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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205화 (205/225)

[205화]

순간적으로 또 다른 적이 늘어난 건가 싶었다.

그러나 섬광 이후 들려온 목소리는 시현의 마음에 커다란 안도를 가지게 해 주었다.

“시현 씨!”

민서라였다.

그녀는 앞을 가로막는 악마의 군단을 주먹으로 때려 부수며 시현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곁에는 검을 휘두르는 한소현 역시 함께하고 있었다.

두 여성이 지나온 길은 악마가 흘린 피로 점철되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움직일 수 있냐는 질문은 무심결에 뻗은 자신의 손을 확인한 순간 도로 삼켜지고 말았다.

외신의 정신 지배에 저항하기 위해 계속해서 빛을 뿌리고 있던 반지.

그것이 지금은 빛을 내지 않고 있었다.

빛을 잃은 반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했다.

외신의 정신 지배가 약해진 것이다.

‘이유는…… 날개 두 장을 찢은 덕분인가?’

아직 확신 단계는 아니지만, 외신의 힘은 날개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가설을 세우기에는 충분한 단서가 확보된 셈이다.

“두 분 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전혀 무사하지 않아요!”

민서라는 시현의 곁에 도달함과 동시에 허물어졌다.

치열한 전투의 여파로 어딘가 다친 것은 아닐까 싶어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러나 뒤를 잇는 소리가 시현의 놀란 마음에 한 줄기 안도를 심어 주었다.

꼬르르륵.

“배고파…….”

“생각해 보니 두 분은 꼬박 이틀을 굶으셨군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덕에 늘 생기 넘치던 민서라의 입술이 바싹 말라 있었다.

상황이 심각한 건 한소현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두 여성은 전투를 강요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에 열량이 부족했다.

지금 상태로는 주먹을 몇 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맥없이 쓰러질 것이다.

“임주찬 씨, 2분만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얼마든지.”

현세의 임주찬은 겁 많고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인물이었으나, 전세의 임주찬은 등으로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무심한 듯 툭 내뱉은 한 마디가 그리 든든할 수가 없었다.

시현은 두 여성을 데리고 공간을 도약했다.

그러자 손톱만 씹으며 전전긍긍하던 나머지 일행의 모습이 보였다.

“리더!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한소현을 발견한 등대의 멤버들이 눈물을 왈칵 쏟았다.

권능을 잃은 탓에 심리적으로 피폐해져 있던 김영운도 한소현의 무사 귀환에 눈물을 찍어 내며 안도했다.

“걱정 끼쳐서 미안해.”

한소현은 힘없이 웃으며 동료들에게 걸어갔다.

“서라야!”

귀환을 축하받은 이는 비단 한소현뿐만이 아니었다.

평소라면 무턱대고 시현부터 부르짖었을 이나연이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민서라를 끌어안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포옹은 시현에 의해 가로막혔다.

“으억!”

시현이 옆에서 이나연을 냉큼 채 간 것이다.

덕분에 이나연의 포옹을 받아 주려 애매하게 손을 벌린 민서라만 민망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현은 마음이 급했다.

“시간이 없어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전투준비를 끝마치고 공주시로 와 주세요. 상대는 초대형 및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대량의 악마. 그리고 외신 하나입니다.”

“……어엉?”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시현의 말에 일행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만 하고 있었다.

외신이나 대량의 악마는 그렇다 쳐도 초대형은 또 웬 말이란 말인가.

그러나 시현에게는 그들의 의구심을 충족시켜 줄 정도로 시간에 여유가 있지 않았다.

전원이 사라지면 남겨진 생존자들이 위험에 처할까 싶어 임주찬을 남겨 두고 온 상황.

시간을 길게 끌면 끌수록 모든 공격을 감당해야 하는 임주찬이 위험해진다.

6레벨 구원자인 임주찬이 없으면 신을 죽이는 자를 사용한다 한들 외신에게 데미지를 넣는 게 어렵기에 그는 반드시 생존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느 구원자보다 임주찬의 안위가 중요했다.

“권능이 사라졌거나 기타 이유로 전투가 불가능하다면 최대한 빠르게 이탈해 주세요. 민서라 씨는 준비가 끝나면 병원과 교회 및 LT마트에, 정은수 씨는 인천연합에 연락을 해서 지원을 요청해 주세요. 아니, 그냥 연락 가능한 모든 세력에 연락을 취해 주세요.”

“그게 무슨…….”

“마지막 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 이 땅에서 악마들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바라 마지않던 평화로운 세상.

언제 죽을지 몰라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 코앞이라지 않은가.

구원자들의 눈에 비친 각오를 확인한 시현은 망설이지 않고 임주찬이 기다리고 있을 공주시로 도약했다.

“왜 나만!”

시현에게 붙들려 있던 이나연도 강제로 동행하게 되었다.

꽈르릉!

공간을 이동함과 동시에 한 줄기 뇌격이 눈앞으로 떨어졌다.

“……미친.”

조금만 장소를 잘못 잡았으면 통구이가 될 뻔했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다.

영문도 모른 채 납치당해 코앞에 떨어지는 번개를 확인한 이나연의 경우에는 울기 직전이었다.

“왜…… 나도 준비할 시간 필요한데…….”

이나연에게는 미안한 말이었으나, 시현으로서도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까지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나연이 네가 필요해.”

“꼭 저여야만 해요?”

“너 이상으로 뛰어난 광역기를 가진 사람이 달리 없잖아. 설사 있다 해도 네가 제일 믿음직스러워. 신뢰할 수 있고.”

“…….”

이나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존경하는 시현이 저렇게까지 신뢰를 보내 주는데 언제까지 애처럼 칭얼거리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가장 신뢰한다는 말은 그녀의 마음에 커다란 감동을 만들었다.

“헤헤헤.”

바보처럼 웃으며 이나연은 무기를 손에 들었다.

“제가 뭘 하면 되나요?”

“날뛰어 줘. 최선을 다해서.”

“그거라면 또 제 전문이죠.”

이나연은 권능을 사용하는데 주저가 없었다.

어차피 동서남북 어디를 봐도 악마뿐, 아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가장 많은 악마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폭풍을 사용했다.

콰아아!

엄청난 규모의 폭풍이 전방을 초토화시켰다.

살아남은 악마는 중형 중에서도 방어력이 높은 극소수.

나머지는 고작 권능 한 방에 한 줌의 핏물이 되어 바닥을 적셨다.

놈들이 흘린 피만큼 시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구슬도 기하급수적으로 덩치를 부풀렸다.

“한 번 더 갑니다!”

신이 난 이나연은 정신력을 가득 담아 두 번째 폭풍을 날렸다.

쭉쭉 뻗어 나간 폭풍은 전방의 중, 소형 악마들을 쓸어 버렸다.

그것만으로는 성이 안 찼는지 사마귀 비슷하게 생긴 대형 악마에게 크게 한 방을 먹여 주고 나서야 흩어졌다.

“수고했어.”

그녀 덕분에 피의 구슬은 최대 크기까지 부풀었다.

시현은 사슬을 만들어 하늘로 쏘아 보냈다.

이번에는 사슬 끝을 갈고리 창 모양으로 조형했다.

한 번 박히면 빠지지 않게끔 설계된 창끝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명확했다.

[잔꾀를 부리는구나.]

데스피어 옆에서 화염구만 던져대던 외신이 앞으로 나섰다.

강력한 공격력에 엄청난 덩치를 가진 것에 반해 데스피어의 내구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만약 지상으로 끌려 내려간다면 그 충격만으로도 사망할 수 있는 노릇.

때문에 외신은 커다란 불의 고리를 만들어 날아오는 사슬들을 속박했다.

고리에 묶인 사슬들은 힘을 잃고 떨어졌다.

그러나 회심의 공격이 실패했음에도 시현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촤르륵.

[……이, 이 비열한!]

자신의 발목에 사슬이 감기고 나서야 외신은 깨달았다.

데스피어에게 향한 갈고리 창은 어디까지나 미끼였을 뿐이며, 시현이 진지하게 노리고 있던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외신은 지상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이전처럼 넋 놓고 당하지만은 않았다.

있는 힘껏 날갯짓을 하며 불의 검을 만들어 사슬을 끊어 내려 했다.

그러나 두 번째, 세 번째 사슬이 날아와 외신의 손과 발을 속박했다.

더군다나 사슬을 타고 백색의 대검을 손에 든 임주찬이 달려들었다.

촤악!

세 번째 날개가 찢겼다.

“하나 더 받아 가마.”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 판단한 임주찬은 추가로 날개를 잘라 내려 했다.

그러나 욕심이 과했다.

대검은 날개를 자르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크윽!”

어찌나 반탄력이 강했는지, 임주찬은 검을 떨어뜨린 채 손목을 붙잡았다.

[너희 벌레들에게 딱 어울리는 종말을 선사해 주마.]

매섭게 임주찬을 노려보는 외신의 몸과 날개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런……!”

위험하다 판단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리고 욕심의 대가는 참혹했다.

콰앙!

외신의 주변으로 엄청난 규모의 폭발이 발생했다.

백색의 대검이 엄청난 기세로 날아와 시현의 발아래에 꽂혔다.

임주찬은 전신이 새까맣게 타 버린 채 힘없이 추락했다.

‘……죽었나?’

시현은 숨이 턱 막혀 오는 것을 느꼈다.

임주찬은 현 시점에서 외신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구원자다.

유일이자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희망이 꺼졌다.

비록 거리가 멀어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제 아무리 6레벨 구원자라 한들 그 거리에서, 그 정도 위력의 공격을 받고서 멀쩡할 리가 없다.

십중팔구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늘이 도와 가까스로 목숨만은 건졌다 한들, 저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는 악마들에게 갈기갈기 찢어지고 말 것이다.

“나연아!”

시현은 다급히 이나연을 불렀다.

눈치 빠른 이나연은 추가적인 설명 없이도 시현이 원하는 대로 폭풍을 사용했다.

날카로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엔 핏물만이 남았다.

그 위로 임주찬이 떨어졌다.

시현은 황급히 임주찬의 상태를 살폈다.

그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시현에게는 이설아를 죽이고 얻은 시간 조작 능력이 있었으니까.

그는 임주찬의 시신 위에 손을 얹었다.

“시간…….”

<더 이상 시간 조작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해당 낙인이 제거됩니다.>

“…….”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저 찢겨진 공간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금이란 말인가.

1분, 아니, 1초만 더 여유가 있었으면 충분히 임주찬을 살릴 수 있었는데.

마지막 희망이 꺼졌다.

“오빠!”

이나연이 시현의 덜미를 잡아챘다.

시현과 임주찬의 시체가 있던 장소로 데스피어의 점액이 떨어졌다.

잿더미가 된 임주찬의 시체는 뼈 한 조각도 남기지 못한 채 녹아 버렸다.

시현은 고개를 들었다.

계속해서 광범위하게 공격을 뿌려대는 데스피어.

그리고 전신을 화염으로 물들인 채 시현을 내려다보고 있는 다섯 날개의 외신.

그는 웃고 있었다.

[발버둥은 끝났느냐?]

조롱과 멸시로 점철된 미소에 속에서 천불이 났다.

“……아직.”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건가…… 꼴사납구나! 네 힘으로는 내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 아니, 지상에 존재하는 버러지들 모두가 모여도 마찬가지지. 인정해라. 인류는 끝났다. 얌전히 예견된 종말을 받아들여라.]

“아직 안 끝났다고, 이 새끼야.”

시현의 눈동자는 외신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데스피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시현은 한 순간이나마 6레벨 구원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임주찬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만약 그랬다면 예언자 김영운은 예언을 통해 임주찬을 비췄어야 한다.

그러나 김영운의 예언에서 임주찬은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임주찬이 없다 해도 지금의 사태를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시현은 바닥을 구르고 있는 백색의 대검을 손에 쥐었다.

“초대형 정도면 충분하겠지.”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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