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아까운 에너지만 소모하게 됐군. 가만 둬라. 어차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하등한 존재일 뿐이다. 하찮은 생물에게 일일이 신경 쓸 가치는 없다. 그렇다고 방치해 둘 수도 없다.]
남자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이찬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손 위에 앉은 파리조차 쫓아내지 못할 만큼 무기력한 손짓이다.
그러나 미약한 두통이 느껴졌다.
지금 저 남자가 뭘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뭐가 되었건 위험하다는 반증이다.
그는 몸을 던졌다.
콰아아아!
손끝에서 쏘아진 붉은 섬광이 불과 1초 전까지 이찬열이 서 있던 장소를 휩쓸었다.
“…….”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장담하건데 4레벨이건 뭐건 저건 스치기만 해도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복수는 불가능해!’
뭐 가능성이 있어야 시도라도 해 볼 거 아닌가.
그의 권능은 100%의 확신을 담아 말하고 있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저것의 숨통을 끊어 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이찬열의 권능은 결코 잘못된 것을 알려 주지 않는다.
설사 목적지까지 가는 길이 험하고 고되며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 해도.
확실하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그렇기에 인도자인 것이다.
[……설마 빗나갈 줄이야. 몸에 영 익숙하지가 않군. 이 몸으로 힘을 쓰는 건 처음이라 굉장히 낯설다. 에너지 낭비. 다음은 없다.]
다시 한번 남자의 손이 이찬열에게 향했다.
이찬열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번 공격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찬열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인도자가 이끄는 대로, 눈앞의 붉은 웅덩이를 향해 몸을 던졌다.
[……예상 밖이군. 가만 둬도 괜찮은 건가? 웅덩이에 접촉한 순간부터 놈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더 이상은 에너지 낭비일 뿐. 하지만 웅덩이 안에는 그게 있다. 관계없다. 미끼는 산처럼 많으니.]
남자의 중얼거림을 뒤로하고 이찬열은 웅덩이 아래로 내려갔다.
상당히 깊은 웅덩이 밑바닥에는 수많은 무구들이 꽂혀 있었다.
도, 검, 창.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여 있는 쇠붙이가 족히 수백 개는 되어 보였다.
대충 봐도 알 수 있었다.
하나같이 성능을 예측할 수도 없는 최고급 장비들의 정체는 교단이 전국 각지에서 긁어모은 보물들이었다.
겉모습부터 휘황찬란한 놈들도 다수 존재해 절로 시선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이찬열을 헤매지 않았다.
인도자가 이끄는 대로 단 하나의 무기만을 노리고 나아갔다.
손에 쥔 것은 커다란 대검이었다.
다른 장비들과 비교해 특별한 거 하나 없어 보이는 투박하기 짝이 없는 대검.
‘……이게 맞나?’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로 옆에 있는 것만 해도 손에 들면 동레벨의 구원자는 적수조차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무기였으니까.
하지만 이찬열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 준 인도자를 믿었다.
그는 대검을 들고 웅덩이를 벗어나려 했다.
‘이런…….’
웅덩이를 빠져나오기 직전에 손이 미끄러져 대검을 놓치고 말았다.
다행이도 대검이 저 아래까지 떨어지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바로 닿을 위치에 박힌 대검을 확인한 이찬열은 먼저 뭍으로 올라갔다.
지금 가장 급한 것은 호흡이다.
“커헉!”
그는 참던 숨을 들이켰다.
조금 전부터 느껴지던 가슴의 괴로움이 숨을 억지로 참아서 그런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뭍에 나와도.
폐 속에 산소를 가득 채워 넣어도 가슴의 고통이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찬열을 죽이려 들던 남자는 그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마치 이미 죽어 있는 시체를 대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기회야!’
이찬열은 물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곤 대검을 건져 올렸다.
그 순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찬열에게 무관심한 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남자가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시선은 이찬열이 들고 있는 대검에 못 박혀 있었다.
[어떻게 수많은 무구 중 저것을 딱 골라 집을 수 있지? 불가능. 이해 불가. 아니, 하나 가능성이 있다.]
스산한 시선에 몸속의 피가 죄다 얼어붙는 듯 했다.
[인도자 이찬열. 지혜의 군주. 그렇군. 저 놈이 그 놈이었어. 실수했다. 진즉 처리했어야 했어. 왜 바로 알아보지 못했지? 너는 개미의 얼굴을 하나하나 구분 할 수 있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남자는 손을 뻗었다.
콰아아아!
붉은 광선이 쏘아졌다.
처음 발해진 것보다 몇 배는 빠르고 몇 배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대로 죽는구나 싶은 순간.
구원의 손길이 뻗어졌다.
<강한 공격이 감지되었습니다. 사용자를 보호합니다.>
<사용자의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합니다. 비상 대피.>
화악!
무기로부터 빛이 터져 나왔다.
눈을 찌르는 강한 빛에 이찬열을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이윽고 빛이 사라지자 이찬열은 천천히 눈을 떴다.
코앞까지 들이닥친 붉은 빛은 보이지 않았다.
“여긴…….”
애초에 환경 자체가 변해 있었다.
기이한 외모의 남자가 있던 넓은 공간 대신 보이는 것은 완파된 대전의 경관이었다.
하늘에 내리는 빗줄기가 중심부보다 약간은 얇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건 답답한 천장이 아니라 하늘이다.
“어떻게 된 거지?”
당황해하는 이찬열의 발 아래쪽에 놓인 대검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비상 대피 완료.>
“비상 대피?”
그제야 뭐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있었다.
인도자는 틀리지 않았다.
그를 복수의 대상에게 안내해 줬고, 그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아마 이 검이 놈에게 대적하기 위한 마지막 열쇠일 것이다.
하지만 일은 그리 쉽게 풀리지 않았다.
<에너지 부족. 사용자의 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합니다. 수면 상태에 들어갑니다.>
다시 한번 검에서 빛이 발해졌다.
조금 전의 빛이 이찬열에게 이로운 것이었다면 이번 빛은 해로운 것이었다.
빛이 사라진 후 검은 네 조각으로 분열되었다.
심지어 분열된 모습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녹슨 쇳조각.
잃어버리면 다시 찾는 게 불가능한 수준의 디자인이다.
“미친!”
이찬열을 황급히 조각을 주워 모았다.
그러나 처음 한 개를 줍고 두 번째 조각을 주워 들려는 순간.
촤르르륵!
섬뜩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는 급하게 몸을 굴렸고,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촉수가 내리꽂혔다.
무너진 건물의 담벼락 뒤로 촉수의 주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중형 악마인 리퍼였다.
놈은 촉수의 반을 이용해 이찬열을 공격하는 한 편 남은 촉수 가닥으로 조각을 회수하려 했다.
그러나 조각은 강한 빛을 발하며 촉수가 접근하는 것을 거부했다.
거기에서 끝났다면 어떻게든 촉수 괴물을 처치하고 조각을 회수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청 더러운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각은 촉수로부터 멀어졌다.
그냥 멀어진 게 아니다.
빛에 휩싸이더니 전이해 버렸다.
“……망했다.”
이찬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 *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물에 빠진 놈들을 구해 놨더니 왜 자기 보따리는 안 건져 줬냐고, 책임지라고 따지고 드는 예의 없고 몰상식한 사람들.
건물에 감금되어 있던 사람들이 딱 그랬다.
“제발요! 저희를 여기에서 데리고 나가 주세요!”
“그러니까 그러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니까요? 아니, 설사 그렇다 해도 왜 우리가 그래야 하는데.”
“어쩜 사람이 그렇게 매몰찰 수가 있어요.”
“물이랑 식량 줬잖아요. 지금 대전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도 어떻게든 해결해 줄 테니까 그 때까지 기다리라고요.”
“실패하면요! 실패하면 우리는 여기서 꼼짝없이 굶어 죽어야 하잖아요. 잠깐만 시간 내서 데리고 나가 줘요. 제발요!”
“아…….”
시현은 오랜만에 뒷목을 잡았다.
벌써 한 시간 째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여자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오랜 굶주림과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이성과 함께 수치심까지 마비되어 버린 것인지 민폐를 끼치는데 일말의 주저도 없었다.
“오빠, 그냥 깔끔하게 잘라 버리고 가죠. 팔…… 아니면 목?”
이나연의 살기등등한 발언조차 흘려들을 정도로 절박한 것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껏 구해 놓고 제 손으로 죽이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일 뿐이지 딱히 이렇다 할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런 것 가지고 팔을 자르네 어쩌네 하는 건 과했다.
‘그래도 얄미워 죽겠으니까 머리 한 대 쥐어박고 싶다. 그렇게 기절한 틈을 타서 여기를 탈출하는 거지.’
물론 실제로 쥐어박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시현의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한 걸까.
누군가가 그녀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빠악!
“…….”
“……머, 머리 깨진 거 아니에요? 소리가 장난 아니었는데.”
살벌한 대사를 토해 내던 이나연마저 당황했을 정도로 엄청난 소리가 울렸다.
시현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던 여성의 손에서 힘이 완전히 빠져나갔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정신을 잃었다는 뜻이다.
시현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호흡을 확인했다.
“휴우.”
그러곤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살았어요?”
“응, 살아 있어.”
“와…… 진짜 깜짝 놀랐네.”
이나연도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나저나 나연이가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범인이 따로 있다는 것인데.’
여성의 생존을 확인하고 나서야 시현은 그녀의 머리를 쥐어박은 범인을 찾았다.
그런데 여기 모인 일행 전원이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시현의 발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시현도 자신의 발밑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웬 녹슨 쇳조각이 구르고 있었다.
“이게 뭡니까? 누가 던졌어요?”
“저, 그게…… 갑자기 허공에서 뿅! 하고 나타나더니 거기 계신 여성분의 머리 위로 떨어졌어요.”
신호석이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이게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났다 이거지? 마치 공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시현은 쇳조각을 주워들었다.
무겁고 투박하며 도대체 어떤 물건인지 유추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생긴 물건.
하지만 보통의 물건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체적으로 희미한 열을 발하고 있었다.
손난로 대신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에 딱 좋은 온도다.
물론 그랬다가는 무게 때문에 주머니가 찢어지겠지만 말이다.
‘이 쇳덩어리의 정체가 뭐지? 보아하니 굉장히 중요한 물건인 거 같은데…… 그보다 하필이면 왜 내 눈앞에 전이된 거야?’
뭔가 중요한 물건 같기는 한데 동시에 의심스럽기도 하다.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였다.
“어?”
시현에게 매달리는 여성을 말리지도, 부추기지도 못하고 손톱만 씹고 있던 임주찬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 그게…….”
시현의 말에 우물쭈물하는 임주찬.
그의 눈동자가 기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쇳조각, 어디서 본 거 같아서요.”
“본 적이 있으시다고요?”
“음…… 아, 맞다!”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표정이 확 밝아진 임주찬이 손뼉을 쳤다.
“예전에 초소형 악마의 둥지를 클리어하고 받은 보상이에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라면서 리더가 화를 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굉장히 비싼 값을 치르고 사갔거든요. 분명 이름이…… 뭐더라?”
구매자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한 임주찬이 고민에 빠졌다.
보다 못한 임주찬의 동료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이한울.”
“맞아. 그런 이름이었어요.”
“…….”
시현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