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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206화 (206/225)

[206화]

간단하게 배를 채운 민서라는 곧장 서울에 있는 본진으로 연락을 취했다.

다행이 등대 측에 전이 권능을 가진 구원자가 있어서 연락을 주고받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시현처럼 자신 외 타인까지 이동시키는 능력은 없었지만, 정신력의 소모가 상당히 적었기에 해당 구원자는 전령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 주었다.

“여기.”

굉장히 지친 얼굴의 전령은 민서라에게 편지 한 장을 보냈다.

“인천연합입니다. 리더가 지시한 일을 끝내려면 10분 쯤 걸릴 거 같으니 그때까지 다음 편지를 준비해 주세요.”

그 말을 남긴 전령은 재차 공간을 도약했다.

“어…… 감사합니다.”

뒤늦은 감사 인사를 전한 민서라는 멋쩍게 웃었다.

정말이지 숨 돌릴 틈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전령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가 아니면 전국 각지에 소식을 전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민서라는 편지를 뜯기 전에 인천연합의 수장인 정은수를 호출했다.

“벌써 도착했나요? 공간계열 능력 진짜 사기네.”

불과 10분 전에 보낸 편지의 답장이 벌써 도착했다는 말에 정은수는 기가 차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편지를 쓰는 시간만 10분이 넘은 걸 생각하면 확실히 기가 찰 노릇이기는 했다.

“세상이 요지경이 되기 전에 저런 능력이 있었다면, 세계 최고의 굿팡맨이 될 수도 있었는데.”

“왜 저런 굉장한 능력을 물건 배송하는데 쓰려고 해요.”

“아앗, 그러게요.”

실없는 농담을 나누면서도 정은수의 손은 동봉된 편지를 뜯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내용을 함께 확인했다.

-이은아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시청의 구원자들을 모집하고, 연합 소속 세력들에게도 연락을 돌렸습니다.

인원이 모이는 대로 차에 태워 순차적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단, 구원자들의 권능이 사라지는 현상으로 인해 구원자의 확보가 부실하던 몇몇 세력이 제외될 수 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굉장히 짧고 간결했다.

불필요한 미사여구 없이 필요한 내용만 딱딱 보고하는 이은아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편지라 할 수 있었다.

“이은아 씨답네.”

피식 웃은 정은수는 편지를 곱게 접어 구석으로 밀어 놓았다.

마음 같아서는 수고했다고 답신이라도 한 장 보내고 싶었지만, 고작 그 한 마디를 전하기 위해 전령의 소중한 정신력을 허투루 쓰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는 사이 전령은 새로운 편지 한 장을 배달했다.

병원에서 온 편지였다.

편지를 읽어 본 민서라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무슨 내용이 적혀 있기에 그렇게 웃으세요?”

“아, 쌍둥이가 편지를 썼는데 귀여워서요.”

그렇게 말하며 민서라는 편지를 보여 줬다.

곧장 헬기를 띄우겠다는 내용과 함께 두부의 발 도장이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 LT마트과 교회에서도 편지가 왔다.

양쪽 모두 흔쾌히 민서라의 요청을 수락했다.

이그드라실로 인해 생겨난 나무 악마들과 싸우며 전투력을 끌어올린 LT마트와 머맨들을 상대로 꾸준히 레벨을 올린 교회.

두 세력의 구원자들이 합류해 준다면 그보다 든든한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긍정적인 내용의 답신만 있는 건 아니었다.

-23사단입니다.

보내 주신 편지 잘 확인해 봤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봤으나 저희 23사단은 도움을 드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협상의 여지도 보이지 않는 단호한 거절의 메시지.

웃음기 가득하던 민서라의 표정이 조금은 딱딱해졌다.

그러나 이어지는 편지에 비하면 23사단의 답신은 그리 심각한 것도 아니었다.

-제정신인가?

마지막 전쟁이라는 것은 이번에 Re write의 엔딩을 보겠다는 건데.

미치지 않고서야 랭킹 31위인 내가 거기에 동참할 리가 없잖아.

장소를 알려 주지 않은 건 현명한 판단이라고 해 두지.

“……하아.”

참지 못한 한숨이 쏟아졌다.

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666명의 참가자들은 원작의 지식을 통해 부당할 정도로 많은 이익을 챙겼고, 그 이익을 바탕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룩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세력은 참가자가 리더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참가자들의 경우 Re write의 엔딩 이전에 랭킹 10위 안에 들어가야 한다.

만약 10위 내에 진입하지 못할 경우, 즉, Re write라는 인생을 건 게임에서 패배하게 될 경우.

해당 참가자들은 이 끔찍한 세상에서 영원히 살아가야 한다.

그러다보니 Re write의 조기 엔딩 소식은 순위권에 들지 못한 참가자들로 하여금 당황하게 만들었고, 분노하게 만들었으며, 눈이 뒤집히게 만든 것이다.

아마 처음 보낸 소식에 목적지까지 써서 보냈다면 분명 방해하려 드는 이들도 존재했을 것이다.

“어렵네.”

만약 이 소식이 참가자들이 아니라 그 밑에 있는 보통의 구원자들에게 들어갔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이 세상이 어찌되건 자신의 랭킹이 더 중요한 참가자와 달리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 지옥 같은 세상을 끝내고 싶어 할 테니까.

하지만 참가자가 리더로 떡하니 버티고 있는 세력의 구원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소식을 전할 방도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순위권에 진입해 있는 참가자들이나 몹시 근접해 있는 참가자들이 기꺼이 참가하겠노라 선언한 것이다.

오히려 이 전쟁에서 빠질 경우, 막판에 순위가 뒤집히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랭킹…… 중요하지. 맞아, 중요해.”

그녀는 멍한 눈으로 Re write의 랭킹을 호출했다.

현재 그녀의 랭킹은 34위.

초창기에는 10위권까지 어떻게든 진입하는데 성공했으나, 그 이후로는 쭉 하락세였다.

아마 지금 마지막 전쟁에서 크게 활약한다 한들 그녀의 랭킹이 한 자릿수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딱히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싱숭생숭하네.’

그녀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 전쟁이 끝나고 자신의 인생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마음 내키는 만큼 길게 생각에 잠겨 있지는 못했다.

“여기 추가 편지가 왔습니다.”

다 죽어가는 얼굴의 전령이 새로운 메시지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랭킹에 대한 것들을 머리에서 떨쳐 낸 민서라는 이번에야말로 늦지 않은 감사 인사를 전했다.

* * *

[역시 벌레는 벌레답게 바닥을 기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자신을 내려다보는 차가운 시선을 느낀 시현은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입 안이 찢어졌는지 피가 섞여 나왔다.

온 몸이 욱신거리기는 했지만, 언제까지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시현은 몸을 일으켰다.

[그래, 더 저항해라.]

불길에 휩싸인 외신은 조롱하듯 미소를 지은 채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별거 아닌 동작.

그러나 그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동작만으로 수많은 불의 고리가 일제히 시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시현은 검을 들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불의 고리를 쳐냈다.

“크윽!”

무지막지한 공격에 참으려 해도 신음이 절로 나왔다.

근접전이라면 모를까, 원격에서 능력을 퍼부어 대는 외신을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라 여겨질 만큼 버거웠다.

검을 쥐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렸다.

세 개 째를 막아낸 순간,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세가 흐트러졌다.

불의 고리 하나가 옆구리를 스쳐 지나갔다.

스쳤을 뿐인데도 엄청난 고통에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시현은 억지로 고통을 참고 정신을 집중했다.

배후로부터 두 개의 고리가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망할!”

오른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신을 죽이는 자를 잠시 놓아두고 왼손으로 흑룡검을 뽑아 휘둘렀다.

두 개의 고리를 가까스로 막아 낼 수 있었으나, 왼손도 한계를 호소하고 있었다.

만약 추가로 고리가 날아온다면 막아 내지 못할 것이다.

외신에게는 고리를 동시에 수십, 수백 개를 날릴 만한 능력이 있다.

그러나 추가 공격은 가해지지 않았다.

외신은 팔짱을 끼고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웃고 있었다.

고양이가 다 잡은 사냥감의 숨통을 끊지 않고 가지고 놀듯이, 시현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놈의 미소에서 언제든 시현의 숨통을 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었다.

[빈틈투성이지 않느냐. 발밑을 조심하거라.]

놈의 충고에 시현은 급하게 몸을 굴렸다.

콰앙!

바닥이 솟구쳐 오르며 커다란 메탈 웜이 나타났다.

체력이 모자라 집중이 흐트러진 까닭에 놈이 나타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외신의 경고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메탈 웜의 뱃속을 탐방하고 있었을 것이다.

“허억…… 헉…….”

입에서 단내가 났다.

시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메탈 웜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

흑색의 기운과 백색의 빛이 뒤섞인 일격에 메탈 웜은 화려한 등장과 어울리지 않게 허무한 끝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반으로 갈라진 메탈 웜의 뒤에서부터 수많은 악마들이 들이닥쳤다.

이대로라면 죽는다.

시현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왼손을 억지로 움직였다.

정신력을 가득 담은 일격.

덕분에 흑룡검에 담긴 두 번째 능력이 발휘되었다.

촤아악!

정면을 향해 엄청난 규모의 냉기가 쏟아졌다.

정신력을 투자하면 공격에 랜덤으로 속성을 부여하는데, 이번에는 그 속성이 냉기인 것이다.

극한의 냉기에 노출된 악마들은 그대로 얼음 동상이 되어 버렸다.

‘하필이면 냉기…….’

중요한 타이밍에 터져 나온 불행에 시현은 작게 혀를 찼다.

[이런, 네가 전전긍긍하는 동안 네 부하가 죽게 생겼구나.]

외신은 실실 웃으며 시현의 속을 긁었다.

그의 말대로 이나연이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익!”

그녀는 정면을 향해 폭풍을 쏘아 냈다.

지금까지의 전투로 상당히 지쳤는지, 처음과 비교해 폭풍의 위력은 확연하게 약해져 있었다.

“아…….”

정신력이 슬슬 한계에 봉착했는지, 그녀는 어지러움을 느끼고 비틀거렸다.

그 틈을 놓칠 악마들이 아니다.

이나연의 뒤를 노리고 달려드는 악마들.

주저할 여유가 없었기에 시현은 다시 한 번 일격에 대량의 정신력을 담아냈다.

화악!

이번에 담긴 속성은 독이었다.

부채꼴로 퍼져나가는 독 안개에 닿은 악마들은 비명을 지르고 몸을 뒤틀며 괴로워하다 피를 토하며 죽었다.

그 대가로 시현은 우측 어깨에 커다란 상처를 입어야 했다.

“오빠…… 죄송해요.”

“괜찮아.”

한껏 주눅이 든 이나연에게는 괜찮다고 말했으나, 사실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져 죽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현은 악으로 깡으로 버텨 냈다.

‘치유 능력이라도 있으면 좀 버틸 만했을 텐데. 하필이면 그게 사라지는 바람에…… 진짜 쓸모없는 로아 렐레아. 이럴 줄 알았으면 한소현 씨한테 회복 능력을 좀 카피하게 해 달라고 부탁할걸 그랬어.’

그녀가 당연히 거절할 거라 생각해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았지만, 이제 와서는 조금 후회가 됐다.

‘그래도 거의 다 됐어…….’

사실 시현이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버티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외신을 상대하면서도 간간히 악마들을 몰살시키는 것으로 피를 모아 만든 구슬은 어느덧 최대 크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크아아아!]

자신이 마지막 제물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중형 악마 하나가 외신의 명령에 따라 용맹스럽게 달려들었다.

아직 시현의 팔은 회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기껏해야 중형 악마 아닌가.

5레벨 구원자인 시현에게는 두 팔 없이도 상대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했다.

시현은 타이밍을 맞춰 발을 내질렀다.

뻐엉!

이나연의 폭풍에라도 얻어맞은 건지 외피도 없고 상처가 가득하던 중형 악마는 이번 공격을 버티지 못했다.

놈의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렸다.

중형 악마는 어거지로 버티는가 싶더니 뒤로 넘어갔다.

뚫린 구멍으로부터 흘러나온 피는 기어코 핏빛 구슬을 완성시켰다.

“됐다.”

드디어 조건이 충족되었음을 확인한 시현은 활짝 웃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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