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26화 (26/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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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밀당… 그리고 공밀레, 공밀레… (5)

개인화기부터 지원화기까지 미군들의 화력이 일취월장하게 만든 이벤트가 끝이 났지만 맥네어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전차가 문제야….”

맥네어의 심정은 할 수만 있다면 미군의 모든 전차를 K1으로 도배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맥네어가 끌고 갔던 선발진부터 시작해 후발대로 갔던 엔지니어들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복합장갑은 차치하더라도 장갑이 두꺼울수록 생존성이 올라가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엔진입니다. 1200마력짜리 디젤엔진 당장 전차가 어뢰정 사이즈로 커질 겁니다!”

“조준장치도 문제입니다. 레이저 조준기는 물론이고 FCS용 CPU 진공관으로 같은 성능을 내려면 집 한 채 크기가 될 겁니다!”

“주포는 구경만 본다면 가능성이 보입니다…. 문제는 주퇴복좌 시스템과 포신 안정시스템입니다. 지금 생산을 시작한 셔먼에 수직안정장치가 달려있기는 합니다만 K1과 비교를 하면 원시인의 돌도끼 수준입니다.”

이런저런 안 된다는 말들이 튀어나온 다음에 전차 개발부 소속 엔지니어들이 내놓은 개발시안은 셔먼의 3배 덩치에 중량 105톤짜리 일명 ‘105-105’ 전차였다.

“현재의 기술력으로 장군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주포, 조준장치, 장갑, 출력을 가진 전차가 나온다면 이렇게 됩니다.”

“허….”

말도 안 되는 덩치의 전차를 그린 예상도를 본 맥네어 준장은 수석 엔지니어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수고했네. 돌아가도록.”

“알겠습니다.”

수석 엔지니어가 나가려고 하는 그 때, 맥네어 준장의 부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

“Mr.정이 준장님을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무슨 일로 ”

“전차에 관련된 문제라고만 대답했습니다.”

“당장 안으로 모시도록!”

부관을 내보낸 맥네어 준장은 전차 개발부 수석 엔지니어를 돌아봤다.

“자네도 여기 있게.”

“알겠습니다.”

잠시 후, 부관의 안내를 받아 들어온 정 수석과 악수를 나눈 맥네어는 정 수석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용건을 물었다.

“무슨 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여기까지 온 것이오 ”

“전차문제 때문입니다.”

“그 문제로 솔직히 우리도 골치가 좀 아프오.”

맥네어는 수석 엔지니어가 가지고 온 시안을 정 수석에게 보여줬다.

“지금 사용 가능한 기술력으로 K-1과 동일한 전력을 가진 물건을 만들자니 이런 골리앗이 튀어나오더군.”

“이미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쪽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제안 ”

맥네어가 던진 질문에 정 수석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맥네어에게 내밀었다. 서류철의 커버를 넘겨 제목을 살핀 맥네어는 눈을 크게 뜨고 정 수석을 바라봤다.

“M47패튼 패튼이라면 그 패튼이 맞소이까 ”

“그 패튼 맞습니다.”

“그 미친 카우보이가 왜….”

패튼이라는 작자가 어떤 작자인지 알고 있던 맥네어는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서류에 적힌 제원을 살펴 내려갔다.

“90mm 주포라… 방어력은 최대 4.5인치….”

꼼꼼하게 제원을 살피던 맥네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항속거리만 빼고는 아주 좋군. 읽어보게.”

맥네어가 넘긴 제원표를 꼼꼼하게 살핀 수석 엔지니어도 고개를 끄덕였다.

“항속거리가 좀 걸리기는 합니다만… 셔먼보다는 확실하게 우수합니다.”

수석 엔지니어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자 맥네어는 정 수석에게 서류를 돌려줬다.

“잘 봤소이다. 그런데 이걸 왜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오 지난번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이 전차를 본 기억이 없소.”

“이 전차의 설계도를 팔고 싶습니다. 제작에 필요한 모든 부분이 다 있지요. 차체설계에서부터 엔진과 미션의 설계도까지.”

“정말이오!”

맥네어는 의자에서 튕기듯이 일어났다.

*    *    *

맥네어가 전차를 보고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간 그날 밤,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가던 벌레와 빨갱이를 불러 세우는 이가 있었다.

“이봐, 벌레하고 빨갱이. 나 좀 보자.”

“왜요 어르신 ”

그들을 부른 도남규 정비 치프는 기갑차량의 정비를 담당하던 준위 출신으로써 군대 짬밥 먹은 시간만 따지면 원 수석치프보다도 더 고참이었다. 덕분에 원 수석치프조차 그 앞에서는 함부로 말을 하지 않았고, 벌레와 빨갱이도 ‘어르신’이라고 부르는 이였기에 벌레와 빨갱이는 그들답지 않게 공손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벌레와 빨갱이를 부른 도남규는 내려놓았던 커다란 도면통을 어깨에 걸쳤다.

“너희들. 똘똘이하고 친하다고 했지 앞장서라.”

“예 똘똘이요 ”

“필코 마이닝의 걔. 요즘 펄펄 날아다니는 걔 말야.”

도남규의 말에 벌레와 빨갱이는 바로 정 수석팀장의 숙소로 도남규를 안내했다.

“무슨 일이야 ”

세 사람을 맞이한 정 수석팀장이 용건을 묻자, 벌레와 빨갱이는 뒤에 선 도남규를 정 수석팀장에게 소개했다.

“도남규 어르신이다. 장갑장비 정비팀의 치프시고.”

“아, 예. 처음 뵙겠습니다.”

“만나서 반갑소이다. 내가 볼 일이 좀 있어서 이 친구들에게 부탁을 했소.”

“제게 말입니까 무슨 볼 일이신지 ”

정 수석팀장의 물음에 도남규는 어깨에 메고 있던 도면통을 정 수석팀장의 책상 위에 올려놨다.

“자네, 이거 얼마까지 받을 수 있나 ”

“예 ”

뜬금없는 도남규의 물음에 정 수석은 도면통을 열어 안에 들은 내용물을 꺼냈다.

“이건 ”

“어라 ”

“어르신, 이걸 왜 어르신이 ”

도남규가 가지고 있던 도면통에서 나온 것은 M47패튼의 설계 청사진이었다.

심각한 얼굴로 청사진들을 바라보던 정 수석팀장과 벌레, 빨갱이는 도남규의 설명을 듣고는 황당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이 청사진들이… 어르신 부업이라고요 ”

“부업은 전차 리스토어고, 이건 그 부업의 부산물이라니까! 말을 하려면 제대로 해!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무슨 간첩질한 것 같잖아!”

도남규의 설명에 따르면 M47의 설계 청사진을 얻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도남규는 자신의 직업과 관련되어서가 아니라 취미라는 관점에서도 전차에 흥미가 많았었다. 그것도 전차포를 쏴댄다던가 몰고 다니는 쪽보다는 차체의 구조나 구동계통을 관찰하고 정비하는 것을 즐기는 ‘덕업일치’의 사람이었다.

경력이 쌓이면서 여유를 갖게 된 도남규는 해외의 전차 매니아들의 포럼을 돌아다니며 전차정비와 관련된 토론을 즐기게 되었다. 현역 군인으로써 최신 전차는 물론이고 구형전차에 대한 기술적 지식까지 가지고 있는 덕에 도남규는 인터넷을 통한 친분이지만 해외의 전차 매니아들과 강한 친분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막 퇴역을 했을 무렵, 도남규는 인터넷에서 폐차 처리된 M47을 구매하고 나서 재생에 어려움을 겪는 이가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읽게 되었다.

한국군의 M47을 정비해봤던 이들 가운데 마지막 세대였던 도남규는 바로 나섰고, 재생이 끝난 이후 소정의 수고비와 함께 청사진을 얻게 된 것이었다. 그것이 필코 세이프티의 제안에 응해 정비팀 치프로 근무를 시작하기 직전의 일이었다.

도남규의 설명을 듣긴 했지만 나머지 셋은 자신들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양반은 이 청사진을 어디서 구한 거란 말입니까 이런 청사진들은 다 1급 기밀 아닙니까 ”

“다 퇴역해서 고철로 팔리는 애들 설계도가 무슨 기밀이야 발품 팔면 다 구해.”

“…….”

“덕 중의 덕은 양덕이란 말 몰라 돈 많고 시간 많은 양덕들이 꽂히면 이런 거 구하는 건 일도 아니다. 어쨌거나 정 수석, 이거 얼마나 받을 수 있어 ”

도남규의 물음에 정신을 차린 정 수석팀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협상에 들어갔다.

“파시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이걸 잘 이용하면 앞으로의 한미관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도와주실 수는 없으시겠습니까 ”

“난 빤스까지 벗어서 줄 정도의 애국자는 아냐. 내가 왜 정 수석팀장에게 왔겠나 자네라면 알아서 더 챙길 수 있을 것 아냐.”

도남규가 말한 의미를 알아챈 정 수석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원하시는 금액이 얼마입니까 ”

도남규는 손가락 다섯 개를 펴보였다.

“오만 ”

“아니, 오백만 달러.”

“쿨럭!”

“어르신. 미치셨습니까 지금 1942년입니다! 오백만 달러면 21세기에도 큰돈인데, 지금은 엄청나게 많은 돈이라는 거 모르시는 거예요 우리 월급이 지금 얼마인데!”

도남규가 원하는 금액을 들은 빨갱이와 벌레가 기막혀 했지만, 정 수석팀장은 의외로 진지했다.

“시행착오에 소모되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미국이 설득될 가능성이 꽤 높습니다만, 오백만이라면 거부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도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최저금액은 얼마입니까 ”

“삼백만.”

“이백만은 어떻습니까 ”

“삼백만.”

“이백만으로 하시지요.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리숭민과 임정을 생각한다면 저희도 총알이 필요합니다. 제가 책임지고 이백만은 확보해 드리겠습니다.”

정 수석팀장의 말에 도남규는 생각에 잠겼고,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벌레와 빨갱이는 침만 꼴깍꼴깍 삼켜댔다. 한참동안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도남규가 결론을 내렸다.

“좋네. 최소 이백만, 최대 오백만. 나머지는 자네 능력껏 챙겨봐. 마음에 드나 ”

도남규의 결정에 정 수석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꺾었다.

“감사합니다!”

“옵션으로 하나 더. 박인수 당장 제대시키고.”

“예 ”

도남규는 벌레와 빨갱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네놈들이 계약한답시고 그렇게 떠들어댔는데 소문이 안 날 것 같았냐 알만 한 놈들은 다 안다. 장래성 있는 놈을 애먼 곳에서 총 맞고 뒤지게 만들 일 있냐 ”

도남규의 말에 벌레는 그제야 도남규가 나선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럼 어르신 이거 팔아먹은 것도 ”

“나도 투자하련다. 안정된 노후를 위해서 말이야.”

“그럼 그냥 오백만불 갖고 계시는 것이….”

“마! 돈은 불려야 맛이다!”

도면통을 신줏단지 모시듯이 조심스럽게 한쪽으로 모셔두고 돌아와 그 광경을 보던 정 수석팀장은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표정이 이리저리 바뀌더니 도남규를 불렀다.

“저, 어르신… 저와 잠시 따로 대화를 나누시지 않겠습니까 ”

“또 할 이야기가 있나 ”

“이번 일, 이면계약에 대해 좀 더 조율을 하고 싶습니다.”

도남규는 정 수석팀장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바로 알아들었다.

“수수료 ”

“예.”

정 수석팀장의 대답에 옆에 있던 벌레와 빨갱이가 딴죽을 걸었다.

“야! 갑자기 왠 수수료야!”

“이거 또 못된 버릇 튀어나오네! 너도 월급 받잖아!”

“아, 썅! 네놈들은 지난 필리핀 전투 때부터 산정해서 급여 지급되었잖아! 거기에 위험수당도 거하게 붙었고. 필코 마이닝 사람들은 이제야 첫 월급 받았다! 그것도 광산 팀은 눈치 보인다고 월급 도로 갖고 왔고! 그 사람들은 무슨 물만 먹고 사는 사람들이냐!”

정 수석팀장의 항변에 벌레와 빨갱이는 입을 다물었고, 정 수석팀장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던 도남규가 결론을 내렸다.

“내 대신 팔아주는데 수수료는 당연히 있어야지. 한번 의견을 교환해 보세나. 너희 둘은 좀 나가있고.”

*    *    *

‘M47패튼이라 불리는 중(中)전차의 설계도를 팔겠다.’라는 제안은 바로 마셜에게까지 올라갔다. 소식을 들은 마셜은 바로 정 수석팀장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다.

“Mr.정이 맥네어 장군에게 한 제안은 이미 들었소. 설계도를 팔겠다고 공동생산이 아니라 ”

“전차의 설계도가 정부의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유물입니다.”

“기증을 하는 것이 애국자의 도리 아닌가 ”

“이미 판매금액의 상당부분을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정 수석팀장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마셜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 얼마를 받기 원하오 ”

“천만 달러입니다.”

“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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