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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222화 (222/225)

[222화]

당연한 말이지만 뜯겨나간 팔의 단면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저거 왜 저래?”

시현은 이자프에게 의견을 구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갑작스럽게 자해를 시작한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지. 뭔가 함정일 수도 있으니 지켜보는 게 좋을 거 같군.]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러운 것은 이자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써 태연한 척을 하고 있지만, 그의 눈동자는 전에 없을 만큼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외신의 돌발 행동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시현은 경계 태세를 갖춘 채 외신의 변화를 지켜봤다.

뜯어낸 팔을 바닥에 내던진 외신은 왼쪽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뜯겨진 단면으로부터 촉수가 솟아났다.

몇 차례 꿈틀거리던 촉수는 서서히 형태를 바꾸더니 이내 이전에 있던 팔과 완전히 동일한 모습을 갖추었다.

나름대로의 회복 능력인 모양이었다.

문제는 뜯어서 내던진 팔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팔의 단면으로부터 대량의 촉수가 빠져나왔고,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형상이 갖춰진 후에는 색까지 입혀졌다.

경악할 만한 변화를 하나부터 열까지 지켜보던 시현은 그제야 외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저 익숙한 얼굴.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저 얼굴은 시현의 뇌리에 각인된 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시현은 이를 갈며 왼팔에서부터 만들어진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이한울…….”

[……반갑다. 쭉 너를 만나고 싶었어.]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연인을 대하듯 남자는 웃었다.

하지만 그 미소 속에는 숨기지 못할 광기, 그리고 지독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여기서 네가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저 자와 거래를 했지. 이 전쟁에서 인류를 짓밟을 수 있게끔 도울 테니 내게 한 번의 기회를 달라고.]

이한울은 손목이나 발목을 돌리며 새롭게 얻은 몸의 상태를 체크했다.

딱히 싸워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이한울은 강하다.

아마 인간일 때보다 수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까지 강해졌을 것이다.

애초에 저 육체는 인간의 것이 아닌, 외신의 권능으로 인해 만들어진 육신.

인간 시절의 이한울을 생각하고 싸웠다가는 크게 낭패를 보게 될 것이 자명했다.

[설아가 죽고 나서 쭉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그 애의 넋을 달랠 수 있을까……. 너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불쌍한 삶을 살아온 애야. 남은 인생이라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너만 아니었어도 성공했을 거야.]

“그러게 왜 나를 건드렸어.”

상대방에게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는 이는 비단 이한울뿐만이 아니었다.

시현 역시 이한울에게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한울은 시현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나 테스트를 해 보겠답시고 시현을 포함, 다수의 생존자들이 머무르고 있던 건물 입구에 신혈을 발라 놨다.

그 결과 빌딩에 머무르던 생존자 전원이 사망했다.

어머니를 눈앞에서 잃고 매일 밤 악몽을 꾸며 괴로워하던 작은 아이까지.

빠짐없이 죽었다.

그 날, 하수인으로 변해 버린 아이의 목을 베던 감촉은 아직까지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불쾌한 감각은 이한울을 향한 증오와 원망이 되었다.

“왜, 먼저 선빵 쳐 놓고 돌려받으니까 억울하냐? 상대를 죽이기 위해 칼을 꺼냈으면 자기네들도 죽을 수 있다는 걸 알았어야지.”

[그 때도 느꼈지만 너는 너무 과몰입하는 경향이 있군. 게임으로 치면 고작해야 NPC 같은 존재인 것을…… 현실은 그보다도 못한, 복제품일 뿐이지만 말이야. 복제품 따위와 설아를 동일 선상에 두지 마라.]

“찌르면 피 쏟으며 죽는 건 똑같더만.”

이한울은 시현을 도발했고, 마찬가지로 시현은 이한울의 속을 긁어 놨다.

상대방의 멘탈을 흔들어 앞으로 있을 싸움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가져가기 위해 시작된 언쟁은 서로의 마음에 비수를 꽂아 넣기에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잊고 있던 그 날의 기억이 점점 선명하게 드러났고, 그럴수록 상대를 죽이고 싶다는 감정 또한 강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으아아악!”

근처에서 악마와 싸우던 구원자 하나가 큰 상처를 입고 비명을 질렀다.

그게 신호탄이 되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저놈을 맡아야 할 것 같네.]

이자프는 한숨을 내쉬며 눈치껏 외신의 본체가 싸움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그를 견제했다.

[윤시현!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을 겪으며 죽게 해 주마!]

이한울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시현을 향해 달려드는 그는 지옥 끝자락의 악귀나찰도 한 수 접어줄 정도로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이한울이 손을 휘둘렀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빈손이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손에는 커다란 흑색의 대검이 들려 있었다.

딱 봐도 섬뜩한 기운이 넘실거리는 대검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시현은 백색의 대검을 옆으로 들어 공격을 받아 냈다.

상당한 충격이 가해지기는 해도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외신과 공방을 나눌 때와 비교하면 너무 여유로워 일부러 힘을 숨기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외신과 이한울.

두 개체로 나누어지며 힘 역시 반으로 줄어든 모양이었다.

“고맙다.”

검을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던 도중 시현이 말했다.

어째서 시현이 감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이한울이 표정을 구겼다.

[무슨 뜻이지?]

“네가 스스로 몸을 던져 외신과 융화되었다고 들었을 때 너무 분했거든. 내게 있어서 이설아는 어디까지나 과정이었을 뿐이고, 목표는 네놈의 목이었으니까. 그런데 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내손으로 꼬맹이의 복수를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분해서 잠도 못 자겠더라고.”

[…….]

“그런데 이렇게 나에게 기회를 준 거잖아. 네가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감사 인사 정도는 해야지. 그 대신이라 하기에는 뭐하지만,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을 네 동생과 같은 곳으로 보내 주마.”

시현은 기습적으로 검의 각도를 꺾었다.

힘겨루기를 하던 이한울의 검이 중심을 잃고 바닥에 처박혔다.

검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시현의 무릎이 이한울의 복부에 들어갔다.

퍼억!

“……이런 미친.”

욕설이 나온 것은 공격을 받은 이한울이 아니라, 오히려 공격을 가한 시현 쪽에서 튀어나왔다.

마치 강철을 때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마 외피가 없었다면 무릎이 아작 나 절뚝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주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한울은 공격받은 부위를 잡고 비틀거렸으며, 그 틈을 노려 시현은 들어 올린 검을 내리찍었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이한울은 아직 땅에 박혀 있는 검에서 손을 떼고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지만 크게 내딛은 시현의 오른발이 이한울의 발등을 강하게 짓눌렀다.

덕분에 다시 한 번 중심을 잃은 이한울의 어깨에 온갖 버프를 받은 백색의 검이 닿았다.

단단한 무언가에 걸리는 느낌이 났다.

그것이 외피 비슷한 무언가라고 판단한 시현은 온 힘을 다해 내리찍었고, 얇은 무언가가 깨지는 느낌이 나며 검이 이한울의 어깨에 파고들었다.

살을 가르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피가 튀는 게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크악!]

이번에는 제대로 이한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작은 신음이 감미로운 음악보다 귀를 즐겁게 해 줬다.

기껏 만든 상처는 빠르게 치료되었다.

가느다란 촉수가 상처를 이어 붙이는 모습은 상당히 징그러운 광경이었다.

당연하지만 시현은 이한울이 상처를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곧바로 거리를 좁힌 시현은 연격을 가했다.

까앙!

금속의 검이 시현의 공격을 막았다.

사용 중이던 무기는 여전히 땅에 꽂혀 있는데 말이다.

‘무기를 생성하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네.’

하지만 별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강하게 힘을 줘 무기를 튕겨 낸 시현은 조금 전 회수한 흑룡검을 휘둘렀다.

[어딜!]

이한울 역시 시현과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손 안에서 커다란 도끼를 만들어 낸 이한울은 그것을 이용해 시현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검에 닿기도 전에 반투명한 방패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당황하는 이한울의 얼굴을 노리고 화염을 휘감은 흑색의 검이 쏘아졌다.

퍼엉!

어찌나 찌르기가 매섭던지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

가까스로 고개를 꺾어 공격을 회피한 이한울이었으나, 강렬한 화염에 뺨과 귀, 그리고 어깨가 화상을 입은 채 녹아내렸다.

상처는 재생되지만, 고통까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한울의 움직임은 둔해졌다.

그 덕에 시현은 연이어 유효타를 가하는데 성공했다.

[으아아아아!]

입을 크게 벌린 이한울이 포효했다.

단순히 분에 못 이겨 내지른 것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의 입 안에서 청색의 화염이 이글거리는 것을 확인한 시현은 슬쩍 배후를 확인했다.

그의 등 뒤에는 여전히 악마와 교전하고 있는 구원자들이 있었다.

“어쩔 수 없나…….”

이한울의 공격이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이상, 무턱대고 일방통행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이전에도 이그드라실에 의해 일방통행이 분쇄당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막아 줄 거라는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시현은 땅을 박차 높이 뛰어올랐다.

허공에는 뛰어오르기 전에 만들어 놓은 피의 사슬이 있었다.

시현은 그것을 발로 밀어내며 반동을 이용해 이한울을 향해 쏘아졌다.

[멍청하긴.]

조소한 이한울은 화염을 토해 냈다.

하늘을 향해 부채꼴을 그리며 쏘아진 청색의 화염은 하늘까지 닿았다.

아무리 7레벨 구원자라 한들 이번 공격을 맞고도 버틸 수는 없을 것이다.

[드디어……!]

승리를 확신한 이한울은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건 시현을 너무 얕본 처사였다.

“생각을 좀 해라. 내가 그렇게 뻔히 보이는 공격에 당하겠냐?”

[……!]

배후에서 들려오는 시현의 음성에 놀란 이한울이 곧장 반격을 가했다.

그러나 그보다 시현이 더 빨랐다.

이한울의 왼쪽 가슴을 뚫고 검이 솟아났다.

[포탈…… 빌어먹을!]

욕지거리를 내뱉는 와중에도 처형의 권능으로 인해 상처가 벌어지고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심장이 뚫린 순간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외신의 육신을 빌린 이한울은 죽지 않았다.

일반적인 상처만큼은 아니지만, 심장 역시 천천히 복구되기 시작했다.

시현에게서 멀어진 이한울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그를 노려봤다.

반면, 차분하게 그를 응시하던 시현이 입을 열었다.

“너 생각하던 것보다 많이 약하네.”

[…….]

“외신의 육체를 가지고 있으면 뭐 해. 제대로 써먹을 줄도 모르는데. 이런 걸 두고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 하는 거지?”

[윤시현……!]

“그래, 나 윤시현 맞아. 그렇게 소리 안 질러도 알아.”

도발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분노에 눈이 돌아간 이한울은 제 재생력을 믿고 무작정 공격을 퍼부어 댔다.

한 방, 한 방이 위협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맞지 않으면 그만이다.

시현은 모든 공격을 어렵지 않게 회피하면서도 입을 놀려 댔다.

“사람들이 그러더라. 내가 강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여러 개의 권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같은 입장이 돼 보니까 알겠지? 적재적소에 필요한 권능을 딱 떠올리고 사용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 너는 그게 안 되니까 나한테 일방적으로 맞는 거야.”

[시끄러워!]

일갈을 내지른 이한울의 주먹이 땅을 내리친다.

그러자 정면으로 땅이 갈라지며 고열의 용암이 솟구쳤다.

시현은 곧장 포탈을 이용해 모습을 감췄다.

[또 뒤를 잡을 셈이냐!]

당한 게 많아서 그런지 이한울은 곧장 자신의 배후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도끼는 애꿎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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