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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221화 (221/225)

[221화]

쿵!

분명 목을 쳤는데도 믿기 힘든 소리가 났다.

사람의 피부가 아니라 뼈를 때려도 저런 소리는 나지 않을 것이다.

손끝에 인식되는 감각 역시 단단한 바위를 때리는 느낌이었다.

검과 목이 맞부딪치며 발생한 충격파로 인해 반경 20여 미터 내의 생존자나 악마들이 버티지 못하고 나뒹굴었다.

찰나의 순간.

시현과 외신의 눈이 마주쳤다.

‘길게 끌 거 없어. 이번 공격으로 끝낸다!’

어떻게 잡은 절호의 기회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 버릴 생각은 없었다.

화륵!

백색의 검에 흑색의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거기에 더해 백색의 빛이 검에 맺히고 작게 뭉쳐진 폭풍이 두 가지 기운을 복잡하게 뒤섞어 놓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황금빛의 축복이 시현의 육신을 보다 강하게 만들었으며, 은회색의 기운이 눈동자에 넘실거렸다.

아르하의 권능으로 모방한 권능들이 소실되며 생겨난 빈자리.

그곳에 오로지 지금의 일격을 위해 강화 계열 권능을 담아 넣은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7레벨 구원자가 되며 마르지 않는 강처럼 풍족해진 정신력이 대량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죽어!”

시현은 검을 잡은 두 손에 힘을 가했다.

검이 외신의 피부를 찢으며 파고드는 순간, 외신이 오른팔을 휘둘렀다.

[내가 고작 이 정도로 죽을 성 싶더냐?]

제 목이 베이기 전에 시현을 반으로 쪼개 놓으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반투명한 막이 원형의 방패 형상을 만들어 내며 검을 막아 냈다.

일방통행의 권능을 사용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상당히 소모된 정신력이 또 다시 대량으로 빠져나갔다.

이번 공격으로 끝을 내지 못한다면 역으로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

시현은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뽑아냈다.

[…….]

자신의 공격이 막히자 놈은 손을 내밀어 검을 붙잡았다.

손에 깊은 상처가 생기고 있음에도 아랑곳 않고 검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억울한 일이지만 힘에서 차이가 발생했다.

검이 외신의 손을 절반가량 파고 들어가기는 했지만, 확실히 목에서는 멀어져 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안전을 확보하고 나면 외신은 단번에 거리를 벌릴 것이다.

초조해진 시현이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던 찰나.

“저리 비켜어어어!”

웬 거구의 구원자가 앞을 가로막는 구원자들을 밀어내며 달려들었다.

상의를 탈의하고 있는 그는 우락부락한 근육에 어울리는 거대한 도끼를 무기로 삼고 있었다.

성난 야수처럼 달려드는 남자의 몸에는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만약 부러지면 미안하다! 우오어어어어!”

고막을 찢어발길 기세로 괴성을 내지른 그는 있는 힘껏 시현의 검을 도끼로 때렸다.

쿵!

덕분에 검이 외신의 손에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기껏 밀어낸 만큼 다시 파고든 검 때문에 분노한 외신이 남자를 노려봤다.

“꺼어억…….”

그저 시선만 줬을 뿐인데, 남자는 눈을 까뒤집고 정신을 잃었다.

숨을 헐떡이며 경련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아 외신의 특기 중 하나인 정신 공격에 당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상태에서 남자는 악마에게 당하고 말았다.

외신과 힘겨루기를 하느라 그를 도울 수 없던 시현은 착잡한 마음에 눈을 돌렸다.

그 비참한 결말을 보고 겁을 먹을 만도 하건만.

여기까지 온 구원자들은 시현의 기대 이상으로 용기가 있는 자들이었다.

다소 가녀린 체구를 가진 젊은 여성과 노년의 남자가 달려와 검을 때렸다.

[감히…… 주제도 안 되는 것들이……!]

용기의 대가는 참혹했다.

“허억……!”

“으으으으!”

비틀거리며 쓰러진 그들은 긴 혓바닥을 가진 개구리 형태의 악마에게 산 채로 삼켜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의 목숨을 건 일격은 확실한 결과로 나타났다.

툭.

바닥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잘려 나간 외신의 손가락들이다.

중지를 시작으로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 전부가 땅에 떨어진 후, 검은 외신의 목을 가르며 나아갔다.

[끄아아아아!]

목이 잘려 나가는 고통에 외신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검이 반 이상 나아갔을 때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촤악!

결국 오른쪽으로 들어간 백색의 검은 왼쪽으로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잘려 나간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자신이 당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으아아아!”

머리를 베어 버렸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안하기에 시현은 선 채로 죽어 있는 외신의 심장을 찔렀다.

놈의 등 뒤로 빠져나온 칼날은 원래 백색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끝났나?”

시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검을 뽑자 힘없이 쓰러지는 외신의 육체.

의심할 것 없는 승리였다.

목숨을 건 심리전에서 승리했고, 놈을 죽이기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일격에 쏟아 부었다.

도중에 안타까운 희생이 있기는 했지만, 놈의 머리를 썰어 버리는데 성공했다.

[수고했다. 그리고 승리를 축하한다.]

본체가 죽었기에 외신의 분신체 역시 사라졌고, 그와 싸우던 이자프도 시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순수하게 승리를 기뻐하고 있었다.

생존자들을 위협하던 거대한 촉수도, 불기둥도, 검은 번개도.

전부 사라졌다.

그런데도 왜일까.

이겼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와아아아아!”

“윤시현이 외신의 목을 베었다!”

배후에서 들려오는 구원자들의 함성.

그들은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자신들이 악마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마저 망각한 채 만세를 부르다가 악마의 공격을 허겁지겁 방어하는 이들도 속출했다.

그 모습을 보며 시현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죽은 거 맞아?”

[그게 무슨 소리지? 네 손으로 끝장내지 않았나.]

“저 악마들.”

시현은 구원자들과 싸우고 있는 악마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놈들은 제 주인이 죽은 것도 모른 채 최선을 다해 날뛰고 있었다.

그게 자신들의 사명이라도 되는 양, 옆에서 동족이 죽어 나가도 아랑곳 않고 죽음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더 이상 이 땅에 봉인이 풀린 외신은 남아 있지 않아. 그렇다면 저놈들 역시 죽어 없어졌어야지.”

어느 날 갑자기 지구상에 나타난 괴물들.

놈들은 그런 생물이다.

제 주인과 함께 나타나고 함께 사라지는, 그런 운명을 가지고 있는 생물.

그렇기에 외신이 죽으면 놈을 주인으로 섬기고 따르는 악마들 역시 사라졌어야 한다.

하지만 놈들은 여전히 살아남아 날뛰고 있었다.

[단순히 숨이 끊어지는 게 늦어지는 것뿐일…… 리는 없겠군. 이거 제대로 당했어. 아무래도 우리 둘 다 분신체와 싸우고 있던 모양이야.]

처음부터 쭉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당연히 놈이 본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닌 것이다.

처음 전투가 시작될 때부터 놈은 분신체였고, 본체는 어디엔가 숨어 시현과 이자프를 기만하고 있던 것이다.

“고작 분신체 따위한테 힘을 다 써 버리다니…….”

남아 있는 체력과 정신력을 확인한 시현은 짜증 섞인 한숨을 토했다.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외신은 고사하고 대형과 싸워도 버거울 정도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시현과 이자프를 기만한 외신은 구름 위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네놈들의 인형놀이. 참으로 볼 만하더구나. 관객이 나 혼자라 아쉬울 정도로.]

상당히 거리가 있음에도 놈의 조롱하는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일부러 무언가의 능력을 사용해 목소리를 전달한 것이 분명했다.

머리끝까지 천불이 솟았다.

가능하다면 묶어 놓고 사정없이 두드려 패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 하나 놀리자고 참 지극정성이네.”

[도발에 넘어가지 마라. 나와 대등하게 싸울 정도의 힘을 가진 분신체를 둘이나 만들었으니, 아마 상당한 힘을 소모했을 거다.]

[부정하지는 않으마. 그 인형은 제법 공을 들여 만든 거니까. 회심의 역작이었지. 하지만 인형을 상대하느라 너희는 모든 힘을 소진하지 않았더냐.]

“그렇기는 한데…….”

시현은 지금까지 쭉 목에 걸고 있던 황혼의 이슬을 들어 올렸다.

“이거 가지고 있거든?”

[…….]

이번에는 외신이 당황할 차례였다.

제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는지 그는 한참이나 침묵을 유지했다.

외신 역시 황혼의 이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원작의 마지막 전쟁에서 저 같잖은 장신구 하나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단 말인가.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황혼의 이슬은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본인이 손에 넣을 생각이었고, 그게 불가능하다면 완전히 부숴 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는 황혼의 이슬에 대한 걱정을 전혀 하지 않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이한울을 받아들였을 때부터였다.

한참이나 침묵하고 있던 외신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분명 현 시점에선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이라 하지 않았나.]

그 중얼거림은 시현의 귀에 똑똑히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질문이 자신에게 향한 게 아니란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가 던진 질문에 답을 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구조상 현 시점에서 황혼의 이슬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몇 번이나 확인해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오류는 없다.]

[하지만 저 인류는 황혼의 이슬을 손에 넣었지. 설명하라.]

[……블랙마켓.]

나지막이 중얼거린 외신은 확인이라도 하려는 건지 시현에게 시선을 줬다.

딱히 표정에 변화를 주지는 않았는데 그것만으로 충분한 모양이었다.

외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블랙마켓의 물건은 목록부터 가격까지 분명 다 외우고 있었을 터다.]

“……와, 나 같은 인간이 또 있었네.”

아마 저 목소리의 주인은 이한울일 것이다.

어차피 사용도 못할 목록을 가격표까지 외우고 있었다니.

그에게 좋은 감정은 없지만, 이런 의미에서는 참 대단한 인간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더러운 편법을 사용했군.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미세하게 인과율의 특혜를 받았다고 말했지. 원인은 불명이라고…… 아마 저게 원인이 아닐까 싶군.]

[……다소 귀찮게 됐군.]

결국 누구의 잘못도 아닌, 정보의 부족이기에 외신은 육체를 공유하고 있는 이한울을 탓하는 것을 멈추었다.

그 대신 살벌한 눈으로 시현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사용 가능한 횟수는 총 세 번. 충분히 대처 가능한 수준이니까.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사실 남은 사용 횟수는 두 번이지만, 굳이 약점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시현은 일부러 보이지 않게끔 손으로 감싸며 황혼의 이슬을 사용했다.

처음 사용할 때와 마찬가지로 청량한 느낌이 몸을 훑고 지나가며 정신력과 체력이 회복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것 없는 상태였는데 지금은 며칠을 푹 잘 먹고 쉬다 온 것처럼 쌩쌩해졌다.

마찬가지로 목걸이의 혜택을 받은 구원자들도 상태가 좋아졌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두 번째 목걸이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시현이 궁지에 몰려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니까.

특히 참가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벌써 목걸이를 사용한다고?”

“생각보다 너무 밀리는 거 아니야? 정훈도 7레벨에 외신을 토벌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년차가 좀 높았잖아. 다른 구원자들의 수준도 전체적으로 향상되어 있었고. 하지만 지금은…….”

“역시 몸을 숨기고 좀 더 적절한 시기를 노렸어야 했나?”

부정적인 생각이 점점 전장에 번져 나가고 있었다.

불안만 쌓여가는 전장의 중심부로 외신은 숭배를 받는 신이 강림하듯 천천히 내려와 자리했다.

[이런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군. 그놈의 인과율만 아니었어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외신은 돌연 자신의 팔 하나를 잡아 뜯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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