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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185화 (185/225)

[185화]

역시 중형 악마에 기생한 촉수 괴물을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 동시라니.

덕분에 시현은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겨야만 했다.

“아직 멀었어요?”

민서라가 시현을 보챘다.

그러나 그녀를 책망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를 포함한 일행 전원이 몸을 아끼지 않은 덕에 시현이 중형 둘과 온전하게 싸우는 거니까.

“이제 끝났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시현은 크게 검을 휘둘렀다.

권능과 승리의 영광 등 공격력을 높일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끌어모은 일격이었다.

거대 괴물 쥐는 심장과 머리를 이미 꿰뚫린 상황이며, 리퍼 역시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있었다.

남은 건 심장을 꿰뚫는 것뿐이다.

촤르르륵!

수십 가닥의 촉수가 모여들어 심장을 보호했다.

누군가의 사체에 기생해 살아가는 놈들이지만, 그래도 생존 본능은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시현의 검은 촉수와 촉수 사이로 아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각도까지 완벽했던 일격은 어려움 없이 촉수 괴물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것으로 끝.

숨이 완전히 끊어진 촉수 괴물은 녹아내렸다.

“이제 녹아내린 사체에서 결정을 발견하기만 하면 가정은 사실이 되는 건데…….”

침착하게 기다리고 싶었지만, 아군의 상태를 보니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시현은 막 녹아내리기 시작한 시체를 헤집었고, 반짝이는 결정 두 개를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전처럼 정신을 멍하게 하는 충동이 있기는 했지만, 반지에서 뿜어지는 빛이 그것을 상쇄시켰다.

“퇴각!”

시현은 일행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뒤로 빠졌다.

그러나 시현은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벽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쭉 뻗은 손이 벽에 닿았다.

한 순간 끈적이는 젤리 속을 통과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 직후.

시현은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이게 열쇠였어.”

시현은 자신의 손 위에 놓인 두 개의 결정을 보며 환희했다.

촉수 괴물들이 시현을 쫓으려 했으나 결정을 갖지 못한 놈들은 보이지 않는 벽을 통과하지 못했다.

쏴아아아!

벽 너머에 쏟아지는 빗줄기는 굉장히 거셌다.

벽 바깥쪽이 이슬비 수준이라면 안쪽은 조금 줄기가 약한 소나기에 가까웠다.

시현은 모자를 더욱 깊이 눌러썼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 * *

이후에도 시현 일행이 벽 너머로 이동하기까지는 약 4일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전원이 벽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인당 하나의 결정이 필요하다.

결정을 얻기 위해서는 중형 악마에게 기생한 촉수 괴물을 퇴치해야 하는데 그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중형의 코빼기도 보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차라리 일부만 안으로 들어갈까도 생각해 봤으나 조금 먼저 가기 위해 서두르다가 영원히 먼저 가게 될 수도 있다.

결국 시현은 시간을 들여 모든 결정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단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결정을 챙긴 일행은 벽 너머로 진입했다.

“우와…… 벽 한 장 넘었을 뿐인데 빗줄기가 엄청 굵어졌네요.”

“하늘도 더 붉어진 것 같고. 무엇보다 어두워.”

신호석의 말에 긍정한 민서라가 스마트 폰을 조작해 주변을 밝혔다.

벽 너머는 빛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벽 한 장을 넘었을 뿐인데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의 짙은 어둠이 일행을 반겨 주었다.

다른 일행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주변을 밝히는데 집중했다.

“세상에…….”

주변을 살펴 본 민서라가 입을 틀어막았다.

안쪽은 굉장히 처참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이후 상당수의 건물들이 붕괴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숨어서 거주할 만한 장소는 충분히 남아 있었다.

그러나 벽 안쪽은 상황이 달랐다.

멀쩡한 건물을 찾는 게 손에 꼽을 정도였으며, 갈라진 도로 사이로는 붉은 액체가 강처럼 흐르고 있었다.

가뭄에 마른 논밭처럼 아스팔트가 쩍쩍 갈라져 있어 굉장히 보기 흉했다.

계속해서 내리는 비로 인해 습도도 높아져 있는 까닭에 숨을 쉬는 것조차 벅찰 지경이었다.

“형, 일단 어디에서 좀 쉬었다 가는 게 어때요? 가능하면 반나절이라도 좋으니 본진에서 쉬고 싶은데.”

신호석이 약한 소리를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기까지 오기 위해 수많은 촉수 괴물을 돌파해야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촉수 괴물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저놈들은 만들어지는 공장이라도 있는 건가? 아무리 죽여도 끝이 없네.”

시현은 투덜거리며 신호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 많은 수의 촉수 괴물을 돌파하기 위해 신호석은 상당한 무리를 했다.

오른쪽 다리에 생긴 부상은 시현의 권능을 사용해도 치유되는데 몇 시간은 걸릴 것이다.

그렇기에 기왕이면 좋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게 해 주고 싶었다.

시현은 포탈을 생성했다.

“……?”

그러나 시현과 신호석의 신체는 공간의 도약에 실패했다.

다시 한번 시도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시현의 정신력만 사용될 뿐 권능은 발현되지 않았다.

“뭐지? 버근가?”

“시현 씨.”

도대체 무슨 영문일까 싶어 의아해하는 시현에게 민서라가 접근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한 번 살핀 후,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벽을 넘어온 이후부터 랭킹을 포함해서 참가자를 위한 시스템을 전혀 사용할 수 없어요.”

“……잠시만요.”

웃어넘길 수 없는 사항인지라 시현은 곧장 랭킹 시스템을 호출했다.

그러나 시현의 명령은 깔끔하게 무시되었다.

무언가 잘못되었거나 시스템 상에 오류가 있다면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정도의 메시지는 나타났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없었다.

완전한 무반응.

마치 외부와 내부가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아…… 또 머리 아프네. 일단 정확하게 현 상황에 대해 파악할 때까지 어디 안전한 곳을 찾아서 쉬도록 하죠. 휴식이 필요한 건 호석이 뿐만이 아닌 거 같으니까요.”

부상을 입은 신호석 뿐만이 아니라, 벽 안쪽으로 진입한 이후 진우혁의 컨디션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정화의 권능과 무언가 연관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상태로는 제대로 전투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었으나 다행이도 살아 있는 몇 개의 건물이 눈에 띄었다.

시현은 일행을 데리고 해당 건물로 접근했다.

건물 주변에는 익숙한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이건 바리케이드인가?’

상당한 수준으로 파괴되어 본래의 목적을 제대로 이행하는 건 어려워 보였으나, 분명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바리케이드였다.

“혹시 안쪽에 생존자가 남아 있을까요?”

바리케이드는 완파되어 있었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분명하게 남아 있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2주 내외로 보수 작업이 있던 것 같았다.

그렇기에 민서라는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았다.

반면 시현의 의견은 회의적이었다.

“글쎄요.”

무려 4레벨 구원자조차 방심하면 목숨을 잃는 위험천만한 장소다.

어느 정도 붉은 비에 내성을 갖고 있음에도 컨디션 불량을 일으키는 사람이 속출하는데, 보통의 사람이 멀쩡하게 살아 있을 리가 없다는 게 시현의 생각이었다.

“일단 들어가 보죠.”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을 수 있기에 시현은 확답을 내리는 대신 내부로 들어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을 선택했다.

건물 안으로 진입한 일행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미간을 찌푸리며 코를 틀어막았다.

“어으…… 이게 대체 무슨 냄새야?”

“아앗! 호석아 조심해! 거기 똥 있어.”

“꺄악! 뼈! 엄청 큰 뼈!”

코를 찌르는 온갖 악취.

방 안에 가득한 오물과 피.

그리고 뼈와 사체들.

[찍.]

[찍찍! 찌익!]

어둠 속에서 빛나는 붉은 눈빛.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울음 소리.

괴물 쥐다.

대충 봐도 족히 백은 넘어 보였다.

박여래의 경우는 아예 울상이 되어 뒷걸음질 쳤다.

“아…… 나 쥐는 좀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촉수 괴물이 아니라 일반적인 악마라는 것이다.

“아마 쏟아지는 비에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건물 안으로 대피한 것 같네요. 그리고…… 굶주린 나머지 금기에 손을 댄 모양입니다.”

시현의 눈동자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백골에 향해 있었다.

뼈는 딱 봐도 사람의 것이 아닌, 괴물 쥐의 것으로 추정됐다.

동족상잔의 흔적이다.

“드롭 아이템……은 아닌 거 같고. 악마끼리 먹고 먹히면 원래 사체가 남는 건가? 아니면 붉은 비의 효과?”

“지금 그런 게 중요해요?”

혼자 추측에 빠져든 시현의 옆구리를 민서라가 팔꿈치로 때렸다.

그제야 시현은 정신을 차리고 정면을 확인했다.

백여 쌍의 시선은 일행들에게 못 박혀 있었다.

“동족상잔을 할 정도로 굶주려 있는 놈들이잖아요. 아마 죽자 살자 달려들 걸요?”

괴물 쥐는 중형 악마인 거대 괴물 쥐의 통솔이 있으면 제 목숨조차 돌보지 않을 정도로 용감해지는 놈들이다.

반대로 우두머리가 없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는 겁쟁이가 괴물 쥐라는 악마다.

딱 봐도 놈들의 우두머리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구원자를 보고 달아나야 정상이다.

그러나 며칠을 굶주리며 동족상잔까지 서슴지 않는 놈들이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

툭.

시현은 칼끝에 권능을 담아 바닥을 내리쳤다.

검은 파동이 건물 내부를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시현보다 약한 악마에게 강한 공포를 선사하는 권능이지만, 그로 인한 효과는 경미했다.

눈을 까뒤집고 드러누운 괴물 쥐는 고작 다섯에 불과했다.

지독한 굶주림에 공포를 느낄 최소한의 이성조차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찌이익!]

[찍찍!]

굶주림에 미친 괴물 쥐는 일제히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건물의 내구도를 고려했을 때 광역기인 이나연의 폭풍을 쓰기도 애매한 상황.

결국 시현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무력으로 하나하나 때려잡는 것뿐이었다.

“뭐 하나 쉽게 풀리는 게 없네.”

시현의 짙은 한숨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이대로 죽는 건가?’

배가 고팠다.

목이 말랐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미 비축되어 있는 식량은 전부 소진했으며, 수도관이 파괴된 건지 더 이상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

“망할…… 그러니까 내가 진즉부터 식량을 비축해 놓자고 했잖아. 괜찮을 거라며 귓등으로도 안 들어 먹더니 이게 무슨 꼴이야.”

옆에서 여성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거기에 대꾸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와 말싸움을 하며 소진될 에너지조차 아끼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죽게 될 거. 일찍 죽으나 괴로워하다 늦게 죽으나 무슨 차이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진짜로 움직일 수 없게 되기 전에 밖으로 나가서 식량을 구해 와야 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임주찬은 생각했다.

‘아, 또 둘이 싸우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무슨 수로? 저 붉은 비에 맞은 사람들이 어떤 몰골로 변하는지 너도 봤을 거 아니야.”

“그래도 이렇게 앉아서 죽는 순간만 기다리느니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겠어? 어떻게든 재료를 모아서 우비를 하나 만들던가 해야지.”

“어떻게? 우리를 지켜 줄 구원자들은 이제 주찬이 하나만 남은 상태야. 설사 붉은 비가 아니더라도 1층에는 괴물 쥐가 득실거리는데. 저것들은 누가 처치해?”

“주찬이가 해야지. 구원자니까!”

“쟤가?”

여성은 조소했다.

“상태가 저런데 어떻게? 심지어 쟤는 무늬만 구원자지 제대로 된 능력조차 없잖아.”

“그래도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

“지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자꾸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래!”

점점 싸움 소리가 격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의 언쟁이 높아지면 늘 그들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누군가가 찾아왔다.

쿵!

무언가가 문을 두드렸다.

철판을 덧대고 경첩을 강화한 문이 쉽게 뚫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나 충격이 강한지 문뿐만 아니라 벽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쿵! 쿵!

두 사람이 침묵한 후에도 무언가는 한참이나 문을 두드렸다.

그러기를 약 10분.

드디어 지친 건지 문을 두드리던 무언가는 포기하고 문으로부터 멀어졌다.

방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소리 죽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따라 유난히 격하네.”

“그러게 말이야. 괴물 쥐가 저 정도로 강하지는 않잖아. 설마 촉수 괴물이 건물에 들어온 건 아니겠지?”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두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아웅다웅하는 사이에도 임주찬은 눈을 감은 채 귀를 기울였다.

‘뭔가 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두 남녀가 말한 것처럼 임주찬은 구원자이지만 별다른 권능을 갖지 못한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다.

그 대가인지 임주찬의 감각은 다른 구원자보다 훨씬 발달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임주찬은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한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지금 건…… 사람 목소리?’

60억 로또 당첨자는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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