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악마를 사냥하면 자연스럽게 에너지가 충전된다고 하네요. 일정량 이상의 에너지가 모이면 거기에 이끌려 자연히 두 번째 조각을 얻을 수 있고요. 그렇게 두 조각을 얻으면 나머지 두 조각이 있는 위치도 알 수 있어요.”
“……?”
시현은 의아함이 앞섰다.
그녀의 말과 달리 전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원래 하나이던 게 네 조각으로 나뉜 데다가 무기의 형태가 아니라 악마를 직접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라 효율이 쥐똥같다고 하네요.”
“어느 정도로요? 병원에 남아 있는 신혈을 사용하면 금방 모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원작에선 지혜의 군주가 첫 번째 조각에 에너지를 모으는데 3년을 투자하고도 다 못 모았다고 하네요.”
“…….”
시현은 말없이 뒷목을 잡았다.
무기는 당장 필요했다.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 며칠 정도야 투자할 여유가 있지만, 그게 년 단위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때까지 수목원에 있는 외신이 얌전히 기다려 줄 리가 만무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몇 년이나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게 엔딩을 보고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게 목표인 시현에게, 몇 년이나 악마와 싸워야 한다는 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일이었다.
“그냥 없는 물건으로 치부해야겠네요.”
“그러니까요.”
시현은 깔끔하게 포기를 선언했다.
민서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시현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
그래도 신을 죽이는 무기라 해서 엄청 기대했는지 굉장히 아쉬운 표정이었다.
“괜히 시간만 버렸네요.”
세 명의 참가자가 신을 죽이는 자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투자한 시간은 꼬박 반나절이었다.
제대로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장시간 동안 매달렸는데, 얻은 결과가 고작 ‘불가능’이라는 문구라니.
아쉬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더 이상 여기에 있어도 어쩔 수 없으니 중심부를 향해 이동하죠.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한껏 풀이 죽은 두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시현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지루한 몇 시간을 보내며 깜빡 잊고 있던 게 하나 있었다.
“안 돼요! 저희를 데리고 나가 주세요!”
“…….”
시현은 오늘만 두 번째로 뒷목을 잡았다.
숨이 턱 막힐 것 같이 답답했다.
그 몇 시간 사이에 정신을 차린 여성이 또 다시 시현의 발목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현이 힘없는 생존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한 몇몇 생존자들이 추가로 매달렸다.
어디까지나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뿐이지 그들의 주장은 한결같았다.
시현이 살아서 이 사건을 해결할 거라는 확신이 들지 않으니 우리를 먼저 구해 줘라.
그 과정에서 네 시간과 노력이 얼마나 소요되던 우리와는 무관한 일이다.
그 따위 주장이나 하고 있는데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그들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반대였다.
그나마 얼마 없던 동정심마저 바닥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걸 사용할까?’
시현은 주머니에 넣은 손으로 쇳조각을 만지작거렸다.
이걸로 눈앞의 여성을 내리쳐 기절시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렇게 시현이 진지하게 그것을 실행으로 옮길까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제, 제가…….”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려움에 가득 찬, 그러나 얼마 없는 용기를 가까스로 쥐어 짜낸.
그런 느낌의 목소리는 난잡한 와중에도 시현을 포함한 모두의 이목을 잡아끌 정도로 충분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건물에 감금된 채 죽어가던 생존자들 중 유일한 구원자, 임주찬이었다.
갑작스럽게 이목이 집중되니 그는 흠칫 놀랐다.
그러나 다시 한번 용기를 쥐어짜 입을 열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러니까 다른 분들을 도와주세요.”
“도와주겠다니…… 무슨 수로?”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이는 이나연이었다.
기껏 식량과 물자를 베풀었더니 보이는 배은망덕한 태도에 화가 잔뜩 난 이나연의 음성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네가 구원자이기는 하지만 고작해야 1레벨이잖아. 여기 있는 전원이 매일 사선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어. 4레벨 구원자도 그 정도인데 1레벨 구원자인 네가 뭘 할 수 있어?”
그녀는 가감 없이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쏟아 냈다.
보아하니 미약하게나마 천살성 특유의 지독한 살기까지 발하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
그러나 임주찬은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그쪽 말이 맞아요. 전투에서 저는 방해가 되면 됐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한 번이라면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어떻게?”
“…….”
여기까지 와서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계획 없이 무작정 질렀다기보다는 마지막 한 걸음을 두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때문에 모두가 임주찬에게 시선을 집중한 채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임주찬은 머뭇거리며 아껴 두었던 한마디를 내뱉었다.
“딱 한 번, 6레벨 구원자의 힘을 사용할 수 있어요.”
“6, 6레벨?!”
그가 내뱉은 말은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3인의 참가자의 경우, 외침이 아니라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임주찬이 말한 권능이 너무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겨우 1레벨을 상승시켜 주는 레벨 서포터만 해도 그렇다.
고작해야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1레벨을 끌어올리기 위해 수많은 연구와 실패를 반복했으며, 성공한 후에도 패널티는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
원작에 등장하는 서포터들 중 최고 수준의 권능을 가졌다 말하는 구원자의 서포트조차 레벨 서포터 이상의 효율을 내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더욱 믿기 어려웠다.
1레벨 구원자가 6레벨 수준의 힘을 사용한다는 임주찬의 주장을 신뢰하기에는 시현이 가진 정보가 너무 많았다.
임주찬의 주장을 불신하는 이는 비단 시현 일행만이 아니었다.
“뭐야, 임주찬이 저런 무시무시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거짓말 아니야? 저 인간 구원자 중 유일하게 능력을 가지지 못했잖아.”
“금방 들킬 거짓말을 굳이 왜 하겠어? 뭔가 이유가 있어서 지금까지 숨겨 온 거 아닐까?”
빌딩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저마다의 주장을 펼쳤다.
대부분이 임주찬의 주장을 불신했지만, 그래도 손가락질을 당할 만큼 못되게 살지는 않았는지 그의 허무맹랑한 주장을 믿어 주는 이도 소수 존재했다.
시현도 일행을 불러 긴급회의를 실시했다.
“저 주장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제가 구원자 쪽 지식이 그렇게 뛰어난 건 아니지만, 저건 말이 안 되죠.”
“솔직히 믿지 못하겠는데.”
“조건이 까다로운 대가로 능력의 상승폭이 큰 세연이의 권능조차 능력 상승 폭이 1레벨 조금 못 되는 정도잖아요. 그런데 1레벨 구원자가 단숨에 6레벨이 된다? 저는 허풍이다에 한 표.”
“사기 아닐까요? 난 그 정도로 굉장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1회용이라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없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더 위급한 순간이 언젠가 올 것이다. 이러면서 계속 권능은 사용하지 않고 빌붙어 지내는 거죠.”
“그렇게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이런저런 의견이 나오며 하나로 합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의 주장을 믿지 못하겠다는 쪽이었다.
시현 역시 임주찬의 주장을 쉬이 진실이라 믿지 못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의 주장이 진실이라면, 시현은 오늘날의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때문에 시현은 임주찬과 시선을 맞췄다.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처음 만났을 때 시현이 선보인 무력 때문인지, 그는 시현과 대화를 할 때마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지금도 그랬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눈알을 굴리는 게, 이러다 거짓말이 들키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하는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이 가진 권능의 이름을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시현은 여기서 조금이라도 망설이거나 버벅거린다면 그의 주장을 거짓말로 치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임주찬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드라아이가의 축복. 이름은 전생투영입니다.”
“……전생?”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시현은 크게 놀랐다.
드라아이가의 축복.
원작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물론 이 땅에는 굉장히 다양한 권능이 존재한다.
원작에선 다양한 권능을 다루기는 했지만, 존재하는 모든 권능을 다루지는 못했다.
시현이 알지 못하는 권능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생투영이라니.
그 이름을 듣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생투영. 전생을 투영하는 권능이라는 건가? 전생…… 전생이라면 설마…….’
허무맹랑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하나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정훈을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 소설의 리메이크 버전인 Re write라는 이름의 소설을 쓰고 있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새로운 소설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리메이크이기 때문에 원작에서 등장한 사건은 고스란히 발생하고, 등장인물의 이름, 성격, 능력 등은 완전하게 동일하다.
다른 점은 원작의 주인공인 정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새로운 주인공으로 666명의 참가자가 투입되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시현은 한 가지 호기심을 느꼈다.
‘임주찬의 권능이 말하는 전생이 원작이라면?’
만약 그렇다면 임주찬은 반드시 놓쳐서는 안 될 인재다.
이 저주받은 땅에서 거의 10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생존하며 강해진 구원자의 힘을 손에 넣게 되는 셈이니까.
그러나 시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는 망상에 가까운 추측 아닌가.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하지만 현저히 낮을 뿐이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기대는 하되, 그 기대가 언제든 배신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
“알겠습니다.”
“……네? 알겠다니요?”
“저분들을 붉은 영역 밖으로 무사히 탈출시켜드리죠. 그 대가로 임주찬 씨는 저희를 위해 한 번 그 권능을 사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시현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표정은 여전히 불안한 채였다.
“정말 괜찮겠어요?”
민서라가 작은 속삭임으로 시현의 결정에 불안을 표했다.
그러나 시현은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들에게 식량을 죄다 넘겨줘서 한 번은 영역 밖으로 나갈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리들끼리 움직이는 거랑 호위 대상을 데리고 나가는 것은 차이가 있잖아요. 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정말 저 사람을 데리고 다닐 생각이에요?”
그녀는 임주찬을 곁눈질하며 말했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것조차 장담할 수 없는 위험지역에서 1레벨 구원자를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임주찬의 주장을 거짓이라 확신하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시현 역시 임주찬을 위해 위험을 무릅쓸 생각은 없었다.
“제 독단적인 결정이니만큼 임주찬 씨는 제가 책임지고 보호하겠습니다. 임주찬 씨의 권능은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만약 거짓말이라면…… 가장 후회하는 사람은 본인이겠죠.”
아무리 시현이 보호해 준다고 하지만 세상일이란 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법이다.
더군다나 일행이 향하는 곳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가 도사리고 있는 장소.
불가피하게 시현이 임주찬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그 경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건 본인뿐인데, 전생투영의 권능이 거짓일 경우 임주찬은 꼼짝없이 죽는다.
거짓말의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임주찬 씨. 부디 지금 하신 말씀이 진실이기를 바랍니다.”
“……네.”
임주찬은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채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