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16화 마닐라 익스프레스 (6)
“고생했네.”
철수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총사령부 건물에서 극동미육군 참모장 서덜랜드 중장은 방금 전 전선에서 돌아온 참모를 치하했다.
“그래, 저 대한민국 지상군의 화력을 관찰했다고 ”
“철수 과정에서 일본군과 조우한 덕택에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보고서를 제출하게. 떠날 때 떠나더라도 확인할 것은 확인해야겠지. 1시간 안에 가능하겠지 ”
“가능합니다.”
1시간 후, 서덜랜드 준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보고서를 내려놨다.
“이게 말이 되나 ”
“저도 보기 전에는 믿지 않았을 겁니다.”
참모의 대답에 서덜랜드 준장은 보고서를 다시 들어올렸다.
“전원 자동화기로 무장… 토미 건인가 ”
준장의 혼잣말에 참모는 주머니에서 탄환 두개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토미 건은 아니군 ”
“작은 것은 전투요원들의 대부분이 사용하는 것이고 커다란 하나는 고참으로 보이는 이들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큰 것은 30구경 정도인가 ”
“그렇게 보입니다.”
“흐음….”
참모의 보고에 서덜랜드 준장은 탄환을 들고 유심히 살폈다. 그 역시 본국에서 반자동 소총이 제식화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상관이 그 신형소총을 보내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물을 먹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고… 탄환을 살피던 준장은 계속해서 보고서를 살폈다.
“수류탄 위력의 유탄을 연속 발사하는 차량 탑재 기관총으로 적의 진격을 분쇄… 뛰어난 험지 주파능력을 가진 장갑차량… 1인 운반이 가능한 다목적 로켓병기 ”
“RPG라고 불렀습니다.”
“보병 개인마다 방탄장비 착용… 단거리 무선통신 장비 전원 착용… 후우~”
보고서를 다시 한 번 쭈욱 읽어나가던 서덜랜드 준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참모에게 손짓했다.
“수고했네. 이건 그대로 사령관께 보고하지.”
“알겠습니다.”
참모를 내보낸 서덜랜드 준장은 손에 쥔 보고서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나 사령관실로 향했다.
“이거 참….”
보고서를 읽은 맥아더 장군의 반응도 서덜랜드 준장의 반응과 대동소이했다. 참모가 가지고 온 탄환까지 확인한 맥아더 장군은 서덜랜드 준장을 돌아봤다.
“그거 아나 ”
“예 ”
“예전에 내가 참모총장이었던 시절에 군이 사용할 신형라이플을 결정해야했지. 그 때, 다들 이런 작은 탄을 사용하자고 했는데, 내가 거부를 했었어. 30-06의 재고량이 엄청났거든. 그런데 말이지… 어쩌면 내가 그 의견을 뒤집어야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그렇습니까 ”
손에 쥔 탄환으로 책상을 톡톡 두들기던 맥아더는 서덜랜드 준장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한국인들과 같이 전투를 치른 이가 누구라고 했지 ”
“리치몬드 제이슨 소령입니다.”
“한국인들이 사용한 장비들에 대해 제대로 된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해. 기한은 호주에 도착할 때까지.”
“제이슨 소령은 게릴라 작전에 지원을 했습니다만 ”
“승진시켜서 본부로 인사이동 시켜. 그 작자들 가진 장비들이 어디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하나도 빼먹지 말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맥아더의 명령을 받은 서덜랜드 준장이 사무실을 나가자 맥아더는 다시금 파이프를 입에 물고 보고서를 손에 들었다.
“가볍고 위력적인 개인화기, 밀집된 적을 제압하기에 최적인 공용화기. 병사 개개인이 방탄 장비와 통신장비를 갖췄고… 우리 육군의 보병들도 이런 장비를 갖춘다면 당장 전세를 뒤바꿀 수 있겠군.”
비슷한 장비들로 무장을 한 보병의 모습을 상상하던 맥아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돈은 많이 들겠지만….”
* * *
마닐라를 코앞에 두고서 일본군은 진격을 멈췄다. 아니 멈춰야만 했다.
“미국 놈들의 물량공세가 대단합니다. 병사들의 희생이 큽니다.”
필리핀 공략을 진두지휘하는 혼마 장군 앞에 선 일본군 장성 하나가 공략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머리에 감은 붕대에서 아직도 피가 새어나오는 장성을 본 혼마 장군은 침중한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상황이 그렇게 어려운가 ”
“저 미친놈들의 포격이 엄청납니다. 포탄을 톤 단위로 쏟아 붇는 것 같습니다.”
“알았네. 가서 좀 쉬게.”
“핫!”
장성을 내보낸 혼마 장군은 동석한 참모들과 함께 지도가 놓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마닐라가 코앞인데 쉽지가 않군….”
“일부러 우리를 끌어들인 것이 아닐까요 ”
“초반과 지금의 기세가 너무 다릅니다.”
“라몬 만에서 연락은 ”
“상륙 초반 고속 중형 폭격기들의 공습을 받았지만 상륙에는 성공을 했다고 합니다.”
“고속 중형 폭격기 링가옌에서 우리를 공습했던 그 폭격기인가 ”
“보고에 따르면 그 폭격기로 보인답니다.”
“흐음… 그 폭격기가 문제로군.”
링가옌에 상륙할 당시 화물선 두 척과 구축함 두 척을 깔끔하게 날려버리고 지금도 꾸준히 골치를 썩이는 폭격기를 떠올린 혼마 장군은 인상을 찌푸렸다.
“육군 항공대에서는 뭐라고 하나 ”
“그 폭격기를 따라잡을 전투기가 없다는 말밖에는….”
“칙쇼! 대본영은 뭐라 하나!”
“미국에서 그런 폭격기를 개발했다는 정보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프로펠러가 없는 비행기가 존재한다는 말에 신빙성이….”
“그럼 내가 헛것을 봤다는 건가! 육군 항공대의 파일럿들이 죄다 허풍선이들만 있다는 건가! 뭔 헛소리야!”
화를 참지 못한 혼마 장군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설명을 하던 참모가 다급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도이치에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도이치에 ”
“그렇습니다!”
참모의 말에 혼마는 화를 가라앉히며 투덜거렸다.
“멍청한 놈들… 이것도 도이치. 저것도 도이치… 그런 기술수준으로 황군의 무기들을 만들고 앉아있다니… 쯧!”
혀를 찬 혼마 장군은 지도로 다시 눈을 돌렸다.
“다행히 문제의 폭격기는 공격의 빈도나 강도로 보아 수가 적은 것 같다. 그렇다면 대세에 지장을 줄 변수는 아니라는 소리지. 그렇다면 지금 후퇴하는 적들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로 보이는가 마닐라 바탄 ”
“마닐라로 보입니다.”
“마닐라라….”
지휘봉으로 마닐라를 짚으며 말을 흐린 혼마 장군은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마닐라지 ”
“수도이지 않습니까 ”
“불리한 지형이야. 만의 입구가 막히면 끝나는 곳으로 모인다 설마 진주만의 미해군을 믿고 있는 건가 ”
“저….”
“뭔가 ”
가장 말석에 위치한 참모가 조심스레 혼마 장군에게 진언했다.
“도망가려고 그러는 것 아닐까요 ”
“도망 ”
“천하의 마카사가 ”
‘도망’이라는 단어에 다른 참모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미 육군 참모총장을 했었고, 기반의 대부분이 필리핀에 있는 맥아더가 ‘도망’이라는 치욕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다들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었지만 혼마 장군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좀 더 설명해보게.”
“핫!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주만의 미군 함대가 궤멸적인 타격을 받은 것은 피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 말은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보급을 받을 길이 없다는 소리인데 저렇게 무지막지한 물량공세를 벌인다는 것은 합리적이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수비전이 아닌 탈출을 목적으로 한다면 의외로 합리적인 행동입니다. 물량공세를 통해 마닐라로 모인 미군이 철수를 할 시간을 범과 동시에 몸을 가볍게 하는 것입니다.”
“마닐라 항에 아직 배들이 남아있나 ”
“12월 21일까지의 항공정찰에 따르면 소수의 화물선과 여객선들이 아직 남아있는 걸로 보고가 되었습니다만은… 22일 이후로 아군 정찰기가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흐음….”
참모의 설명을 들은 혼마 장군은 신중한 표정으로 가능성 여부를 따지기 시작했다. 다른 참모들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진지한 얼굴로 가능성을 따져보는 가운데, 몇몇 참모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군의 장수란 작자가… 차라리 할복을 할 것이지.”
“아니, 유로파나 아메리카의 장군들이라면 가능하다.”
결론을 내린 것은 혼마 장군이었다. 1차대전 당시 프랑스에서 관전무관으로 있었고, 그 후에도 구미 각국에서 활동을 했던 그로서는 가장 타당한 의견이었다.
맥아더의 의중을 파악한 혼마 장군은 결론을 내렸다.
“전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 도망치는 적을 잡되, 불필요한 손실은 피하도록.”
“핫!”
* * *
12월 25일. 마닐라 항.
사방의 창고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는 가운데 한반도의 작전통제센터에는 맥아더와 하트 제독, 그리고 두 사람의 참모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이 함이 마음에 드시는 모양입니다.”
하트 제독이 아예 사령기까지 걸고 눌러앉은 것에 대해 고 제독이 농담을 걸자, 하트 제독은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하트 제독의 옆에 앉은 맥아더는 지형도를 살피며 작전참모들과 상황을 확인했다.
“뒤처리를 맡은 병사들의 소개는 다 끝이 났소 ”
“예. 유류창고의 처분이 끝나는 즉시 마닐라 주변 밀림으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식품들은 창고를 마닐라 시민에게 개방을 했으니 일본군들이 손에 넣은 것은 거의 없을 겁니다.”
“케손 대통령과 고등 판무관은 ”
“돈 에스테반에 타고 계십니다.”
“게릴라 작전에 들어간 병사들에게 충분한 보급은 진행되었나 ”
“우선적으로 배정은 했습니다만, 탄약과 응급의약품을 제외하고는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잠수함을 이용한 보급을 추진하기로 협의했습니다.”
“잠수함으로 잠수함의 여력이 충분한가 ”
“주로 의약품과 통신장비 위주로 보급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탄약의 경우… 부족할 경우 전통적인 방법을 쓰라고 했습니다.”
“전통적인 방법 ”
“일본군의 무장을 획득하는 겁니다.”
참모의 대답에 맥아더는 신경질적으로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맥아더가 막 파이프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뒤쪽에 있던 한국군 장교가 앞으로 나섰다.
“장군님. 여기서는 금연입니다.”
“…Shit. 잠깐 나갔다 오겠네."
파이프의 불을 끈 맥아더는 신경질적인 걸음으로 작전통제센터를 벗어났다. 한편, 한쪽에서 그런 상황을 지켜보던 강 대령과 박 대령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우리가 역사를 꽤 바꾼 것 같은데 안 바뀌는 것도 있더군요. 저 양반이 ‘I shall return.'을 방송하고 떠날 줄은 몰랐습니다.”
“맥아더니까요.”
“그나저나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하트 제독의 계획을 보면 발릭파판에 있는 연합군 함대까지 다 끌어 모아 호주로 갈 것 같던데 말입니다.”
“필리핀에서 탈출한 병력들을 호주까지 안전하게 끌고 가려면 그 수밖에 없으니까요.”
“일본 놈들만 노나겠습니다.”
“그래봤자, 나중에 코피 터지게 얻어맞는 것은 똑같지 않겠습니까 ”
강 대령의 대답에 박 대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발릭파판에 도착했을 때, 한미 연합함대는 작은 소란을 겪어야 했다. 먼저 발릭파판에 집결해 있던 연합군 함대의 사령관들이 퇴각명령에 반발한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일본군 함대에 타격을 가해야 한다는 이들과 호주로 철수를 해야 한다는 이들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하트 제독이 본국으로 날린 전문에 대한 답신이 이들의 행동을 결정지었다.
‘모든 함선들은 지금 즉시 오스트레일리아의 다윈항으로 이동할 것. 이는 연합국 수장들의 합의에 의한 명령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