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둔 집에 드워프 마을이 들어섰다(1)
비워둔 집에 드워프 마을이 들어섰다(1)
현재 상황은 멀린으로서도 의문이었다.
'내 좌표 계산이 잘못됐을 리는 없는데....'
멀린이 수련 장소로 선택한 곳은 다름 아닌 그가 마지막까지 수련한 우클라이 대사막 지하 던전이었다.
9서클의 대마법사 멀린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대던전.
외부와 통하는 통로는 없고 오로지 그가 알고 있는 좌표와 7서클의 텔레포트만으로 출입이 가능한 장소.
고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로지 수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환생하면서 결계가 무너져 사라졌을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라이프 포스 베슬의 얻고 나서 멀린이 가장 먼저 떠올린 곳이기도 했다.
'라이프 포스 베슬만 멀쩡하다면 결계 또한 영구히 유지되니, 던전 역시 무사할 거다.'
그러한 이유로 멀린은 자신 있게 마탑의 구성원들을 데리고 우클라이 사막 던전으로 텔레포트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건 뭐냐? 환상인가?'
안타깝게도 눈앞에 나타난 것은 분명 현실이었다.
절대 있어선 안 될 곳에 존재하는,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들.
짧지만 두툼한 팔과 다리.
큼지막한 얼굴과 두꺼운 목.
하나같이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평균 키 150cm 난쟁이.
거기에 그들이 지닌 병장기는 어떠한가.
번쩍번쩍-
그냥 대충 훑어봐도 하나같이 명장이 벼려낸 듯 날카로운 예기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멀린이 알기로 이런 특성을 가진 종족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의 입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드워프?"
멀린의 시대에도.
그리고 현재까지도.
수백 년에 한 번꼴로 인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엘프와는 달리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철저하게 종적을 감춘 드워프였다.
그러한 이유로 전설로 전해지고 있는 드워프가.
그것도 하나가 아닌 수십에 달하는 드워프가 난데없이 자신들을 포위한 것이다.
'잠깐만... 그러니까.'
멀린은 자신이 한 일을 되돌려 생각해 봤다.
'분명 던전 입구 쪽 좌표를 잡고 텔레포트를 했는데....'
텔레포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기존의 위험성 있는 텔레포트와는 달리 멀린이 개량한 텔레포트는 좌표상의 주변 지형지물까지 파악하는 텔레포트였다.
만약 텔레포트 좌표에 문제가 있었다면 마법이 발동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여기가 내 던전이 맞는다는 건데....'
실제로 드넓은 공간의 꼭대기에 둥둥 떠올라있는 거대한 빛의 구체.
주변을 대낮처럼 밝히는 그것이 자신의 던전임을 떡하니 증명해주고 있었다.
저 거대한 인공태양이 바로 자신이 던전을 만들어 걸어둔 9서클의 대결계였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러한 사실에도 전혀 이곳이 자신의 던전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것들이... 확장공사를 했네?'
지하 던전에 처음 결계를 칠 때 '내 던전이니까 이 정도는 되어야지 않겠어?'라는 생각으로 결계 범위를 넓게 설정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홀로 살아가다 보니 그 넓은 공간을 전부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몇몇 공간을 파내 쓰고, 필요하면 조금 옆쪽에 공간을 다시 만들어 쓰는 수준이었다.
다시 말해, 멀린의 지하 던전은 거대한 결계 안에 들어선 개미굴과 비슷한 형태였다.
그런데 드워프들이 그 공간을 헐고 모조리 통일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물이 지금 멀린이 보고 있는 공간이었다.
'...여기가 이렇게 넓었었나?'
분명 지하인 것은 맞지만 천장은 까마득한 높이였고, 벽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과장을 보탠다면 어지간한 도시 크기였다.
거기에.
'저 성벽는 또 뭐고?'
고개를 돌리니 거대한 성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드워프니까. 어린 드워프조차 어지간한 인간 명장보다 뛰어나다는 드워프니까... 내가 없는 사이에 집도 넓히고 성도 짓고 할 수 있지. 그래 그럴 수 있지.'
잘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일단은 그러려니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이해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무엇보다 원초적인 문제.
'대체 이 자식들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9서클 마법사가 펼쳐놓은 영구적인 대결계를 대체 어떻게 통과하여 자신의 빈집에 떡하니 마을... 아니, 도시를 차려놓았단 말인가.
그렇게 멀린이 넋이 나간 사이.
"드, 드워프? 전설상의 그 드워프?!"
"탑주님? 이 사람들... 아니, 이분들 드워프... 드워프 맞죠?"
"저... 타, 탑주님?"
"아 좀, 어떻게 좀 해보십쇼."
"이 난쟁이가 지금 창으로 제 엉덩이 찌릅니다! 으, 으악 그만 찔러!"
아발론 마탑 구성원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납치와 비슷한 수준으로 지하 던전에 도착한 데다가, 난데없이 드워프들이 나타났으니 정신을 차리기 힘든 것이었다.
"인간? 인간 맞지?"
"그래, 인간이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인간인지."
"대체... 인간이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지?"
멀린 일행이 드워프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만큼 드워프들도 갑자기 나타난 인간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중이었다.
"킁킁. 이 여자는 뭔가 특이한 냄새가 나는데... 이걸 내가 어디서 맡아봤더라?"
"오래 살더니 노망이 났나! 엘프잖아! 엘프! 그 코쟁이들!"
"오! 그렇구만!"
그렇게 드워프들이 멀린 일행을 신기하게 구경하던 그때.
뿌우우우웅-
긴 뿔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드워프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젠장. 어째 요 며칠 잠잠하다 싶었더니."
"며칠만이지?"
"닷새."
"어지간히 모여들었겠구먼."
인상을 구긴 드워프들이 무장을 챙겨 들고 황급히 성벽으로 뛰어갔다.
그중 가장 뒤에 남아있던 드워프가 외쳤다.
"인간들. 따라와라!"
그 한마디만 하고 곧장 뛰어가는 드워프.
멀린 일행은 서로를 멀뚱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멀린조차 궁금한 게 많았지만, 지금은 물어볼 상대가 없었다.
"어, 어찌하죠?"
케이의 질문에 다른 일행들의 시선이 전부 멀린에게 모여들었다.
"어쩌긴... 일단 우리도 뛰어!"
그리 외친 멀린이 가장 먼저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하아...."
아발론 마탑 일행은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연이어진 알 수 없는 상황에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아, 안가? 그럼 나 먼저 간다?"
그때 케이가 부리나케 뛰었다.
멀린을 가장 신뢰하는 케이다 보니 그냥 멀린이 뛰니까 같이 뛰는 것이었다.
그 뒤로 사샤가 달려나가고.
"어쩔래?"
"어쩌긴... 가야지."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본 윈스턴과 제플린.
그들도 앞서간 이들을 따라 뜀박질을 시작했다.
막 그들이 성문과 10m 정도가 남았을 때.
뿌우우우우우우-
이전보다 긴 뿔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성문에 걸린 도개교가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드르르르-
"엇?"
"으앗?"
앞서간 이들은 벌써 해자를 넘어 성문에 진입한 상태.
뒤늦게 출발한 둘은 까딱하다가는 도개교를 건너지 못할 처지였다.
"잠시만!"
"여기 사람 있어요!"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이들의 발이 빨라졌다.
마나까지 잔뜩 끌어모은 둘.
그들의 눈앞에 이미 30도 정도 솟은 도개교가 다가왔다.
"뛰어!"
"으랏차!"
잔뜩 기합을 모아 도개교에 팔을 걸치는 데 성공한 두 사람.
가뿐하게 도개교 반대편으로 넘어간 그들이 기울어진 도개교를 타고 성내로 진입했다.
"흐악 흐악...."
"위험했다."
"쯧. 그러게 뛰라고 할 때 빨리 뛰었을 것이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던 둘은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러자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멀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이 한 개고생의 원흉.
참다못한 윈스턴이 소리쳤다.
"아니, 대체 여기가 어딥니까!"
"여기? 우클라이 대사막."
"어디요?"
"귀먹었냐. 우클라이 대사막이라고."
"거기가 어딘데요?"
"아, 지금은 우르크라이 대사막이라지? 비슷하잖아? 대충 알아들어라. 좀."
멀린의 답변에 놀란 것은 비단 윈스턴만이 아니었다.
대륙 북단에 자리한 제네리움 제국.
남서쪽의 슈마트 제국.
남동쪽의 콴 제국.
삼각편대를 이룬 3개의 대제국 사이에 놓인 5개의 왕국.
우르크라이 대사막은 슈마트 제국과 5 왕국이 마주한 경계 지역이었다.
"지, 지금 우르크라이 대사막이라고 하셨습니까? 제가 알고 있는 우르크라이 대사막요?"
"맞아."
"아카데미에서 가장 빠른 급행열차를 타고도 석 달이 걸린다는 바로 그 우르크라이?"
"오? 석 달밖에 안 걸려? 역시 과학이 발전하니 세상 편해졌구나."
"......."
'나 때는 말 타고 1년씩 걸리고는 했는데 말야.'라는 말 따위는 일행들의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멀린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들이 번갈아 가며 질문을 던졌다.
"여기가 우르크라이 사막 맞습니까? 하나도 안 더운데요?"
"지하니까."
"지, 지하?"
"그래, 지하 수백 미터 깊이쯤 되겠네."
질문을 던졌다가 되레 궁금증만 안고 머리를 감싸 쥔 제플린.
"진짜 여기가 우르크라이 대사막이라면... 대, 대체 여기까지 어떻게 온 겁니까?"
"겪고도 몰라? 마법으로 왔잖아."
'그놈의 마법은 안되는 게 없나.'라고 구시렁거리는 윈스턴.
"우, 우와? 여기가 그 우르크라이 사막이었군요!'
멀린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케이.
그리고 마지막.
"그럼 아까 본 그 드워프들은 뭔가요?"
"그건...."
사샤의 질문에 멀린의 답변이 처음으로 막히고 말았다.
사샤의 궁금증은 멀린 역시 안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한발 앞서며 말했다.
"그건 나도 지금부터 알아보려고."
짧게 답한 멀린이 무언가 소란스러운 성벽의 안쪽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웅- 웅-
성문에서 성안으로 향할수록 소란스러움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난 벽 안쪽의 풍경.
"허...."
"우와...."
"맙소사."
그곳에 펼쳐진 것은 굉장한 진풍경이었다.
과학이 발달하여 대륙 내 모든 나라 중에서도 손에 꼽힌다고 전해지는 제네리움 제국의 수도.
그것을 보고 지내온 이들이 턱을 빼놓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우선 마치 강철을 섞어 놓은 듯 광택을 띠는 수십 층 높이의 건물들.
거기에....
"저, 저건 유리야?"
시대가 발달하며 자주 보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고가에 속하는 유리로 전체를 도배한 건물.
또한, 굴곡이 전혀 없어 보이는 매끈한 도로와 곳곳에서 보이는 예술품에 가까운 정체불명의 조각들까지.
마치 현재의 제네리움이 더 오랜 시간이 흐른다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은 미래적인 도시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은 도시 전체에서 바쁘게 뛰어다니는 수많은 작은 인영들이었다.
"대체... 어디서 이 많은 드워프들이?"
멀린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천? 아니, 그 이상이다.'
도시가 넓었기에 드워프들의 인구 밀도가 낮아 보일 뿐이지 결코 그 수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
수천 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드워프가 이토록 많이 모여 사는 모습에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그 순간 들려온 굵직한 목소리에 멀린의 시선이 돌아갔다.
"빨리빨리 움직여! 이미 놈들이 경계 밖에 접근했다!"
뿌웃! 뿌웃! 뿌웃!
고함이 끝나기 무섭게 짧게 연달아 세 번 울린 뿔나팔 소리.
"왔다!"
"자리 잡아!"
성벽 위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연신 들려오고.
쾅! 쾅!
귀청을 찢어발기는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우르르릉-
성벽이 떨리고 지면까지 덩달아 덜덜거렸다.
"뭐, 뭐야?!"
"헉?!"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기사(奇事)에 소년, 소녀가 당황했다.
그러나 단 한 명.
멀린만은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다.
쾅- 쾅- 쾅-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건... 포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소리가 지나치게 크고 진동도 거셌다.
"레비테이션."
빠르게 수인을 맺은 멀린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라 성벽 위에 안착했다.
그와 함께 멀린이 목격한 것.
"발사 준비!"
한 드워프가 기다란 관에 대고 소리쳤다.
"발사!"
그 신호에 맞춰 성벽의 드문드문, 개방된 포문 사이로 삐져나온 기다란 포신이 불을 뿜어냈다.
"허...."
감탄하는 멀린.
그가 알고 있는 대포보다 몇 배는 크고, 긴 포신이 미동조차 없이 엄청난 위력의 포탄을 쏘아내고 있었다.
"미친...?"
"헉?"
먼저 올라온 멀린을 쫓아 성벽으로 올라온 아발론 마탑 구성원들 역시 불을 뿜는 대포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아발론 마탑 일동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대포가 아니었다.
"대체... 대체 저게 뭐야?"
성벽 너머를 바라본 사샤가 끔찍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