고 봐야겠지 ”

“또 뭔 꼼수를 부리려고….”

“영업기밀이다. 오히려 네놈들이나 잘해. 정규전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너희들이나 광복군이나 똔똔이잖아.”

정 수석팀장의 지적에 벌레와 빨갱이는 별 것 아니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영감과 사장. 이론과 실전에 빠삭한 양반이 둘이나 대가리로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    *    *

정 수석팀장과 벌레, 빨갱이 세 사람이 만담을 벌이고 있는 식당칸의 한구석에는 또 다른 이들이 모여 세 사람의 만담을 흥미진진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잠이 안 와서 나왔는데 좋은 걸 봤군.”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 수석팀장은 그렇다 쳐도 지상전 병력들은 물론이고 해군 부사관들과 사병사이에 영향력이 강한 두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주 운이 좋았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9전단의 통합감찰실장인 김창현 대령. 기무부대장 최병섭 중령, 그리고 이백현 변호사였다.

세 사람이 한반도에 오게 된 것은 막장드라마는 저리 가라할 정도의 아귀다툼의 결과물이었다.

절대 혼자 다니는 일이 없고 반드시 최소 3척 이상의 호위함정이 붙는 ‘역대 최고가 군용장비’, 그리고 그 내부에는 육해공 3군이 다 섞여 1,400여명이 탑승하는 존재, 거기에 기밀을 요하는 장비들이 지천으로 널린 존재가 한반도 함이었다.

당연히 감찰과 기무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제-정확히는 감찰의 문제-가 생겼다. 쉽게 가려면 3군이 각자 감찰요원들을 배속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너무나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에 3군의 수뇌부와 합참은 통합감찰조직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문제가 발생한 것은 그럼 ‘그 통합감찰실의 지휘관을 누가 맡느냐’였다.

육군은 군뿐만 아니라 국가의 기밀까지 확보할 수 있는 ‘통합 작전통제센터’의 존재를 이유로, 해군은 한반도와 호위 함선들 모두 해군 소속이라는 이유로, 공군은 한반도에는 해군보다 공군이 더 많이 탑승하고, 가장 주력인 장비들을 운영한다는 이유로 자군 소속의 감찰장교를 지휘관으로 임명하고 싶어 했다.

결국, 한반도에 신설된 통합감찰실의 지휘관인 통합감찰실장으로 공군 소속의 김창현 대령이 임명되었다.

기무부대는 기무부대 자체가 기무사령부로 독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듯이 보였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문제가 가장 많은 곳 가운데 하나답게 선별과정에서 강한 진통을 거쳐야 했고, 강골에 원칙주의자이며 ‘간부 혐오자’라는 별명까지 가진 최병섭 중령이 부대장으로 부임했다.

이백현 변호사는 가장 특이한 케이스였다. 아니 3군의 상호불신과 이기주의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항공모함에 타는 승무원들의 대부분은 상명하복에 익숙한 군인들이었지만 사람이니만큼 분쟁이 발생할 확률은 적지 않았다.

문제는 서로 다른 군 소속의 승무원들 사이에서, 또는 원자로 관리부터 시작해 여러 임무를 위해 탑승한 민간인들과의 분쟁이 발생할 경우였다.

함장이나 제독이 분쟁을 조정할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 편파적이라는 말이 나올 확률이 지대했다. 결국, 그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무관을 태워야 하지만 그럴 경우 법무관의 소속이 어느 군이냐에 따라 감찰관 선정 때와 같은 분쟁을 가져올 확률이 만만치 않았다.

감찰관 선정 때 물을 먹은 육군과 해군이 이번만은 밀리지 않겠다고 달라붙었고, 분위기는 과열되었다.

결국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던 국방부가 내놓은 방안은 민간인 변호사를 분쟁조정 담당으로 함선에 태우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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