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뭐지?’
시현은 당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날개는 외신이 가진 힘의 상징.
그런데 스스로 두 개의 날개를 태워 버렸다.
처음 외신이 여덟 장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음을 생각해 보면 이미 절반의 힘이 소실된 와중에 그나마 있던 힘의 절반을 스스로 날려 버린 꼴이 된다.
처음에는 제 분을 못 이겨 자진이라도 하나 싶었으나, 이어지는 현상에 그게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남아 있는 두 장의 날개.
그것이 짙은 암적색의 불길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재가 되어 버린 두 장의 날개와 달리, 암적색으로 타오르는 날개는 오히려 날개를 추가로 만들어 냈다.
스스로 태워 버린 두 장의 날개, 그리고 지금까지 죽기 살기로 베어낸 네 장의 날개가 다시 생겨난 것이다.
‘설마 재생한 건가?’
만약 그렇다면 최악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불꽃의 안쪽에 원래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두 장의 날개와 달리, 새로 생겨난 네 장의 날개엔 그런 것이 없었다.
그저 불꽃이 날개의 형상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두 장의 날개를 희생해 일시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강화한 건가?”
[내가 이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해 주마.]
외신의 손톱이 시현에게 향했다.
이전처럼 밝고 찬란한 불꽃이 아닌, 어둡고 음습한 고열의 불꽃이 담겨 있는 일격.
“이런 미친!”
공격을 막아 낸 시현은 기함했다.
이전까지는 어렵지 않게 막았던 공격이건만, 겨우 한 번 공격을 막았다고 팔이 저릿했다.
동시에 식은땀이 흘렀다.
취약한 근접전에서도 이 정도의 위력을 선보이는 놈을 풀어 줬다가 원거리 공격을 퍼붓기라도 하면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으으으…….”
배후에서 한소현이 앓는 소리를 했다.
슬쩍 곁눈질로 확인해 본 한소현은 제 몸을 끌어안고 땀을 한가득 흘리며 떨고 있었다.
놈이 가진 능력은 불꽃만이 아니다.
약한 자들에게 강렬한 공포를 심어 주어 전투는 고사하고 그 자리에 서있는 것조차 버겁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놈이 가진 두 번째 능력이다.
그나마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구원자들은 힘겹게 전투에 임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외신과의 거리가 가까운 한소현의 경우 버티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미치겠네, 정신 오염 저항을 높여 주는 권능을 걸치고 있는데도 이 정도라니…….”
“움직이지 못할 정도입니까?”
“다행이 그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조금 버겁기는 하네.”
“그렇다면 됐습니다. 어떻게든 해결할 테니 회복 부탁드립니다.”
직접적으로 전투에 가담하기는 어려울 테지만, 권능 정도는 제때 맞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후우…….”
시현은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Re write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생긴, 무언가 각오를 다질 때 나오는 습관이었다.
그 정도로 시현은 살 떨리는 일을 각오하고 있었다.
“한소현 씨, 진짜 잘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시현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대충 알아차린 한소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은 땅을 박찼다.
외신은 지금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머리 위를 가로막고 있는 사슬을 먼저 해결할지, 아니면 시현에게 집중할지.
놈이 전자를 선택하기라도 하면 일이 곤란해진다.
겉보기와 달리 붉은 사슬은 그리 견고하지 않다.
외신이라면 찰나의 순간 사슬을 깨부수고 끝을 모르는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것이다.
그리고 지상을 향해 죽음을 선고할 테고.
시현이라면 모를까, 악마들과 싸우고 있는 등대의 구원자들은 놈이 쏴대는 불길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놈을 가둬 두고 근접전에서 끝을 볼 요량이었다.
[그래, 역시 네놈을 먼저 끝장내지 않고는 분이 풀리지가 않겠어.]
외신은 감히 자신에게 수치를 안겨 준 시현을 먼저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외신의 손톱이 시현에게 향한다.
회피하거나 막아 내면 바로 다음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나머지 세 개의 손에도 힘을 불어 넣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시현은 피하거나 막지 않았다.
외신의 손은 시현의 옆구리에 파고들었다.
“크윽……!”
미칠 듯한 고통에 사정없이 표정을 구기면서도 시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대체 무슨…….]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외신은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설마 스스로 몸을 들이밀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것이다.
그 대가로 외신은 시현의 공격에 두 개의 오른팔을 잃고 말았다.
두 개의 팔과 복부에 뚫린 구멍.
전자의 경우 전투력이 크게 급감하지만 목숨에 큰 지장은 없다.
반면, 후자의 경우 해결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중태다.
하지만.
“회복.”
한소현의 한 마디와 함께 복부에 난 구멍이 채워지는 것을 보며 외신은 깨달았다.
[지독한 수를 쓰는군.]
일부로 자신의 몸에 공격을 받아 내고 그 틈을 노려 상대방에게 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살을 내주고 살을 받아 내는, 뒤를 생각하지 않는 방식이지만, 지금처럼 한순간에 상처를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어리석었다. 팔이 아니라 날개를 노렸어야지.]
그렇게 말하며 조소하는 외신의 팔은 빠른 속도로 재생하기 시작했다.
“……망할.”
시현을 혀를 찼다.
일단 네 개나 되는 적의 무기를 줄일 생각이었는데, 지독한 고통을 견디며 행한 공격 치고는 효율이 별로였다.
이어지는 공방에서도 시현은 제 몸을 돌보지 않고 외신을 깎아 내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한소현의 든든한 백업을 믿고 행한 정신 나간 전략이었으나, 그리 효과적이지는 못했다.
시현의 노림수를 파악한 외신은 그에 대해 철저하게 대비를 했고, 결코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방법을 바꿔야 하나?’
외신과 공방을 나누면서도 시현은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다.
지금 방식으로 계속해 봐야 아무런 소득 없이 한소현의 정신력만 소모하는 꼴이 된다.
지독한 고통으로 인해 정신이 마모되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고.
‘버틸까?’
대게 무언가를 희생하고 얻은 힘에는 지속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불꽃으로 만들어 낸 임시 날개가 무한하게 지속되지는 않을 터.
저 불꽃이 꺼질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외신은 두 장의 날개만 남게 된다.
하지만 저 불꽃이 언제 꺼질 줄 알고 무작정 버틴단 말인가.
인간인 이상 체력에도, 정신력에도 한계가 있다.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소모전을 벌이고 있던 찰나.
콰앙!
돌연 황금빛의 섬광이 날아와 외신의 얼굴을 두드렸다.
[……이놈의 바퀴벌레들. 끝도 없이 기어 나와 귀찮게 하는군.]
외신은 왼손으로 얼굴을 문대며 이를 갈았다.
큰 피해는 없어 보였으나 예기치 못한 한 방을 먹었다는 것에 분노한 것이 느껴졌다.
섬광의 주인은 민서라였다.
“늦어서 죄송해요.”
시현이 쳐 놓은 사슬의 감옥 때문에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했으나, 권능을 이용해 외부에서 지원한 것이다.
전장에 들어선 이는 민서라만이 아니었다.
정비를 마친 나머지 일행들도 함께였다.
툭툭.
사슬로부터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곳에 있던 것일까.
감옥의 꼭대기 부분에 자리한 이찬열이 사슬에 노크를 하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노리는지 알아차린 시현은 사슬을 살짝 움직여 그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찬열은 주저 없이 빈틈으로 몸을 던졌다.
그의 목걸이가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
뛰어난 감각을 지닌 외신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뛰어내리는 이찬열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내게 그런 더러운 수가 통하리라 생각했더냐!]
외신은 이찬열을 조롱하며 자리에서 이탈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못했다.
바닥에서 생겨난 붉은 사슬이 그의 양쪽 발목을 휘감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현이 한 게 아니었다.
“여기 참 마음에 드네. 가만히 있어도 피의 구슬이 계속 차오르잖아?”
자신이 활약할 수 있는 전장을 만난 강소하가 광인처럼 웃고 있었다.
[…….]
외신은 아주 잠깐 고민했다.
발목의 사슬을 끊어 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형태는 시현의 것보다 더욱 정교했으나, 강도는 터무니없이 약했으니까.
그러나 사슬을 끊어 내는 그 찰나의 순간, 이찬열의 검이 외신에게 닿을 것이다.
그렇기에 외신은 사슬을 끊어 내는 것보다 이찬열에게 반격을 가하는 쪽을 선택했다.
사실 외신이 보기에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이찬열의 공격력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맛본 패배는 외신에게 필요 이상의 경계심을 심어 주었다.
지금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달려드는 저 보잘 것 없는 검에도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으로 찢어 죽여 주마.]
그 사이에 재생된 두 개의 손을 포함, 총 네 개의 손에 불꽃이 맺혔다.
네 개 중 하나만 공격이 들어가도 이찬열의 몸은 갈기갈기 찢어질 것이다.
그걸 눈 뜨고 지켜볼 시현이 아니었다.
크게 휘두른 대검이 외신의 팔 하나를 베었다.
처형의 권능이 발동하며 2차, 3차 피해가 발생했으나, 외신은 당황하지 않았다.
하나의 손으로 시현을 막고 나머지 두 개는 이찬열을 향해 내민다.
혀를 찬 시현은 왼손에 든 검에 정신력을 불어넣었다.
“이번에도 불 속성이면 진짜 가만 안 둔다. 녹여서 대걸레 자루로 만들어 버리겠어.”
그 으름장이 통하기라도 한 걸까.
천만 다행이도 이번 속성은 불이 아니었다.
오히려 현 상황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얼음 속성이다.
시원하게 뻗어 나간 냉기가 외신을 덮쳤다.
외신의 팔다리가 싹 다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그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이찬열의 검은 무사히 외신에게 닿았다.
이찬열의 칼끝이 외신의 등을 정확히 반으로 잘라 냈다.
잘라 냈다 해도 기껏해야 피부에 살짝 흠집을 낸 수준, 유효성 있는 공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현은 이찬열을 믿었다.
그가 누구인가.
인도자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는 구원자다.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은 원하는 정답으로 향하기 위한 의미가 있는 행위다.
지금도 마찬가지.
얼핏 보기에는 공격이 빗나간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 의미가 있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 증거로 외신의 표정에서 여유가 사라져 있었다.
[네, 네놈 설마…….]
이찬열의 얼굴을 보고 무언가가 떠오른 듯, 외신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아, 으아아아아아!]
놈은 몸을 웅크리고 괴성을 질렀다.
콰아아아!
잘려 나간 등 쪽의 피부로부터 피가 아니라 엄청난 양의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어찌나 불길이 센지 수십 미터는 솟구쳐 오른 화염에 기껏 만들어 놓은 감옥의 천장이 녹아내렸다.
“우아아악!”
직접 불에 닿은 것도 아니건만, 근처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찬열은 큰 화상을 입고 비명을 질렀다.
한소현의 회복이 곧장 그를 지켜 주었으나, 상당히 고통스러웠는지 종잇장처럼 구겨진 표정은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 고생을 한 보람은 있었다.
[아, 안 돼. 안 돼애애애!]
외신은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자신의 등 뒤에 난 상처를 막으려고 허겁지겁 손으로 덮었다.
그러나 손바닥 네 개로 길게 그어진 상처를 모두 막지는 못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불길은 계속해서 빠져나왔고, 그렇게 분출되는 불의 양이 많아질수록 놈의 날개를 구성하고 있는 불꽃의 크기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역시…….”
시현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생각 같아서는 이찬열을 끌어안고 환호성이라도 내지르고 싶었다.
그 정도의 업적이다.
원작에도 나오지 않은 외신의 약점을 정확하게 간파하다니.
역시라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외신은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결국 제 불꽃을 이용해 만들어 낸 날개는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남은 날개는 이제 두 장.
외신은 처음과 비교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과연 신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후아…… 이제 좀 살겠다.”
공포에 짓눌려 있던 한소현조차 허리를 펴고 전투에 참여했다.
남아 있는 두 장의 날개를 끌어안은 외신은 보고 있기 민망할 정도로 애처로워 보였다.
물론 동정심이 생긴다 해서 놈을 봐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시현은 검을 늘어뜨린 채 외신에게 다가갔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