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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91화 (191/225)

[191화]

기본적으로 촉수 괴물들은 괴성을 지르거나 하지 않는다.

본체는 이미 사망한 상태이며, 본체에 기생해 놈들을 조종하는 촉수들은 성대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그러나 언제나 세상만사에는 예외라는 게 있는 법이다.

[오오오오!]

“크윽!”

고막에 꽂히는 어마어마한 성량의 괴성에 이찬열은 귀를 틀어막았다.

조금의 과장도 보태지 않고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다.

“빌어먹을…… 진짜 여기가 가장 안전한 루트가 맞는 거야?”

그의 혼잣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작은 두통이 발생했다.

현재 이찬열의 목적은 붉은 지역에서 최대한 안전하게 벗어나는 것.

그가 가진 권능은 가장 안전한 루트를 엄선하여 붉은 지역의 바깥까지 안내해 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가장 안전한 루트가 맞는 건지 의심이 들었다.

콰앙!

“흐억!”

이찬열은 몸을 움츠리며 비명을 질렀다.

불과 1초 전까지만 해도 이찬열이 서 있던 장소에 거대한 촉수가 내리꽂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촉수 괴물들과 마주치고 놈들을 사냥했지만, 촉수 괴물이 지금처럼 두렵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왜 인도자가 알려준 도주 루트에 대형이 있는 거냐고! 내가 너무 혹사시켜서 고장이라도 난 건가?”

건물의 벽 뒤에 몸을 숨긴 이찬열은 창 너머로 자신의 적을 확인했다.

놈의 정체는 거대한 용이었다.

다리는 짧고, 몸통은 굵으며, 전체적으로 둥글고 두꺼운 형태의 용은 신화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외형과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했다.

암적색의 비늘은 끈적이는 물질을 만들어 내고 있었으며, 목덜미에 자란 긴 털에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얽혀 있었다.

하지만 그 끔찍한 외형 이상으로 두려운 것은, 그놈 역시 촉수 괴물에게 기생당해 있다는 것이었다.

용이 입을 쩍 벌릴 때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촉수들이 뻗어 나와 인근을 초토화시켰다.

놈의 공격 방식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용의 턱이 비정상적인 규모로 둥글게 부풀었다.

이찬열은 황급히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리 큰 효능은 없었다.

[우어어어어!]

한껏 빨아들인 공기가 분출되며 우렁찬 포효가 터져 나왔다.

그럴 때마다 두 번의 아포칼립스를 겪고도 살아남은 유리창이 죄다 박살나는 영화와도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그런 일을 목도할 때마다 인도자의 성능을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1년 이상 그를 안전하게, 그리고 강하게 만들어 준 것은 인도자였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믿었고, 인도자가 알려 준 루트를 따라 쭉 내달렸다.

숨어 있던 이찬열이 이동을 시작하자 촉수 괴물에게 잠식당한 용도 그의 뒤를 쫓았다.

쿵! 쿵!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땅이 격하게 진동하는 바람에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조차 힘겨운 상황이었다.

“젠장! 돼지 새끼처럼 생긴 주제에 뭐 저렇게 빨라?!”

용이 걷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다.

하지만 덩치가 크다 보니 한 걸음의 폭이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으아아아악!”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찬열과 용의 거리는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목덜미의 바로 뒤에 용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이미 죽은 놈이라 숨을 쉴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진짜 믿는다…… 인도자!’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

무언가가 이상했다.

어느 순간부터 들려오는 발소리가 자신의 것뿐이었다.

대지를 울리던 용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슬그머니 걸음을 멈춘 이찬열은 뒤를 돌아봤다.

“……멈췄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찬열을 잡아 죽이겠다는 기세로 달려들던 용이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서 있었다.

용은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이찬열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대체 무슨…… 아!”

이찬열은 금세 원인을 파악했다.

조금 전과 비교해 쏟아지는 빗줄기가 다소 약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어둠 또한 조금은 옅어진 기분이었다.

보이지 않는 벽을 통과해 붉은 지역의 최심부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렇구나. 대형은 최심부를 벗어나지 못해. 그래서 인도자가 나를 이쪽 루트로 안내한 거였어.”

역시 자신의 권능을 끝까지 믿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대형을 따돌렸다고 해서 아직 안전이 확보된 것은 아니다.

대형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인근에는 악마, 혹은 사망자의 사체에 기생한 촉수 괴물이 활보하고 있을 테니까.

완전히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 번 더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 붉은 지역의 외곽, 그 너머에 있는 푸른 하늘을 찾아야 한다.

이 장소를 떠나기 전.

이찬열은 마지막으로 뒤를 바라봤다.

짙은 어둠 탓에 대형 악마의 실루엣조차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찬열의 시선은 대형 악마의 너머에 있는 어둠에 향해 있었다.

“나는 포기한 게 아니야.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준비가 갖춰지면 다시 돌아오겠어. 그 때는…….”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리운 동료들의 얼굴을 떠올린 이찬열은 눈을 질끈 감았다.

꽉 말아 쥔 손에는 녹슨 쇳조각 하나가 들려 있었다.

* * *

4레벨 이상의 구원자들은 붉은 비에도 어느 정도의 면역을 갖는다.

그래서 고작 비옷 한 장으로 밖을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하 레벨의 구원자들, 혹은 각성조차 하지 못한 일반 생존자들은 비옷을 입더라도 붉은 비 아래로 나갔다가는 목숨을 잃게 된다.

아무리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우산까지 든다 한들 조금만 바람이 강하게 불면 얼굴에 빗방울이 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현은 차를 이용한 이동을 선택했다.

그를 위해서는 차량이 필요한데 서울까지 다녀올 여유가 없었기에 불가피하게 근방에서 차를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시현은 이나연을 대동한 채 인근의 탐색을 시작했다.

나머지 인원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집 지키기를 지시해 두었다.

“오빠! 여기 괜찮은 물건을 찾았어요.”

도토리를 찾는 다람쥐처럼 빨빨거리며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던 이나연이 시현을 호출했다.

“9인승 승합차, 열쇠 있음! 어떻게 잘 구겨 넣으면 번거롭게 여러 번 왔다 갔다 할 필요 없이 한 번에 이동할 수 있겠네요.”

“그러면 이거로 하자.”

시현이 운전석에 오르자 당연하다는 듯 이나연이 조수석에 올랐다.

시현은 곧장 나머지 일행이 기다리고 있을 건물로 향했다.

하지만 목적지까지 절반도 못 가 문제가 발생했다.

콰앙!

“……아.”

건물 옥상에서 날아온 촉수가 차량의 보닛을 꿰뚫은 것이다.

엔진이 파괴된 것인지 차는 그대로 죽어 버렸다.

“꺄아아아아! 이거 찾는데 세 시간이나 걸렸는데!”

세 시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자 이나연은 비명을 질렀다.

지독한 좌절감에 두 눈에는 눈물방울마저 맺혀 있었다.

지금의 상황이 절망스러운 것은 시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촉수 괴물의 공격을 차량이 버티지 못하는구나.”

다시 한번 이어진 공격에 이번에는 천장이 찢겨 나갔다.

뚫린 구멍으로부터 빗물이 줄기차게 쏟아져 들어왔다.

만약 차량의 내구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이동이 끝났을 때 차량 안에는 생존자가 아니라 촉수 괴물만 득실거리게 될 것이다.

“그냥 헬기를 띄울까? 아니, 이륙 상륙 과정에서 공격해 오면 대처하기 힘들 거야……. 그리고 가장 편리하고 확실한 이동 수단을 모험으로 잃을 수는 없으니까. 다른 방법을…… 너 어디가?”

“복수하고 올게요!”

힘들게 얻은 이동 수단을 한순간에 잃어 화가 난 건지 이나연은 후드를 눌러쓰고는 촉수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시현은 딱히 그녀를 제지하거나 하지 않았다.

어차피 중형 이상의 개체가 아닌 이상 이나연이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중형 이상의 개체라면 알아서 도망쳐 나올 테고.

때문에 시현은 그녀를 걱정하기보다 새로운 이동 수단의 탐색에 나섰다.

다행이도 바로 인근에서 괜찮은 차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많은 짐을 싣고 이동하는데 최적화된 택배 차량이었다.

“일반 차량보다는 튼튼할 테니 조금만 보강한다면 괜찮을 거 같은데. 열쇠도 있고 말이야. 엔진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그 정도는 다른 차량을 분해하면 해결할 수 있어. 고치는 건 호석이에게 맡겨 두면 되겠지.”

남은 문제는 엔진이 고장 난 차량을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지고 가는 것인데 그 정도야 구원자의 힘을 사용하면 문제될 거 없으니 그리 걱정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얘는 왜 이렇게 안 와?”

생각보다 이나연의 귀환이 늦어졌다.

최근 들어 전투에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이나연에게 인간, 혹은 소형에게 기생한 촉수 괴물 정도는 식후 운동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이나연의 귀환이 늦어진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차오른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일부러 끝을 내지 않고 적을 고문하듯 가지고 놀고 있거나,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거나.

이나연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전자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일단은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

차량의 위치를 기억해 둔 시현은 조금 전 이나연이 있던 장소로 향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전투로 인한 소음이 빗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아직 촉수 괴물과의 전투가 끝나지 않은 건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닌 것 같았다.

마치 검과 검이 맞부딪치듯 금속의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문제가 생긴 것 같네.”

문제 확인을 위해 막 걸음을 때려던 순간.

콰아아아!

엄청난 기세의 폭풍이 건물의 옥상으로부터 쏘아졌다.

어렵지 않게 회피에 성공한 시현의 표정이 굳었다.

“폭풍을 사용했다고?”

이건 예삿일이 아니다.

폭풍은 위력이 강한만큼 정신력의 소모가 크다.

그렇기에 어지간히 버거운 상대가 아닌 이상, 이나연은 규모를 축소해 자신의 무기에 두르는 식으로 사용하지 원형 그대로 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녀가 원형의 폭풍을 사용하는 경우는 대량의 적을 빠르게 섬멸해야 할 필요가 있거나, 아니면 개인의 무력으로 다소 버거운 상대와 싸울 때.

둘 중 하나뿐이다.

“이쪽 방향으로 대량의 적이 있는 건 아닐 테니, 나연이에게 버거운 상대라는 건데…… 그렇다면 중형? 아니, 그랬다면 금속음이 날 리가 없는데.”

적의 형태가 잡히지 않아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했다.

물론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시현의 두 다리는 부지런하게 땅을 박차고 있었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한 시현은 계단을 올라 옥상에 도착했다.

그곳에 거칠게 숨을 헐떡이고 있는 이나연이 보였다.

그런 이나연과 대립하고 있는 존재는 놀랍게도 사람이었다.

“구원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데다가 주변에 깔린 어둠 때문에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하나 분명한 건 그가 이나연을 상대로 대등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빠?”

시현을 발견한 이나연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쪼르르 달려와 시현의 팔을 붙잡았다.

“오빠! 저희를 습격한 촉수 괴물을 퇴치하려 했는데 갑자기 저 인간이 나타나서 방해했어요. 일단 때려눕히고 시작하려 했는데 생각보다 레벨이 높아서…….”

그녀는 친구의 잘못을 선생님께 고자질하는 유치원생처럼 옥상에서 있던 일을 낱낱이 고했다.

남자는 시현과 이나연을 향해 무기를 겨눈 채 살벌하게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남자의 뒤에는 촉수가 죄다 뽑혀나간 촉수 괴물이 쓰러져 있었다.

보아하니 바로 심장이나 머리를 부수지 않고, 일부러 촉수를 하나하나 뜯어내며 화풀이를 한 모양이었다.

팔과 다리 역시 부러져 있었다.

남자는 그런 촉수 괴물을 지키듯 등지고 서 있었다.

“전력을 다한 거 맞아? 특성도 사용했고?”

시현의 질문에 이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4레벨 구원자인 이나연의 특성은 천살성.

사람이 버티기 힘든 수준의 살기를 토해 내는 그 권능 덕에 1:1로 이나연에게 이길 수 있는 4레벨 구원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시현에게 아르하의 권능이 없었다면, 그 역시 이나연과의 싸움을 꺼려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남자는 이나연과 대등한 싸움을 벌였다.

그렇다는 것은 남자가 5레벨 구원자이거나, 천살성을 무시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시현은 남자에게 흥미를 느꼈다.

그의 시선이 닿자 남자는 무기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줬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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