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8화 필리핀으로… (2)
그 뒤로 거의 30분이 넘도록 문제의 라디오 방송을 들은 사람들은 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들을 하고 서로를 돌아봤다.
“시간이동 ”
“소설 씁니까 ”
“옛날에 오슨 웰즈가 라디오 드라마로 대박을 쳤었는데 같은 것 아닐까 ”
“인터넷으로 HD동영상이 도는 시대에 라디오 드라마로 방송국이 돈이 남아돕니까 ”
이런저런 설왕설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런저런 계산을 하던 성 부장이 입을 열었다.
“시간이동이 맞을지도 모르겠는데요 ”
성 부장의 발언에 회의실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성 부장은 근거를 설명했다.
“2011년에 후쿠시마 대지진이 있은 다음에 나온 이야기가 지구 자전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빨라진 자전속도에 좌표측정 시스템이 맞춰져 있다면 빨라지기 이전 시점의 자전속도에 따른 위치와 오차가 발생하겠죠.”
“아무리 빨라졌다고는 해도 백만분의 1초 단위 아니겠습니까 그럼 허용오차 이내 아닙니까 ”
“지구의 크기를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우리가 의식을 잃거나 정신줄 빼놓고 있던 시간동안 누적된 오차를 생각해 보세요. 이 오차를 무시하는 건가요 100km 떨어진 건물에 있는 ‘조그마한’ 창문에다 폭탄을 박아 넣을 수 있는 초정밀 첨단무기를 조작하는 군인 양반들이 ”
성 부장의 설명을 들은 함장들이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고 제독이 성 부장에게 질문을 했다.
“확실한 겁니까 ”
고 제독의 질문에 성 부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제 전공은 원자력 공학입니다. 단지 이런저런 주변상황을 따졌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요.”
“흐음….”
성 부장의 대답에 고 제독과 함장들의 혼란은 더욱 깊어졌다. 그런 가운데 라디오를 갖고 왔던 하 대리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
“말하게.”
“진짜 우리가 1941년의 12월로 온 것이라면 우리 위험한 것 아닌가요 일본이 진주만 공격이후 동남아로 밀고 내려간 걸로 아는데요 ”
하 대리의 말에 고 제독과 군인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즉시 자신들의 함으로 돌아간다! 강 대령과 박 대령은 나와 함께 작전 통제센터로!”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군인들은 회의실을 빠져나갔고, 회의실에는 성 부장과 부하직원들만이 남아있었다.
“빠르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퇴소하는 예비군들도 저렇게 빠르지는 않겠다.”
“마트에서 타임 세일 한다는 방송 들은 아줌마들이라면… 비슷하려나 ”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직원들은 일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느긋한 자신들을 발견하고는 성 부장을 돌아봤다.
“저희도 빨리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왜 ”
“상황이 상황인데….”
불안해하는 부하들과 달리 성 부장은 느긋해 보였다.
“원자로는 다 확인하고 올라온 거지 ”
“예.”
“우리가 바쁠 때는 원자로가 탈났을 때뿐이야.”
“…….”
예상외의 발언에 멍한 표정을 짓는 부하들은 쓱 일별한 성 부장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래도 다들 자기 자리 찾아갔으니 우리도 가봐야지. 혹시 모르니까 구명조끼는 잘 챙겨라. 잽싸게 튈 비상통로도 확인하는 거 잊지 말고.”
* * *
한편 작전 통제센터에서는 고 제독과 강 대령, 박 대령이 대형 홀로그램 앞에 서서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모두 자신들의 배에 무사히 도착을 했다고 합니다.”
“다행이군. 레이더는… 아직 없군.”
한반도와 동행하는 배들의 아이콘 외에는 아무 것도 표시되지 않은 홀로그램을 보던 고 제독이 의문을 표했다.
“한반도에 달린 레이더의 탐지거리가 얼마였지 ”
“최장 1000km까지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없지 ”
제독의 질문에 강 대령은 전탐 장교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언의 질문을 받은 장교는 상황을 설명했다.
“본 함을 중심으로 반경 200km이내만 탐지하고 있습니다.”
“왜 아… 내가 명령을 내렸었지. 그럼 탐지 반경을… 미안하네. 그냥 현재 탐지거리를 유지하게”
중국의 과민반응을 피하기 위해 그런 명령을 내렸던 것을 기억해 내고 탐지거리를 확대하라는 명령을 내리려던 고 제독은 급히 그 명령을 철회했다.
‘레이더에 부하를 걸면 걸수록 수명은 짧아진다! 지금 현재 레이더에 들어가는 첨단 부품은 수급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가능한 부하를 주지 않는다! 다른 수단을 찾는다!’
결론을 내린 고 제독은 박 대령에게 명령을 내렸다.
“함재기들로 주변 정찰을 하는 것이 어떤가 ”
“알겠습니다, 우선 2개 편대를…….”
“소속 불명 중형 기체군 확인! 거리! 남동쪽 200km! 고도 4000m! 현재 북동진 중! 기체 수 27기! 속도는… 시속 300km ”
레이더 담당자들의 보고와 동시에 홀로그램에 올라온 정보를 확인한 고 제독은 박 대령을 돌아봤고, 박 대령은 바로 인터콤의 수화기를 들고 명령을 내렸다.
“나 전대장이다! 지금 정비 확인 끝난 거 몇 대야 12대 8대 준비시켜! 무장은 AA로! 파일럿들은 작전실로 모이라고 해! 제독님,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게.”
명령을 내린 박 대령은 고 제독에게 경례를 하고는 바로 항공 작전실로 달려갔다. 박 대령이 나가고 뒤에 남은 강 대령은 홀로그램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서 있는 고 제독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점점 더 시간여행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좀 더 확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시속 300km의 중형기 편대면 답은 된 것 아닙니까 그리고 북동 방향이라면… 대만이 있습니다. 진짜로 지금이 태평양 전쟁 때라면 대만에 일본해군 항공대의 기지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좀 더 확증이 필요해.”
“너무 신중하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 * *
“1941년 12월 18일이라고 아무리 꼬인 인생이라지만 이거 너무한 거 아냐 ”
목표지점으로 날아가는 KF-1C(KFX의 함재기 모델)의 조종석 안에서 편대장 조윤하 소령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공군 안에서 아직은 몇 안 되는 여군 조종사, 그 가운데서도 ‘탑건’의 칭호를 가진 전투기 조종사가 그녀였다.
하지만 그녀 역시 ‘실력은 A, 정치는 F’라는 ‘헬반도’ 배치 인원들이 가진 공통점을 가진 덕에 한반도 소속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원했던 자리에는 그녀의 동기인 여성 전투기 파일럿-조종석의 스틱이 아닌 다른 스틱을 더 열심히 쥐고 흔들었다는 뒷소문이 무성한-이 치고 들어가 버렸다.
“나도 다른 스틱을 쥐고 흔들었어야 했나… 빌어먹을… 객관식 찍기도 젬병이더니 인생 찍기도 젬병이네….”
자신의 꼬일 대로 꼬인 인생을 불평하던 조 소령은 저 멀리 아래쪽 고도에 확인해야 할 대상이 나타나자 무전기의 스위치를 눌러 편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여기는 레드2! 11시 방향 아래쪽, 보기(Bogies) 발견! 모두 정신 바짝 차려!”
“카피!”
함재기들이 소속불명기체들과 접촉하자 작전 통제 센터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귀가 스피커로 들려오는 통신에 집중되었다.
“여기는 둥지! 레드2! 소속 불명기들의 국적을 확인 가능한가 이상.”
“아직… 확인했다! 붉은 원! 일본기다! 소속 불명기들의 국적마크는 일본이다! 이상.”
“여기는 둥지! 레드2! 일본 국적기들의 기종을 확인할 수 있는가 이상.”
“네거티브. 인식목록에 없는 기종이다. 반복한다. 인식목록에 없는 기종이다. 이상”
‘레드2’ 조 소령의 대답을 들은 고 제독이 박 대령을 돌아봤다. 박 대령은 조 소령의 대답이 의미하는 것을 설명했다.
“간단히 말해 현용기… 21세기에 일본 자위대가 사용하는 기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는 오덕. 기종 확인했다! 일본 국적기들의 기종은 1식 육공이다! 반복한다! 일본 국적기들의 기종은 1식 육공이다! 이상.”
“여기는 그린1! 일본 국적기들이 산개한다! 반복한다! 일본 국적기들이 회피기동에 들어갔다! 이상.”
조 소령의 편대원들이 보내는 급한 상황보고를 들은 고 제독은 강 대령을 한번 돌아보고는 박 대령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지워 버리라고 하게. 저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고 떠들면 곤란해져.”
“알겠습니다. 여기는 둥지, 일본 국적기들을 격추하라! 반복한다! 일본 국적기들을 격추하라. 이상!”
“레드2. 카피.”
곧이어, 통제센터 안은 교전에 들어간 전투기 파일럿들 사이에 오가는 통신으로 시끌벅적해졌다. 계속해서 1식 육공의 격추를 알리는 환호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고 제독은 강 대령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리가 가는 항로는 일본 애들도 많이 다니는 항로니까 좀 더 밑으로 돌아가지. 다른 함들에게도 명령을 전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대공은 물론이고, 대잠에 특히 신경 쓰라고 하고. 일제 어뢰건, 미제 어뢰건, 어뢰에 맞는 것은 열 받으니까.”
명령을 내린 고 제독은 고민이 가득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난 잠시 들어가 있겠네. 전투기들이 돌아오면 알려주게.”
“알겠습니다.”
30분 후, 부관이 고 제독을 찾아왔다.
“함재기들이 돌아왔습니다. 박 대령이 건캠을 회수해 작전 평가실로 오겠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가 보도록 하지.”
사령관실의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던 고 제독은 부관의 보고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파일럿들의 출동 대기실 옆에 마련된 작전 평가실에 들어서자 직접 작업을 하던 박 대령과 먼저 와 있던 강 대령이 고 제독을 맞이했다.
“그럼 영상을 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박 대령은 메모리 카드들이 담아 온 영상들을 재생했다. 영상 속에서 공격을 받고 불덩어리가 되어 떨어지는 1식 육공의 모습들에 고 제독과 강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우리가 알던 자위대의 기체들은 아닙니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물건들이지.”
시가형의 통통한 몸체에 붉은 원이 그려진 녹색의 기체들이 불덩이가 되어 떨어지는 장면들을 끝까지 다 본 강 대령은 고 제독을 바라봤다.
“확증은 저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
“제독님 ”
말없이 생각에 잠겨있던 고 제독은 결심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강 대령에게 명령을 내렸다.
“17시에 함장들을 소집하게.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해야지. 결론이야 하나밖에 없겠지만 말이야. 박 대령 자네도 준비를 해서 참석을 하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참전을 결심하신 겁니까 ”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당연한 일 아닌가 ”
“알겠습니다!”
고 제독의 결심을 확인한 강 대령은 절도 있게 경례를 하곤 평가실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