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인연(6)
과거의 인연(6)
"...멀린?"
비비안이 놀란 눈으로 멀린을 바라보았다.
팔짱을 낀 그는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과거의 영광인 아발론이란 이름으로 모여든 사람들.
이 시대의 마지막 마법사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여전히 아발론이란 이름의 명맥을 이어주고 있는 것은 멀린에게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비비안."
"......?"
"저 녀석... 패트릭이라고 했지? 아무튼, 저 자식 말이 맞다."
"예?"
"그 긴 시간 동안 아발론을 잊지 않고 이들을 지켜준 너에게 고맙다. 하지만 내가 너를 대신해 마탑주의 자리를 차지하는 거는 다른 이야기야."
"그게... 무슨?"
"아직도 모르겠냐?"
"......."
"이들을 구원하고 아발론이란 이름 아래 모이게 한 건 너다."
"하, 하지만 멀린이라면... 정당성도 능력도 충분...."
"그래, 충분하지. 하지만 내가 싫어. 이들이 반발을 억누르고 내가 탑주가 된다면 저들이 나를 진정으로 따를까? 진심으로 나를 따르는 이들도 아닌 이들을 내가 책임질 필요는 없는 거지."
"......."
"지금 이 아발론은...."
멀린이 진지한 눈으로 비비안을 응시했다.
"너의 아발론이다."
"......."
"그리고."
이번에는 멀린이 케이와 사샤를 비롯해 자신을 따라온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이 나의 아발론이다."
"아...."
비비안이 낮게 탄식했다.
그녀는 무어라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멀린을 바라보았다.
주변으로 침묵이 감돌았다.
비비안과 멀린을 따라왔던 케이 이하 3명은 살짝 놀란 눈으로 멀린을 바라보았다.
'저 인간이... 저렇게 말할 때도 있었네?'
'음... 종종 사람 같은 말을 할 때가 있긴 하지.'
'역시 탑주님!'
하지만 그런 그들의 생각은 조금 이른 감이 있었다.
"그으리이이고 말야."
진중했던 멀린의 얼굴이 다시금 삐딱해졌다.
그는 몹시 신경에 거슬린다는 얼굴이었다.
"여기 있는 것들 전부가 나한테 탑주를 맡아달라고 사정해도 내가 싫어."
"...예?"
난데없는 멀린의 말에 비비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에 멀린이 눈을 부라렸다.
"아니, 어디 실력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것들이 아발론이라고 까불어?"
"......."
"나 때는 말야아아! 철저하게 실력 위주였어! 그때 이런 놈들은 아발론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했단 말이지! 내 말이 틀려?"
"아, 아뇨. 부, 분명 그랬죠."
멀린의 말이 조금 과장되기는 했지만,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괜히 아발론이 마법사의 성지, 이상향, 낙원이라 불린 것이 아니었다.
가장 많은 실력자를 배출하고, 모든 마탑의 정점이라 칭해진 곳.
일반적인 마법사라면 들어가길 소원하던 마탑이기도 했다.
그곳이 바로 아발론이었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어디 이런 애송이들이! 아발론이란 이름을 쓴다고 다 같은 아발론인 줄 아나? 내가 비비안 널 봐서 그나마 참고 넘어가는 거다! 네가 고생한 걸 생각해서 말이지."
"......."
"황금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제발 탑주님 좀 해달라고 바짓가랑이 부여잡고 늘어져도 해줄지 말지인데! 뭐? 비비안이 아니면 탑주를 인정 못 하겠다? 내가 말야! 아발론에 이름값 쌓는다고 무슨 쌩고생을 했는지 알아?"
"......."
"확 마! 나한테 앞으로 탑주 맡아달란 소리 하기만 해봐. 대갈통에 예의를 수직으로 꽂아 줄 테니까!"
멀린의 고함에 마을 사람들이 당황하여 입을 뻥긋거렸다.
비비안도 오랜만에 보는 멀린의 진짜 성격에 식은땀을 흘렸다.
다만, 아카데미에서 넘어온 아발론 일동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쩐지 잘나간다 했더니."
"...저게 본심이구먼."
"역시 탑주님...."
"케이, 너 이 새끼! 저딴 건 받아적지 말라고!"
그들은 멀린이 멀린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 마을 사람들 측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씀이 심하십니다."
"얼씨구?"
멀린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패트릭을 보았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멀린의 고개가 좌로 10도 정도 살짝 기울어졌다.
"어이."
"저... 말씀이십니까?"
"그럼 지금 내가 누굴 보고 있는 거 같냐?"
"...말씀하시지요."
"왜? 내 말에 납득 못하겠냐?"
패트릭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신의 경지는 6서클.
비비안에게 듣기로는 과거에도 이만한 실력이면 어딜 가든 충분히 대접받을 실력이라 했다.
나름대로 자신감 있던 그는 멀린의 말에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패트릭이 분기에 차서 자신을 바라보자 멀린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뭐, 이 코딱지만 한 마을에서는 걔 중 쓸 만한 실력이기는 하지. 너도 네가 잘났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고?"
"......."
"하지만 어쩌냐. 내 눈에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실력으로 보이는데."
으득-
히죽거리는 멀린을 보며 패트릭이 이를 악물었다.
패트릭은 여전히 멀린의 말에 수긍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믿지 못하겠다면... 좋아. 이렇게 하자."
멀린이 활짝 웃으며 손가락을 뻗었다.
"자, 골라봐. 저기 저쪽에 비실 비실거리는 놈이랑 그 옆에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애. 둘 중 누구랑 붙을래?"
"그게 무슨...?"
"어?"
"타, 탑주님?"
멀린의 갑작스러운 말에 패트릭이 입술을 벌렸고, 멀린에게 지목당한 케이와 사샤가 놀라 소리쳤다.
살짝 손을 휘휘 내저어 그들의 소란을 잠재운 멀린이 이어 말했다.
"네 실력 검증해 주겠다고 내가 직접 나서는 것도 조금 모양새 빠지니까. 쟤들로 상대해 줄게. 쟤들은 이름만 아발론인 너희와는 달리 나한테 직접 배운 진짜 아발론의 마법사다."
"......."
"왜? 못 고르겠어? 그러면 내가 골라줄까? 흠, 어디 보자... 네가 6서클이니까."
너무도 쉽게 자신의 경지를 알아맞힌 멀린에게 패트릭이 살짝 놀란 눈을 해 보였다.
하지만 그가 놀랄 일은 아직 더 남아 있었다.
"사샤는 너무 쉽게 이길 거 같고. 그러면... 케이!"
"예?"
"네가 상대해줘라."
"저... 탑주님. 저 이제 5서클인데...."
"괜찮아. 네가 이겨."
"아,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멀린의 말을 조금도 불신하지 않은 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패트릭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5서클? 5서클이라고?'
분명 케이라는 소년은 스스로 5서클이라 말했고, 상대방의 경지가 6서클임을 들었으리라.
그럼에도 소년은 6서클 마법사를 이길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것이 패트릭의 자존심을 긁었다.
주먹을 울끈 말아쥔 패트릭의 귀로 멀린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아직도 망설여져? 그럼 이렇게 하자. 네가 이기면 내 비전 마법 전부 너희에게 공개해주마."
"......?!"
좌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마법사 멀린.
마법이 쇠락한 이 시대에 그의 마법은 천금과도 같은 값어치를 지녔다.
그런데 멀린이 그것을 내놓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거기에 내가 직접 지도도 해주지."
"...정말이십니까?"
"당연하지. 비비안이 익힌 건 정령술에 기반을 두고 내가 개량한 정령 마법이다. 나 같은 천재라면 모를까 친화력이 없는 일반인은 그걸 제대로 익히긴 힘들지. 보니깐 비비안에게 배운 건 정령 마법이 아니고 여기저기서 주워온 일반 마법일 테고. 안 그래?"
"...그렇습니다."
"인간에게는 인간에게 맞는 마법이 있는 법이야. 그리고 나의 마법은 인간의 마법 중 단연 최고 수준이다. 그걸 내가 지도해 준다고 약속하마. 어때? 이 정도면 망설임이 줄어들어?"
"......."
분명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물론 이겼을 때 보상이 좋다면, 졌을 때의 불이익도 있는 법이었다.
멀린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단!"
"......."
"케이 녀석이 이기면... 진리를 찾는 지팡이는 내가 가져간다."
"......?!"
멀린의 말에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퍼져 나왔다.
진리를 찾는 지팡이.
그것은 아발론의 상징과 다름없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아발론이란 자긍심을 형성시켜 준 상징이 바로 진리를 찾는 지팡이였다.
단 한 번의 내기로 마을의 상징물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 패트릭은 쉽사리 답을 하지 못했다.
멀린의 비전 마법과 아발론의 상징.
패트릭이 두 가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 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좋아요. 받아들일게요."
"호오?"
"비, 비비안 님?"
멀린의 요구에 답을 한 것은 다름 아닌 비비안이었다.
그녀는 도발적인 눈으로 멀린을 응시했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조금 너무하시네요. 그래도 어떻게든 아발론의 이름을 이어오고 있던 아이들인데... 이렇게 무시하시다니."
"쿡쿡. 무시 받을 실력이니 무시를 하지."
"좋아요. 멀린의 아발론이 이기면 진리를 찾는 지팡이를 내어드릴게요. 대신 우리가 이기면 확실하게 마법을 가르쳐 주셔야 해요."
"물론."
두말할 것 없다는 듯 멀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비안까지 나서니 패트릭도 더는 고민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좋아. 여기 대련장 있지?"
"...마을 사람들이 수련을 위해 사용하는 공터가 있습니다."
"안내해."
"따라오시죠."
패트릭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비비안도 회관을 나서자 그들을 따라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그 사이 사샤가 멀린에게 다가와 물었다.
"괜찮을까요?"
"뭐가?"
"저 사람 아까 6서클이라고...."
"쯧. 너는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구나. 우매한 사샤 같으니.... 케이를 좀 본받아라!"
"그런 광신도 같은 믿음은... 이쪽에서 사양입니다."
사샤가 질색하여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반응에 멀린이 피식거리며 답했다.
"뭐, 됐고. 걱정 마."
"......."
"케이가 이길 테니까. 그것도 압도적으로. 케이, 지면 뒈진다?"
"넵!"
멀린의 확언에 사샤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절대 질 거로 생각하지 않는 멀린과 그런 탑주의 손에 충실하게 몸을 맡긴 케이.
완벽한 신뢰 관계의 두 사제를 보며 사샤는 포기했다는 고개를 내저었다.
***
마을 한쪽에 마련된 공터.
소수의 인원만 사용하던 곳이 오랜만에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멀린이 손을 휘저으며 크게 외쳤다.
"자, 시작해볼까?"
"이대로 말입니까? 눈먼 마법에 마을 사람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눈먼 마법 날릴 정도면 마법사 딱지 떼야지. 그리고 지금 여기에 누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
"9서클의 정령마법 대가와 모든 마법의 대가가 같이 있는데 그 정도도 막지 못할까?"
"...알겠습니다."
멀린의 말에 패트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직 스물도 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 생도가 서 있었다.
소년의 얼굴에는 조금의 걱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패트릭의 심기를 건드렸다.
"당당하군."
"예?"
"넌 네가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거냐?"
"네."
담담해도 너무도 담담한 목소리였다.
패트릭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어째서?"
"탑주님이 이길 거라고 하셨으니까요."
"하...."
패트릭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괜히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했다.
약간의 주저함도 없는 소년의 답에 더 짜증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뭐냐 이건?'
소년을 바라보니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미묘하고 불쾌한 감정이 꾸물꾸물 피어올랐다.
"패트릭 이겨!"
"콧대를 눌러 줘버려!"
패트릭은 마을 사람들 응원에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내고 어깨를 폈다.
'그래... 이기면 되는 거다. 이겨서 검증하면 된다. 그러니 집중하자.'
침착하게 이성을 되찾은 패트릭이 전의를 불태우며 손을 풀었다.
그는 준비가 됐다는 얼굴로 멀린과 비비안을 바라보았다.
"준비됐냐?"
"네!"
"시작하시죠...."
두 사람의 대답에 멀린이 손가락을 올렸다.
"그럼...."
가볍게 허공에 그어지는 손가락.
그와 함께 '펑' 하는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시합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동시에 패트릭의 손이 움직였다.
'바인드.'
아직도 믿지는 못하겠지만, 저 어린 소년은 5서클이라고 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경이적인 경지였다.
'방심 따위는 하지 않는다.'
멀린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 가정한 패트릭은 전력을 다해 승리를 취할 심산이었다.
'처음은 바인드로 묶고.... 그다음에는 공격 마법으로....'
공격을 어찌할지 계산하면서 그의 손은 쉬지 않았다.
더불어 케이란 소년을 바라보았다.
아직 녀석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케이가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수인을 맺는 패트릭은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패트릭이 막 바인드의 수인을 3분의 1 정도 완성했을 때.
"음... 왜 이렇게 느리세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케이의 목소리.
"그게 그렇게 오래 걸리는 마법이었나?"
그 말을 끝으로 허공에서 굵은 마나의 밧줄이 나타나 패트릭의 손을 결박했다.
"...뭐?!"
놀란 패트릭이 황급히 케이를 바라보았지만, 조금 전까지 케이가 서 있던 곳에 녀석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 어디 간 거지?'
케이를 찾던 패트릭은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주먹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뭐야? 주먹질?'
마법사가 주먹질이라고?
패트릭으로서는 이해 못 할 상황이었다.
"조금 아플 겁니다."
"......?!"
소년의 주먹은 평범했다.
다만 특별한 점이 있다면, 주먹에 투명한 막이 둘려 있다는 것뿐.
6서클 마법사인 패트릭은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실... 드?'
그 생각을 끝으로 실드에 둘러싸인 케이의 주먹이 패트릭의 얼굴에 작렬했다.
콰즉-
끔찍한 소리를 내며 패트릭의 머리가 크게 뒤로 휘청거렸고 그의 안구가 하얗게 뒤집혔다.
코뼈도 나간 것인지 모양이 뒤틀렸으며 쌍코피가 줄줄이 흘러내렸다.
털썩-
케이가 바인드를 풀자 패트릭의 몸이 썩은 나무토막처럼 바닥을 나뒹굴었다.
한 방.
단 한 방에 패트릭이 정신을 잃고 기절한 것이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1분여.
쓰러진 패트릭을 보며 케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음.... 왜 이렇게 약하지?"
멀린의 말을 믿었지만, 그래도 6서클이라기에 긴장을 했었다.
그런 긴장이 허무할 정도로 패트릭은 너무도 허약했다.
뒷머리를 긁적인 케이가 등을 돌려 어딘가로 쪼르르 달려갔다.
"헤헤. 탑주님, 끝났습니다."
"오냐."
해맑은 얼굴로 달려온 케이에게 멀린이 잘했다며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헤실헤실 거리는 케이가 뿌듯한 얼굴로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렇게 케이를 칭찬해준 멀린은 놀라 굳어버린 마을 사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 녀석 깨어나면 전해. 아발론의 이름을 쓰고 싶으면 그만한 실력을 갖추라고. 쥐뿔도 없는 실력으로 아발론의 명성에 흠을 만드는 새끼는 내가 용납 못 한다."
"......."
멀린의 살벌한 말에 마을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비비안은 쓴웃음을 지었다.
"시리야."
[네엣! 챙겼어요!]
얼마 되지도 않은 그 짧은 순간, 언제 사라졌는지 모를 시리가 진리를 찾는 지팡이 석상을 챙겨 날아오고 있었다.
주먹만 한 녀석이 커다란 석상을 짊어지고 오는 모양새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도착한 시리를 본 멀린이 손을 내저으니 워프 게이트가 열렸다.
"가자."
"네!"
멀린을 필두로 위풍당당 케이가 그 뒤를 따라 게이트를 넘었고.
담담한 얼굴의 사샤, 쭈뼛쭈뼛 주변 눈치를 보던 두 잡부가 워프 게이트 사이로 사라졌다.
그렇게 멀린의 아발론이 사라진 공터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데려가서 침대에 눕혀주세요."
"아... 네!"
비비안의 지시에 정신을 차린 마을 사람이 기절한 패트릭을 들쳐 엎고 뛰어갔다.
그 모습에 길게 한숨을 내쉰 비비안.
그녀는 이제 소멸하여가는 멀린의 워프 게이트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하여간 예나 지금이나 솔직하지 못한 거는 여전하시다니까."
비비안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