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전단 1941-23화 (23/464)

# 23

23화 밀당… 그리고 공밀레, 공밀레… (2)

시간이동을 당한 다음 필코세이프티 직원들이 벌인 선상반란을 통해 치르게 된 첫 번째 토론에서 마닐라로 들어가는 것과 각자의 할 일이 정해졌다. 하지만 그 다음으로 나온 안건에서 또다시 격론이 벌어졌다.

안건의 내용은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가 ’였다. 안건이 나오자 제일 먼저 발언에 나선 것은 정 수석팀장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숨길 수가 없습니다.”

“숨길 수가 없다 ”

고 제독의 물음에 정 수석팀장은 격납고의 천정을 가리켰다.

“이 덩치를 어떻게 숨길 것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지분을 제대로 챙기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만날 사람들한테서 얼마나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가능할 정도의 능력이면 세계정복이 더 쉬울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건가 ”

“그냥 오픈하는 겁니다. 그렇게 오픈해버리면 오히려 위장공작이라고 믿는 이들이 더 많을 겁니다.”

정 수석팀장의 말에 강 대령이 반박을 하고 나섰다.

“만약 그렇게 오픈했다가 우리가 가진 기술이 유출되면 어떻게 하나 우리가 가진 첨단기술이야말로 진짜 귀중한 것 아닌가 ”

“강 대령님. 대령님은 반도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아십니까 아니, 들고 계시는 태블릿의 액정이 어떤 소재로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아십니까 ”

“모르네. 자네는 아나 ”

“저도 모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만날 것이 확실한 미국의 엔지니어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진공관이 첨단 소재인 시대에 CPU를 갖다 내밀면 바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시간이 흐르면 가능하겠지만 바로 지금은 무리입니다.”

“그 시간이 더욱 짧아질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

강 대령은 계속해서 반발했지만 정 수석팀장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였기에 두 사람의 설전은 길고 격하게 이어졌다.

“우리 역시 그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 겁니까 한반도가 반동강이가 나지 않고, 6.25로 잿더미가 돼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을 겪지 않는다면, 거기에 앞으로 무엇이 만들어지고 무엇이 돈이 되는지 알고 있는 우리가 키를 잡는다면 우리 역시 시간을 확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하십니까 ”

“그러니까, 더더욱 움켜쥐고 숨겨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만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보이고 나눈다는 것은 호구나 하는 일 아닌가! 자네는 우리를 호구로 만들고 싶은 것인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완성품이지 제조기술이 아닙니다. 속담에 비유하자면 어느 생선이 맛있는 생선인지, 그리고 그 생선을 요리하는 법은 알고 있지만 정작 생선 낚는 법과 낚싯대와 그물 만드는 방법, 그리고 그 생선을 잡기 위해 타야 할 배를 모는 법은 하나도 모르고 있는 상태란 말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계속 배가 부르려면 생선 요리로 어부를 꼬셔서 계속 생선을 받던가, 아니면 생선 낚는 법부터 시작해, 생선이 부엌에 오기 직전까지 벌어지는 일들을 배워야 하는 겁니다! 방금 전 제가 말씀드린 ‘우리도 시간을 줄일 수 있다.’라는 말 때문에 그러시는 것 같은데, 우리가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되는 것은 무엇을 먼저 배워야 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첨단 기술은 우리 대한민국과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어야 해!”

“그 첨단 기술을 만들려면 그 첨단에 밀려난 기술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우리들도 그렇고 저 한반도에 있는 이들 가운데 그 기술을 아는 이들이 몇이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 소수라도 우리 민족이라면 능히 가능하다고 본다! 나는 우리 민족을 믿는다!”

“히틀러도 그 소리하다 전쟁에서 깨지고 지 대가리에 방아쇠를 당겼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첨예하게 대립을 이어갔다. 조용히 두 사람의 대립을 보던 빨갱이가 벌레를 돌아봤다.

“국뽕 맞은 민족주의자와 자본주의자의 대결이네.”

“파시즘에 물든 국수주의자와 세계주의 자본주의자의 대결이겠지.”

결국 두 사람의 대립이 길어지자 고 제독이 나섰다.

“두 사람은 잠시 쉬도록 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지.”

고 제독의 강제정지 명령에 두 사람은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의 소강상태가 이어진 이후, 다른 이들이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다. 주장과 그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 그리고 새로운 의견의 발표가 이어지면서 모인 이들의 의견은 한 군데로 집중이 되었고 표결로 결정이 났다.

“결국, 누출해봤자 당장의 문제는 없을 것이고… 오히려 이를 미끼로 필요한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포섭한다 그리고 미국 정치인들의 지원을 획득한다 마지막으로 효율을 좀 더 높이기 위해 앞으로의 행보에 관한 정책 기획은 정 수석팀장이 맡아 진행한다. 단 정책의 선택 여부는 공개토론을 통해 정해지며 이는 임정 요인들이 합류해도 마찬가지이다.”

토론의 결과물을 다시 한 번 음미하던 벌레는 정 수석팀장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안색이 안 좋은 강 대령과 달리 자신만만한 표정을 하고 있는 정 수석팀장의 모습을 본 벌레는 작게 중얼거렸다.

“판정승이다, 새꺄. 너무 좋아하지 마라. 까딱 잘못하다간 된통 당한다. 똑똑한 놈이니 그걸 모르지는 않겠지 노안 정 선생.”

*    *    *

자신들이 생각한 대로 루스벨트를 비롯한 미국의 고위층들이 넘어오는 것을 본 고 제독은 준비했던 또 다른 일격을 루스벨트에게 가했다.

“각하, 오신 김에 잠시 건강검진 한번 안 받아보시겠습니까 ”

“건강검진 ”

‘건강검진’이라는 말에 루스벨트는 맥킨타이어 소장을 돌아봤다. 얼굴이 붉어진 맥킨타이어 소장이 뭐라 하기도 전에 고 제독이 말을 덧붙였다.

“물론, 미국의 의술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 배에는 새로운 장비들이 있으니 한번 이용해 보시라는 것이지요.”

“새로운 장비라….”

호기심이 동한 루스벨트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받아봅시다.”

“한반도의 의무 지휘관 류호섭 중령입니다.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나도 반갑소.”

의무 구역의 입구에서 루스벨트를 맞이한 류 중령은 의무구역 안쪽으로 루스벨트를 안내했다. 여전히 호기심에 가득 차서 싱글벙글하는 루스벨트와 달리 주치의인 매킨타이어 소장은 뭐 씹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검진실로 류 중령은 앞에 앉은 루스벨트에게 영문으로 번역된 문진표를 내밀었다.

“시작은 간단한 문진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혈액검사와… 아! 식사는 언제 쯤 하셨습니까 ”

“정오경에 점심을 먹었소만….”

“드신 음식의 종류와 양도 거기에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아까 혈액검사까지 말씀드렸지요 그 다음에 간단한 초음파 검사와 CT 촬영, MRI촬영이 있습니다.”

“CT MRI "

난생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매킨타이어 소장이 끼어들었지만 류 중령은 별 거 아니라는 어조로 대답했다.

"말로 설명을 하자면 상당히 복잡하고, 직접 보시면 아십니다.”

“…….”

“우선 옷부터 갈아입으시지요.”

그리고 루스벨트는 ‘해상사고 또는 낙도의 긴급환자’가 아닌 ‘첫 민간인 환자’의 신분으로 검사대에 올랐다.

루스벨트의 검사가 진행되는 동안 고 제독은 쓴웃음을 지으며 류 중령에게 투덜거렸다.

“처음 이 배에 올랐을 때부터 궁금했던 거지만 항공모함에 CT와 MRI가 왜 있는 거요 이 배는 의무선이 아니라 항공모함인데 ”

“눈에 잘 보이고 수술하기 좋은 곳에만 부상을 당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수술하기 힘들다고, 치료하기 힘들다고 부상병들 죄다 병신 만들어 내보낼 겁니까 그 후에 들어갈 복지비용은 생각 안하십니까 ‘자식새끼 군대 갔다가 병신 돼서 돌아왔다!’라는 기사 계속 보시고 싶으셨나 봅니다 ”

“…….”

*    *    *

처음 1박 2일로 예정되었던 루스벨트의 샌프란시스코 일정이 3박 4일로 늘어나면서 행정부와 정치권에 관심이 샌프란시스코에 쏠렸다. 한술 더 떠 ‘기회가 닿는 대로 다시 갈 수 있으면 또 가겠다.’라는 루스벨트의 발언에 워싱턴의 정가는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지금 헐 국무장관의 집무실에서도 소란이 일고 있었다.

“지금 당장 그 항공모함을 체서피크만으로 끌고 와야 합니다!”

“보고서를 보니 그 항공모함은 파나마 운하를 통과 못해요! 너무 크단 말입니다!”

“그럼 워싱턴의 국방부를 샌프란시스코로 옮깁시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니미츠 사령관!”

“농담이 아닙니다! 지금 제 심정으로는 지금 건조하고 있고, 앞으로도 건조할 에식스급 항공모함들 가운데 대한민국 해군이 원하는 만큼 가져가고 대신에 그 항공모함을 달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란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농담도 가려서 하시오!”

자신의 집무실에서 헐 국무장관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니미츠 사령관을 노려봤다. 주변의 다른 이들 모두 니미츠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었고.

백악관의 루스벨트를 비롯해 눈앞에서 씩씩거리고 있는 니미츠 제독까지 샌프란시스코에 갔다 온 이들은 모조리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특히나 루스벨트와 그의 주치의인 매킨타이어 소장은 방금 니미츠가 했던 말을 실제로 옮길 기세였다. 아니 실제로도 백악관에 돌아오자마자 루스벨트 대통령이 먹는 약의 상당수-대표적으로 용량을 줄인 아스피린 제재가 정기 복용 약재로 추가되었다-가 바뀌어 버렸고 각종 물리치료와 식사 메뉴의 변경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보시게, 니미츠 제독. 도대체 그 항공모함부터 시작해 함선들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러는 건가 ”

“보고서 안 읽으셨습니까 ”

니미츠 제독의 물음에 킹 제독은 손을 휘휘 저었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중간에 읽다 말았네. 도대체가 탐지거리 200마일이 넘는 레이더가 겨우 배수량 1만 톤인 대형 ‘구축함’에 탑재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

“현재의 기술로는 말이 안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현재’의 기술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니미츠 제독의 대답이 뜻하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조용히 헐 국무장관과 니미츠, 킹 제독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를 관찰하고만 있던 마셜 육군참모총장이 딱딱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

“비유가 아닙니다.”

니미츠 제독의 대답에 마셜 육군참모총장은 소파에 등을 기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믿을 수가 없군.”

“그러시면 직접 보시면 됩니다. 나흘 후에, 지상전 장비의 시현과 ‘육군과 관련된 특별한 제안’이 있다고 했습니다.”

“알겠네. 그럼 직접 가보지.”

마셜 육군참모총장이 결론을 내리자 이번에는 리히 최고사령관 참모장이 니미츠를 붙잡고 늘어졌다.

“육군은 마셜 장군만 믿으면 될 것 같고, 내가 궁금한 것은 대통령이 왜 해군 병기개발국에 대한 집중적인 감사를 지시했냐는 것이오. 대통령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니미츠 제독에게 들으라.’라는 대답밖에 들을 수가 없었소. 도대체 이유가 뭐요 ”

리히 최고사령관 참모장의 물음에 니미츠는 가방에서 서류철들을 꺼내 국무장관을 비롯해 집무실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한부씩 나눠졌다.

“지금 당장 일본을 막는데 써야 하는 우리의 최신무기에 심각한 결함이 발견되었습니다.”

“봅시다….”

돋보기를 끼고 니미츠가 건넨 서류철을 펼쳐든 헐 국무장관은 범상치 않은 제목에 목소리가 커졌다.

“‘어뢰 스캔들’이라고 ”

제목 빼고 단 4페이지의 짧고 간단한 서류였지만 그 후폭풍은 만만치가 않았다. 루스벨트 대통령부터 시작해 미 육군과 해군의 수뇌부들이 가장 주목한 것은 서류 마지막 부분에 있던 짧은 문단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미 해군 잠수함이 제대로 된 전력으로서 활동하기까지 약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으며 결과적으로 그 시간동안 미군의 효율적인 반격이 늦어지게 됨과 동시에 필요 이상의 병력손실과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해군 병기개발국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와 동시에 문제가 되었던 잠수함용 Mark.14 어뢰를 이용한 대대적인 실사 테스트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하군.”

보고서를 받아든 어니스트 킹 제독과 니미츠 제독, 그리고 리히 최고사령관 참모장의 평가로 알 수 있었다.

‘어뢰 스캔들’이 만들어낸 결과 가운데 해군 9전단에 미친 영향이 가장 큰 것은 해군 9전단이 내놓는 정보의 신뢰도가 최상등급으로 향상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군 고위층의 시선이 호의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랄프 왈도 크리스티 제독을 포함해 ‘어뢰 스캔들’로 목이 달아난 이들은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는 심정이 되었지만.

마지막으로 피를 본 것은 소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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