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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서클 직전에 환생-3화 (3/191)

1서클(1)

1서클(1)

후욱 후욱-

멀린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단검을 역수로 잡았다.

칼날이 향한 곳은 자신의 단전 부근.

"후우우...."

길게 숨을 내쉰 그가 칼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마나를 머금은 단도가 푸른 빛을 띠며 잘게 몸을 떨었다.

지잉-

쌓아 올린 마나 하트를 깨트리고 마나를 퍼트리는 가장 빠르면서도 단순한 방법.

그것은 바로 마나로 마나 하트에 직접적인 충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기사들이 가장 금기시하는 일을 멀린은 자행하려 하려는 중이었다.

"흡!"

푹-

두 눈을 부릅뜬 멀린이 크게 호흡을 삼키며 자신의 단전에 칼을 박아 넣었다.

칼날이 손가락 하나 깊이로 파고들었다.

즈즉-

'됐다!'

몸속에서 들린 울림에 멀린은 눈을 빛냈다.

단검의 마나가 마나 하트를 건드리며 균열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제부터 멀린이 할 일은 균열을 더욱 키워내 마나 하트를 깨버리는 일.

탕-

복부에서 빼낸 단검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와 함께 각성기 A급 재생력이 그의 상처를 삽시간에 치유했다.

'집중... 집중한다!'

멀린은 계속해서 균열이 간 마나 하트를 혹사 시켰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쩡-

그 순간 멀린은 자신의 내부에서 무언가 깨져나가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큭...."

칼로 배를 찔렀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 뇌를 강타했고 마나가 흩어지는 허무함이 몰아쳤다.

그럼에도 멀린은 살짝 미소지었다.

깨져 나온 마나 하트에서 흩어진 마나가 몸 내부에 흘러 다니는 것을 느낀 것이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고통을 양분 삼아 정신을 바짝 일깨웠다.

그와 함께 그는 몸속의 마나를 심장 어림으로 인도했다.

'움직여라.'

지난 수천 년간 마나는 멀린의 친구였고, 동반자였다.

그것은 이번 생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우웅-

마나 하트가 깨지며 흩어졌던 마나들이 그의 인도에 따라 움직이며 차곡차곡 심장에 쌓여갔다.

드디어 제 옷을 입은 듯한 편안함에 멀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후훙-

정좌한 멀린을 중심을 바람이 몰아쳤다.

'서클을 만드는 거는 진짜 오랜만이구나.'

육신에 9개의 서클을 쌓았지만, 그게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서서히 심장에 형성해 나아가는 고리 형태는 멀린에게 설렘을 안겨주었다.

'백지와 같은 이 육신이라면... 도전해 볼 수 있다.'

최초의 9서클 마법사 멀린이라고 처음부터 모든 것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1서클 시절이 있었으며,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아니, 오히려 이후 후발 주자들보다 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9서클에 올랐다는 게 옳았다.

그렇게 수많은 자료를 쌓아 최적의 서클을 형성하는 법을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이미 9개의 서클을 품은 멀린이 시도할 수는 없었다.

'실을 만든다.'

일반적인 마법사들은 서클을 만들 때 블록을 쌓듯 서클을 형성한다.

그러나 멀린이 시도하려는 방식은 달랐다.

마나를 얇게 꼬아 뜨개질하듯 고리를 만들어 나가는 방법.

그렇게 되면 서클은 더 많은 마나를 품을 수 있게 되며, 탄력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서클의 탄력이 늘어나게 되면 '서클 과부하'로 부터 보다 안정적이게 될 수 있다.

주륵-

멀린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가 이론을 세우고 완성한.

하지만 그조차 시도해 보지 못한.

어지간한 마나 제어 실력으로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멀린만의 서클 구성법.

까마득한 세월을 넘어, 창조자의 심장에서 처음으로 구현되고 있었다.

'마나는 넉넉하다.'

현생의 멀린이 모은 마나 하트의 마나량은 풍족했다.

일반적인 서클이라면 2서클도 형성할만한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 멀린이 시도하는 방식으로는 겨우 1서클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지금부터는 시간과 집중력 싸움이다.'

한 땀 한 땀.

장인의 정신으로 마나를 꼬아야 했다.

멀린의 이마는 더욱더 땀으로 흥건해졌고, 그가 땀에 젖어가는 만큼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지잉-

마침내 마지막 한줄기 마나가 연결되며 매듭지어졌다.

더불어 심장에 형성된 서클이 서서히 회전하며 몸에 잔류한 마나 하트의 마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순식간에 잔류 마나를 빨아들인 서클은 더욱 굵고, 보다 튼튼해져 갔다.

그로부터 약 다섯 시간 뒤.

"후우...."

멀린이 숨을 내쉬었다.

몸속에 남아있던 마지막 남은 탁기가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날 샌 건가?"

무려 수 시간에 걸친 연공이었고,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다.

그러나 멀린의 얼굴은 그 어느때 보다 밝고 환했다.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매직 애로우."

마나로 만들어내는 가장 기초이자 모든 마법사가 가장 먼저 사용하는 마법.

츠릉-

순식간에 만들어진 매직 애로우를 보며 멀린은 감성 어린 눈빛을 해 보였다.

'성공했구나. 생각 보다 마나가 조금 모자라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대기 중의 마나를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마무리 지을 수 있겠어.'

심장에 자리한 새로운 방식의 서클.

그의 도전은 성공이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1서클을 만들었을 때 보다 더 많은 마나를 품은 것이다.

'이것만 있다면... 다시 한번 도전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10서클과 진리의 문에 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에 잠겨있던 멀린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고 보니... 10번째 고리가?'

육신이 바뀌면서 라이프 베슬에 쌓은 9개의 고리가 날아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10번째 서클는 달랐다.

무려 영혼에 쌓은 서클이었다.

자신이 환생한 것이 맞다면, 영혼에 열 번째 서클이 남아있어야 했다.

"이상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10번째 고리를 느껴보려 했지만, 그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에 무리한 게 문제가 된 건가?'

그 망할 칼잡이 녀석을 상대하며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무리하게 10서클을 가동했었다.

당시 위태위태하던 서클이 붕괴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러나 멀린은 희망를 버리지 않았다.

"일단은 9서클에 오르는 게 먼저다."

그렇게 된다면 영혼에 형성된 열 번째 서클을 활성화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모든 가능성은 열어 두는 게 좋았다.

"그런데 이건 뭐냐?"

멀린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영혼의 서클은 느껴지지 않고, 엉뚱한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그것도 심장의 한가운데에 말이다.

익숙한 느낌에 멀린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 올랐다.

"이거 설마... 각성기?"

그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각성기가 생겨나는 것은 오로지 마나 하트를 만들었을 때 뿐이었다.

멀린은 확인을 위해 칼날로 자신의 손끝을 살짝 그어보았다.

스각-

살짝 피가 튀고 몇 초가 지나기도 전에 상처가 아물어 버렸다.

멀린이 지니고 있던, A급 재생력이었다.

"진짜네?"

천년.

각성기가 생겨난 이래 절대로 깨질 것 같지 않던 법칙이 멀린에 의해 처음으로 깨진 것이다.

"마나 하트의 마나로 서클을 만들어서 그런 건가?"

마치 제집 안방인 양 심장에 자리한 각성기.

"재밌네."

이는 멀린에게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심장에 자리한 각성기를 어찌 활용할지는 차차 생각해볼 작정이었다.

우득 우득-

장시간 자리에 앉아있던 그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마나 하트가 사라지며 강건했던 육신이 물먹은 솜처럼 묵직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머리는 그 어느 때 보다 맑았다.

"아 배고파."

생각해보니 어제부터 먹은 게 없었던 거 같다.

극심한 허기가 몰려들었다.

때마침 아침 식사가 배급될 시간이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멀린이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10분 뒤.

꿀꺽-

식판 위에 산더미 같이 쌓인 음식들을 보니 절로 군침이 삼켜졌다.

'생각해보니... 나 음식을 먹은 게 언제였더라?'

진리를 위해 인간이길 포기한 세월이 수천 년이었다.

리치가 무슨 음식을 먹겠는가.

비록 현생의 멀린이 무언가를 먹으며 살아왔지만, 전생을 기억한 멀린에게 음식은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것들이었다.

'꼭꼭 씹어 먹자.'

최대한 맛을 음미하면서.

꿀꺽-

입안에 다량으로 고이는 침을 삼키며 멀린이 신중한 얼굴로 음식에 포크를 가져갔다.

그때였다.

퍽-

멀린의 식판이 훨훨 하늘을 날았다.

더불어 그 위에 쌓여있던 음식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멍하니 있는 멀린.

곧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 살아 있었네?"

퍽-

또한, 뒤통수에 가해진 강한 충격과 함께 멀린의 머리가 앞으로 푹 수그러졌다.

'뭐... 지?'

멀린의 사고가 멈췄다.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방에 어질러진 음식물과 뒤통수에 전해지는 아릿한 통증.

그리고 그 무엇보다 멀린을 어이없게 하는 것은 자신이 맞았다는 사실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으니 순간적으로 화를 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허... 이게 얼마 만에 맞아 본 건지.'

철이 들고 마법이 3서클을 넘어가면서부터는 누군가에게 맞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스승님에게조차 말이다.

몬스터면 몬스터, 사람이면 사람.

멀린은 주로 두들겨 패는 입장이었지 맞는 처지는 아니었다.

거기에 경지가 완숙에 접어들면서 많은 이들의 흠모를 받아온 그였다.

마법사들은 자신의 그림자 조차 성스럽게 여기며 밟으려 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의 뒤통수를 누군가 시원하게 후려갈긴 것이다.

'씁... 어떤 새끼가 때린 데를 또!'

멀린이 고개를 들어 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뱀눈을 한 소년과 녀석의 패거리로 보이는 이가 둘이나 포진해 있었다.

'지금 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날 후려 친 거야?'

자신을 보며 실실거리고 있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뒤통수를 후려갈긴 범인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혼재된 기억 속에서 놈의 이름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에드워드."

케이가 말했었다.

놈이 자신을 벼르고 있다고 말이다.

멀린의 중얼거림에 에드워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에드워드? 이 새끼가 간댕이가 부었나. 뒤에 '님'자는 어디다 팔아먹었냐? 천한 평민 고아 새끼가."

"......."

"네가 어제부터 정신줄을 놨지? 목 씻고 기다려라? 칼잽이 새꺄? 너 그거 나 들으라고 한거지? 그렇지?"

놈이 사납게 눈을 부라렸다.

또래가 보기에는 제법 사나운 얼굴이었지만, 멀린이 보기에는 그저 하룻강아지의 으르렁과 다름이 없었다.

멀린이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자 놈의 뒤에 포진한 똘마니 중 하나가 킬킬거리며 말했다.

"에드 너무 그러지 마. 쫄아서 얼었잖아? 저번처럼 바지에 오줌이라도 싸면 어쩌려고 그래?"

"아 그런가? 내가 심했나?"

놈들이 자신을 두고 뭐라뭐라 하였지만, 멀린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멀린이 에드워드 일행의 괴롭힘에 겁을 집어먹었다고 보일 수 있었다.

실제로 지난 2년간 그러한 일이 일상이었다.

때문에 식당에서 소란이 일어도 아무도 참견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멀린의 속내는 대중의 시선과는 달랐다.

'아... 어떻게 족치지?'

전생의 멀린 역시 고아였다.

거기에 한술 더 떠 그는 떠돌이 거지였다.

매일매일 굶주림에 허덕였고, 나가서 구걸해 오라는 왕초의 주먹과 발길질을 맞으며 지냈었다.

그러다가 지나가던 3서클의 마법사에게 거둬진 멀린,

그가 스승의 경지를 넘어서며 가장 먼저 한일은 자신을 때린 왕초를 찾아 족치는 일이었다.

다시 말해 멀린은 상당히 뒤끝 있는 성격이란 소리였다.

'이 새끼를 어떻게 족쳐야 잘 족쳤다고 소문이 나지?'

멀린이 무심한 눈으로 뱀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각종 고문법을 생각했다.

'구멍이란 구멍에 모조리 매직 애로우를 박아 버릴까?'

안 그래도 뒤끝 있는 성격의 멀린이었고, 그런 이가 수천 년이나 사람을 만나지 않고 폐관을 거쳐왔다.

수십 년만 홀로 지내도 인성이 갈리기 마련인데 그 수백 배를 버틴 멀린이었으니 그 성격을 결코 좋다 말할 수 없었다.

거기에 나이가 들며 조금이나마 잠잠해졌던 성격이 환생을 통해 젊고 혈기 넘치던 그 당시로 돌아가 있었다.

망나니 멀린이라 불리던 그때로 말이다.

'너무 약한가? 좀 더 획기적인 방법 없나?'

싸늘함을 넘어 섬찟한 멀린의 눈빛에 에드워드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러다가 자신이 멀린의 눈빛에 움츠러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불같이 화를 냈다.

"이 새끼가 어디서 눈을 그따위로 떠! 눈 안 깔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녀석의 손이 날아들었다.

한번은 멋모르고 당했다지만, 두 번을 당할 멀린이 아니었다.

그가 고개를 살짝 틀어 에드워드의 손을 피해냈다.

'아 그러고 보니 나 이 새끼 때문에 기절한 거였냐?'

불과 하루 전.

놈에게 대련을 빙자한 폭행을 당했다.

자신의 뒤통수에 생긴 혹을 만든 주범이 바로 에드워드였다.

"어쭈? 피해?"

"그럼 그걸 맞냐?"

"뭐?"

어이없다는 멀린의 물음에 되려 에드워드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한, 에드워드 뒤의 똘마니들은 물론 식당에서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학생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에드워드 패거리에 멀린이 이토록 당당하게 나섰던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말이다.

"하, 이 새끼가 뭘 잘못 먹었나?"

에드워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그가 턱짓했다.

"야, 저 새끼 잡아. 아니, 그냥 그대로 밟아."

"알았어."

"평민 새끼가 뒈지려고."

에드워드의 턱짓에 패거리가 목을 꺾으며 멀린에게 다가왔다

멀린보다 머리 한두 개쯤은 더 있는 커다란 덩치의 똘마니들.

도무지 멀린과 동급생으로 보이지 않는 발육상태였다.

그들이 다가오는 순간 뒤로 멀린의 서클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멀린에게 1서클 마법은 자다가 잠꼬대로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익숙한 마법이었다.

그중 멀린이 가장 좋아하는 마법은 매직 애로우였다.

후드려 팰 때 타격감이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왼쪽 놈은 명치에 한방, 오른쪽 놈은 인중에 한방씩 먹여주면 되겠네. 그리고 에드워드 저 새끼는... 콧구멍에 쑤셔 넣어주마!'

멀린의 두 눈깔이 희번덕거렸다.

수천 년 만에 '멀린표 구타용 매직 애로우'가 발현될 기미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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