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18화 샌프란시스코 (1)
대한민국 9전단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미국으로 불렀을 때, 관계자들은 그들의 도착지로 하와이 진주만을 예상했었지요. 군항도 있고, 섬이라 정보 통제도 가능했으니까.
그런데 샌프란시스코로 불러들이라는 명령이 내려온 겁니다. 해군본부가 발칵 뒤집혔지요. 다들 누가 명령을 내린 건지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출처가 백악관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다들 입을 다물었어요.
백악관의 그 양반이 배 좋아하는 건 모두 다 아는 사실이었으니까….
- 로버트.S.뉴컴. 전직 미 해군 소장.
- 2005년. 2차 대전 종전 60주년 특집 BBC 다큐멘터리.
‘2차 대전 음모론의 총아, 대한민국 해군 9전단’의 1화 ‘갑자기 나타난 그들’ 중에서…….
* * *
호주의 다윈항.
예인선과 도선사의 안내에 따라 연합국의 함선들이 줄지어 부두에 접안을 했다. 조촐한 환영행사가 끝나고 다른 연합국들의 수병들이 항구의 술집들로 몰려가는 것과 달리 한국인들은 다시 배에 올라야만 했다.
“우리는 왜 이 깡통에 쳐박혀 있어야 하는데! 썅! 우리도 땅 좀 밟자!”
“돈 있냐 ”
“딸라 있어!”
“1941년에 2000년대에 찍힌 달러 내밀면 참 좋아하겠다, 그지 ”
“씨팔….”
행사가 끝나자마자 다시금 함선에 올라야만 했던 것에 대한 분통을 터뜨리던 수병은 동료 수병의 지적에 욕설을 내뱉고는 자신의 침대로 몸을 던졌다.
“애들 불만이 심합니다.”
“애들만 심하겠나….”
한반도 함의 함교에서는 함장 강 대령과 부장 이 중령이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었다.
일반적인 항해에서도 승조원들이 감내해야 할 스트레스는 상당했는데 시간이동과 실전을 겪은 승조원들의 스트레스는 위험수준에 도달한 실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 제독과 함장들은 상륙허가를 내줄 수가 없었다.
아직 미군 외에는 모르는 한국군 장비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한 것을 비롯해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돈이 없어.”
호주에 마련된 임시 사령부로 향하는 차 속에서 고 제독은 난감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시간이동을 하면서 고 제독을 비롯해 한국인들 모두가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처음 한국에서 출발할 때만 하더라도 다들 현찰로 2~300 달러씩 챙겼던 비상금과 크레디트 카드들이 모조리 쓰레기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결과, 식자재의 보급부터가 탈이 나 버렸다. 마닐라에서 도망 나올 때 미군의 창고를 털어 어느 정도는 챙겼다지만 앞으로의 일이 문제였다.
“돈만이 문제가 아니지. 의약품의 문제도 있고….”
전선에서 마닐라로 철수하는 미군들을 보호하기 위한 전투에서 한국군이 손해를 안 본 것은 아니었다. 일본군과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교전에 참가한 필코 세이프티의 직원 가운데 사망자는 안 나왔지만 열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부상을 입은 직원들은 그 즉시 차량과 헬기를 이용해 한반도 함의 의무시설로 옮겨져 치료에 들어갔다. 부상자들의 예후는 좋지만 의료진들의 고민은 그 과정에 소모된 그리고 앞으로 소모될 약품들을 구할 수 있겠는가에 쏠려 있었다.
이런저런 고민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채 연합군 사령부로 들어선 고 제독은 맥아더와 참모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게. 제독.”
짐들을 정리하고 통신선을 점검하느라 부산한 회의실을 지난 고 제독이 사무실로 들어서자 이런저런 서류를 결재하느라 정신이 없던 맥아더가 반갑게 맞이했다. 결재를 받아야 할 서류뭉치들을 든 참모를 사무실 밖으로 내보낸 맥아더는 고 제독에게 자리를 권하고는 한쪽에서 위스키와 잔들을 가져왔다.
“자네의 함선들 덕분에 편하게 왔네, 감사하네.”
“별 말씀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덕분에 쓸모없는 희생을 피할 수 있었지. ‘전투를 피한 비겁자.’라는 말도 나오고 있기는 한 모양이지만 말이야.”
“그래도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게는 되었지 않습니까 필요 없는 전투로 전력만 날리는 일은 피해야지요.”
“그렇게 생각해야겠지. 빌어먹을 영국 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던 맥아더는 서류철 하나를 고 제독에게 내밀었다.
“본국에서 온 전문일세. 자네들을 환영한다는군.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필요한 지원을 지금 즉시 해주겠다는 소식일세. 승무원들의 휴식도 포함해서.”
맥아더의 말에 통신문의 첫째 페이지를 살핀 고 제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입니다. 제 부하들을 상륙시킬 수 있겠군요.”
“아, 그건 좀 더 좋은 곳에서 쉴 수 있을 것 같군. 다음 페이지를 보게.”
맥아더의 말에 고 제독은 통신문의 페이지를 넘겨 두 번째 장을 살폈다. 두 번째 장에 적힌 행선지를 본 고 제독이 맥아더를 돌아봤다.
“샌프란시스코로 가란 말입니까 ”
“연료와 식량이 보급되는 즉시 출발해야 하네. 그리고….”
“이번에도 나와 하트 제독이 동행할 것이네.”
* * *
“제일 특이했던 점이라… 아, 그거였지. 내가 다윈에서 한번 보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또 봤던 건데, 아! 본 건 아니고 들은 건가 좌우지간 그 사람들 토론을 좋아했어요. 미군인 나까지 낀 토론은 아니었지만, 다들 한 자리에 모여서 되게 길게 토론을 하더구먼. 그 다음에는 좌우도 안 보고 움직이더라고.”
- 마이클 스톤. 전직 해군 수병.
대한민국 해군 9전단의 특징이라면 수직적 체계를 가짐과 동시에 수평적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후일 대한민국 육군으로 지상병력과 해상병력이 갈려서 움직이기 전까지, 그들은 중요사안이 있을 경우 그들만의 공개토론을 가졌다.
토론의 장에서 그들의 계급은 아무런 권한이나 제한을 가지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 토론에서 정책이 정해지면 그들은 하나의 단일개체처럼 행동했다. 미국에서 이름이 높았던 독립운동가인 리숭민의 몰락 역시 그 결과물들 가운데 하나라고 많은 연구가들이 주장하고 있다.
2005년. 2차 대전 종전 60주년 특집 BBC 다큐멘터리.
‘2차 대전 음모론의 총아, 대한민국 해군 9전단’의 1화 ‘갑자기 나타난 그들’의 내레이션 한 토막.
* * *
“샌프란시스코로 오라는 미국 정부의 전언을 어떻게 생각하나 ”
항구에 접안한 한반도 함의 제독 회의실. 각 함의 함장들과 성 부장과 송 사장을 비롯한 민간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국이 보내온 통신문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고 제독의 물음에 강 대령은 의문을 표시했다.
“샌프란시스코입니까 하와이의 진주만을 예상한 것과는 좀 다릅니다.”
“정보통제가 가능한 하와이가 더 유리할 텐데 미국인들이 왜 이런 결론을 내린 거지 ”
“본토라… 미국 애들이 겁을 상실한 건가 ”
강 대령을 비롯한 함장들의 공통된 의견은 ‘왜 샌프란시스코 ’라는 것이었다. 필리핀에서 미군의 탈출을 도와주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확실하게 아군이라고 확인할 수 없는 군사세력을 본토로 불러들인다
사관학교에서 배운 군사적 지식이 아니더라도 일반 상식을 기반으로 생각해도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일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함장급 고급 장교들 모두 ‘왜 ’라는 의문이 가득했지만 결론은 성 부장의 말 그대로였다.
“고민해서 뭐합니까 당장 아쉬운 건 우리인데 부르면 가야지 별 수 있어요 ”
“그렇기는 하지만….”
“성 부장 말마따나 오라니 가야 하겠지만 앞으로의 일이 문제입니다.”
고 제독의 말에 가장 먼저 의견을 내놓은 이는 성 부장이었다.
“다시 한 번 공개토론 합시다.”
“공개토론… 말입니까 ”
“여기서 이렇게 쥐어짜 봐야 한계입니다. 제독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다들 20년 이상 군대 짬밥만 먹은 이들 아닙니까 아직 사회에서 먹은 짬밥이 군대 짬밥보다 많은 이들을 이용해 보자고요.”
“다들 새파란 애송이들 아니요 ”
강 대령이 반박을 하자 성 부장이 다시 반박을 했다.
“그 새파란 애송이들이 가진 사회적 지식이 가장 최신판이라는 건 생각 안 해봤어요 ”
성 부장의 말에 자리에 있던 모든 고급 장교들은 애매모호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다들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가운데 성 부장은 계속해서 자신의 주장에 살을 붙여갔다.
“여기서 이렇게 몇 명 모여서는 답 안나요. 가지고 있는 경험이라는 데이터도 적고 두뇌라는 CPU도 기능이 한정적이란 말이지. 그냥 공개토론해서 빅 데이터에 CPU 있는 대로 돌려 봅시다.”
성 부장의 말에 고 제독은 결론을 내렸다.
“그래, 합시다. 공개토론. 귀관들의 생각은 ”
제독의 물음에 별달리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한 함장들은 공개토론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 * *
그날 밤, 함재기를 모조리 비행갑판으로 올려 텅 비어버린 한반도의 격납고에 9전단 소속 승조원들과 필코 세이프티, 필코 마이닝의 직원들이 모여들어 제2차 공개토론이 시작되었다.
국민의례가 끝나고 고 제독은 첫 번째 안건을 토론에 올렸다.
“…이상과 같이 미국 정부는 우리 전단이 샌프란시스코로 오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에 여러분들의 의견을 구하자고 한다.”
고 제독의 발언이 끝나자 수병 하나가 손을 들었다.
“그냥 샌프란시스코로 가면 되는 것 아닙니까 ”
“왜 샌프란시스코로 가야 하는 것이 문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미국이라고 가정한다면 단지 필리핀에서 자국 군인들을 철수시켜 준 것 하나로 아군이라고 믿고 본토로 부른다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와이의 진주만이라면 모를까….”
고 제독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꽤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우리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아닐까요 그냥 단순하게 우리 배들이 몽땅 다 들어가기에는 샌프란시스코가 적당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봐, 진주만도 넓다고!”
“진주만이 지금 제정신이겠냐!”
이런저런 설전이 오가는 가운데 필코 마이닝 소속의 정길수 수석팀장이 발언권을 얻었다.
“제 생각은 우리가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된 이유가 의외로 간단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하다 ”
“예. 단단히 무장한, 그것도 항공모함으로 무장한 외국의 함선들을 본토의 항구로 불러들이는 것은 최고결정권자가 결재를 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맞지요 ”
“그렇지.”
“반대로, 최종결정권자가 강력히 원하면 하부에서는 원하지 않더라도 그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맞지요 ”
“그렇네만… 그렇다면, 정 수석팀장의 의견은 최종결정권자가 원했기 때문에 우리가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되었다는 말인가 ”
“그렇습니다. 예전에 심심풀이로 인터넷을 뒤지고 다녔을 때, 루스벨트가 해군을 좋아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있습니다. 관련된 여러 일화도 있었고요. 따라서 이번 명령은 최고결정권자가 내린 명령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기에는 너무나 억측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우리 상황에 명령을 거부하고 다른 액션을 취할 여력이 있습니까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왈가왈부를 하는 것은 쓸데없는 말장난일 뿐입니다.”
정 수석팀장의 일침에 고 제독을 비롯한 함장단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정 과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지금 ‘왜 샌프란시스코냐 ’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고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이후의 일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욱 큰 호기를 잡은 것일 수 있습니다. 아니 호기를 잡았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