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서클 직전에 환생-121화 (121/191)

위기(2)

위기(2)

쿠구긍-

하늘이 불길함을 드러냈다.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검어지며 시퍼런 뇌전을 번뜩이는 모습은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이를 본 인근 도시의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몸서리를 치며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검은 하늘이 펼쳐진 바로 아래.

크륵-

그것을 뭐라 불러야 할까.

크륵 크륵-

크기는 대략 1m 정도.

이족 보행을 하는 생명체였다.

외형은 인간의 형상이나, 피부를 벗겨낸 듯 전신이 온통 붉었고.

이목구비가 있어야 할 머리에는 오로지 날카로운 이빨이 있는 입만이 존재했다.

계속해서 가래가 끓는 듯한 소리를 내는 괴물들.

그런 존재가 사방에 자욱했다.

크륵 크륵-

검붉게 물든 대지에서 액체처럼 샘솟은 괴물들은 형체를 취하기 무섭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들의 목적지는 저 멀리 보이는 청명한 숲이었다.

지하로부터 쉼 없이 올라온 녀석들이 해일처럼 숲으로 몰려들었다.

그런 괴물을 풀어놓은 또 다른 괴물, 모건 페이는 숲으로 달려드는 녀석들을 보며 사랑스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후후후. 아아,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하니 좋네요. 앞으로 종종 나와야겠어요."

주변 상황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은 너무도 명랑한 목소리였다.

교단의 일원들은 그런 그녀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것이... 성녀님의 힘이란 말인가.'

교단 내에서 성녀로 통하며 교주조차 쥐락펴락하는 그녀에게 불만을 품은 이들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이런 힘을 본다면 그런 불만이 쏙 들어갈 것이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건이 펼친 마법이 일반적인 상식의 범주를 벗어났으니 말이다.

9서클의 대마법, 마계화.

일정 시간 동안 현계에 마계와 연결하는 통로를 뚫는, 법칙을 무시하는 마법.

거기에 마계에나 존재하는 마족을 지상으로 불러들이는 끔찍한 마법이었다.

물론 아무리 9서클의 마법일지라도 강한 마족을 다수 불러들일 수는 없었다.

작디작은 공간을 통과할 수 있는 마족은 마계에서도 흔하디흔한 저 구구리라 불리는 존재뿐이었다.

그리 강하지 않은 구구리였지만, 문제는 놈들의 개체 수에 있었다.

키에에-

족히 만 단위는 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수.

거기에 구구리의 특성은 '탐식'이었다.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구구리는 마계에서 쓰레기 청소부라 불릴 정도였다.

그런 명성에 걸맞게 소환된 구구리는 숲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아그작 아그작-

풀, 나무, 심지어 돌까지.

눈에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씹어 먹는 구구리들.

이를 보며 모건이 유쾌하게 웃었다.

"아하하! 잘한다! 많이 먹고 가거라."

그때 모건 뒤에 서 있던 세 명의 혈기사 중 한 명이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뭐가요?"

"아무래도... 세계수가 마음에 걸립니다."

그리 말한 혈기사는 시선을 돌렸다.

붉은 구구리의 파도 너머, 숲의 중앙에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세계수가 내뿜는 빛이었다.

그런 혈기사의 걱정을 알았는지 모건이 살짝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거 다 별거 없어요. 태초의 나무라고는 하지만, 이름만 거창하고 그저 오래 산 나무일 뿐이죠. 전성기가 있다면 언젠가는 쇠약해지기 마련. 세계수도 예전과 같지 않답니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두고만 보신 겁니까?"

"음... 세계수는 안 무서운데, 그 세계수를 따르는 미친것들이 조금 무섭기는 하죠. 걔들 눈 돌아 가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라...."

"그렇습니까?"

"그렇죠."

"그럼... 왜 이제 와서 이런 일을 벌이시는지요?"

"흠... 오늘따라 데미안의 질문이 많네요?"

"아무래도 오랜만에 성녀님을 밖에서 뵈니 저도 모르게 들뜬 모양입니다."

"후후. 그런가요?"

모건이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와서 왜 숲을 건드냐고 물었나요?"

"예, 그렇습니다."

"대계가 가까워졌으니까요."

"아...."

"그리고 대계를 이루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할 얼굴이 있거든요. 지금 하는 일은 그저...."

살짝 말을 멈춘 모건의 눈에 차가운 살기가 담겼다.

그녀의 입에서 스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저... 꼭꼭 숨은 토끼를 잡는 일이랄까?"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숲의 외곽에서 거대한 기운이 일렁였다.

숲을 기점으로 퍼져나가는 광풍.

이를 본 모건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나왔네요, 토끼가."

콰가가강-

숲에서 터져 나온 녹색의 광풍이 숲을 갉아먹고 있던 구구리들을 휩쓸었다.

구구리들이 잘게 분해됨과 동시에 숲 위쪽으로 한 인영이 솟구쳤다.

"모오오건!"

분노가 가득 담긴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

바람의 가호를 받으며 나타난 그녀는 다름 아닌 비비안이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모건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 날뛰는 토끼는 제가 상대할 테니, 여러분은...."

"......."

"숲에 숨은 토끼 새끼를 처리하세요."

"알겠습니다."

모건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 명의 혈기사, 피의 소드 마스터들이 잔상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그렇게 수하들이 사라지자 모건이 본격적으로 기운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후후. 어디 우리 토끼 양이 얼마나 컸나 보러 가볼까?"

모건의 전신에 보랏빛 기운이 넘실거리며 두둥실 떠올랐다.

중력을 거스르며 순식간에 앞으로 나아간 그녀가 바람에 휩싸여있는 비비안과 마주했다.

"잘 있었니?"

"이... 더러운 년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평소의 온화한 비비안을 생각하면 절대 떠올릴 수 없는 모습.

분노로 일그러진 그녀를 보며 모건은 피식거렸다.

"쿡쿡. 누가 그 인간 제자 아니랄까 봐 말하는 것하고는."

"......."

오랜 시간 마법사를 탄압해온 교단과 그런 교단에게서 마법사들을 구해낸 비비안.

때문에 모건과 비비안은 필연적으로 자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수 세기 동안 이어진 악연이란 폭탄에 다시금 불이 붙었다.

살기 가득한 눈을 한 비비안이 이를 갈며 말했다.

"오늘은 꼭 네년과 질긴 악연을 끝내야겠다."

"내가 하고 싶은 소리를 대신해주는구나."

구그그그-

두 명의 9서클 마법사가 뿜어내는 기운이 맞부딪히며 거대한 용오름을 만들어냈다.

그 속에서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던 둘의 신형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

콰앙-

강렬한 파장이 터져 나오며 두 명의 위대한 마법사가 격돌했다.

***

쾅쾅-

숲 밖에서 격돌이 벌어질 때, 멀린의 내부에서는 거대한 태동이 일어났다.

세계수가 베풀어준 정순한 마나를 머금으며 자라나던 7, 8번째 고리가 한계치까지 마나를 머금었다.

그럼에도 8개의 고리는 계속해서 마나를 빨아들였다.

그와 함께 서클을 가득 채우고 흘러넘친 마나가 멀린의 전신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그러한 마나는 이전에 만들어진 서클에서 불순한 기운을 걸러냈고, 나아가 멀린의 몸에 쌓인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시켰다.

대규모 마나 흡수로 인해 발생하는 마나 투과 현상이었다.

그렇게 서서히 마나 순도가 높아지자 멀린의 육체에 변화가 일어났다.

구룩 구룩-

우득 우득-

뼈와 근육은 더 단단하고 더 유연하게.

서클을 떠받칠 심장은 더욱더 튼튼하게.

멀린의 육신이 마나를 사용함에 있어 더 적합하게 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소드 마스터와 8서클의 경지에 발을 디딘 이들만 겪는다는 '육체변환'의 단계.

먼 과거 8서클과 9서클, 두 번에 걸쳐 이를 해본 멀린이었지만, 새로운 인생에서 맞은 3번째 육체변환은 그가 겪어왔던 그 어떤 육체변환보다 오랫동안 이어졌다.

***

그 시각.

대공성에서도 불꽃 튀는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조심해!"

"이크!"

사샤와 케이, 윈스턴과 제플린은 식물 괴물로 변한 마녀와 싸우고 있었다.

리카르토 백작의 침공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마녀 역시 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때문에 현재 마녀를 상대하고 있는 것은 그들 넷뿐.

기사단장을 비롯한 병력은 리카르토 백작을 막기 위해 성벽으로 향했다.

단 넷이서 마녀를 상대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그들은 선전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마녀는 언짢은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 같잖은 놈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호기롭게 최강의 수단을 꺼낸 것까지는 좋았다.

마녀는 얼마든지 눈앞의 애송이들을 해치우고 사샤를 데려갈 수 있을 거라고 여겼지만, 생각과는 달리 자신을 상대하는 4명의 합공에 발목이 묶이고 말았다.

츠각-

"베었다!"

"비켜! 내가 들어간다!"

세 명의 검수가 유동적으로 자리를 교체하며 촉수 같은 줄기를 베어내고 생채기를 내면.

"간다!"

지금처럼 케이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마법을 꽂아 넣었다.

파츠측-

[크아아!]

케이의 라이트닝볼에 적중당한 마녀가 괴성을 내질렀다.

이를 본 제플린의 안색이 환해졌다.

'먹힌다!'

처음에는 괴상하게 변한 마녀의 모습에 겁을 먹기는 했지만, 상대해보니 알 수 있었다.

혼자라면 모를까, 넷이라면 충분히 저 괴물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네 사람과 괴물 하나가 치열하게 접전을 이어나갈 때쯤.

쿵-

성벽 방향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검을 날리려던 사샤의 몸이 움찔거렸다.

일순간에 생겨버린 틈.

마녀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슈각-

자신을 향해 빠르게 날아드는 두 개의 뾰족한 줄기를 보고 사샤의 안색이 굳어졌다.

'늦었다!'

사샤는 현재 상태로는 두 개의 줄기를 전부 막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차선책을 바로 실천했다.

푸슥-

"큭!"

사샤가 하나의 줄기를 베어냈고 다른 하나가 그녀의 옆구리를 관통했다.

"사샤!"

"사샤아아!"

놀란 윈스턴과 제플린이 달려들려는 찰나.

"진형 흩트리지 마!"

후방에서 케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괜찮아!"

이어진 사샤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둘이 다시금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더욱 집중하여 검을 휘둘러 대기 시작했다.

체력 관리를 위해 아껴두었던 각성기까지 동원해서 말이다.

그들의 활약에 마녀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 틈을 타 사샤는 자신의 상태를 살필 수 있었다.

'다행이다... 얕았어.'

허용한 공격으로 인해 옆구리살이 한 움큼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사샤는 안도했다.

비록 성벽에 대한 걱정 때문일지라도 전투 중 딴생각을 한 자신의 잘못이었고, 이 정도 상처는 그 대가치고는 싼값이라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를 악문 사샤가 마법을 펼쳤다.

'버닝핸드.'

츠으으-

사샤는 뜨거운 열기로 자신의 옆구리를 지져 출혈을 막았다.

끔찍한 고통이었지만, 사샤는 되레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조급함을 버리자. 지금은... 저 괴물을 처치하는 데 집중하는 거야.'

목표를 다잡은 사샤가 다시 이를 악물고 괴물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세 사람이 근거리에서 괴물을 상대하는 사이 케이는 그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 기세와 느낌... 그건 분명 서클이었어.'

처음 마녀를 보았을 때 그녀에게 느껴진 것은 고위 마법사의 느낌이었다.

아무리 잘 만든 환영이든 인공 생명체든, 서클이 가진 특유의 기파는 흉내를 내려 해도 낼 수 없었다.

때문에 케이는 처음 마녀를 보았을 때 너무도 당연히 그녀가 마법사의 본체일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상반신이 갈라지고도 멀쩡히 달라붙지를 않나, 지금처럼 갑작스럽게 괴물로 변해버리질 않나.

그것이 케이에게는 의문이었다.

'조종하는 인형이나 크리쳐로도 마법사의 서클을 흉내 낼 수 있는 걸까?'

그러나 케이는 그것이 아닐 것이라는 쪽에 더 무게가 실렸다.

'그렇다면....'

케이는 한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가 본 게 마녀가 입은 탈에 불과하다면?'

만약 사샤가 베어버렸던 육신이 가짜고 그 안에 진짜 마녀가 숨어있다면.

그리고 지금 활개를 치는 저 괴물 안에 아직도 마녀가 숨어있다면, 고서클 마법사에게서나 날 느낌이 저 괴물에게서도 느껴진다는 게 어느 정도 설명됐다.

그런 가설을 세운 케이가 마녀를 살폈다.

'어디지... 대체 어디에 숨어있는 걸까?'

가장 튼튼하고 안전한 몸통?

아니면 외부 상황을 살필 수 있는 눈?

케이는 다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곳이 적에게 노려지기 가장 쉬운 장소다.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노릴 곳이니까... 그렇다면....'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할 장소.

'설마 여길까?' 싶을 부위.

그것을 깨닫는 순간 케이의 눈에 무언가 잡혀 들었다.

'저건?'

다른 줄기보다 확연하게 느리고 둔한 움직임을 보이며 중간 지점에 혹 같은 게 달린 줄기였다.

산발한 머리카락처럼 보이는 수많은 줄기 중에서 유독 그 줄기의 움직임만이 남달랐다.

'마치, 다른 줄기와 같다고 연기를 하는 거 같아 보이잖아?'

이에 케이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아무래도 수상했다.

특히나 중간에 자리한 혹이 더더욱 미심쩍었다.

'단번에 맞춘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정확도가 높은 마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마법이 케이에게 있었다.

'가라!'

멀린의 영향을 받아 그 어떤 마법보다 열심히 익힌 마법.

"매직 애로우!"

바로 마법의 화살이었다.

츠팟!

케이가 쏘아 보낸 단발의 매직 애로우가 전장을 가로질렀다.

검을 휘두르는 윈스턴의 머리를 지나, 휘둘러지는 줄기와 줄기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가고.

저걱-

목표로 하는 줄기의 혹을 그대로 관통했다.

[끼야아아아!]

그러자 쉼 없이 움직이던 마녀의 변이체가 단말마를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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