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의 영역(2)
마법사의 영역(2)
모닥불이 타오르며 불꽃이 튀는 소리를 냈다.
천천히 다가오는 습격자들을 보며 케이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죄를 지은 얼굴로 말했다.
"미, 미안해... 내가 부, 불을 피워서...."
케이가 간과한 사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불만큼 위치를 쉽게 드러내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실전 경험의 부재에서 온 실수였다.
반면, 멀린은 달랐다.
"됐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어, 어?"
"부나방을 불러 모으는데 불을 피우는 것만큼 확실한 것도 없지."
지금 같은 상황은 멀린이 유도한 상황이었다.
다만 결과가 그의 예상보다 훨씬 좋았지만 말이다.
'20명이라... 많이도 모였네.'
뒤로는 동굴이 있고, 정면으로는 20의 칼 든 놈들이 포위하며 거리를 좁혀왔다.
멀린은 그들의 경지를 가늠했다.
'대부분이 그냥 소드유저 나부랭이고 세 명이 익스퍼트에 근접했네.'
결론은 그냥 전부 소드 유저란 소리였다.
실력이 조금 좋고 아니고의 차이였지만, 멀린의 눈에 전부 고만고만해 보였다.
그렇다면 문제 될 건 없었다.
스르릉-
20명의 생도가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각양각색의 병장기.
검과 도끼, 창과 활.
수련생 각자가 수련하는 무기가 모닥불 주홍색 빛에 서슬 퍼런 예기를 드러냈다.
"뭐해 족쳐! 아니 죽여!"
그중 가장 선두에 선 에드워드가 광분하여 외쳤다.
이에 한쪽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지랄하고 있네. 우리가 네 부하냐?"
"명령하지 마. 우리는 동맹 관계일 뿐이다. 어디다 대고 명령질이야. 똥쟁이 새끼가."
"이... 이익!"
비웃음 섞인 조롱에 에드워드는 의외로 길길이 날뛰지 못했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들을 모으기는 했지만, 그들을 부하처럼 부리는 것은 아니었다.
20명의 생도들이 모인 이유는 세 가지였다.
세 명의 괴물을 피해 최대한 살아남을 것.
걸림돌이 될 나머지 생도들을 힘을 모아 처리할 것.
그로 인해 높은 성적을 얻어 가는 것.
이러한 목적으로 그들은 평가가 시작되기 전부터 조직적으로 모인 것이다.
"그리고 죽이자니. 아무리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있나? 뒤처리는 누가 할 건데?"
"이렇게 다수가 몰려다니면 분명히 흔적이 남는다. 분명히."
에드워드 일행 중 그나마 이성이 있는 몇몇이 냉철하게 판단했다.
그럴수록 에드워드의 살기는 더욱 짙어져 갔다.
제 뜻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에 분노한 것이다.
에드워드의 잇새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죽인다. 아무도 끼어들지 마."
"워우. 무서워라."
"뭐, 네가 그렇다면야. 솔직히 멀린 정도면 우리 끼어들 필요도 없지. 케이는 우리가 맡을 테니 알아서 해."
자신의 눈앞에서 오가는 살벌한 대화에 케이가 질겁하여 외쳤다.
"사, 살인이라니! 교수님과 조교님들이 그냥 두고 볼 거 같아?!"
"멍청하긴, 이번 평가는 생도 자율인 거 몰라? 숲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그 사람들은 모른다고. 그리고 교수랑 조교가 우리 같은 중간층에게 관심이나 가질 거 같냐? 그들은 상위 랭킹에만 눈여겨볼걸?"
"다시 말해 우리가 너희를 죽여도 너희는 평가 중에 일어난 '불우한 사고사'로 처리된다는 거지. 목격자만 없다면 말야."
놈들의 이야기에 멀린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놈의 아카데미는 인성 교육도 안 하나?'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이건 기사가 아니라 순 살인광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렇게 멀린이 혀를 차는 사이 케이는 어깨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그, 그런...."
케이의 눈에 절망이 스쳤다.
놈들이 말한 목격자가 누군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에드워드 패거리는 지금 자신까지 죽이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틈에서 한가지 또 다른 감정이 치솟았다.
그것은 바로 분노였다.
케이가 검을 뽑아 들고 멀린의 옆에 섰다.
"멀린... 내가 막을게 도망쳐... 도망쳐서 교수님과 조교님들에게 알려."
"오호?"
처음으로 말을 더듬지 않고 말하는 케이의 모습에 멀린은 흥미로운 얼굴을 했다.
그가 물었다.
"나 혼자?"
"네 재생력과 체력이라면 나보다 멀리 도망칠 수 있을 거야."
"네 인지력이 도망치는데 더 효과적이지 않나? 따지고 보면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내가 남아야지 왜 네가 남아?"
"...친구니까."
"......."
케이의 답변에 멀린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야... 너 그거 진짜 병이다."
"......?"
"사람이 그렇게 착하면 병신 소리 들어."
"머, 멀린?"
룸메이트가 된 후 처음으로 들어보는 멀린의 독설에 케이가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멀린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뭐, 그래도 네 그런 점이 싫지는 않다."
"......."
"내가 그랬지. 똑똑히 보라고."
"멀린...."
"지켜봐."
"......."
"아, 그리고 내가 네 이름 부르면 곧장 눈감아라."
"어?"
그리 말한 멀린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그가 부채꼴 형태로 포진한 생도들 앞에 섰다.
그중 가장 중앙에 자리한 에드워드를 보며 입을 열었다.
"어이 똥쟁이."
"천한 새끼가...."
으득-
에드워드의 입에서 이갈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멀린은 태연했다.
"하여간 꼭 저 같은 것들로만 잔뜩 모아왔네. 그것도 능력이다. 임마."
"......."
"대충 똥쟁이랑 똥닦개들이야?"
"뭐라는 거냐 저 미친놈이?"
멀린의 독설에 그간 여유롭던 생도들의 얼굴이 경직됐다.
여기저기서 치솟는 살기 속에서도 멀린의 태연하게 이야기는 계속했다.
그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한 번만 말한다. 돌아가. 봐줄 테니까."
"뭐?"
여기저기서 피식피식 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쟤, 돌았나 본데?"
"저 정도면 정신과 보내야 하는 거 아니냐?"
기가 차다 못해 어이가 가출한 생도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
"에드워드, 언제까지 저 헛소리 듣고 있을 작정이냐?"
"그래, 빨리 처리하고 쉬자."
생도들의 재촉에 에드워드가 검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살기 등등한 그 모습에 멀린은 피식 미소지었다.
"난 분명히 기회를 줬다. 선택은 네들이 한 거다."
"죽어!"
살벌한 소리와 함께 긴 장도가 휘둘러 졌다.
미약하게나마 마나를 머금은 장도는 멀린의 뼈를 단숨에 가를 수 있을 정도였다.
"멀린!"
놀란 케이가 소리쳤지만, 멀린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서서 조용히 읊조릴 뿐.
"실드."
캉!
지름 30cm의 원형 막이 멀린의 머리 위에 나타나 에드워드의 검을 튕겨냈다.
1서클 마법 실드.
마법사들이 보호를 위해 가장 먼저 배우는 기초 방어법이었다.
1서클의 기초마법이지만, 결코 무시될 마법이 아니었다.
사용자의 숙련도에 따라 펼쳐지는 속도, 위치, 내구성이 달라지는 실드.
그런 점에서 멀린의 실드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내가 소싯적에 실드로 익스퍼트도 뚜드려 잡아본 사람이야!'
4서클 시절 그가 실드 마법으로 소드 익스퍼트를 후드려 팬 것은 당시 전설처럼 화자 되던 일이었다.
비록 서클이 낮다고는 하나 소드 유저의 마나소드에 깨질 실드가 아니었다.
"뭐?!"
예상치 못한 반격에 놀란 에드워드가 기겁하며 검을 회수하며 물러났다.
이를 보며 멀린이 씨익 미소지었다.
"축하한다. 너 지뢰 밟았다."
딱-
멀린이 손을 튕기자 짧은 마나 파동이 발생했다.
그가 신호를 주기 무섭게 땅에 그려둔 마법진이 귀물의 마나를 머금고 활성화됐다.
곧이어 에드워드가 선 땅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쾅!
"으악!"
발밑에서 벌어진 충격에 에드워드가 공중을 날았다.
높게 떠오른 놈의 육신이 공중에서 두 바퀴를 회전해 지상에 널브러졌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여기저기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반면 멀린은 기절한 듯 널브러진 에드워드를 새삼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오? 완전 쭉정이는 아니었나 보네."
그것은 옅은 감탄이었다.
발밑에서 폭발이 벌어질 때 놈은 이를 감지하고 마나를 돌려 발목을 보호한 것이다.
원래대로 하면 발목은 물론 다리가 날아갔어도 이상하지 않을 위력이었다.
그런데 놈의 두 다리는 멀쩡했다.
아니, 기괴하게 뒤틀린 다리가 멀쩡하지는 않았지만, 멀린의 기준에서 그 정도면 충분히 멀쩡한 셈이었다.
"뭐, 그래 봤자지만."
"뭐해! 달려들어!"
멀린이 조소하는 사이 생도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의 반응에 멀린은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어서 와. 마법사는 처음이지?"
그저 기쁠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가 공들여 준비한 영역.
적들이 부나방처럼 그 안으로 우후죽순 들어 오고 있으니 말이다.
딱-
멀린이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쾅!
달려들던 생도 중 하나가 다시금 발생한 폭발에 휘말려 튕겨 나갔다.
그제야 멀린이 무언가를 땅에 심어두었다고 여긴 생도 중 하나가 외쳤다.
"발밑을 조심해. 폭약이 묻혀 있다!"
그 외침에 멀린이 심통 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내 마법을 폭약 따위에 비교한 거냐?"
자신의 고급스러운 마법을 고작 과학의 산물인 검은 가루에 비교하다니.
멀린의 눈썹이 삐딱해졌다.
"넌 뒈졌다."
딱-
멀린이 손을 튕겼다.
그러자 한쪽 바위에서 빛이 발했다.
바위에 멀린이 심어둔 마법은 매직 미사일이었다.
팡-
마법진이 빛나기 무섭게 가공할 속도로 발사된 매직 미사일.
퍽-
미처 대응할 새도 없이 매직 미사일에 머리를 직격당한 놈이 그대로 땅에 고꾸라졌다.
"뭐, 뭐야?"
"저격이다!"
"놈을 돕는 새끼가 있다!"
저격이라 여겨질 만한 위력에 생도들이 우왕좌왕했다.
"돕기는. 나 혼자다."
마나 하트를 품은 기사가 대인전의 강자라면, 마법사는 집단 전의 전문가였다.
특히 우왕좌왕 상황 파악하지 못하고 '영역' 내로 들어온 하루살이들이라면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딱-
멀린이 손을 튕기자 이번에는 나무에서 빛이 났다.
촤르르르-
그러자 나무에 휘감겨 있던 넝쿨들이 살아있는 뱀처럼 움직이며 생도들의 발목을 잡아챘다.
"허억!"
난데없는 괴사에 놈들이 기겁했다.
하지만 모두가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화르르륵-
한 생도의 검에서 불길이 일어나 덩굴을 집어삼켰다.
멀린의 두 눈에 이채가 스쳤다.
'각성기.'
마법을 밀어내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가는 힘.
자신의 마법을 불사르는 각성기를 보며 멀린의 입꼬리가 못마땅하다는 듯 비틀렸다.
"다들 각성기 사용해!"
"전력으로 놈을 처리하고 뜬다!"
D급 화력이 먹히는 것을 본 생도들이 너도나도 각성기를 사용했다.
고작 마나 유저일 뿐인 놈들이었지만, 그들이 뿜어내는 각성기는 결코, 녹록지 않았다.
물과 돌개바람, 미약한 전기.
사물을 띄우는 염동력까지.
갖가지 각성기가 멀린의 앞에 펼쳐졌다.
심상치 않은 기세로 밀려드는 놈들을 보며 멀린이 서클을 회전시켰다.
우우우웅-
단 하나뿐인 서클.
평범한 1서클 마법사라면 수십의 마나 유저를 상대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1서클의 마법사가 멀린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자, 일하자 애들아.'
멀린은 마나를 다독였다.
이에 호응하듯 주변 마나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때가 됐다 여긴 그가 소리쳤다.
"케이!"
멀린의 외침에 케이가 즉시 두 눈을 감았다.
곧 멀린이 마법을 발현했다.
"플래시."
강한 섬광이 밤하늘을 꿰뚫었다.
더불어 생도들의 시력을 앗아갔다.
"옛다. 선물이다."
유쾌한 목소리와 함께 멀린의 손끝에서 마나가 뻗어 나갔다.
서클이 힘차게 회전을 하며 그가 심어 놓은 마법진을 자극했다.
동시에 수많은 마법진이 빛을 뿜어냈다.
츠즈즈즈-
서클이 하나뿐이라고는 하나 멀린에게는 오랜 시간 연구해 온 마법 지식이 있었다.
적은 마나량, 횟수가 제한된 마법.
밀려드는 다수의 적.
그러나 준비된 마법사의 영역에서는 그런 문제를 전부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연결.'
뻗어 나간 서클의 마나가 그가 설치한 마법진에 뿌리 내린다.
첫 마법진에서 시작된 마나의 연결은 멀린이 심어둔 귀물의 마나를 타고 옆에서 옆으로 뻗어나갔다.
시작은 손바닥만 한 작은 마법진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마법진과 마법진을 연결한 빛이 변하며 형상을 만들어 냈다.
우우우웅-
묵직한 공명음을 토해내는 그것은 또 다른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멀린이 계산하고 구축한 예술품에 가까운 마법진.
높은 상공에서 본다면 거대하고 입체적인 마법진의 위용에 넋을 놓았으리라.
빠른 속도로 비어가는 서클의 마나를 느끼며 멀린이 곧장 마법을 마무리했다.
"직렬마법진법 발동."
멀린의 시동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플래시 마법을 가뿐히 뛰어넘을 빛이 세상을 잠식했다.
더불어 주변 숲이 거대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로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