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학교 마법동아리(4)
검술학교 마법동아리(4)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 아카데미 지하.
곧 있을 방학을 맞아 동아리 방이 모여있는 곳도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동아리 방만은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동아리 방 앞에는 굵직한 글자가 쓰여있었다.
[아발론]
아발론 마탑.
아니, 아발론 동아리의 주인인 멀린은 홀로 남아 무언가에 열중이었다.
멀린의 뒤로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단지와 그 안을 가득 채운 데오그란 꽃이 보였다.
또한, 단지에 연결된 얇은 관으로부터 푸른 액체가 뚝뚝 떨어져 작은 비커 안에 고여 들었다.
"아, 젠장 또 실패네!"
신경질을 내는 멀린.
그가 거친 몸짓으로 비커에 담긴 갈색 용액을 하수구에 버려버렸다.
흘러가는 용액을 보며 중얼거렸다.
"데오그란 꽃이 많아서 다행이지, 진짜 천금 깨질 뻔했구나."
그는 단지 안에 끓고 있는 데오그란 꽃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각종 약재를 가져와 다시 배합에 들어갔다.
사각사각-
찧고, 갈고, 즙을 내는 일련의 과정.
이를 통해 만들어진 배합액이 데오그란 증류액과 섞였다.
그 결과.
펑- 푸쉬쉿!
연기를 내는 비커 속 액체.
또다시 실패를 알리는 신호였다.
멀린이 벅벅 머리를 긁었다.
"하아...."
그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현재 멀린이 하고 있는 일은 비약을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현재도 수많은 연금술사가 각종 비약을 만들어 내고 있지만, 멀린이 만들고자 하는 비약은 오로지 그만이 만들 수 있는 비약이었다.
바로, 아발론 마탑에 전해진 멀린의 특제 비약, 마나 증강의 묘약.
지금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과거에도 마나를 증강시키는 비약은 매우 귀했다.
지금 그가 만드는 비약도 수없이 많은 시도 끝에 탄생한 비약이었다.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쉽지 않네."
마나 증강의 묘약은 데오그란 꽃이 기본 베이스였다.
데오그란 꽃은 넉넉했지만, 그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천 년 동안 사라져 더는 구할 수 없게 된 약재였다.
때문에 멀린은 다시금 시행착오를 거쳐 비약을 재구성 하는 중이었다.
'단시간에 서클을 증강하는데 이것만큼 좋은 건 없다. 어떻게든 비약을 만들어야 해.'
비약의 효과는 먹어본 사람만이 알았다.
때문에 멀린은 계속되는 시도와 실패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펑- 푸쉬쉬-
"아오씨!"
계속되는 실패로 열이 오른 머리를 식히며 멀린은 고민에 빠졌다.
"뭐가 문제지?"
과거에 수백 수천 번을 만든 조합법을 까먹을 리 없었다.
비약 제조에 필요한 약재의 특성에 그 배율까지.
아직 모든 게 생생했다.
하지만 그의 시도는 계속 실패하고 있었다.
"...역시 약재가 달라져서 그런 건가."
아무리 비슷한 약재로 대처해도 그 특성이 미묘하게 다른게 문제가 된 것 같았다.
그리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마법적인 문제라면 차라리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천 년 동안 사라진 약재 문제는 그도 어쩔수 없었다.
멸종한 약재를 다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무리 멀린이라도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끝없는 반복 작업만이 유일한 답이었다.
"후우... 다시 시작하자."
옅은 한숨으로 답답함을 털어낸 멀린.
그는 끊임없이 배합 작업을 반복해 나갔다.
그렇게 아발론 동아리 방의 불은 꺼질 줄 몰랐다.
***
다음 날.
"...여기인가?"
모자를 푹 눌러쓴 소녀가 아발론 동아리 방 앞을 서성였다.
무언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한 그녀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이내 결단을 내린 듯 동아리방 문을 열었다.
그러나 굳은 결심과는 달리 동아리 방을 열자마자 그녀가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윽!"
코를 부여잡은 사샤.
그녀는 경악한 얼굴로 동아리 방을 바라보았다.
"시, 시궁창인가...?"
동아리 방에서 하수구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냄새가 풍겨왔다.
그래서인지 동아리방에서 검은 연기가 보이는 환상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 지옥 같은 동아리방의 한가운데.
기다란 탁자 위에 한 인영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사샤가 방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조심조심 걸어간 그녀가 손가락으로 시체를 쿡쿡 찔렀다.
그 순간이었다.
"흐억!"
시체가 벌떡, 일어섰다.
두 눈 밑이 퀭하게 변한 멀린.
흐리멍덩한 눈에 빛이 돌아오고 정신을 찾은 멀린이 버럭 소리쳤다.
"케이, 너 이 새끼! ...가 아니네? 사샤?"
멀린은 예상치 못한 손님, 사샤를 의외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네가 여긴 어쩐일이냐?"
"내, 내가 못 올 곳을 온 것도 아니고 나도 여기 부원인데?"
"유령회원으로 있어도 됩니다만?"
"...그, 그리고 내 귀걸이! 그거 잘 만들어 지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
"아 그거? 그거 아직 이틀이나 남았잖아?"
"......."
순간 할말을 잃은 사샤.
그녀가 품에서 주머니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것도...."
짤랑-
주머니에 울리는 소리를 듣기 무섭게 멀린의 눈 밑에 서렸던 그림자가 사라졌다.
언제 피로했냐는 듯 활기를 되찾은 멀린이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짤랑- 짤랑-
들어도 들어도 기분 좋은 소리에 멀린의 입꼬리가 쭈욱 올라갔다.
그가 기특하다는 얼굴로 사샤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자?"
"...그래."
"기간 연장해 줬는데, 일찍 가져왔네?"
"뭐든지 미루는 습관은 좋지 못하니까."
"그럼 그럼! 확실히 네가 그 두 모지리 보다는 훨씬 현명하네!"
멀린이 엄지를 척 치켜 올렸다.
그런 멀린을 보고 사샤가 물었다.
"그것보다 뭘 하고 있던 거지? 이게 다...."
"아, 이거... 있어 그런 게."
멀린의 얼굴에 다시 피로함이 나타났다.
밤새워서 배합을 시도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아무리 과거의 경험이 있다고 해도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의 경험으로 0%가 아니라 70%에서 시작을 했지만, 나머지 30%는 노력과 반복노동으로 채워 넣어야 했다.
'아, 내 피 같은 돈.'
물론 그 과정에서 사 온 약재들이 쑥쑥 줄어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때였다.
"욱!"
헛구역질하며 입을 틀어막은 사샤.
그녀가 질린 눈으로 한 비커를 가리켰다.
"대체 저게 뭔데... 이런 지독한 냄새가...?"
"응?"
멀린이 킁킁거렸지만, 그는 아무런 냄새도 맡지 못했다.
사샤의 반응에 멀린이 놀란 듯 물었다.
"너... 이 냄새를 맡은 거냐?"
"그럼 이 지독한 냄새를 못 맡을까?"
"아!"
사샤의 말에 멀린이 이채를 띠었다.
'맞네! 4분의 1이기는 하지만 얘한테도 엘프의 피가 흐르지!'
누가 뭐라고 해도 마법 비약 제조 분야의 달인은 단연코 엘프였다.
엘릭서.
전설처럼 화자 되는 최고의 비약 역시 엘프의 손에 탄생했다.
그들이 마법 비약 제조 분야의 최고일 수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뛰어난 후각 덕분이었다.
일반적인 향이 아닌 마나의 향을 맡고 이를 구분해 낼 줄 아는 능력.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그 능력이 그들을 마법 비약 제조 분야의 최고로 만든 것이다.
이를 떠올린 멀린이 씨익 웃었다.
"너 혹시 시간 돼?"
"갑자기 그건 왜?"
"수업도 빠지고 이렇게 돌아다니는 걸 보니 한가한 거 같은데... 나 좀 도와주라."
"내가 왜...."
떨떠름하게 답하려던 사샤의 입이 순간 다물어졌다.
그녀의 뇌리로 전날의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친하다의 개념은 누군가 손을 내밀었을 때 그걸 쳐내지 않고 받아 줬을 때나 말하는 거야. 그제야 친구가 될 수 있는 여지가 만들어지는 거고.'
사샤가 회상하는 사이 멀린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지금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거든? 만약 도와주면 네 귀걸이 만드는 게 더 빨라질 거야. 이거 도와주면 귀걸이값은 안 받을게."
"......."
돈 귀신이 무려 돈을 안받겠다 말했다.
이를 보아 그가 얼마나 절박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사샤가 바로 답을 하지 않자 멀린이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솔직히 지금 내가 하는 일도 네 귀걸이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할게."
"엉?"
"도와준다고."
멀린은 자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샤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얘가 왜 이러지?'
그로서는 사샤의 속내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나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그로서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엘프의 후각을 타고난 사샤의 도움이라면 비약 제조가 훨씬 수월해 질테니 말이다.
멀린이 사샤를 보며 활짝 웃었다.
"잘 생각했어!"
사샤는 몰랐다.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말이다.
***
배에 붕대를 감은 케이는 동아리 방을 향해 갔다.
멀린이 준 약초가 효과가 있는지, 통증은 물론이요 상처가 벌써 아물어 가고 있었다.
"으음...."
케이는 심장에 자리한 얇은 고리를 느끼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서클....'
그는 서클로 말미암아 앞으로 자신이 어떤 마법을 배워갈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케이의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고조된 상태였다.
그는 자신에게 이런 기회를 준 존재를 떠올렸다.
"도, 동아리 방에 있겠지?"
지난밤, 멀린은 기숙사로 돌아오지 않았다.
거기에 수업까지 결석하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체 멀린이 무얼 하고 있는지 궁금한 케이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동아리 방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막 그렇게 동아리 방 앞에 선 케이.
문을 열려는 찰나 그의 귀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악! 더, 더는 못해!"
"고작 이 정도에 나약해지지 마."
"고작이라니?! 코가 떨어져 나갈 거 같다고!"
"괜찮아. 멀쩡해. 네 예쁜 코 아직 잘 붙어있어."
투덕거리는 남녀의 목소리.
케이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여, 여자라고...?'
동아리방에 찾아올 여생도가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케이가 살금살금 문을 열었다.
그러자 들어온 동아리 방 풍경.
"자자, 이건 어때?"
"치, 치워! 한 달은 안 씻은 겨드랑이 냄새가 난단 말야!"
"...그런 걸 맡아봤어? 아무튼, 이것도 아니란 거지? 다른 걸 넣어야겠네."
알 수 없는 액체가 찰랑거리는 비커를 사샤에게 들이미는 멀린과 이를 피해 달아나는 사샤.
살금살금 동아리 방으로 들어온 케이는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그 모습을 구경했다.
'사샤가 무슨 일로?'
이유가 어찌 되었든 멀린과 사샤가 함께 있는 모습은 케이에게 진귀한 구경거리였다.
케이가 들어왔지만, 두 사람은 이를 모르고 자신들의 할 일에 열중했다.
"대체...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건데?"
"거의 다했어."
"그 소리... 두 시간 전에도 하지 않았나?"
"음...그랬나?"
멀린이 볼을 긁적였다.
실제로 사샤가 오고 나서 수월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일이 쉽사리 풀리고 있지는 않았다.
잠시 고민을 하던 멀린은 자신이 알아낸 배합액과 약초즙을 사샤의 앞에 놓고 말했다.
"그럼, 네가 한번 만들어봐."
"뭐?"
"방법은 간단해. 네가 느끼기에 좋은 향이 나는 방향으로 배합하면 돼."
"그걸... 나보고 하라고?"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네 코는 특별하거든."
멀린의 말에 사샤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앞에 죽 늘어선 약초즙을 바라보았다.
사샤가 고심하는 얼굴로 약초즙 하나를 가리켰다.
그것은 상큼하고 시원한 향이 나는 액체였다.
"일단 이거."
"그래?"
멀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샤가 지목하는 액체를 집어 들었다.
약재의 효능을 떠올리며 그는 배합량을 조절했다.
그 뒤로도 사샤는 자신의 후각이 느끼기에 괜찮다 싶은 것들을 고르면 멀린이 배합량을 조절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던 어는 순간.
"어?"
"왜?"
"냄새가 안 나."
"오?!"
사샤가 신기하단 표정으로 배합액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자신의 코를 괴롭히던 냄새가 씻은 듯이 사라진 것이다.
희망을 본 멀린이 사샤를 재촉했다.
"계속해봐!"
"그래."
그 뒤로도 한참이나 이어진 작업.
사샤가 고른 23번째 약초즙이 배합액에 떨어지고 갈색의 액체가 맑고 투명하게 변했다.
"아...."
사샤의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코끝을 간질이는 너무도 향긋한 향.
그녀는 마치 자신이 꽃밭에 놀러 온 듯한 기분을 느꼈다.
사샤의 반응에 멀린은 쾌재를 불렀다.
'됐다!'
성공적으로 배합된 비약은 이처럼 투명했다.
또한, 엘프의 설명에 의하면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운 향을 풍긴다고 했다.
연신 콧구멍을 벌름거리는 사샤를 보니 그 말이 맞는 듯 싶었다.
멀린은 한쪽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고 그 중앙에 완성된 배합액이 담긴 비커를 내려놓았다.
곧 그의 서클이 회전하며 마법진을 활성화했다.
그와 함께 치솟는 옅은 빛.
"아아...!"
사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법진의 빛이 배합액에 스며들면 들수록 액체가 내는 향이 점점 짙어져 갔기 때문이다.
잠시 뒤.
"...완성이다."
멀린이 비커를 집어 들었다.
옅은 빛을 내며 맑게 찰랑거리는 투명한 액체.
무려 천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재현된 아발론 마탑의 특제 마나 증강 비약이었다.
이를 바라보는 멀린의 두 눈에 기대감이 담겼다.
방학 수련(1) - 1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