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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서클 직전에 환생-51화 (51/191)

음... 수련이나 할까?(1)

음... 수련이나 할까?(1)

"...자중할 때라고 여겨집니다."

[호오? 어째서?]

"멀린... 그는 강합니다. 천년이나 숨어있던 자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무언가 대비를 했다는 뜻이겠죠."

[...계속해 보거라.]

목소리의 질문에 모건은 자신이 본 멀린을 떠올렸다.

비록 12단장 중 8번째 단장이라고는 하나, 혈기로 강화된 그를 손쉽게 제압한 멀린.

심지어 멀린은 마지막 순간까지 9서클의 마법을 선보이지 않았다.

마치 너 따위에게는 이런 건 쓸 필요가 없다는 듯 말이다.

모건이 살짝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멀린 그자는 여전히 오만합니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고 있죠. "

[칭찬이구나.]

"성격은 좋지 못하나... 마법 실력은 찬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니까요. 과거, 그를 뛰어넘는 마법사는 없었습니다. 그랬던 이가 천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비록 자신의 라이프 포스 베슬이 위험해 처한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 상황을 그자가 의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라이프 포스 베슬을 미끼로 저희를 끌어내기 위해 말입니다."

[.......]

"만일 저의 추측이 사실이고 조금이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섣불리 나섰다가는 오히려 멀린 그자가 원하는 상황에 끌려다닐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저희는 숨을 죽이고 대비할 때입니다."

[대비?]

"멀린이 준비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거나, 혹은 그의 움직임이 좀 더 수면 위로 드러날 때를 말입니다."

설명이 끝나고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모건은 숨을 죽이고 채점을 기다렸다.

[그의 실력은 나 또한 인정한다. 한 번뿐이라고는 하나 나의 일격을 막아낸 존재니까.]

긍정적인 목소리에 모건의 얼굴에 화색이 번졌다.

[너의 말대로 지금은 자중해야 할 때이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모든 게 무너질 수 있을 테니.]

"그럼, 교단의 대외활동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모든 정보망을 멀린 그자의 행방을 쫓는 데 맞추겠습니다."

[그리하거라.]

드디어 떨어진 허락에 모건이 무릎을 떼고 일어났다.

그녀가 막 뒤돌아 걸어 나가려던 찰나.

[모건 페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모건이 멈칫하며 뒤돌아섰다.

[너는 과거 멀린, 그자를 뛰어넘는 마법사는 없을 거라 했다.]

"...예."

[그럼 지금의 너라면 그자를 뛰어넘을 수 있겠느냐?]

목소리의 물음에 모건은 자신의 가슴 아림에 손을 얹었다.

심장 박동을 느끼며 그녀가 답했다.

"만일 그자가 당신께 패한 이후로 아직 10번째 고리를 완성치 못했다면...."

[.......]

"멀린이란 이름에 새겨진 영광은 과거에 머물게 될 겁니다."

모건 페이.

과거 멀린에게 서클이 부서져 마계로 도망치며 온갖 수모를 겪어야만 했던 마녀.

그녀는 자신의 심장에 둘린 9개의 서클을 느끼며 요사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어느 모처에서 향후 대륙의 평안과 관련된 사안이 오가고.

그로부터 2달 뒤.

자신도 모르게 대륙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한몫한 멀린은 고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핏대를 세워가며 말이다.

"아,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니까!"

"죄, 죄송합니다!"

"내가 이런 거까지 일일이 점검해야 해?"

"아닙니다!"

"똑바로 하란 말이야 똑바로! 이러다가 우리 시리우스 망가지면 네가 책임질 거냐!"

"노, 노, 노력하겠습니다!"

"노력을 말고 결과를 가져오란 말야! 결과를!"

"넵!"

자신보다 어린 멀린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상급 연구원.

무언가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이를 지켜보고 있는 연구소장과 부소장의 눈에는 흐뭇함만이 가득했다.

"허허, 녀석도 참. 저리도 일을 열심히 해서야."

"그러게 말입니다. 그날 모든 게 무너졌다고 생각했는데... 사람 앞일은 모른다더니 그게 이런 건가 봅니다."

두 달 전, 의문의 존재들에게 연구소와 시리우스 호가 습격당했었다.

그 과정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소장과 부소장.

그들은 불타버린 연구소를 보고 망연자실했다.

다수의 연구원이 살해당했고 일부 연구자료가 소각됐으며 대량의 마나석까지 사라진 상황.

무엇보다 위험했던 것은 시리우스 호 사업의 근간이었던 '제국의 별'이 탈취당한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제국 수도기사단이 제국의 별을 되찾아와 큰 시름을 놓을 수는 있지만 죽은 연구원과 불타버린 연구자료가 문제였다.

모든 게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시리우스 호 제작 과정에서 죽은 인재와 자료를 금방 대체하기는 어려웠다.

만약 이대로라면 모든 것을 갈아엎고 새롭게 시작해야 했을지도 모를 때, 혜성처럼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저한테 맡겨주시죠!'

그렇게 외치며 등장한 어린 연구원 멀린.

그는 보는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의 일 처리 속도를 과시하며 무너졌던 시리우스 호 연구 및 제작 사업을 일으켜 세웠다.

그럴진대 시리우스 호 제작에 인생을 걸었던 소장과 부소장의 눈에 멀린이 어찌 안 예뻐 보이겠는가.

멀린을 향한 그들의 신임은 하늘을 찌른다 할 정도였다.

덕분에 멀린은 자연스럽게 연구소의 삼인자, 수석 연구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허허, 저러다 몸 상하는 거 아닌지."

"어허! 그러면 큰일 납니다! 안 되겠습니다. 오늘 당장 몸에 좋은 약 좀 지어다 먹여야지."

"허허허허. 같이 가자꾸나."

그렇게 뒷짐을 지고 사라지는 두 노인네.

그들의 걱정과는 달리 멀린에게 쪼임 받는 밑의 연구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이 자식은 어디 아프지도 않나?'

'제발... 일주일만... 아니 하루만이라도 좀 아프란 말이야!'

멀린이 시리우스 호 제작에 직접 참여하게 된 이후로 그간 연구원들이 알고 있던 그의 성향은 확 뒤바뀌었다.

늘 고분고분하던 어린 연구원이 상급자가 되어 입을 여는 순간 부하직원들의 영혼이 탈탈 털려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엄격한 일처리 방식이 피곤하기는 하였지만, 작은 문제점 하나조차 찾아내는 그 신통방통함에 연구원들은 울상을 지으면서도 멀린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뭐해! 당장 수정해오지 않고!"

"예, 옙!"

"에잉. 쯧쯧쯧."

후다닥 달려나가는 상급 연구원을 보며 멀린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다가 그가 고개를 돌려 수많은 사람이 달라붙어 있는 거대한 배, 시리우스 호를 바라보았다.

"캬! 우리 시리우스 자태 고운 것 좀 봐라."

인력을 갈아 넣어 차츰 완성되어 가고 있는 시리우스를 보니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아... 어서 완성됐으면.'

사악한 눈빛을 해 보이는 멀린은 하루하루 느리게 흐르는 시간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보람찬 하루를 마치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 멀린.

"시리야. 나왔다."

[아빠아!]

멀린의 부름에 시리가 뾰로로 날아왔다.

이제는 팔, 다리에 날개까지 생긴 시리.

아직은 눈사람 모양에 팔, 다리, 날개가 달린 형태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시리가 부단히 노력했다는 증거가 됐다.

침대에 털썩 누운 멀린의 배 위에 시리가 통통 몸을 튕겼다.

그리고.

슉-

멀린이 손을 뻗자 그 위에 붉은 보석이 나타났다.

바로 멀린의 라이프 포스 베슬이자 연구원들이 제국의 별이라 부르는 물건이었다.

아마 이를 연구소 관계자가 보았다면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한 차례 탈취 사건 이후 시리우스 동력실의 보안과 경계는 삼엄해졌다.

시리우스 호 제작을 위해 반드시 '제국의 별'이 동력실에 있어야 하기에 이뤄진 조치였고, 그로인해  제국에서 황궁 다음으로 철통 경계가 이뤄지는 곳이 바로 시리우스 호의 동력실이 되었다.

그런 동력실에 있어야 할 '제국의 별'이 멀린의 손에 떡하니 났으니 동력실에서 난리가 나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밖은 너무도 평온하고 잠잠했다.

톡 톡-

멀린의 손가락이 라이프 포스 베슬을 건드릴 때마다 베슬이 통통 튕겨 올랐다.

"시리, 연결 상태는?"

[양호합니다! 까르르!]

시리도 덩달아 멀린의 배에서 몸을 통통 튕기며 굴러다녔다.

"흠... 가짜 베슬과 연결 상태도 양호한 거 같고."

이미 교단 놈들이 자신의 라이프 포스 베슬을 노린다는 사실을 안 이상 이를 그냥 두고 볼 멀린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리우스 호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라이프 포스 베슬의 마나가 많이 소모되기에 이를 거둬들일 수도 없었다.

때문에 멀린이 한 선택은 바꿔치기였다.

진짜 같은 가짜 '제국의 별'.

라이프 포스 베슬과 연동되어 마나를 공급받는 가짜 라이프 포스 베슬을 만들어 바꿔치기한 것이다.

그의 계획은 성공했고 라이프 포스 베슬의 마나가 가짜 베슬로 상시 흘렀기에, 진짜 라이프 포스 베슬에 제한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연결이 불안정한데 그런 제약이 걸렸으니 현재 멀린이 사용할 수 있는 라이프 포스 베슬의 한계는 7서클로 줄어들고 말았다.

'하, 내 피 같은 마나를 쓰는 게 아깝기는 하지만....'

그러나 멀린은 이를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아낌없이 마나를 내주었다.

'이 정도면 뭐 크게 문제 될 건 없으니까.'

정말 위급한 상황이다 싶으면 연결을 끊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모자란 부분은 다른 곳으로 채우면 되지 않겠는가.

멀린은 심장에서 느껴지는 5개의 고리에 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라이프 포스 베슬의 고리보다 더 두껍고 질긴 새로운 5개의 고리였다.

넘쳐나는 마나석을 갈아가며 비약 제조에 성공한 멀린.

지옥의 시궁창 물 같은 맛을 견뎌내며 비약을 섭취한 결과 바로 어제 5번째 고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러한 성취감도 잠시.

멀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여섯 번째 고리라.......'

여섯 번째, 그리고 일곱 번째.

나아가 그 이상의 서클까지.

엘릭서와 같은 비약이 아닌 이상 사실상 외부의 도움으로 경지를 높일 수 있는 한계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었다.

6서클부터는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

그렇기에 멀린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상태에서 그의 앞에 놓인 경우의 수는 두 가지였다.

첫째, 기존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수월하게 6서클 이상을 이룬다.

둘째, 기존의 깨달음과는 전혀 다른 깨달음을 얻어야 경지를 올릴 수 있다.

전자의 것이라면 멀린에게 매우 득이 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후자였다.

'내가 여기서 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깨달음이란 차근차근 영혼의 격이 오르는 것을 말했다.

하지만 멀린의 영혼은 이미 10서클의 경지에 발을 들이면서 격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어쩌면 이대로 영영 깨달음을 얻지 못해 5서클에 머물 수도 있었다.

그러니 어찌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후우...."

작은 호흡으로 고민을 흩트린 멀린.

그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깨달음에 한 가지 길만 존재하는 거는 아닐 거다. 구하다 보면 언젠가는 구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멀린은 기지개를 켰다.

애초에 연구소를 찾은 목적이었던 라이프 포스 베슬도 되찾았고, 거기에 5서클과 이런저런 짭짤한 불로소득도 올릴 수 있었다

"으그그- 이제 슬슬 돌아가 볼까?"

현장실습을 나갔던 이들 중 빠른 이들은 2달 전, 늦어도 지난달에 모두 아카데미로 복귀했을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멀린도 지금쯤 아카데미와 연구소를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연구소장과 부소장의 간곡한 부탁과 시리우스 호에 설치할 '모종의 무언가'로 인해 연구소 생활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도 마무리된 상태.

나머지는 연구소 직원들이 알아서 해도 충분할 것이다.

모든 게 끝났으니 멀린은 슬슬 아카데미로 돌아가려 생각했다.

"애들을 너무 내버려 두긴 했지."

아발론 마탑 구성원들과 떨어진 생활을 한 지 벌써 4개월.

지도를 못 해준 미안함과 녀석들이 어찌 변했을지에 대한 기대감이 들었다.

'...아발론 마탑이 있는 곳은 아직 아카데미니까.'

이에 멀린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읏차! 그럼 짐을 싸볼까?"

침대에서 튕기듯 몸을 일으킨 그가 아발론 마탑으로 복귀를 위해 짐을 챙겼다.

그리고 다음 날, 멀린은 '모든 항목 100점'이 매겨진 평가지를 들고 아카데미로 향했다.

잠시지만 멀린에게서 해방된 연구원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지른 것은 작은 해프닝에 불과했다.

부소장이 특별히 마련해준 마차를 타고 아카데미에 도착한 멀린.

그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당연히 아발론 마탑이 있는 동아리 방이었다.

"후후. 나 온 거 알면 깜짝 놀라겠지?"

그렇게 기대를 품고 아발론 마탑에 도착한 멀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라?"

그가 동아리 방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내가... 잘못 찾아왔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멀린.

'아님, 내 눈이 이상한 건가?'

그는 쇠사슬로 칭칭 둘러싸인 동아리 문과 동아리 명패 위에 떡하니 붙어있는 공고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동아리 폐쇄에 따른 안내문' 이란 문구로 시작한 장문의 공고.

삽시간에 안색이 굳어진 그가 공고문을 뜯어냈다.

그러자 그 뒤에 '아발론'이란 명패가 훤히 드러났다.

멀린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어떤 새끼들이!"

멀린의 두 눈에 형형함이 감돌았다.

심장에는 5개의 고리.

거기에 언제든 소환할 수 있는 라이프 포스 베슬까지.

든든한 뒷배경을 둔 멀린의 걸음걸이는 거침이 없었다.

이걸 다르게 표현하자면.......

이제부터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단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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