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34화 Tokyo raid (5)
한미 연합함대가 승전가를 부르며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고 있을 무렵, 구레의 연합함대의 사령부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1942년 4월 25일. 구레.
연합함대의 기함 야마토의 사령장관실에서 책상을 등진 채 현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만 바라보던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침중한 어조로 참모에게 질문을 던졌다.
“천황폐하와 황태자 전하의 환후는 어떠신가 ”
“다행히 생명은 건지셨습니다만… 아직 의식이 명확하지 않으십니다.”
참모의 대답에 야마모토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망극한 일이 벌어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할복이라도 해야 하나….”
야마모토가 할복이라는 단어를 꺼내들자 참모는 기겁을 했다.
“안됩니다, 장관! 할복은 안 됩니다! 이건 장관의 탓이 아닙니다!”
“천황폐하와 황태자 전하께서 부상을 입으셨다! 이걸 육군 놈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나 ”
“신민들은 모릅니다! 심지어 도쿄에 살고 있는 신민들조차 황궁의 다리와 문만 폭격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육군 놈들이 아무리 멍청이라 해도 이걸 터뜨리지는 못 합니다! 그러면 육군 놈들도 같이 죽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모가 계속해서 말리고 들자 몸을 돌린 야마모토는 한쪽에서 나무상자를 꺼내 참모에게 내밀었다.
“오늘 투서들 사이로 이게 왔더군. 열어보겠나 ”
야마모토의 말에 상자를 열어본 참모는 바로 상자를 덮어 버렸다. 상자 안에는 할복용 단도가 들어 있었다.
“이건 제가 당장 버리겠습니다.”
“거기 놔두게.”
“장관! 해군을 생각하셔야 합니다! 해군성이 폭격을 당한 이후 해군의 최고 지휘관은 장관밖에 안 남았습니다! 육군에게서 해군을 지키셔야 합니다!”
참모는 절절한 목소리로 야마모토를 설득했다. 해군성에 떨어진 폭탄은 우연의 일치로 해군성의 대회의실을 직격했다.
연합함대에게는 불행하게도 그곳에는 해군성과 해군 군령부의 최고 지휘관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 중 단 두 명만을 빼고 모두 그 자리에서 사망을 해 버렸다. 살아남은 두 사람 역시 병원에서 오늘내일 하는 상황이었고.
상황은 육군성과 대본영도 마찬가지였다. 육군성은 폭격으로 건물의 2/3가 날아갔고, 대본영은 절반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폭격으로 인해 육군의 최고급 지휘관들의 많은 수가 죽거나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매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총리인 도조 히데키와 헌병대가 나서서 프로파간다 공작을 벌인 덕에 언론들은 ‘Do Little.'이라고 떠들며 공습의 효과를 작게 보이게 만들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연합함대의 책임론이 불거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본을 공격하는 적국의 해군을 요격하여 신주(神州)를 수호’하는 것이 연합함대의 임무이고 존재이유인 상황에서 한미연합군의 폭격대가 수도를 공습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은 치명적인 임무 실패였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미 연합군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황궁에 떨어진 폭탄으로 인해 천황과 황태자가 중상을 입었다.
9전단이 폭격 목표로 노린 곳들 가운데 하나인 세이덴(정전,正殿)과 후시미야구라(伏見櫓)에서 히로히토 천황과 쓰구노미야 황태자가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히로히토 천황의 경우 폭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덕에 심각한 외상과 뇌출혈을 일으켰고, 황태자의 경우 폭발의 후폭풍에 휘말려 골절과 뇌진탕을 입었다. 그리고 폭격이 있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의식을 차렸지만 아직 의식이 명확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야마모토가 말한 이 ‘망극한 상황’은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참모가 야마모토를 붙잡고 막은 것은 위의 상황으로 인해 절체절명의 상황이 되어버린 제국 해군 때문이었다. 폭격으로 인해 해군성은 물론이고 대본영에 있던 해군의 최고급 지휘관들이 쓸려나간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최고급 지휘관은 야마모토가 거의 유일했다.
육군 역시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지만 육군은 도조 히데키가 멀쩡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야마모토가 사라지면 연합함대는, 제국 해군은 ‘제국 해군 최대의 적’인 육군에게 쓸려나갈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장관!”
야마모토를 붙잡고 참모가 필사의 설득을 하고 있는 사이, 또 다른 참모가 사령관실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
“참, 참모장이….”
참모가 우가키 마토메 참모장을 언급하자 야마모토는 무엇인가를 직감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야마모토의 귀로 참모의 말이 들려왔다.
“참모장이 권총으로 자결을 하셨습니다. 유서를 남기셨는데, 이번의 망극한 일의 모든 원인은 자기에게 있다며, 참모장으로서 사령장관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죄와 방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천황폐하께 누를 끼친 것에 책임을 진다며… 이 모든 일의 책임은 자기에게 있다고….”
보고를 하던 참모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며 흐느낄 때, 야마모토가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장하다! 우가키, 참으로 장하고 고맙다! 너야말로 사무라이로구나!”
자결한 우가키 참모장을 칭찬한 야마모토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두 명의 참모들을 바라봤다.
“다른 참모들과 연합함대의 함장들을 모아라! 설욕전을 벌인다!”
우가키 참모장의 자살 이후, 몇몇 고위 해군 장교들의 자결이 뒤를 이었다. 가장 먼저 요코스카 해군기지의 사령관이 할복을 했고, 뒤이어 요코스카 해군공창의 사령관과 연료기지의 사령관이 음독자살을 했다.
뒤이어 둘리틀 특공대의 추격전에 나섰다가 실패를 한 해군항공대 기지의 사령관들이 할복을 해버렸다. 해군 장교들의 자결이 연일 기사로 나오자 일본인들의 반응도 초반과 달리 날이 무뎌졌다.
거기에 더해 야마모토 자신이 나서서 설욕전을 외치자 일본국민들의 반응은 ‘그래도 진주만 공격을 성공시킨 명장이다. 믿어보자.’라는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 * *
“아쉽군. 아쉬워.”
민정사찰 보고서를 읽던 도조 히데키는 입맛을 다시며 서류를 내려놨다.
“조금만 더 몰아쳤으면 해군 놈들의 목줄을 움켜쥘 수 있었는데 말이야. 그렇게만 되었으면 남방의 유전지대도 우리가 가져오고, 소련을 제대로 칠 수 있었는데 말이야. 차아암, 아쉬워.”
“그렇습니다.”
도조의 평가에 옆에 서 있던 비서관이 화답을 했다. 팔짱을 낀 채 서류를 노려다 보던 도조는 비서관을 바라봤다.
“육군에 연락해서 미리 준비를 하라고 해. 야마모토라면 또 다시 거창한 작전을 들고 나올 거다. 자신의 목을 걸고 말이지. 적당히 맞춰주되, 진주만처럼 야마모토가 뒤로 빠지는 건 꼭 막으라고 해.”
“알겠습니다.”
도조의 명령을 암기한 비서관이 나가고 도조 히데키는 벽에 걸린 세계지도를 바라봤다.
“야마모토가 진다면 해군은 육군에게 백기를 흔들 수밖에 없게 되겠지. 해군의 전력은 그저 본토와 중국의 연결로, 그리고 자원지대만 적당히 방어할 정도면 돼… 그동안 너무 설쳤어.”
한참동안 해군을 씹어대던 도조 히데키는 세계지도에 붉게 표시된 러시아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루스벨트의 성격이라면 해군이 무너지면 바로 유럽으로 눈을 돌릴 거다. 이탈리아는 몰라도 도이치는 미국도 함부로 못해. 미국이 주춤하는 순간, 육군은 소련을 친다! 앞뒤로 물리면 소련도 무너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고립되는 것은 영국과 미국이지. 협상은 그때 가서 하면 돼.”
손가락으로 지도에 선을 그려가며 나름의 계산을 하던 도조 히데키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전략이야.”
* * *
1942년 5월 14일. 구레의 연합함대 사령부.
야마모토의 명령을 받고 일선에서 작전 중인 함정들을 제외한 연합함대의 모든 함장들과 참모들이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사령장관께서 입실하십니다.”
야마모토가 들어온다는 말에 회의실에 모였던 이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야마모토에게 경례를 했다. 경례에 답례를 한 야마모토는 상석에 앉았다.
“모두 자리에 앉도록.”
함장들과 참모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 자신에게 시선을 모으자 야마모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에… 지난 4월 18일. 우리 연합함대는 크나큰 치욕을 당했다. 귀축 미국의 폭격기들이 천황폐하께서 계시는 궁성을 폭격했다. 우리는 이 치욕을 되갚아줘야 한다! 그리고 그 설욕전에서 대승을 해서 미국의 의지를 꺾고 강화로 끌고 나와야 한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가운데 야마모토의 목소리만이 회의실을 울렸다.
“작전은 크게 2개로 나뉜다! 하나는 지난 4월 10일 제1항공함대가 큰 승리를 거둔 인도양에서 진행된다. 이 작전의 목표는 영국의 동방함대가 무너진 틈을 타 인도와 인도를 지나 수에즈 운하까지 손에 넣는 것이다! 수에즈 운하를 손에 넣어 도이치와 연계, 미국이 대서양을 이용해 넘어오는 것을 막고, 중국을 고립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미국의 신경이 대서양에 쏠린 틈을 타서 우리는!”
쾅!
야마모토는 벽에 걸린 세계지도의 한곳을 주먹으로 쳤다.
“이 하와이를 손에 넣는다!”
“하와이 ”
“하와이라고!”
야마모토가 하와이를 언급하자 조용하던 회의실 안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각 함대 사령관들과 참모들, 거기에 함장들의 목소리까지 더해진 소음이 정점에 달하자 야마모토는 소리를 질렀다.
“조용!”
야마모토의 일갈에 회의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소란을 잠재운 야마모토는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이 하와이를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은 제국을 수호하고 미국과의 강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하와이는 미국이라는 거인이 들어있는 거대한 병의 입구를 막는 마개와 같다. 이 거대한 병의 입구를 틀어막으면 미국은 나올 길이 없다! 미국은 홀로 고립되어 버리는 것이다!”
야마모토의 말이 잠시 멈췄지만 지휘관들은 모두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야마모토는 자신이 구상한 장대한 작전의 시나리오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미쳤군. 미쳤어….”
회의가 끝나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이노우에 시게요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원래대로라면 그는 지금 포트 모레스비 공략을 위해 산호해로 가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난 4월 18일의 공습으로 인해 그의 함대는 반전을 해서 일본과 가까운 태평양을 뒤지고 다녀야 했다. 그렇게 태평양을 뒤지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것이 닷새 전이었다.
휘하 함정들의 정비와 병사들의 휴식을 명한 이노우에는 연합함대의 분위기를 살피기 시작했다. 연합함대 사령부와 기함에서 과할 정도로 풍기는 살기에 이노우에는 점점 걱정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사령장관이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걱정이 된 이노우에는 야마모토와 만남을 추진했지만 야마모토는 계속해서 만남을 거부했다. 그리고 오늘 청천벽력 같은 작전계획을 들은 것이었다.
가슴이 답답해진 이노우에는 책꽂이 한쪽에 놓아둔 위스키 병을 찾아 뚜껑을 열었다.
“육군 미친놈들의 과대망상은 미쳐버린 육군이니까 그렇다 쳐도 야마모토 장관까지 왜….”
연거푸 술잔을 비운 이노우에는 잔뜩 성이 난 눈으로 창밖으로 보이는 전함 야마토를 노려봤다.
“제국의 해군이고, 제국의 육군인 것을… 어째서 군이 제국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