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외신.
인류의 무지함으로 인해 신이라 불리고 있는 천사들과 대립하고 있는 그들의 강함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시현은 6레벨 구원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신과의 싸움은 잠깐의 방심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을 정도로 위태롭게 진행되었다.
심지어 상대가 근접전에 굉장히 취약한데도 말이다.
촤악!
허공에 피가 튀었다.
팔꿈치 언저리에 따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외신은 웃었고, 시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고작 이 정도더냐? 차라리 아까 타 죽은 그 놈이 더 낫겠구나.]
“…….”
놈은 끊임없이 시현을 도발했다.
비릿한 웃음과 조롱 섞인 말투로 시현의 집중을 흩트리려 했다.
반면, 시현은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6레벨 구원자가 되었다지만 상대는 외신.
지상에 존재하는 악마들의 위에 군림하는 괴물이다.
어디까지나 놈의 몸에 칼침을 먹여 줄 최소한의 조건을 갖췄을 뿐이지, 놈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건 아니다.
시현이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침착하게 공격을 방어하다가 놈의 방심을 이끌어 내 기습적인 한 방을 노리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날개의 개수가 줄어들수록 놈이 약해진다는 거야.’
그 증거로 시현의 공격은 놈의 육체에 해를 입히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상처를 입혀도 눈 깜짝할 사이에 복구되었다.
반면, 임주찬이 잘라 버린 세 장의 날개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노릴 거라면 날개를 노려야 하는데…… 빌어먹을, 빈틈이 안 보이네.’
마음껏 방심하다가 세 장의 날개가 잘려 나간 덕분일까.
외신은 조금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전투 도중 시현의 시선이 날개로 향하는가 싶으면 잽싸게 날개를 접어 감춰 버린다.
“진짜 싸움 더럽게 하네.”
[극찬인가? 고맙군.]
그렇게 말하며 외신은 팔을 휘둘렀다.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가느다란 팔에는 6레벨 구원자라도 무시 못 할 강대한 불의 힘이 담겨 있었다.
손톱 끝에 맺혀 있는 작은 불씨.
그러나 손톱이 가까워질수록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열기가 느껴졌다.
시현은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콰앙!
손과 검의 충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굉음이 울렸다.
시현은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놈은 시현이 물러난 만큼 추격해서 추가 공격을 가한다.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시현은 왼손에 쥔 흑색의 검을 휘두른다.
일격에 정신력을 듬뿍 담아냈다.
화륵!
“……하아, 뭐 되는 게 하나도 없네.”
한숨이 절로 터져 나왔다.
하필이면 열 개가 넘는 속성 중 랜덤으로 적용된 게 화염이었다.
자신을 덮쳐 오는 화염의 파도를 보며 외신은 웃었다.
공격을 피할 마음도 없어 보였다.
놈은 덮쳐 오는 화염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화염은 외신에게 어떠한 상처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가진 불의 힘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줬다.
불꽃이 맺힌 날개는 조금 더 붉게 물들어 있었으며, 눈빛 또한 강렬해져 있었다.
눈에 확 띄는 변화가 나타날 만큼 시현의 공격이 강력하다는 반증이었으나, 전혀 기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마당에 적의 힘을 더 강하게 만들어 주다니, 영 이해할 수가 없는 놈이군.]
“시끄러! 너는 주둥이로 싸우냐?”
거칠게 일갈한 시현은 다시 한 번 검에 정신력을 부여했다.
화염이 나갈 확률은 10% 미만.
한 번 화염이 터졌으니 이번에는 다른 속성이 터질 거라는 확신이 있어 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시현은 모르고 있었다.
확률이라는 것에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화륵!
“……뭐지.”
검에 깃든 불꽃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던 시현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반면 외신은 당장이라도 웃음을 터뜨릴 기세다.
시현은 한숨과 함께 검을 휘둘렀다.
정면이 아닌 측면을 향해서.
어차피 한 번 검에 맺힌 기운은 어떻게든 방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두 번이나 적에게 먹이를 줄 수는 없는 노릇.
조금 전에야 워낙 상황이 급해 무턱대고 휘둘렀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측면으로 휘두른 검에서부터 생겨난 화염의 파도는 주변에 바글거리는 악마들을 덮쳤다.
수많은 악마들이 그 일격으로 죽어 나갔다.
그 덕분에 궁지에 몰린 채 악마들과 혈투를 벌이던 이나연은 조금이지만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그 일격을 위해 생겨난 아주 작은 빈틈.
그걸 놓칠 외신이 아니다.
검을 휘두르고 검을 회수하는 그 찰나의 순간, 놈은 이미 시현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이 이상 놀아 주는 것도 귀찮구나. 네놈을 정리하고 남은 인류에게 진정한 종말의 때가 도래했음을 선언하겠다.]
악마의 손톱이 시현을 갈랐다.
왼쪽 어깨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
다섯 줄의 상처가 생겼다.
뼈가 드러나고 내장이 다칠 정도로 깊은 상처.
더군다나 손톱에 담긴 고열의 불꽃이 상처를 지져 놓기까지 했다.
덕분에 출혈은 막을 수 있었지만, 정신을 놓쳐 버릴 것 같은 강렬한 고통이 덮쳐 왔다.
“으아아아악!”
시현은 비명을 질렀다.
Re write가 시작된 이후, 수많은 전장을 구르며 온갖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만한 고통을 경험했다.
때문에 고통에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고통은 역대 최고라 감히 단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시현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때, 왼손에 들고 있던 흑색의 검을 놓치고 말았다.
목숨과도 같은 무기를 놓친 것은 커다란 실책이었으나, 지금은 정신을 놓치지 않은 것만 해도 칭찬받아 마땅한 상황이다.
그가 고통과 싸우는 사이, 외신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자기네가 가진 힘의 태반을 넘겨줬는데도 고작 이 정도인가…… 역시 놈들이 선택하는 방법다워. 비효율적이고, 멍청한 짓이다. 상대할 가치조차 없어. 하지만…….]
외신의 눈이 번뜩였다.
사실상 승리가 코앞임에도 불구하고, 놈은 전혀 방심하지 않고 있었다.
시현에게 숨겨 둔 비장의 수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상처를 입은 것 자체가 미끼가 아닐까.
경계하고 또 경계하며 쉽사리 접근해 오지를 않았다.
거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 비효율적이고 멍청한 짓거리에 우리는 한 번 패했으니까. 두 번이나 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없다.]
이 전쟁은 이미 두 차례 반복하고 있다.
평범한 생존자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신들이 기억하고 있듯 외신들 또한 한 번 지나가고 되풀이되는 역사를, Re write의 원작을 기억하고 있다.
방심하고 무시하다 맞이한 패배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에 눈앞의 외신은 자신보다 한참 약한 시현을 상대로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경계심이 모처럼 잡은 기회를 날려 버리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네가 그렇게 몰려 있는 건 처음 보네.”
한소현.
그녀가 참전한 것이다.
물론 그녀의 무력은 전장을 뒤집을 정도로 뛰어난 게 아니다.
그러나 한소현의 가치는 단순히 무력으로만 판단할 게 아니었다.
“진짜……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한소현의 얼굴을 확인한 시현의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맺혔다.
그 미소에 내비친 감정은 안도였다.
“그래도 살아 있어서 다행이네. 음…… 일단 이거 필요하지?”
한소현은 손끝으로 시현을 툭 건드렸다.
그것만으로도 한소현이 가진 권능이 발동했다.
회복의 권능.
시현이 가지고 있던 치유의 권능보다 수십, 수백 배에 달하는 순간 치유력을 가진 권능.
치료 계열에서는 자타공인 최강의 반열에 이르러 있는 권능이 발동했다.
당장 죽어도 하등 이상할 것 없는 시현의 상처는 삽시간에 아물었다.
고통 역시 말끔하게 사라졌고.
“감사합니다.”
“딱히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네가 없으면 이 전쟁에서 승산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한소현은 웃었고, 그녀를 노려보는 외신의 표정은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감히…… 감히……!]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건지 적절한 대사를 고르지 못해 주먹을 꽉 말아 쥔 채 눈만 부라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었다.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한소현 혼자만이 아니었다.
“전부 쓸어버려!”
누군가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등대의 구원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을 가로막는 악마들을 베어 넘기며 전장을 휩쓰는 구원자들의 선두에는 권수용이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지만,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씻어 내기라도 하려는 건지.
권수용은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악마들을 쳐 죽이는데 눈이 뒤집혀 있었다.
“……하아, 살았다.”
시현이 외신을 붙들고 있는 사이 악마들에게 포위된 채 고군분투하던 이나연이 크게 안도했다.
한계에 달한지라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억지로 들어 올린 이나연은 마지막 폭풍으로 등대의 구원자들을 위한 길을 뚫었다.
그들 덕분에 삽시간에 피가 모여들었다.
시현의 머리 위에 자리하고 있던 피의 구슬에서 사슬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자 외신의 표정은 더욱 험악해졌다.
[주제를 알아라!]
외신은 시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한소현이 그 앞을 가로막는다.
그녀는 무기를 들어 외신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어림없다!]
불의 능력이 담긴 외신의 손톱은 한소현이 가진 무기를 베어 버리고 그녀의 옆구리까지 닿았다.
조금 전, 일격으로 시현을 끝내지 못한 것에 한이라도 품은 것일까.
외신은 몸을 깊이 들이밀며 한소현의 몸을 정확하게 반으로 찢었다.
옆구리의 살점 한 움큼이 겨우 몸이 양분당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 시현조차 몸이 찢기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빈틈을 보이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애초부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싸움을 반복해 온 한소현은 이를 견뎌 냈다.
오히려 입가에 미소까지 띄우고 있었다.
“멍청하긴…….”
그렇게 말하는 한소현의 신체는 보고도 믿기 힘든 속도로 회복되었다.
잘려 나간 몸은 삽시간에 달라붙었다.
군살 없이 매끄러운 한소현의 복부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잘려 나간 옷자락만이 그곳에 상처가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한소현을 향한 시현의 감사는 외신의 배후로부터 들려왔다.
[…….]
외신의 눈동자가 떨렸다.
방심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확실하게 한소현을 처리하기 위해 다소 빈틈을 보인 것 또한 사실이었다.
시현이 보인 작은 빈틈을 외신이 놓치지 않았듯, 시현 역시 외신이 보인 작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 것이다.
무언가 반응을 할 틈도 없었다.
날개로부터 아찔한 통증이 느껴졌다.
[끄아아아악!]
외신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바닥에 잘려 나간 날개 한 짝이 떨어졌다.
“이제 반 남았네.”
시현은 악마처럼 사악하게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외신은 두 팔을 휘둘러 저항한다.
그러나 조금 전보다 한참 힘이 약해졌다.
날개는 외신이 가진 힘의 근원.
그게 잘려 나갈 때마다 가진 힘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설악산 성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그걸 동네 뒷산 정도까지 떨어뜨리기 위해.
시현은 지독하리만치 남은 날개를 노려 댔다.
[건방진 놈들!]
가지고 있는 레퍼토리가 별로 없는지 외신은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근접전에서 더 이상 우위를 점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외신은 하늘 위로 도망가려 했다.
높은 장소를 선점하고 일방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것.
그게 외신이 가장 좋아하고, 또 자신이 있는 전투 방법이었다.
그러나 시현 역시 몇 번을 당해봤기에 그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피를 모으고 있던 시현은 외신을 쉬이 보내 주지 않았다.
놈이 날아오르는 타이밍에 맞춰 피의 구슬로부터 사슬이 뻗어 나갔다.
사력을 다해 사슬을 전부 회피한 외신은 무언가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이 놈이 감히……!]
사슬이 서로 교차하며 반구 형태를 띈 감옥이 완성되어 있었다.
주먹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의 틈새로 머리나 거추장스러운 날개는 통과할 수 없다.
파괴할 수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 전에 시현에게 뒤를 잡히고 말 것이다.
시현이 만든 경기장은 둘 중 누구 하나가 죽어 나가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외신은 시현을 마주 봤다.
[네놈…… 반드시 죽여 주마!]
포효하듯 소리치는 외신의 두 날개가 불길에 휩싸이더니 재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