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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215화 (215/225)

[215화]

시현은 최근 사용에 재미가 들린 속성검을 사용했다.

대량의 정신력을 대가로 모여드는 건 짙은 녹색의 기운.

바람인가 싶었지만, 습하고 끈적이는 것으로 보아 독이 분명했다.

‘앞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베기는 너무 광범위해서 위험할 거 같으니…….’

검을 고쳐 잡은 시현은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한 점에 집중한 찌르기.

그에 따라 검에 모여 있던 기운 역시 정면을 향해 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독기를 뚝뚝 흘리며 날아간 검기는 정확하게 백색 용의 머리를 가격했다.

백색 용은 크게 휘청거렸다.

머리의 살점이 잘리고 두개골이 고스란히 드러났으나, 안타깝게도 시현의 일격은 그 안쪽에 있는 촉수 괴물의 심장까지 꿰뚫지는 못했다.

“젠장!”

아주 미세한 차이로 마무리를 짓지 못한 시현은 크게 아쉬워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구원자는 머리의 상처에 집중 공격!”

눈치 빠른 민서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의 지시에 따라 구원자들은 일제히 아껴 두었던 권능을 발했다.

하지만 그 권능들이 상처에 닿기도 전에 백색의 용이 몸을 틀었다.

크게 머리를 젖히며 권능들을 회피, 거기에 이어 촉수를 이용해 상처를 감쌌다.

촉수의 강도가 워낙 견고하기에 구원자들이 쏴 대는 총알이나 화살 따위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이대로는 전투가 길어질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마무리를 짓겠다고 다짐하며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시현의 어깨를 한기훈이 붙잡았다.

“마무리는 우리한테 맡기고 넌 쉬어라.”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제가 빠지면…….”

자신이 빠지면 어떻게 저 괴물을 처치한단 말인가.

한기훈의 말에 반박하려던 시현은 휘청이고 말았다.

지독한 어지럼증과 두통, 여지없이 올라오는 울렁거림.

정신력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만약 한기훈이 잡아 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고꾸라졌을 것이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기훈이 혀를 찼다.

“다리도 후들거리는 놈이 저 괴물을 상대로 뭘 하겠다고. 가서 쉬어. 거기 김 씨, 시현이 좀 부축해 줘.”

“알겠습니다, 리더.”

한기훈의 명령에 고개를 넙죽 숙인 남자가 시현을 부축했다.

그럴 필요 없다고 밀어내기에는 간만에 느끼는 고갈 현상이 견디기 버거웠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정도가 심해진다더니, 진짜 죽을 맛이네.”

“그런가요? 저는 레벨이 높아 본 적이 없어서…… 그래도 부럽네요.”

시현의 혼잣말에 대꾸한 남자는 그를 데리고 안전 지역으로 후퇴했다.

남자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하면서도 시현의 눈은 전장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한기훈은 믿어만 달라는 듯 엄지를 치켜들었다.

“자, 평소 하던 대로 가자.”

그의 지시가 있은 직후, 곁에 있던 여성 구원자가 권능을 사용했다.

그러자 한기훈의 몸에 빛으로 된 갑옷이 입혀졌다.

그는 다소 무거워진 발놀림으로 전방에 있는 이나연에게 향했다.

“우와! 뭐야? 그 꼴은.”

온 몸에서 빛을 뿜어대며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는 한기훈을 발견한 이나연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권능으로 만든 갑옷인데 멋있지 않아? 원한다면 나중에 한 번 빌려줄게.”

“아니…… 전혀…….”

“거 참 멋을 모르네. 그보다 부탁 하나만 하자. 윤시현이 만들어 놓은 상처에 한 방을 먹여 줄 생각인데 보다시피 방어가 견고하거든. 그러니 강하게 한 방 부탁한다.”

“흐음…….”

이나연의 시선이 백색 용에게 향했다.

여전히 촉수를 이용해 상처를 가리고 있는 백색의 용.

구원자들의 공격이 집중되고 있음에도 상처 하나 없는 촉수를 보고 있자니, 그나마 있던 자신감도 떨어졌다.

“솔직히 안 될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해 볼까?”

“부탁한다.”

“만약 잘못돼도 책임은 안 질 거야.”

강력한 한 방을 위해 이나연은 힘을 모았다.

콰아아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정신력을 쏟아 부은 일격이 백색의 용을 향해 쏘아졌다.

“으아아아아!”

한기훈은 괴상한 기합을 내지르며 백색의 용을 향해 달려들었다.

폭풍은 촉수에 크고 작은 상처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뿐이다.

폭풍이 그쳤을 때 촉수는 여전히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한기훈은 아군의 도움을 받아 백색 용의 머리 높이까지 뛰어올랐다.

그리고 무기를 내리쳤다.

촤악!

어림도 없다는 듯 백색 용은 한기훈을 향해 촉수를 휘둘렀다.

“커억!”

촉수에 얻어맞은 한기훈의 몸이 기역자로 꺾였다.

그가 입고 있던 빛의 갑옷은 한기훈과 분리되어 허공으로 날려졌다.

“이게…….”

상당히 상처가 깊었는지 한기훈은 피를 토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죽지 않았다.

자세를 잡기 힘든 상황임에도 그는 주먹에 권능을 담아 내질렀다.

쿠웅!

강력한 힘에 의해 백색 용의 촉수를 이용한 방어에 빈틈이 드러났다.

빈틈이라 해도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작은 공간이었으며, 그마저도 아주 잠깐 드러났을 뿐이다.

다른 참가자들의 공격이 닿기에는 시간이 한참 부족했다.

하지만 그 잠깐의 기회를 한기훈은 놓치지 않았다.

“지금!”

그의 우렁찬 외침이 있은 직후.

분리되어 허공으로 날아간 빛의 갑옷이 한 자루의 창이 되어 빈틈으로 파고들었다.

“됐다!”

한기훈에게 빛의 갑옷을 씌워 준 여성 구원자가 뛸 듯이 기뻐했다.

[…….]

백색의 용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런…… 부족했나!”

바닥에 착지한 한기훈은 이를 갈며 아쉬운 마음을 표현했다.

빈틈을 노리는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문제는 공격자의 공격력이 너무 약했다는 것이다.

빛의 창은 심장의 표면에 아주 작은 생체기를 만들어 냈을 뿐, 그것을 완전히 파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시현은 웃었다.

“더 이상 백색 용을 상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리하지 말고 퇴각하세요!”

“엥? 하지만 이제 겨우 작은 생체기를 만들었을 뿐인…….”

촤아악!

시현의 지시에 의문을 느낀 한기훈이 질문을 끝마치기도 전에 백색의 용에게 기생해 있던 촉수의 색이 거무튀튀하게 변했다.

촉수의 상처로부터 시꺼멓게 죽은 흑색의 피도 흘러내렸다.

그것을 확인한 한기훈은 그제야 깨달았다.

“독이구나!”

시현이 가한 일격에는 독 속성이 담겨 있었다.

그것도 쉽게 저항할 수 있는 가벼운 독이 아니라, 아주 소량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는 히드라의 맹독.

그것이 빛의 창이 만들어 놓은 작은 상처를 통해 안쪽까지 스며든 것이다.

이미 죽어 있는 백색 용에게는 독이 통하지 않았지만, 놈에게 기생해 있는 촉수에게는 독이 확실하게 먹혀들었다.

“좋아, 퇴각하자!”

한기훈은 신이 나서 휘하 구원자들을 이끌고 이탈했다.

어차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죽어갈 놈이라면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상대할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나연을 비롯한 구원자들 역시 백색 용에게서 달아났다.

부지불식간에 목표를 모두 잃은 백색의 용은 버그 걸린 시스템마냥 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놈의 육신에 기생하고 있는 촉수가 독에 의한 고통 때문에 발작하는 것이다.

지독한 고통을 참지 못한 촉수 괴물은 기생하고 있던 육신을 버리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이미 몸 안으로 스며든 독을 어찌하지는 못했다.

한 발 먼저 쓰러진 백색 용의 시신 옆에서 촉수 역시 징그러운 자태로 늘어진 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뒷일은 나에게 맡겨 두라고 했는데. 결국은 네가 다 해 버렸네.”

시현을 발견하고 다가온 한기훈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한기훈 씨와 동료 분께서 상처를 만들지 못했다면, 독이 스며들지 못했을 겁니다.”

“음…… 그런가?”

지금의 전장에서 가장 문제되던 백색 용을 쓰러뜨렸기 때문일까.

서로 네 덕이니 내 덕이니 할 여유까지 생겼다.

전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긍정적으로 변해 있었다.

구원자들은 촉수 괴물들을 밀어내며 전선을 끌어올렸다.

이제 남은 촉수 괴물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적의 수가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이니, 구원자들도 보다 힘을 내서 전투에 임했다.

적의 전멸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

“먼저 간다!”

들뜬 기분을 주체하지 못한 참가자 하나가 전선을 이탈해 전진의 한복판으로 파고들었다.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워낙 전황이 기울기도 했고, 해당 참가자는 나름 육탄전에 뛰어난 편이기에 누구 하나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에서는 늘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는 법이다.

퍽!

하늘에서 떨어진 무언가가 해당 참가자의 머리를 가격했다.

뭘 어떻게 해 볼 사이도 없이, 참가자는 머리가 터지고 목이 꺾인 채 즉사했다.

“…….”

참가자를 응원하던 구원자들은 경악하며 그의 머리에 떨어진 무언가의 정체를 확인했다.

“……이건 좀 반칙인데.”

시현의 미소가 굳어졌다.

그도 그럴 게, 깨진 수박처럼 산산조각 난 참가자의 머리를 짓밟고 서 있는 건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이 입을 법한 의복을 걸친 남자였기 때문이다.

모르는 이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강렬한 기세와 사이한 분위기.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외모.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래. 이게 맞는 거겠지.]

귀가 아니라 머리를 통해 울리는 듯한 신묘한 음성까지.

그가 등장한 순간을 기점으로 전장에는 고요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누가 명령한 것도 아니건만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문 채 마른침만 삼키고 있었다.

그 정도로 남자가 발하는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그나마 구원자라 다들 이렇게 버티고 있는 거지, 아니었다면 진즉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바닥에 쓰러져 죽어 나갔을 것이다.

[네 말대로다. 아직 봉인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지만……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감히 이 몸에 칼을 댈 수 있는 유일한 놈을 손쉽게 비틀어 버릴 수 있는 기회.]

이곳에 모여 있는 구원자의 수는 족히 수천에 이른다.

그러나 그 수많은 구원자들 중에서도 남자는 정확하게 시현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외신…….”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이 대한민국 땅에 마지막 남은 외신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시현을 포함한 참가자들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하필이면 이 때…… 아니, 일부러 이 타이밍을 노리고 나타난 건가.”

시현은 이를 갈았다.

붉은 하늘을 걷어 내고 아군이 진격할 수 있는 진격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신룡의 군주 이재준의 힘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렇기에 자신의 힘을 아낌없이 투자했고.

설사 가진 힘의 전부를 쏟아 낸다 한들 하루 이틀이면 전부 회복할 수 있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 판단했다.

그러나 외신은 시현의 힘이 담긴 백색의 용을 곧장 처리하고 전장에 친히 강림하기까지 했다.

최악의 상황.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헤쳐 나가면 좋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남자가 천천히 발을 뗐다.

“마, 막아!”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 짧은 사이에 머리를 굴린 결과, 시현의 죽음은 이 전쟁의 패배와 직결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몇몇 구원자들이 호기롭게 외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 중에는 인천 연합에서도 나름 알아주는 축에 속하는 구원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귀찮다.]

외신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구원자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귀찮게 달라붙는 모기를 쫓아내듯 무심하게 손을 휘둘렀을 뿐이다.

하지만 그 몸짓만으로 구원자들의 몸이 반으로 쪼개졌다.

딱히 무기를 사용한 것도 아니건만, 절단면은 날카로운 무언가에 베인 것처럼 깔끔했다.

“저리 비켜!”

앞을 가로막는 구원자를 거칠게 밀쳐낸 한소현이 몸이 잘려나간 구원자에게 회복의 권능을 사용했다.

하지만 절단면에서 검은색의 기류가 흐르며 상처가 회복되는 것을 방해했다.

나름 이름 있는 구원자 치고는 너무도 허망한 결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도 있었지.]

외신의 눈빛이 변했다.

지금까지 놈의 눈을 통해 드러난 감정이 혐오와 멸시였다면, 한소현을 눈에 담은 지금은 분노와 질투가 맺혀 있었다.

외신의 손이 한소현에게 향한다.

전투에서 늘 불사에 가까운 위용을 선보이던 한소현이었지만, 상처를 회복할 수 없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소현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어쩔 수 없나.’

여기서 최강의 치유사인 한소현을 잃을 수는 없는 노릇.

시현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백색의 대검을 손에 쥔 순간이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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