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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서클 직전에 환생-75화 (75/191)

어쭈? 날로 먹으시겠다?(3)

어쭈? 날로 먹으시겠다?(3)

아발론 마탑 일동이 홀린 듯이 갈색 머리 소년에게 다가갔다.

모인 판돈을 가지고 희희낙락하던 소년은 다가오는 이들을 보고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러다가 소년이 마탑 일동에게 물었다.

"아, 너희도 하게? 미안해서 어쩌지. 이번 판은 모집 끝났는데?"

"......."

소년에게 짜게 식은 시선 4쌍이 날아들었다.

그럼에도 소년은 태연했다.

"그럼 난 이만."

소년이 손을 흔들고 스리슬쩍 자리를 벗어나려는 찰나.

"탑주님?"

자신을 부르는 사샤의 목소리에도 소년은 못 들은 듯 제 갈 길을 가려 했다.

그러나 이를 그냥 보내 줄 사샤가 아니었다.

"어디 가세요. 탑주님?"

재차 이어진 사샤의 목소리에 소년이 뒤돌아섰다.

"탑주? 그게 무슨 소리인지?"

소년의 영문 모르겠다는 목소리에 사샤는 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콕콕 얼굴에 날아와 박히는 시선이 따가웠지만, 소년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그때 사샤가 기습적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시리야."

[응!]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 무섭게 소년의 제복 재킷 안쪽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작은 머리.

"......."

"......."

소년과 사샤....

아니, 멀린과 사샤.

그리고 케이, 윈스턴, 제플린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기를 한참여.

"도대체 나는 너희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네?"

꾸욱- 꾸욱-

멀린이 검지로 시리의 머리통을 꾹꾹 눌러 재킷으로 밀어 넣었다.

[아아! 아빠아앙! 하지 마요! 하지 마아아아! 나도 사샤 볼래애애!]

멀린의 손가락을 양손으로 부여잡은 시리가 칭얼거렸다.

그렇게 멀린의 손가락과 한참을 실랑이하던 시리가 사샤의 옷 사이로 뾰로로- 날아갔다.

사샤의 재킷 사이에서 심통 맞은 표정을 짓는 시리.

[사샤아아! 나 오늘 너랑 있을래!]

"...너 집에 가서 보자."

사샤에게 달라붙은 시리의 모습에 멀린이 뚱하게 말했다.

이미 들통 난 마당에 멀린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작정했다.

"어? 너희가 여긴 어쩐 일이냐?"

"...그건 저희가 해야 하는 말이지 않습니까!"

제플린이 버럭 소리쳤다.

주변에 들릴 커다란 목소리에 멀린이 이를 악물고 답했다.

"져여이 에라, 왁 아, 주웅이에 애익애오우 악아어리이 언에(조용히 해라. 확 마, 주둥이에 매직 애로우 박아버리기 전에.)"

멀린의 협박에 제플린이 작은 목소리로 꿍얼거렸다.

"아니... 여긴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마법으로."

"...그 모습은 또 뭡니까?"

"이것도 마법으로."

현재 멀린의 외형은 그의 본 모습이 아니었다.

전혀 멀린으로 생각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이의 모습이었다.

7서클의 폴리모프 마법을 별것 아닌 일에 참으로 유용하게 써먹는 멀린이었다.

어이없다는 시선이 연이어 날아듦에도 멀린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다.

이에 사샤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진짜 여긴 어쩐 일이세요?"

"왜 왔겠냐. 당연히 돈 벌러 왔지."

"진짜?"

"내가 돈 가지고 농담하는 거 봤어?"

사뭇 진지한 멀린의 어투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4인방이었다.

다른 거는 몰라도 마법과 금전 관계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 철저한 이가 바로 멀린이었다.

"아무튼, 너희 앞으로 나 모른 척해."

"......?"

"괜히 너희랑 자주 엮인 모습 보이면 승부 조작이니 뭐니 말 나오니까."

"......."

"난 간다."

이제 자신의 볼일은 끝났다는 듯 급히 자리를 떠나려던 멀린.

그가 우뚝 멈춰 서서 케이를 돌아보았다.

"아, 조금 있으면 네 시합이지?"

"아, 네!"

"지켜볼 거다."

"아, 가, 감사합니다!"

멀린의 말에 케이는 살짝 감동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얼굴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감사는 무슨. 내가 이번에 너한테 좀 크게 걸었거든? 지면... 알지?"

"...네."

격려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만을 남기고 다시 쪼르르 사라지는 멀린.

멍하니 서 있는 케이의 어깨에 윈스턴과 제플린의 손이 올라왔다.

"힘내라."

"...힘내."

"고, 고마워."

무려 윈스턴과 제플린의 격려를 받은 케이가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

잠시 뒤.

드디어 시작된 케이의 시합.

"후욱...."

케이는 자신의 앞에서 몸을 풀고 있는 3학년 생도를 보며 작게 심호흡을 했다.

'이름이... 차르코 였던가?'

비록 학년은 3학년이지만, 이번 결정전에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가 3학년 생도 중 상위권 성적자임을 알 수 있었다.

멀린을 만나기 전까지 학년 꼴찌를 일삼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보통 아무리 학년이 높다 하더라도 한 학년 위 꼴찌보다는 한 학년 아래 상위권 성적자가 더 강한 게 정설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아카데미 생도는 없었다.

차르코라는 후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녕하세요, 선배."

"으, 응...."

"제 첫 시합 상대라 선배에 대해서 좀 알아봤는데...."

"응?"

"3학년 때, 운 좋게 1등을 하셨다면서요? 원래는 학년 꼴찌셨다고?"

"......."

살짝 비웃음을 담은 차르코의 미소.

이에 케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받아온 멸시에 비하면 이 정도는 조롱 같지도 않았다.

케이가 자신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차르코의 비웃음은 더욱 심해졌다.

"뭐, 아무튼, 선배 덕분에 저는 편해지겠네요. 고맙습니다."

"고, 고맙기는...."

손사래를 치는 케이를 보고 차르코가 싸늘한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뭐 병신인가."

경멸의 눈초리는 이내 사라졌다.

차르코가 웃으며 말했다.

"아, 시간 없으니 빨리 끝내죠."

그리 말하며 차르코가 심판을 맡은 조교를 바라보았다.

얼른 시작하라는 의미가 담긴 눈빛에 조교가 뒤로 물러서며 외쳤다.

"시합 시작!"

스르릉-

조교의 신호와 함께 차르코가 검을 뽑아 들었다.

이를 보며 케이의 머릿속에 멀린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돈 가지고 농담하는 거 봤어?'

'내가 이번에 너한테 좀 크게 걸었거든? 지면... 알지?"

누가 봐도 협박이라 할 만한 말이었지만, 케이는 그 말이 격려로 들렸다.

돈을 가지고 농담을 하지 않는 자신이 너에게 걸었으니 반드시 이기라는.

그런 격려 말이다.

그로 인해 시합 전에 찾아들었던 긴장은 시합장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스르릉-

케이는 살짝 미소 지으며 자신의 검을 빼 들었다.

이를 본 차르코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웃어?'

만년 꼴찌.

패배자.

소심한 말더듬이.

그것이 차르코가 알아낸 케이에 대한 정보였다.

학년만 높다뿐이지 자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존재.

그런 이가 자신의 면전에서 웃으니 살짝 짜증이 치민 것이다.

'그 웃음이 얼마나 가나 보자.'

비릿한 얼굴을 한 차르코가 마나를 돌렸다.

그리고 빠르게 케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에도 케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비릿한 차르코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반응도 못 하는 거냐?'

그가 그렇게 케이를 깎아내리던 찰나.

"핫!"

작은 기합성을 내지른 케이가 검을 집어던졌다.

정확히 차르코의 얼굴을 향해 날아가는 케이의 검.

'시합에서 검을 집어 던져?'

살짝 놀란 듯한 차르코는 이내 침착하게 검을 휘둘렀다.

캉!

그렇게 차르코의 검이 케이의 검을 튕겨낸 순간.

퍽-

차르코의 얼굴에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

고개가 뒤로 완전히 젖혀질 충격에 놈의 코뼈가 주저앉아 버렸다.

'뭐?!'

자신이 뭐에 당했는지 몰라 차르코의 사고가 일순간 정지했다.

그가 그렇게 잠시 멍해 있는 사이 어느새 차르코의 지척에 케이가 도달해 있었다.

케이는 무덤덤한 얼굴로 차르코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퍽- 퍽-

분명 맞은 것은 얼굴 하나뿐이었지만, 둔탁한 소리는 두 개가 났다.

차르코는 명치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고통에 입을 떡 벌렸다.

이어서 그의 명치에 케이의 주먹이 꽂혔다.

퍽- 퍽-

또다시 명치에 충격이 전해진 순간, 그의 관자놀이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뇌가 흔들린 충격에 아득해지는 차르코의 시야.

그의 귀로 나직한 목소리가 흘려들었다.

"고,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그것이 끝이었다.

털썩-

코피를 줄줄 흘리며 그대로 기절해버린 차르코.

그와 같은 상황에 심판을 맡은 조교는 물론 별 기대 없이 시합을 보고 있던 소수의 구경꾼마저 입을 벌렸다.

반면, 윈스턴과 제플린은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검에다가 매직 애로우 숨겨서 날렸고, 얼굴에 주먹질하면서 명치에 매직 애로우... 연달아 명치에 주먹 꽂으며 관자놀이에 매직 애로우...."

"...저 자식, 어디서 저런 못된 것만 배워서는."

케이의 싸움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려 버린 그들이었다.

한편, 그 누군가에 해당하는 당사자는 케이를 보며 살짝 미소 지었다.

'가르친 보람이 있네.'

케이가 매직 애로우 하나 제대로 날리지 못해 벌벌거리던 게 엊그제 같았다.

그런 녀석이 이제는 수인 없이 무영창으로 매직 애로우를 손쉽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제자의 성장에 스승으로서 어찌 기쁘지 않으랴.

'실전을 겪어봐서 그런지 움직임에도 망설임이 없고 말야.'

솔직히 케이를 믿기는 했지만, 불안하기는 했었다.

여전히 그의 소심한 성격이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뭐, 이 정도면 이제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사샤야 원래 믿음직했고, 케이마저 위축되지 않고 제 실력을 제대로 내는 것 같으니 걱정할 일이 없어졌다.

"스, 승자, 케이!"

한동안 멍하니 있던 심판이 마침내 판정을 내렸다.

이를 보며 멀린이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내 차례인가?"

무언가 음흉한 미소를 지은 멀린이 스리슬쩍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 멀린을 쫓는 눈길이 있었으니.

'어디 가시는 거지?'

사샤는 멀린이 사라진 자리를 잠시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내 눈길을 거둔 사샤는 시합장에서 벗어난 케이에게 다가갔다.

"축하해."

"으, 응, 고마워."

어수룩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는 케이.

"3학년한테 지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이기는 게 당연한 거다."

윈스턴과 제플린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케이의 승리를 축하해 줬다.

그들의 축하를 받으며 케이는 가장 축하를 받고 싶은 상대를 찾았다.

"그, 그런데 탑주님은?"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멀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셨나 봐."

"그, 그렇구나...."

사샤의 말에 케이가 살짝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다음 시합, 4학년 카시안. 4학년 데런!"

조교가 다음 시합자를 불러 모았다.

곧바로 시합장에 들어선 두 사람.

4학년 대 4학년의 시합이었기에 사샤를 비롯한 다른 이들의 시선이 시합장으로 몰렸다.

그저 평범한 체구의 데런과 180cm가 넘는 건장한 신체의 소유자인 카시안.

둘 다 4학년이었기에 윈스턴과 제플린도 그들을 알고 있었다.

"데런 저 녀석이... 하급반이었나?"

"아마도?"

"금방 끝나겠네."

상급반의 카시안과 하급반 데런.

신체적 조건과 기량에서 많이 차이 났기에 그들은 카시안의 일방적인 승리를 점쳤다.

하지만....

"시합 시작!"

시합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들의 예상은 완전히 뒤집혔다.

데런을 향해 달려드는 카시안.

그리고 그런 카시안을 향해 데런은....

"으랏차!"

검을 집어 던졌다.

"어?"

"뭐야?"

"......?"

묘한 기시감이 드는 시합 전개에 마탑 일동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캉-

카시안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검을 쳐내고.

퍽-

곧이어 무언가에 충격을 받은 듯 카시안의 상체가 그대로 뒤로 젖혀졌다.

그 사이로 보이는 두 줄기의 붉은 코피.

이미 카시안의 두 눈은 하얗게 뒤집어 까진 상태였다.

이를 보며 되레 데런이 놀라 소리쳤다.

"야! 한 방에 기절하면 안 되지!"

그리 외친 데런이 빠르게 카시안에게 달려가 명치에 주먹을 꽂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카시안의 고개가 좌로 휙 틀어졌다.

공격은 명치에 받았는데 타격은 얼굴에 입은 것이다.

조금 전 케이의 시합과 묘하게 비슷한... 아니, 판에 박힌 듯 똑같은 시합 전개.

이를 보며 마탑 일동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수면 부족인가? 자꾸 이상한 게 보이는 거 같다?"

"너도냐? 나도 그런데...?"

"저거 아무래도... 그거지?"

"그렇지? 그거 같은... 데?"

"아니, 저 인간이 저긴 왜?

매직 애로우에 두들겨 맞는 카시안의 모습에 묘한 동질감은 느낀 윈스턴과 제플린.

"사, 사샤... 저거? 마, 마법? 매직 애로우?"

"으으음...."

케이의 어리둥절한 질문에 골치 아픈 듯한 표정을 짓는 사샤가 자신의 재킷을 툭툭 두들겼다.

"시리야."

[옹?]

"혹시 저기 저 사람...."

고개를 빼꼼히 내민 시리에게 사샤가 물었다.

아니, 질문을 끝까지 할 필요도 없었다.

[아빠아아아! 이겨랏!]

시리가 기절한 카시안의 뺨을 두들기며 '야, 일어나! 일어나라고!'를 남발하다가 심판에게 저지당해 쫓겨나고 있는 데런을 보고 그리 외쳤기 때문이었다.

"하아...."

"......."

한숨을 내쉬는 사샤와 할 말을 잃은 아발론 일동.

그들의 두 눈이 슬금슬금 시합장을 벗어나고 있는 데런의 뒤통수에 꽂혔다.

이를 보고 사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잡아."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데런에게 돌진한 윈스턴과 제플린.

"어? 뭐야?"

데런의 양팔을 잡은 두 사람이 그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야 이 자식들아, 이거 놔!"

"...조용히 따라오시죠."

"놓으란 말이야!"

신장 차이로 인해 두 발이 공중에 동동 뜬 데런.

그가 발을 허우적거리며 발광했지만, 겨드랑이에 끼워진 윈스턴과 제플린의 팔은 철근처럼 단단했다.

그렇게 데런은 양팔이 잡혀 어디론가 질질질-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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