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으아아악!”
“끄아아아!”
권능을 이용해 공주시로 전이한 시현과 임주찬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공간 이동 후 처음으로 보인 게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화염이었기 때문이다.
무지막지한 크기의 화염은 두 사람을 집어삼키고도 충분히 남는 크기였다.
시현은 임주찬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내리찍었다.
뻐억!
소리를 보아하니 코피 정도로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시현도 급하게 머리를 숙였고, 화염은 아슬아슬하게 두 남자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첫 번째 공격을 회피하고 머리를 든 시현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하늘 위로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불덩어리들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저게 대체 뭐야.”
불덩어리의 주인은 천사의 날개에 악마의 몸을 갖고 있는 외신이었다.
놈이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하늘에서 불꽃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시현이 백색 화염을 이용해 만들어 낸 화염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광범위하고 위력 또한 경이로웠다.
그러나 불꽃의 대부분은 지상에 닿기도 전에 땅에서 솟아난 백색의 창에 꿰뚫려 폭발했다.
창의 주인은 아르하였다.
그녀는 생존자들이 있는 장소를 집중적으로 보호했다.
이자프 역시 백색의 창을 만들어 외신을 공격했다.
수비와 공격.
각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 냈으나, 그래 봤자 평행선밖에 달리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왜 천사는 악마에 비해 이렇게 약한 거야?]
[어쩔 수 없잖아, 태생이 그런데. 그래도 그만큼 개체는 우리가 더 많아.]
[그러면 뭐 해. 한 마리가 분탕 치면 싹 다 멸종해 버릴 놈들이.]
그래도 여유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는지, 두 명의 신.
정확하게는 한 명의 천사와 그와 동격의 존재가 되어 버린 구 정훈, 현 이자프 사이에 이런저런 잡담이 오가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두 사람을 발견한 이자프가 웃었다.
[드디어 돌아왔네. 보아하니 준비도 만전인 거 같고.]
“…….”
시현은 말없이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곤 신을 죽이는 자를 뽑아 들었다.
생각 같아서는 약해져 있던 자신에게 초대장을 건넨 이자프의 목을 쳐 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날뛰고 있는 외신을 막을 방법이 없다.
시현은 잠시 들끓는 분노를 가라앉혔다.
“부탁드립니다.”
시현은 대검을 임주찬에게 건넸다.
비장한 표정으로 대검을 받아든 임주찬은 눈을 감고 자신의 권능을 사용했다.
전생 투영.
권능이 사용된 후, 발 아래에서 시작된 빛이 한 차례 임주찬을 감쌌다.
외형적으로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기껏해야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정도.
그러나 임주찬이 감고 있는 눈을 떴을 때 시현은 깨달았다.
굉장히 많은 게 변했음을.
“……대충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했어. 그러니까 저놈을 죽이면 되는 거지?”
싸늘한 임주찬의 시선은 하늘을 날고 있는 외신에게 향해 있었다.
* * *
‘아…….’
임주찬은 몸을 떨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이 때가 다가오니 두려움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전생 투영.
전생의 자신을 현재 자신의 몸에 덧씌운다.
남들에게 말한 것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동료들, 그리고 그들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인 시현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강한 권능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임주찬이 가진 권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막강한 권능.
그에 따른 패널티가 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남들에게는 단 1회 사용이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실상은 반대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단 1회밖에 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고 표현하는 게 옳을 것이다.
‘괜찮겠어?’
누군가가 속삭였다.
그게 누구인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전생의 자신이다.
‘괜찮아.’
그는 대답했다.
이미 각오는 마쳤다.
어차피 퇴로는 없다.
그가 도망칠 길을 막고 있는 것은 시현과의 약속뿐만이 아니다.
점점 퍼져 나가는 붉은 하늘.
그것을 막지 못한다면 어차피 인류를 멸망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희생으로 상황을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최소한의 희생이 자신이었을 뿐이고.
‘아…….’
점점 신체의 감각이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발끝부터 시작해 종아리, 허벅지, 골반, 배, 가슴, 그리고 팔 순서대로 감각이 사라졌다.
마지막에는 서서히 의식이 어둠에 잠겨 들었다.
아마 두 번 다시 이 어둠이 걷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편안했다.
촉수 괴물이나 악마에게 끔찍한 모습으로 살해당한 다른 동료들에 비하면 사치에 가까운 마지막 아닌가.
임주찬은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임주찬의 눈빛은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대충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했어. 그러니까 저놈을 죽이면 되는 거지?”
길게 끌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길게 끌 여유도 없었고 말이다.
임주찬은 정면에 꽂혀 있는 검을 손에 쥐었다.
* * *
“도와줘.”
임주찬이 시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투부터가 확연하게 달라져 있는 것으로 보아, 권능은 성공적으로 사용된 모양이었다.
조금 전부터 발생한 원인 불명의 권능 상실 현상.
그게 만약 임주찬에게도 적용되었다면 상당히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나 혼자서는 불가능해. 내가 7레벨이라면 모를까…… 무기의 위력은 충분하지만 서포트가 필요해.”
“알겠습니다.”
전생을 투영한다 해도 6레벨 구원자인 임주찬이 단신으로 외신을 토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부터 도울 생각이던 시현은 곧장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일단 말해두겠지만, 우리는 못 도와줘.]
“……뭐?”
돌연 아르하가 충격적인 발언을 토해 냈다.
당연히 아르하와 이자프가 도와줄 거라 생각하고 그들의 전투력까지 계산에 넣고 있던 시현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충격에 머리가 새하얀 백지장이 되어 버렸다.
“……왜?”
[그거야…… 너도 알잖아? 지금 우리의 상황이 꽤 심각해.]
그녀의 시선은 저 하늘 위.
이자프가 강림할 때 사용한 균열로 향해 있었다.
하늘의 균열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찬란하게 빛나는 균열이 왠지 모르게 섬뜩하게 느껴졌다.
[뭘 이런 때까지 무게 잡고 있는 거야?]
[인간에게 우리는 존경받고, 위엄이 되어야 하니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그렇다면 내가 대신 말해 주지. 외신…… 그러니까 악마 놈이 내가 만들어 놓은 통로를 통해 본진을 공격했어. 명백한 규칙 위반이지만 인간인 이한울과 섞이면서 뭐가 크게 잘못된 모양이야. 원래는 아르하만 올라가도 되지만 여기에는 내 책임도 어느 정도 있단 말이지.]
[어느 정도가 아니라 반은 나, 반은 네 책임이지.]
[그런 고로 나 역시 상황을 수습하러 가야 해. 그러니까 수고해라.]
그 말만 남겨 두고 이자프와 아르하는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 생겨난 작은 빛무리는 저 높은 곳에 있는 하늘의 균열로 향했다.
남겨진 시현은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빠득.
이가 갈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만나자마자 머리통을 반으로 쪼개 놨어야 하는 건데.”
울분을 토하는 시현의 앞으로 외신이 다가왔다.
[너는 저 더러운 비겁자들의 대리인이구나. 네 선택을 후회하며 죽어라.]
외신이 시현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자신의 특기인 화염은 일체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시현을 얕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한숨을 내쉰 시현은 검을 휘둘렀다.
마찬가지로 능력은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콰앙!
굉음이 울리며 시현은 두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외신의 힘을 온전하게 막아 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마냥 밀리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
외신은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시현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한 발자국 물러서고 만 것이다.
“네가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
“내가 공격력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서포터로 빠진 거지, 다른 게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거든?”
시현은 연달아 공격을 퍼부었다.
놈은 팔을 휘둘렀으나 느려도 한참 느렸다.
팔을 들어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은 것은 고작 1회.
나머지는 모두 몸으로 받아 내고야 말았다.
시현의 공격력이 부족해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충격만큼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흠씬 두들겨 맞고 중심을 잃은 놈의 등 뒤로 임주찬이 나타났다.
“나이스.”
임주찬은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6레벨 구원자의 공격력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시현이 상처조차 입히지 못한 외신의 날개 하나를 시원하게 찢어발겼으니까.
잘려 나간 단면으로부터 정체불명의 검은 가루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아아!]
외신은 괴성을 질렀다.
놈들은 외신이라 불리고 있지만 실상은 악마다.
굉장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외신들처럼 감히 대적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놈은 근접전에 취약한 개체.
지금 두 사람으로도 충분히 상처를 입힐 수 있고, 충분히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
[이 버러지들이 감히!]
외신은 두 사람과 크게 거리를 벌렸다.
날개 하나가 잘려 나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기동력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삽시간에 멀어진 외신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임주찬은 손가락을 들어 외신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거 날고 있는데?”
“그러게요.”
“어떻게 잡아?”
“일단 최소한의 준비는 해 왔습니다. 하지만…….”
시현은 아무 것도 없는 손을 쥐락펴락했다.
외신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시현은 이에 맞춰 아르하의 권능을 세팅해 왔다.
“준비한 권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조금 조건이 필요해서요. 조건을 갖추려면 준비물이 필요한데…….”
시현은 주변을 살폈다.
이미 외신과 두 신의 싸움에 의한 여파 때문에 제대로 남아 있는 걸 찾기 어려울 정도로 황량해져 있었다.
그나마 살아 있는 몇 개의 건물에는 생존자들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급하다 한들 생존자들을 준비물로 사용할 수는 없지.’
아무리 경각에 처해 있다고 하지만 인간으로서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넘을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외신은 두 사람을 죽이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태워 죽여주마.]
하늘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불덩어리가 생겨났다.
“막을 수 있겠어?”
“글쎄요.”
확신할 수는 없었다.
물량도 물량이지만, 하나하나 가지고 있는 위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일방통행이 과연 몇 방이나 공격을 막아줄지, 현재로써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피하지 뭐.”
임주찬은 굉장히 간단한 일이라는 듯 말했다.
전생을 투영하기 이전의 임주찬은 답답하고 소심한 아이 같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지금의 임주찬은 든든한 전우 같았다.
[죽어라!]
기어코 화염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공주시 전체에 무작위로 떨어진다면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다른 생존자들은 어쩌나 싶었지만, 다행이도 공격은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이 악물고 피합시다.”
“좋아.”
두 사람은 사력을 다해 내달렸다.
원형의 화염은 땅에 떨어진 후 회전하며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그런 게 수도 없이 떨어져 내렸다.
뿐만 아니라 땅이 갈라지며 화염이 솟구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이 가해졌다.
그러나 시현은 위기의 순간 적절히 일방통행을 사용하며 효과적으로 공격을 회피했다.
[감히…… 종말의 운명을 가진 버러지들이 감히……!]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자 머리끝까지 분노한 외신이 새로운 수단을 꺼내 들었다.
[크아아아!]
멀리서 악마의 외침이 들려왔다.
외신과 신의 전쟁에서 몸을 보전하기 위해 달아난 악마들이 외신의 부름을 받고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또한 갈라진 땅에서부터 무장한 임프들이 솟아올랐다.
[캬아아악!]
“이거 참…….”
임프와 눈이 마주친 시현은 웃었다.
“자충수라니, 고맙기도 하지.”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