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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98화 (198/225)

[198화]

한예인.

LT마트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한기훈의 동생이자, 원작에서는 주인공 정훈과 함께 활약한 구원자.

하지만 참가자들의 욕심으로 인해 그녀는 죽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한기훈은 동생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녀를 위한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문제는 그 무덤이 있는 장소다.

시현이 기억하는 한예인의 무덤은 마트에서 약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녀의 무덤 외에도 마트를 위해 싸우다 죽은 구원자 및 생존자들의 무덤이 있는 장소이며, 한기훈이 일주일에 2∼3번은 방문하는 편이라고 본인의 입으로 말했다.

즉, 한예인의 무덤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 묘비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누가 장난이라도 해 놓은 건가? 그게 아니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시현은 옆에 있는 묘비로 눈길을 돌렸다.

내 소중한 친구이자 위대한 영웅이었던 한기훈. 여기에 잠들다.

“……이건 또 뭐야.”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어째서 한기훈 씨의 묘비가 여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LT마트의 리더인 한기훈은 현재 멀쩡하게 살아 마트를 노리는 촉수 괴물들을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왜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의 묘비가 존재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인천도 아니고 해운대에 무덤이 있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단순히 동명이인인가 싶었으나, 그것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 씨 남매의 이름이 이렇게 나란히 놓여 있을 리가 없다.

“난감하네.”

일단 단서를 조금 더 확보하자는 생각에 시현은 묘비를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럴수록 그가 느끼는 황당함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채연, 유설, 나설주, 박화영…… 와, 강소하 묘비도 있네. 사진 찍어서 보여줘야겠다.”

놀랍게도 무덤가에는 원작을 읽었다면 누구나 알 수밖에 없는 유명인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찬열과 김영운의 이름까지 확인했을 때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처음에는 누군가의 악질적이고 공들인 장난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그럴만한 이유가 없을뿐더러, 고작 장난 따위라 치부하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시현을 이곳으로 보낸 이는 이자프가 아닌가.

아무 의미 없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이곳으로 시현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확인이 필요했다.

시현은 가까이에 있던 무덤 하나를 파헤쳤다.

겨우 1미터 정도를 파내려 갔을 뿐인데, 투박한 목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관 뚜껑에 손을 올린 시현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차라리 안에 아무 것도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시현의 기대는 배신당했다.

무언가 특별한 조치라도 취한 것인지 관 안에 있는 시체는 전혀 썩지 않았다.

시현은 관 뚜껑을 닫았다.

묘지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린 시현은 다른 묘지 앞에 섰다.

강소하.

묘지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게으름뱅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시현은 떨리는 마음으로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열었다.

“이런 미친.”

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설마 했는데 관 안에는 강소하가 누워 있었다.

관을 닫은 시현은 한동안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봤다.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한참이나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낸 시현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다 쓰러져가는 나무집으로 다가갔다.

처음 볼 때부터 문은 잠겨 있지 않았으나, 양심상의 문제로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주인의 허락이고 뭐고, 시현은 때려 부술 기세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진입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집 안은 굉장히 지저분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건지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으며, 천장 구석에는 통통한 거미가 진을 치고 있었다.

일단 거실로 추정되는 장소에는 특별한 물건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충 거실을 둘러본 시현은 옆방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다.

방은 침실로 사용되고 있었는지 매트리스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방 안에 가구라고는 창가에 놓인 원형 테이블과 의자가 전부였다.

원형 테이블 위에는 가죽 커버의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책을 손에 든 시현은 표면에 가득한 먼지를 털어 냈다.

그러곤 첫 장을 펼쳤다.

책의 정체는 누군가의 일기장이었다.

9월 4일.

정해수.

그 빌어먹을 자식 때문에 오늘도 많은 동료들이 목숨을 잃었다.

권능을 이용해 남의 모습을 카피하는 정해수를 막기는 쉽지 않다.

무언가 수는 없는 걸까?

이나연.

그 괴물 같은 여자만 없었어도 정해수 따위는 어렵지 않게 처치할 수 있었을 텐데.

9월 11일.

또 동료들이 죽었다.

정신 오염이 원인이라고 해도 정해수를 용서할 수 없다.

다행이도 김영운의 예언 덕에 최악의 미래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죽은 동료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이번에는 반드시 정해수를 처단할 것이다.

인도자 이찬열이 우리를 이끌어 줄 테니까.

10월 1일.

드디어 정해수의 처단에 성공했다.

남은 건 이제 이나연……이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뭔가 후련한 표정을 한 채 스스로 목을 내밀었다.

이해할 수 없는 여자다.

“…….”

일기를 쭉 읽어 내려가던 시현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 일기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내용만 봐도 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정훈.

원작의 주인공인 그가 쓴 일기가 분명했다.

시현은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겼다.

철저하게 정훈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기는 했지만, 원작에 나온 것과 크게 다른 내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시현은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3월 15일.

드디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외신을 처단하는데 성공했다.

인류는 승리했다.

하지만 이걸 과연 승리라 칭해도 될 것인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나와 함께한 동료들 대부분이 평화로운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채 억울하게 눈을 감았다.

살아남은 자들도 후유증으로 인해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곧 나는 혼자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런 결말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시현은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일기에는 인류가 맞이한 씁쓸한 결과가 담겨 있었다.

최후의 전쟁.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외신이 깨어났고, 인류는 그들을 봉인하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마지막에 이 땅에 서 있는 것은 인류였다.

모든 외신들은 봉인 당했다.

악마들은 처음 나타났을 때처럼 돌연 자취를 감췄고, 남은 건 무너진 문명을 재건하는 것뿐이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보는 입장에 따라서는 사실상 배드 엔딩에 가까운 결말이었다.

그러나 이 일기장에는 뒷페이지가 있었다.

원작에는 나오지 않은, 일종의 후일담이었다.

3월 18일.

드디어 모든 동료들의 무덤을 만들어 주는데 성공했다.

이곳에 머무르며 영원이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3월 21일.

아르하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머리를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3월 22일.

어느 날, 신은 인류의 종말을 선언했다.

천사들은 신의 결정에 결사적으로 반대를 외쳤으나 그 뜻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러던 와중 한 천사가 신이 가진 힘의 일부를 도둑질했다.

그 힘으로 천사는 종말이 예언된 세상과 똑같이 생긴 새로운 세상을 창조했다.

종말의 나팔 소리는 복제된 세상에 울려 퍼졌다.

감히 신을 모욕한 천사는 타락의 형벌을 받게 되었지만, 그 덕분에 인류는 종말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천사들에게는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자신들로 인해 탄생했으며, 동시에 종말을 맞이하게 된 세상의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천사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복제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류에게 종말에 맞설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

한편, 종말의 날이 다가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악마들은 천사들의 농간에 분개했다.

복수를 위해 악마들도 복제된 세상에 개입했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은 길게 이어졌다.

서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기에 전쟁은 더욱 격해졌다.

하지만 결국 전쟁은 천사와 인류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천사들은 말했다.

이 세상의 인류는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우리 인류는 생각했다.

어떻게 이게 구원이란 말인가.

3월 24일.

오늘도 어김없이 아르하가 찾아왔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우리가 쟁취한 승리를 없던 것으로 만들자고.

처음에는 무슨 개 같은 소리인가 싶었지만, 가만히 듣고 보니 나쁘지 않은 방법 아닌가.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고 같은 전쟁을 반복한다.

더 나은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면.

죽음을 맞이한 내 동료들이 살아서 평화로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전쟁을 반복할 의사가 있었다.

3월 25일.

문제가 발생했다.

전쟁을 되풀이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타락한 천사가 훔쳐 낸 신의 힘은 아직 남아 있었고, 그걸 이용하면 복제된 세상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나다.

수많은 악마들을 처단한 덕에 나는 천사 중에서도 가장 강한 아르하와 비슷한 수준으로 격이 상승해 버렸다.

따라서 나는 다시 시작될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

기껏해야 천사들이 그러던 것처럼 내 힘의 일부를 인간들에게 나눠 주고 그들을 응원하는 게 전부였다.

전쟁을 되풀이한 이유가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렇게 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4월 1일.

이미 결정된 것을 번복할 수는 없다.

전쟁은 시작되었고, 우리는 선택을 해야 했다.

이대로라면 승리하는 것은 악마다.

다행이도 아르하가 괜찮은 방법을 고안해냈다.

승자로서의 권한을 이용해 원래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꾀어내기로.

복제된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알려 주는 건 인과율에 어긋난다.

그러나 원래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복제된 세상의 미래를 알려 주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의 세계는 원본 세계에서 파생된 하위 차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궁지에 몰려 있는 인간들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665개의 씨앗이 승리를 가져다주기를 바라면서.

4월 2일.

재미있는 운명을 가진 사람이 있다며, 아르하가 말했다.

그가 지목한 남자는 확실히 재미있는 운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쉽게 표현하자면 땅속을 기던 지렁이가 어느 날을 기점으로 엄청난 힘을 얻고 용이 되어 하늘을 나는 그런 운명.

그런데 그 운명의 날이 참으로 기묘했다.

전쟁이 시작되는 바로 그 날 아닌가.

나는 666번째 초대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직접, 그를 찾아갔다.

“……하, 아하하하하!”

시현은 웃었다.

매트리스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채,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응시하며 마냥 웃었다.

누가 보면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 취급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지금의 시현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떻게 제정신을 차릴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의 진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신의 일상을 왜곡시킨 범인을 찾았다.

시현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천히 뽑아 든 검에 검은 기운과 불꽃, 그리고 빛과 폭풍이 섞여 들었다.

콰앙!

굉음과 함께 낡은 나무집이 붕괴했다.

정확하게는 산산조각 나 폭발하듯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정훈…… 아니, 이자프.”

내뱉은 목소리에 진득한 살기가 묻어났다.

“그래, 어쩐지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다 싶었어. 그때 술집에 찾아와서 나한테 초대장을 주고 간 새끼가 바로 너라 이거지?”

그동안 쭉 고민하고 생각했다.

누가, 왜, 어떤 이유로 자신을 선택했는지.

그 모든 원인을 알게 된 시현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포탈을 만들어 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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