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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서클 직전에 환생-174화 (174/191)

대적자(5)

대적자(5)

미끼 부대가 할린 황자를 유인하는 사이 황녀와 1천의 정예 부대는 사막을 우회하여 부리안 부족의 성에 접근했다.

회색의 성과 이틀이 남은 시점.

황녀가 살짝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오늘로 며칠째지?"

"본대와 갈라진 지 일주일 됐습니다."

물론 황녀가 그러한 사실을 몰라서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혹여 실수라도 할까 싶어 확인 차원에서 질문을 던진 것이다.

"본대가 잘해주고 있나 보군."

"그렇습니다. 할린 황군이 되돌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은 괜찮은가 봅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다. 본대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우리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 내야 한다."

사브리나와 1천 정예 병사들의 목적은 최대한 할린 황자 진영에 타격을 주는 것.

적의 전력을 깎아 놓는 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이었다.

"가자."

날카로운 눈빛을 한 황녀.

누런 천을 뒤집어쓴 그녀가 나아가자 그 뒤로 1천의 병사들이 잇따랐다.

***

사브리나의 병력을 쫓는 할린.

그는 며칠째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찝찝함.

그런 기분은 오늘 사브리나 진영의 흔적을 발견하며 절정을 이뤘다.

'대체... 뭐냐?'

알 수 없는 찝찝함에 인상을 쓴 할린 황자.

그는 자신의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쉴 새 없이 연이어진 추격으로 병사들의 피로도가 많이 올라온 상태였다.

갑자기 움직임이 멈춘 할린에게 부족장들이 다가왔다.

"라쿠단? 무슨 일이십니까?"

자신을 향한 물음에도 할린은 답을 하지 않았다.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있던 그가 되레 질문을 던졌다.

"느낌이 이상하지 않은가?"

"무엇이 말씀이십니까?"

"놈들 말이다."

할린이 말한 놈들이 사브리나의 병력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어떤 점이 이상하시온지...?"

"놈들과의 거리가 매번 너무 일정하지 않더냐?"

"......?"

황자의 물음에 부족장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한참을 고민하는 부족장들을 보며 할린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닿을 듯 말듯한 거리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조금 다가가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새 놈들은 멀어져 있다.

그걸 쫓아가면 다시금 적들과 거리가 벌어져 있고.

'이건 마치 우리보고 쫓아오라는 것 같지 않은가?'

할린은 머리끝이 쭈뼛 서는 기분을 느꼈다.

안색이 굳어진 그가 다급하게 외쳤다.

"당장 지도를 가져와라!"

황자의 외침에 한 부족장이 품에서 지도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할린이 황급히 지도를 펼치고.

자신들이 이동해온 경로를 지도위에 그려나가던 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이, 이건?!"

놀란 황자의 곁으로 부족장들이 모여들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당했다."

"예?"

놀라 되묻는 말에 기어코 황자가 노성을 터트렸다.

"놈들이 우리를 유인하고 있단 말이다!"

"......?!"

그리 말하며 황자는 지도를 부족장들에게 보였다.

황자가 그어 놓은 이동 경로.

분명 거리상으로 유리온 황자의 진영과 일직선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있건만, 그들이 지나온 경로는 이상하리만치 직선 경로를 이탈해 빙빙 돌아 유리온 황자의 진영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자신들의 병력을 묶어 시간을 끄는 것.

'우리의 병력을 묶어 두는 게 목적이라면 그다음에는....'

할린의 머릿속으로 다양한 경우의 수가 스치고 지나갔다.

'만약 내가 사브리나였다면....'

가장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방법.

그것은 바로.

'적의 빈 성을 노릴 것이다!'

할린의 얼굴이 새하얘지고 그가 옅게 신음했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자신을 말리던 부족장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그가 말의 기수를 돌렸다.

"당장 돌아간다! 놈들이 우리의 성을 노리고 있다!"

"......?!"

황자의 외침에 부족장들의 얼굴에도 다급함이 깃들었다.

그와 함께 부족장들이 발빠르게 병력을 회군시키기 시작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길목에서 할린을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번에는 한 방 먹었구나, 막내야.'

그의 눈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좋은 선물을 받았어.'

그러니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선물을 받았으니 그에 맞는 보답을 줘야 할 터.

'어디 내 선물도 한번 받아 보거라.'

회군하는 와중 할린은 한가지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회군하는 할린의 병력 사이에서 한 마리의 말이 빠져나와 어디론가 향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오? 눈치 깠네?"

멀린이 씨익 미소 지었다.

갑작스레 회군하는 할린군을 보며 멀린은 확신했다.

할린 황자가 자신들이 유인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고, 유인의 목적까지 알아챈 것이 분명하다고.

이에 멀린이 턱을 쓸었다.

"슬슬 때가 됐네."

본진이 위험하고, 사브리나 가 위험한 상황.

그럼에도 멀린은 여유로웠다.

이런 위기 상황이야말로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던 순간이 아니던가.

"흐흐."

옅은 웃음을 흘린 그의 신형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

달조차 뜨지 않는 사막의 밤은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사막을 배경 삼아 지어진 회색의 성에 접근하는 그림자가 있었다.

수많은 본대가 빠져나간 탓에 극소수의 병력만 남은 할린의 성.

곧 어둠을 틈타 성벽에 접근한 그림자.

훙-

작은 공기 파열음이 들리고.

퉁-

무언가 발사되며 성벽에 틀어박혔다.

"응?"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경계병이 살짝 성벽 밑으로 고개를 내민 순간.

콰즉-

화살 하나가 날아와 그의 목을 꿰뚫었고, 즉사한 병사가 성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성벽 위로 치솟은 그림자.

"누, 누구!"

2인 1조로 번을 서던 병사였기에 위기를 감지한 동료가 소리치려 했지만, 그림자가 더욱더 빨랐다.

콰득-

하나의 단검이 소리를 지르는 병사의 입을 관통했다.

순식간에 두 명의 경계병을 처리한 그림자의 뒤로 다수의 인영이 솟구쳤다.

모두 20명에 가까운 인원이었다.

짧게 눈빛을 주고받은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수신호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침입자들이 산개했다.

그들이 빠르게 성안으로 침투하고.

곧 회색의 성에서 어두운 밤을 환히 밝히는 불길이 치솟았다.

"치, 침입자다!"

"습격이다!"

갑작스러운 불길과 검은 야행복을 입은 이들의 등장에 성에 남아있던 이들이 당황했다.

그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두 명의 야행인은 성문으로 향했다.

"컥!"

"크헉!"

성문을 지키는 이들을 처리한 야행인들.

그중 한 명이 성문의 개문 장치를 잡아당겼다.

드르륵-

두꺼운 쇠창살로 만들어진 성문이 완전히 올라가자, 한 명이 신호탄을 쏘았다.

피유유육- 펑!

빛나는 신호탄이 하늘을 밝히고 어둠 속에 묻혀있던 1천의 병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됐군."

병력의 선두 선 사브리나 황녀.

자신들의 계획이 성공했단 사실에 그녀의 안색이 밝아졌다.

"가자!"

선두에서 나아가는 황녀의 뒤를 따라 1천의 병력이 사막을 질주했다.

사브리나의 본대가 둘로 나뉜지 열흘째 되는 날.

사막의 회색 방패라 불린 부리안의 성이 사브리나 황녀에게 점령당했다.

그리고.

"이럇!"

"시간이 없다! 더욱 속도를 내라!"

회군한 할린 황자의 군대가 하루거리까지 도달해 있었다.

***

아발론 일동은 멀린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며칠 전 홀로 어딘가를 다녀온 멀린.

그는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루시안이 물었다.

"무슨 기분 좋은 일 있으십니까?"

"있지. 있고말고. 흐흐."

"......?"

음흉한 웃음을 흘리는 멀린.

이를 본 아발론 일동이 움찔하며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뭐냐... 왜 도망가?"

"탑주님이 그렇게 웃으실 때마다 뭔가 하나씩 꼭 사건이 터지잖아요."

"에이, 그럴 리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는 아발론 일동을 보며 멀린이 볼을 긁적였다.

"음... 뭐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 근데 이건 내가 사고 친 거 아니다. 순리대로 흘러가는 거지."

"그래서 이번에는 또 무슨 사고를 치신 건데요?"

사샤의 물음에 멀린이 씩 웃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저거."

멀린의 손가락을 따라 아발론 일동의 시선이 돌아가고.

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이를 알아차린 지휘부들이 다급해졌다.

"전군 정지! 정지!"

"전투 준비!"

"태세를 갖춰라!"

지휘관이 이리저리 숨 가쁘게 오가는 사이 미끼 부대의 정면.

저 멀리서 흰 먼지구름이 나타났다.

그와 함께 등장한 5천의 기병들.

그들의 선두에는 잘린 머리 몇 개가 창에 꽂혀 있었다.

이를 본 샤우반 장군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정찰부대가?!'

자신이 유리온 황자측에 보낸 정찰부대가 모조리 당해 목이 잘린 상태였다.

'대체 어떻게?!'

아직 유리온 황자 진영의 영향력에 들어가지도 않은 상태.

그러던 와중에 유리온 황자의 동태를 살피던 정찰병이 당하고, 정확하게 자신들의 위치가 들통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는 아발론 일동도 마찬가지였다.

"저, 저게 어떻게 된 거죠?"

케이의 물음에 멀린이 씨익 웃으며 답했다.

"어떻게는 무슨. 뒤통수 맞은 놈이 뒤통수치기 위해 적과 손을 잡은 거지."

며칠 전, 회군하는 할린 진영에서 일단의 병사가 빠져나와 유리온 진영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한 멀린.

그는 알고 있음에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아발론 일동이 유유자적, 여유로울 때 샤우반 장군과 장수들의 발등에는 불이 떨어졌다.

"방패병 정면!"

기병을 상대로 도망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때문에 샤우반 장군은 이곳에서 적들과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밀집하라! 방패병 방패 단단히 잡아!"

"충돌에 주의하라!"

어느새 접근한 기병과의 거리는 대략 1km.

달려오는 말의 속력으로 대략 1~2분이면 닿을 거리였다.

'젠장!'

샤우반 장군은 이를 악물었다.

할린 황자군을 유인하기 위해 사막을 벗어나 넓은 평야로 나온 것이 잘못이었다.

이런 지형에서 유리온 황자의 기병대를 만났다는 것은 신이 자신들을 버렸다는 것과 같았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사브리나 황녀가 자신을 믿고 맡겨준 병력이었다.

또한, 이 병력이 그녀의 전부였다.

모시는 주인을 위해서라도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러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버텨라! 버텨야지 살아남을 수 있다!"

지휘관들이 목이 터지게 외치는 사이 어느새 기병들이 500m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마주해 달려오는 기병을 본 병사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그들의 방패가 잘게 떨려왔다.

두드드드-

발밑을 울리는 기병의 돌진.

기병과 방패병의 거리는 이제 400m.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이를 악문 채 반드시 살아남겠다고 다짐하는 사브리나의 병사들.

이럇!

기병과의 거리는 이제 300m.

말을 박차는 기수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푸르륵-

기병과 남은 거리는 이제 200m

쐐기 형태로 돌진해 오는, 묵직한 철갑을 두른 전마(戰馬)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단단히 버텨라!"

그리고 마침내 100m.

방패병과 기병의 충돌이 임박한 순간.

"흐흥."

어디서 가볍게 흥얼거리는 콧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방패병과 기병 사이에 갑자기 나타난 한 인영.

"어?!"

이를 본 샤우반 장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자는?!'

왜소한 체구의 한 소년이었다.

그리고 샤우반 장군도 잘 알고 있는 이였다.

멀린이란 이름을 가진 총명한 소년.

"저, 저 멍청한!"

놈이 어떻게 저 자리에 나타난 것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한가지는 알았다.

그가 말발굽에 짓밟혀 육편이 되리란 것을.

"딱 맞네."

기병의 선두가 10보 앞으로 다가온 상황.

멀린이 싱긋 웃으며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너무도 가벼워 날파리를 쫓을법한 손짓이었다.

그러자 멀린의 발밑에서 허연 냉기가 피어오르며 정면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한데, 그 속도가 어마무시했다.

쩌정-

대기의 수분을 빨아들인 날카로운 얼음덩어리가 세 갈래로 기병대를 그대로 덮쳐들었다.

"피, 피해라!"

"으악!"

푸히힝-

갑작스레 나타난 사람과 기괴한 얼음의 해일.

기병들은 이를 피해 보려 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사람과 말의 비명이 사방에서 울렸다.

돌진하는 힘을 감당 못 한 기병은 벽돌보다 더 단단한 멀린의 얼음에 그대로 꿰뚫렸고.

"마, 맙소사."

한편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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