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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서클 직전에 환생-120화 (120/191)

위기(1)

위기(1)

자신을 둘러싼 포위망 속에서 마녀는 짙은 경계의 눈으로 케이를 바라보았다.

'저놈.'

조금 전 온실로 밀려든 불의 파도.

그것은 분명 4서클의 광역 마법 파이어윌이었다.

'대체 어떻게?'

사샤가 마법을 사용한 것도 모자라 4서클의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까지 나타났다.

그것도 꽤 어려 보이는 소년이 말이다.

'설마... 비비안의 끄나풀들이란 말인가?'

현시대에 마법을 사용하는 이들은 교단을 제외하고 비비안과 그녀가 거둬들인 마법사들뿐이었다.

그렇게 마녀가 케이의 정체를 추측하던 찰나 사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죽이지는 마. 알아낼 게 많으니까."

이를 들은 마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애송이들이...!"

마녀는 주변을 포위한 소년·소녀를 보며 이를 갈았다.

자신이 누구던가.

비록 장기 임무를 위해 이런 오지에 처박혀 있긴 하나 6서클에 이른 마법사였다.

교단 내에서도 실력으로는 대접받는 게 바로 자신이 아니던가.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스무 살도 안 된 애송들이 무언가 깔보듯 말을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너희뿐이구나."

"그럼 늙은이 하나 잡는 데 얼마를 더 끌고 올까."

히죽거리는 윈스턴을 보고 마녀도 덩달아 미소를 지어줬다.

"끌끌끌. 잘했구나. 잘했어."

비록 일이 조금 틀어지기는 했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이런 분수를 모르는 어린놈들 따위야 얼마든지 치워버리면 그만이다.

사샤만 챙기고 나머지는 모조리 죽인다면, 얼마든지 대공령 따위는 벗어날 자신이 있었다.

'오히려 잘됐다. 만약 이놈들이 비비안 그년과 관련된 놈들이라면.... 교단에서도 내 공을 높이 살 거다.'

그렇게 된다면 7서클, 나아가 어쩌면 그 이상의 마법서까지 포상으로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리석은 것들.'

더군다나 이곳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던가.

지난 수십 년간 자신이 만들어온 자신만의 영역.

마녀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떠올랐다.

"마법사의 영역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킥킥."

마녀의 살벌한 목소리에 케이가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 저거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짧은 생각 끝에 케이는 저 소리가 오래전 실기 시험장에서 멀린이 했던 말이란 것을 기억해 냈다.

그 사이 마녀의 전신에서 살벌한 기운이 솟구쳤다.

-키에에!

주인의 심기에 반응하듯 온실을 가득 채운 거대 식물들이 괴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투득- 투드득-

식물들이 땅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를 본 윈스턴이 핼쑥해져 소리쳤다.

"아, 아니 미친! 뭔 풀떼기에 발이 붙어 있어?!"

정확히는 발이 아닌 뿌리가 움직이는 거였지만, 발처럼 움직이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멀린을 만나고 어지간한 일에 놀라지 않을 윈스턴조차 걸어 다니는 식물의 모습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백... 아니, 수백은 넘을 듯 보이는 식물 군체가 준동하는 사이 4인방의 눈이 마주쳤다.

'늦으면 안 돼!'

'지금!'

'바로!'

'친다!'

드워프 왕국에서부터 서로서로 의지하며 외물들과 싸워온 그들이었기에 전투에서만큼은 그 어떤 이들보다 합이 잘 맞았다.

눈빛을 주고받기 무섭게 네 사람이 동시에 움직였다.

사샤는 식물 군체를 조종하는 마녀를 향해.

윈스턴과 제플린은 광역마법을 사용할 케이를 보호하듯 감싸며 캐스팅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너무도 빠른 그들의 반응에 마녀가 잠시 당황했다.

'이것들이?'

어찌 놀랍지 않겠는가.

아이들의 대응은 어떻게 하면 마법사를 상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듯싶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제대로 훈련을 받은 듯 말이다.

그렇게 마녀가 움찔한 사이 케이의 마법이 발현했다.

"터트린다!"

케이의 외침이 울리기 무섭게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붉은 입자가 생겨나며 폭발을 일으켰다.

콰강-

5서클의 폭발 마법 파이어 익스플로전.

강력한 폭발에 주변에 자리한 식물 군체가 휩쓸렸다.

'5서클까지?!'

그 모습에 마녀는 다시금 놀라고 말았다.

4서클만 해도 대단하다 할 어린놈이 5서클의 마법까지 사용하니 경각심이 든 것이다.

"어딜 보는 거야!"

마녀를 노리고 번뜩이는 검광이 날아들었다.

스걱-

사샤의 검이 마녀를 사선으로 베어내는 데 성공했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의 마나 블레이드가 마녀의 몸을 통째로 베어낸 것이다.

마녀의 상체가 주륵 밑으로 흘러내렸다.

정확히 들어간 일격이었지만, 사샤의 얼굴을 밝지 못했다.

'피가... 없어?'

사람이라면 응당 베였을 때 피가 튀어야 하건만, 마녀에게서는 전혀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사샤가 갈라진 마녀의 몸통을 살폈다.

'이건?!'

사샤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갈린 마녀의 몸은 분명 인간의 형상이었지만, 그 내부는 아니었다.

쯔걱 쯔걱-

인간의 껍데기를 쓴 마녀의 몸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식물 줄기였다.

'대체 언제?!'

언제 마녀가 몸을 바꿔치기한 것인지 사샤는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깊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

둘로 나뉜 마녀의 눈동자가 자신을 행해 움직이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를 감지 하기 무섭게 갈라진 마녀의 몸통에서 수십 가닥의 줄기가 그대로 사샤를 향해 쇄도해 들었다.

촤악-

전방을 가득 메운 공격에 사샤는 뒤로 물러서며 검을 휘둘렀다.

마나 블레이드가 식물 줄기를 갈기갈기 잘라냈다.

어쩔 수 없이 마녀와 거리를 벌린 사샤.

"킥킥킥."

그 사이 마녀의 몸통에서 나온 식물 줄기가 서로를 끌어당기더니 스르륵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녀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를 본 사샤가 이를 악물었고, 마녀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어찌... 이런 나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한 번으로 죽지 않으면.... 갈기갈기 조각을 내주겠어."

이를 악문 사샤가 곧장 마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한 번 당했던 마녀가 그것을 그냥 두고 볼 리 없었다.

"할 수 있다면 한번 해보거라!"

마녀의 다리에서 뻗어 나온 나무줄기가 그녀의 몸을 하늘로 띄워 올렸다.

그리고.

"어?"

"헉?!"

케이의 마법으로 그 수가 확 줄어든 덕분에 쉽게 주변 식물 군체를 상대하고 있던 윈스턴과 제플린이 기겁했다.

바로 자신들이 썰어낸 식물체와 케이의 마법에 폭사 됐던 식물 조각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마녀를 향해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 속도가 마치 날아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츠츠츠-

빠른 속도로 마녀를 향해 몰려든 식물 줄기들이 마녀의 다리로 이어진 줄기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를 만든듯싶었던 식물 군체는 이내 곧 형상을 취해갔다.

"저... 저게 무슨?!"

"아... 진짜... 마법사랑 엮이고 나서부터 정상적인 게 하나도 없냐!"

"윈스턴.... 너 나중에 탑주님한테 이를 거다."

"넌 이 와중에 그런 걸 따지고 있냐!"

윈스턴과 제플린, 케이는 점점 커지는 식물 군체를 보고 질겁했다.

물론 마냥 이를 두고만 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핫!"

"으랏차!"

빠르게 달려간 검사들이 덩어리를 베어냈다.

사샤까지 그들에게 합류했다.

그러나 덩어리가 어찌나 크던지 그들의 마나 블레이드로도 완전히 베어내지 못할 정도였다.

또한, 상처가 나면 그곳에서 식물이 자라나 더욱 덩치를 불렸다.

이를 보다 못한 윈스턴이 외쳤다.

"아직 멀었냐!"

"다했어! 비켜!"

케이의 외침이 있기 무섭게 검을 든 세 사람이 산개했고, 그들이 떠나간 공간으로 10개의 화염구가 날아들었다.

펑펑펑-

강한 폭발음을 내며 식물 줄기가 불타올랐다.

"좋았어!"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보이자 윈스턴이 환호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이른 환호였다.

측- 츠륵-

치이이-

나무 덩어리가 수액을 뿜어내며 불길을 잡아버렸다.

"미친?!"

"아... 저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아발론 일행의 눈에 당황이 서렸다.

특히 케이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게... 고위 마법사.'

일전에 패트릭이란 마법사와 붙어보기는 했지만, 그와 눈앞의 마녀는 차원이 달랐다.

대련이 아닌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상황에서, 그리고 준비된 영역에서 마법사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지 뼈저리게 느껴졌다.

'마법사의 영역.'

실기 시험 당시의 멀린도 그랬고, 눈앞의 마녀도 그랬다.

마법사의 영역 속에서 그들은 두려운 위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아발론 일동이 속수무책으로 변이하는 괴물체를 바라볼 때.

"아가씨!"

"헉?! 저, 저게 무슨?!"

"맙소사!"

제3자가 싸움의 현장으로 다가왔다.

마녀와의 싸움에서 연달아 폭음이 발생했는데 대공성에 있는 이들이 그것을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부리나케 폭음의 진원지로 찾아든 총관과 기사단장, 그리고 몇몇 기사들은 괴상한 생명체의 모습에 기겁하고 말았다.

그나마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기사단장이 총관을 향해 소리쳤다.

"당장 가서 지원을 요청하시오!"

"아, 알겠소이다!"

무력이 약한 총관은 그것이 자신이 할 일임을 깨닫고 그대로 달려 나갔다.

때마침 괴생명체가 변이를 끝마쳤다.

[깔깔깔]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들리며 덩어리의 한복판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 속에서 거대한 눈동자가 등장했다.

"징그러워...."

"동감한다...."

마치 거대한 외눈박이 괴물의 머리만 덩그러니 떼어 놓은 듯한 모양은 보는 이에게 역겨움을 불러 일으킬만했다.

거기에 머리카락으로 짐작되는 것들이 살아있는 뱀처럼 꾸물거리니 그러한 기분은 더욱더 심했다.

잠시 이어진 소강상태 속에 제플린이 심각한 얼굴로 케이를 바라보았다.

"야... 케이."

"응?"

"탑주님이 저런 건 어떻게 상대하라고 안 가르쳐 주시디?"

"응...."

케이가 볼을 긁적였다.

그러다가 케이가 사샤를 돌아보며 말했다.

"시리라면... 알지도."

"맞네!"

그제야 좌중의 얼굴이 환해졌다.

탑주의 분신 격인 시리라면, 저런 괴물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리라.

하지만 시리를 데리고 있는 사샤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녀가 고개를 내저었다.

"틀렸어."

"응?"

"이미 아까부터 말을 걸고 있는데... 답이 없어."

"엉? 왜?"

"몰라... 이런 적은 처음인데."

원래 부르는 즉시 뾰로로 옷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던 시리였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시리는 그녀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그게 시리이거나. 혹은....

'아니면... 탑주님께 일이 생기신 건가?'

시리와 유기적인 관계의 멀린에게 일이 생겼다면 시리 역시 응답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현재 상황은 너무도 좋지 않았다.

그런데.

"크, 큰일 났습니다!"

악재는 연달아 일어난다고 했던가.

지원병을 부르러 갔던 총관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홀로 말이다.

"흐억 흐억!"

헐레벌떡 뛰어온 그가 소리쳤다.

"리, 리카르도 백작이... 병력을 이끌고 오고 있답니다!"

총관의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이에 사샤가 마녀였던 존재를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총관의 외침을 들은 괴물에게서 못마땅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쯧. 굼벵이 같은 것들.]

마치 리카르토 백작의 거병을 알고 있기라도 한 듯한 말이었다.

'리카르토 백작과 교단이 손을 잡았구나!'

대공성의 안팎으로 자리한 적들.

믿을 수 있는 시리와 멀린의 부재.

모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

같은 시각.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는 곳은 대공령 뿐이 아니었다.

"음...."

세계수의 정신체는 고개를 틀었다.

시선이 닿은 곳은 아무것도 없는 세계수의 내벽이었지만,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고작 그런 벽이 아니었다.

벽을 넘고, 나아가 숲 밖의 어딘가.

'이건?'

세계수는 숲의 요새 밖에서 발아하는 요사스러운 기운에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하나둘 나타나는가 싶던 요사스러운 기운이 순식간에 세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사스러운 기운이 숲 전체를 포위했다.

"하아...."

세계수가 안타까워했다.

숲 밖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건만, 멀린에게 마나를 공급해주는 세계수는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하필 이럴 때...."

처음에는 그저 가볍게 마나를 공급해주려 했던 세계수였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멀린이 빨아들이는 마나의 양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만약 이대로 그녀가 마나 공급을 중단한다면 숲이 메말라 버리는 것은 물론, 멀린과 세계수 둘 다 위험해질 위기였다.

입술을 곱씹은 세계수가 멀린이 있을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둘러요. 멀린...."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서 빨리 멀린이 깨달음을 정리하고 깨어나길 기원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세계수의 염원을 받은 멀린은....

츠츠츠-

그는 어느새 나타난 라이프 포스 베슬을 머리 위에 띄워두고 기약 없는 마나 연공을 반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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