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촤르르륵!
기다렸다는 듯 붉은 촉수가 날아왔다.
시현은 정면에서 날아온 촉수를 일격으로 잘라 버렸다.
민서라가 촉수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 앞으로 달렸고, 나머지 인원은 추가로 들어올지도 모를 습격을 대비했다.
그 판단은 성공적이었다.
차가 지상에 오름과 동시에 양쪽 방향에서 촉수가 날아왔으니까.
사전에 배치되어 있던 강소하와 이나연이 거기에 대응했다.
두 사람이 촉수를 붙들고 있는 동안, 신호석과 진우혁이 촉수 괴물의 숨통을 끊어 냈다.
물론 시현이라고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주변은 고층 건물이 너무 많단 말이지…….”
대부분의 고층 건물은 두 번의 아포칼립스를 겪으며 붕괴했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 주변은 살아남은 고층 건물이 유독 많았다.
이는 즉, 촉수 괴물들이 숨어 있을 장소가 많다는 뜻이다.
촤아아악!
머리 위에서부터 수십 가닥의 촉수가 쏘아졌다.
그러나 시현은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가 칼질을 할 때마다 잘려 나간 촉수 가닥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런데 하나, 시현의 공격을 버텨낸 촉수 가닥이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다른 촉수와 비교해 그것의 굵기나 강도가 범상치가 않음을 간파한 시현은 길게 뻗은 촉수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높게 올라간 빌딩의 사이.
거대한 무언가가 시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 없이 거대한 존재감을 뽐내는 대형 악마.
놈에 대해 간단한 말로 표현하자면 더러운 용 정도가 되겠다.
그렇지 않아도 짧고 뚱뚱한 몸집에 더러운 갈기털까지 가지고 있는데, 쩍 벌어진 입에서 징그럽기 짝이 없는 촉수 다발까지.
꿈에 나올까 두려운 광경이었다.
시현은 물론이요, 놈을 발견한 일행 전원이 넋을 잃고 말았다.
아마 짐칸에서 외부를 볼 수 있었다면, 온갖 비명소리가 난무했을 것이다.
“와…… 설마 아니겠지 싶었는데, 대형 악마도 숙주가 되는구나.”
“더러운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 거 같아.”
일행들은 대형 악마를 혐오하되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찬열은 달랐다.
“어? 어어……! 저, 저놈 투명한 벽은 못 넘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쫓아온 거야?”
그는 명백하게 대형 악마에 기생한 촉수 괴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대형의 거구를 가리키는 이찬열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이제 막 시현 일행에 합류하기도 했고, 이전에 놈에게 쫓긴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찬열의 반응은 양반이라 할 수 있었다.
“으아아아악!”
백미러를 통해 악마를 확인한 임주찬은 목이 찢어지도록 비명을 질렀다.
도로를 따라 달리던 차가 갈피를 잃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정신 차리고 속도 높이세요!”
“네? 그래도 괜찮을까요? 지금도 꽤 빠른 거 같은데…….”
“여기에 있는 사람들 60까지는 달릴 수 있습니다.”
“네? 유, 육십이요?! 그게 가능한 수치에요?”
“그야 구원자는…… 아니, 이럴 시간 없어요. 어물쩍거리다 저거에 잡히면 다 죽어요!”
시현의 외침에 다급함이 묻어나왔다.
아무리 신호석이 재주껏 택배 차량을 보강했다고 하지만, 그래봤자 철판 몇 정 덧댄 것이 전부다.
저런 무식한 놈의 공격에 당한다면 쥐포처럼 짓뭉개지고 말 것이다.
짐칸 안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시현의 지시에 따라 임주찬이 속도를 높였다.
그에 맞춰 대형 악마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쿵!
얼마나 무게가 육중한지 놈이 한 걸음을 내딛을 따마다 땅이 흔들렸다.
대지가 움푹움푹 파이고, 아스팔트가 균열을 일으키고 뒤집어지며, 그나마 남아있던 고층 빌딩들이 비명을 지르며 붕괴했다.
차량과 악마의 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쳇.”
혀를 찬 시현은 차량의 옆에서 달리고 있는 강소하를 낚아챘다.
“어억! 컥컥!”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속도로 질주하던 강소하는 목에 가해진 갑작스러운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기침을 해댔다.
시현은 자신이 있던 자리에 강소하를 앉혔다.
“뒤는 부탁한다.”
“이, 이 미친 자식! 말로 하면 어련히 알아서 하는데!”
강소하는 얼굴이 빨개진 채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의 불만을 들어 줄 시현은 이미 차에서 뛰어내린 후였다.
“이찬열 씨, 따라오세요.”
“어? 저, 저요?”
시현의 지목에 이찬열은 급하게 속도를 줄였다.
그러나 불안을 감지한 건지 완전히 멈추지는 않고, 어정쩡한 속도와 자세로 멀어지는 차량의 뒤를 쫓고 있었다.
시현은 그런 이찬열을 낚아채고 차량과 반대 방향, 더러운 용이 있는 장소를 향해 달렸다.
“설마…… 시현 님, 저거랑 싸우실 생각인가요?”
“죽일 수 있으면 죽이고, 아니면 적당히 시간만 끌다가 도망칠 겁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찬열 씨가 판단해 주세요.”
다시 말해 인도자의 권능을 사용하라는 소리였다.
다행이도 이찬열을 현명한 인간이었고, 시현의 말뜻을 금방 알아차렸다.
“잠시만요.”
그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은 채 인도자의 권능을 사용했다.
목적은 대형 악마에 기생하고 있는 숙주의 토벌.
가능하다면 옅은 두통이 생길 것이고, 불가능하다면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지끈.
기다렸다는 듯 뇌리에 가해지는 가벼운 두통에 이찬열은 웃었다.
“토벌 가능합니다.”
그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이에 시현도 자신을 가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인도자의 확증 아닌가.
그렇다면 사실상 승패는 정해진 거라 봐도 무방했다.
“알겠습니다.”
더욱 속도를 높인 시현과 악마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놈은 시현을 발견하자마자 선제공격을 가했다.
대형 악마의 신체 능력은 굉장히 뛰어나지만, 기본적으로 촉수 괴물은 적을 공격할 때 숙주의 신체를 이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촉수를 이용한다.
대형 악마에게 기생했다 해서 다르지는 않았다.
시현을 향해 거대한 촉수 다발이 휘둘러졌고, 시현은 흑색의 검신을 가진 검에 흑색의 기운과 찬란한 백색의 불꽃을 섞어 휘둘렀다.
콰앙!
검과 촉수가 부딪치는 순간 섬광이 터져 나왔다.
엄청난 굵기를 자랑하는 촉수가 단칼에 잘려 나가고, 시현은 앞으로 내달려 용의 앞발을 찢으려 했다.
아무리 대형 악마라 한들 숨이 끊어져 있는 상황.
외피는 발동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현의 공격은 놈의 가죽을 뚫지 못했다.
“뭐가 이렇게 단단해?”
“시현 씨! 뒷발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이찬열의 외침이 빗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이찬열이 외쳤다는 것은 그곳에 승리로 향하는 길이 있다는 뜻이다.
시현은 조금도 의심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곧장 뒷발을 향해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확실히 살을 베는 느낌이 전해졌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허연 뼈가 드러났다.
“앞 다리에 비해 뒷다리의 내구가 비정상적으로 약하네. 그러면 일단 기동성부터 빼앗고 시작할까.”
적의 약점을 발견한 시현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보통은 알 리가 없는 약점.
이를 간파하기 위해 수많은 구원자들의 노력과 희생이 강요되지만, 이찬열 한 사람의 존재만으로 그 과정을 생략할 수 있었다.
고작 일격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용은 시현을 위험 분자로 낙인찍었다.
놈이 가진 모든 촉수가 일제히 시현을 향해 날아들었다.
* * *
“정면에 대형 악마 발견! 촉수에 감염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가장 선두에 있던 구원자의 외침에 한소현 일행은 걸음을 멈췄다.
저 멀리 짙은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무언가의 형체가 눈에 보였다.
“어떻게 할까요?”
김영운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어왔다.
대형 악마와 싸울 것인지 회피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권수용의 흔적은?”
“대형 악마가 있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마 계속 흔적을 쫓는다면 교전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전투준비.”
“하아…… 결국 이렇게 되나.”
어지간히도 교전을 회피하고 싶었는지, 김영운이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토했다.
그러나 불평불만을 늘어놓을지언정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착실하게 수행했다.
그는 한소현의 지시를 모든 인원에게 전달하고 조명탄을 준비했다.
아무리 구원자라 해도 이렇게 짙은 어둠 속에서 싸우기에는 여러 가지 애로 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상태에서 일행은 권수용의 흔적을 따라 더욱 대형 악마에게 접근했다.
그런데 한 가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쾅, 콰앙!
“이거…… 싸우고 있는 소리 같은데?”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울리는 굉음.
누가 들어도 대형 악마가 전투하며 발생하는 소음이었다.
“설마…….”
일행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한소현은 빠르게 이동하며 김영운에게 신호를 줬다.
기다렸다는 듯 김영운은 하늘을 향해 신호탄을 발사하고, 강렬한 빛이 어둠으로 가득하던 일대를 밝게 물들였다.
빛 아래 드러난 대형 악마의 모습은 굉장히 끔찍했다.
대형 악마는 한 명의 구원자와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구원자의 정체는 랭킹 2위 참가자.
윤시현이었다.
“와…… 우리 권수용의 흔적을 쫓던 거 아니었어? 그런데 왜 저 사람이 저기에 있어?”
“살면서 저런 진풍경을 다 보게 되네.”
제 아무리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라 한들, 주변에 포진한 구원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감춰 주지 못했다.
바로 한소현의 옆에 자리한 김영운을 제외한 전원이 윤시현의 무용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일부 구원자의 표정에서는 감동과 존경까지 자리하고 있었다.
“저게 사람이 가능한 기예야? 대형이랑 1:1이라니…….”
“촉수 괴물의 숙주가 되었으니 조금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단하기는 하네.”
늘 자신을 믿고 따라주던 이들의 시선이 지금은 다른 이에게 향해 있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한소현의 시선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정면으로 향하게 된다.
“그래, 정말 대단하기는 하네.”
자존심이 상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한소현의 전투력은 엄청난 회복력에서 기인한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준의 상처를 입어도 곧바로 회복하고 전투를 지속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전투는 장기전이 되지만, 그녀는 확실하게 승리를 쟁취해 낸다.
그러나 상대가 대형 악마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체의 특정 부분에 상처를 입히는 소, 중형 악마와 달리 형체 자체를 남기지 않는 대형 악마의 광범위한 공격은 그녀가 회복할 아주 찰나의 시간조차 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은 할 수 없는 기예를 선보이는 시현이 부러웠다.
동시에 불안했다.
‘얼마나 남았을까?’
Re write가 시작되자마자 사도로 간택된 그녀는 단 한 번도 랭킹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밑바닥에서 시작한 시현은 어느덧 그녀의 턱 밑까지 쫓아온 상황이었다.
붉은 하늘 아래에서는 참가자를 위한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다.
때문에 랭킹을 확인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이었으나,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랭킹을 확인했을 때 자신의 앞에 표시되어 있는 숫자가 1이 아니라 2로 표시되어 있다면.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도울 겁니까?”
김영운이 물었다.
그녀가 보기에 김영운은 시현에게 과할 정도로 호의적이었다.
지금도 그랬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냥 지나치자고 적극적으로 주장할 놈이건만, 악마와 교전하고 있는 대상이 시현이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도우러 가자고 눈치 주고 있었다.
그녀는 고민했다.
‘지금 내가 윤시현을 도와서 얻을 수 있는 메리트는 없어. 상황을 보아하니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독자들에게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끼어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빠르게 판단을 마친 한소현은 추가적인 상처를 입고 괴로워하는 촉수 괴물로부터 시선을 거뒀다.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끼어들지 말고 우리는 권수용이나 쫓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김영운은 퍽 아쉬워했지만, 한소현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한소현 일행은 계속해서 권수용의 흔적을 쫓았다.
그 결과.
한소현은 다수의 촉수 괴물에게 포위당해 있는 한 무리의 구원자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곳엔 상당히 익숙한 얼굴들이 다수 보였다.
“저 사람들은…… 시현 씨의 휘하에 있는 구원자들이군요.”
같은 것을 목격한 김영운이 한소현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 주었다.
“시현 씨는 여유로워 보였지만, 저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해 보이네요.”
“…….”
한소현은 아주 잠깐 망설였다.
시현은 경쟁자이기는 하지만, 마지막 전쟁에서 자신과 함께 싸워 줄 든든한 아군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한소현은 위기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망설였다.
저들이 시현의 세력에 속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현의 랭킹을 올려 주는데 한 몫을 거들고 있기 때문에.
그렇기에 망설였다.
하지만 잠깐이나마 망설였다는 사실 자체가 수치스럽고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가자.”
그녀는 자신의 속에 자리 잡은,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검고 어두우며 끈적이는 감정을 지워 내기 위해 무기를 손에 들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